통일민주당
정당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8:12
통일민주당은 1987년 창당된 대한민국의 야당입니다. 김영삼과 김대중을 주축으로 6월 민주항쟁을 이끌며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 후보 선출 갈등으로 김대중계가 분당하며 평화민주당이 창당되었고 1987년 대선에서 패배했습니다. 이후 1990년 노태우의 민주정의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과의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에 흡수되며 해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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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용팔이 사건 발생]
통일민주당 출범 직후, '용팔이' 김용남이 깡패들을 동원하여 지구당 창당을 폭력적으로 방해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출입문을 부수고 당원들을 폭행하며 사무실 집기를 불태운 충격적인 사건으로, 김용남 등은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습니다.
[통일민주당 창당]
당시 제1야당인 신한민주당의 내분으로 김영삼과 김대중이 합의하여 새로운 야당인 통일민주당을 창당했습니다.
상도동계와 동교동계 의원들이 대거 합류하며 민주화 추진의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김영삼 초대 총재 취임]
통일민주당 창당대회를 개최하고 김영삼 전 신민당 총재를 초대 총재로 추대했습니다.
단일지도체제를 채택하고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핵심 정강정책으로 삼으며 민주화를 위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국민운동본부 결성]
전두환 대통령의 4·13호헌조치에 맞서 비제도권 사회단체들과 함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결성했습니다.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관철하기 위한 장외투쟁을 강화하며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 섰습니다.
[6월 민주항쟁 동참]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와 함께 '박종철군 고문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를 개최하여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전국적인 집회와 시위를 유발하며 민주화를 위한 국민적 염원을 표출했습니다.
[국민평화대행진 개최]
'민주헌법쟁취 국민평화대행진'을 벌여 전국적인 시위를 유발, 시민들의 민주화 열망을 결집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는 민주정의당 노태우 대표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 수용을 골자로 하는 6·29선언을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김대중계 분당]
6월 민주항쟁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후보 선출 문제로 김대중의 동교동계 의원들이 집단 탈당했습니다.
이들은 별도로 평화민주당을 창당함으로써 통일민주당은 큰 분열을 겪게 됩니다.
[김영삼 후보 추대]
임시 전당대회를 개최하여 제13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김영삼 총재를 공식 추대했습니다.
이는 분당 이후 통일민주당이 나아갈 길을 명확히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선에서 노태우에 패배]
제13대 대통령 선거에 김영삼 후보를 내세워 참여했으나, 유효투표의 28.0%를 득표하는 데 그쳤습니다.
36.6%를 얻은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에게 패배했습니다.
1988
[김영삼 총재 재신임]
임시 전당대회를 통해 당헌을 개정하고 김영삼 총재를 재신임하며 내부 결속을 다졌습니다.
총재단 선출도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제13대 총선 제3당]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와 전국구를 합쳐 총 59석을 확보하여, 민주정의당(124석)과 평화민주당(70석)에 이어 제3당이 되었습니다.
이는 여소야대 국면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김영삼 총재 재추대]
정기 전당대회를 통해 당헌당규를 개정하고 김영삼을 다시 총재로 추대했습니다.
민주화 투쟁을 계속할 것을 결의하며 당의 정체성을 재확인했습니다.
1990
[3당 합당으로 해산]
노태우의 민주정의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과의 이른바 '3당 합당'을 통해 민주자유당이 창당되면서 통일민주당은 해산되어 소멸했습니다.
이는 한국 정치사에 큰 변곡점이 되었습니다.
[3당 합당 의결]
임시 전당대회를 통해 민주자유당으로의 삼당합당을 최종 의결하고, 합당 수임기구 결정권을 김영삼 총재에게 일임했습니다.
이는 통일민주당의 해산을 공식화하는 절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