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길

정치인, 노동운동가,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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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10- 12:3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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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길
정치인, 노동운동가,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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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진보 정치인. - 서울신문 기자 출신으로 언론노조 활동을 거쳐 민주노조 운동에 헌신. -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을 지내며 노동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부상. - 민주노동당 대표 및 17 18대 국회의원 역임. - 국민 여러분 살림살이 많이 나아지셨습니까? 유행어로 대선에서 인상적인 행보를 보임. - 80대에도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전도사로 왕성히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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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

[일본 야마구치현 출생]

일본 야마구치현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 권우현은 빨치산 출신으로 권영길 출생 5년 전 일본으로 이주했다.

1945년 해방 후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귀국했다.

1953

[아버지의 죽음과 약속]

한국 전쟁 중 빨치산 활동을 위해 지리산으로 들어갔던 아버지 권우현이 1953년 정전협정 후 빨치산 토벌 작전 중 사살되었다.

권영길은 자신의 진보 정치 활동이 아버지와의 '남몰래 가슴에 새긴 약속'이라고 밝혔다.

1967

[박정희 암살 시도 조직 참여]

대한일보를 퇴사한 뒤 신문 기자, 육군사관학교 출신 군인들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 제거 활동조직'에 참여했다.

1971년 유신 이후 '박정희 암살'을 목표로 했으나, 조직원 간 토론 끝에 1974년 자진 해산했다.

이 충격적인 사실은 2008년 언론 인터뷰를 통해 뒤늦게 알려졌다.

1969

[서울대 졸업 및 기자 생활]

경남중, 고등학교를 거쳐 1961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농잠학과에 진학했으며, 1학년을 마친 뒤 휴학하고 육군에 자원입대하여 1963년 만기 제대했다.

1967년 대한일보에 입사하여 기자로 활동했고, 1969년 서울대학교를 졸업했다.

1971

[서울신문 기자 및 파리 특파원]

서울신문사에 입사하여 기자로 활동했으며, 1980년에는 서울신문 파리 특파원으로 발령받아 프랑스에서 7년간 체류하다 1987년에 귀국했다.

1987

[언론노조 위원장 선출]

노동운동에 참여하며 1987년 언론노동조합연맹 위원장으로 선출되었고, 1988년 2대, 3대 언론노련 위원장을 연임하며 언론노조 운동을 이끌었다.

1989

[기관지 무단 발행 기소]

문화공보부에 등록하지 않고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의 기관지 〈언론노보〉를 무단 발행한 혐의로 서울지방검찰청에 의해 불구속 기소되었다.

이후에도 발행을 계속했다.

이 사건으로 1993년 1월 29일 서울형사지방법원으로부터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다.

1994

[불법 집회 및 쟁의 개입]

1994년 6월부터 1995년 11월까지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 및 민주노총 공동대표로 활동하며 다수의 불법 집회와 쟁의 행위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경희대와 연세대 건조물에 무단 침입하여 대회를 개최하고, 행진 시위로 도로 교통을 방해한 혐의도 포함되었다.

1995

[민주노총 창립 주도]

1995년 공식 출범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창립에 참여했으며, 이듬해인 1996년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에 선출되며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새로 썼다.

1996

[노동법 날치기 총파업 주도]

1996년 말, 당시 집권여당이던 신한국당의 노동법 날치기 사건에 맞서 초대 민주노총 위원장으로서 전국적인 총파업 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1997

[15대 대선 첫 출마]

겨레사랑 북녘동포돕기 범국민운동본부 대표로 위촉되었으며, 그해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선거에 국민승리21 후보로 출마하여 정치권에 첫발을 내디뎠다.

1999

[민주노동당 창당 주도]

1997년 대선에 출마했던 국민승리21이 시민사회단체와 통합하여 1999년 민주노동당으로 당명을 변경할 때, 민주노동당(가칭) 창당준비위원회 상임대표를 맡아 진보 정당의 새로운 시작을 이끌었다.

2000

[민주노동당 당대표 선임]

민주노동당 창원시지구당 위원장을 맡았으며, 같은 해 16대 국회의원 총선거 창원(을)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한 뒤 바로 민주노동당 당대표에 선임되었다.

2001

[불법 집회 징역형 선고]

과거 불법 집회 주도 혐의로 2001년 1월 3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의 형을 선고받았다.

2002

[16대 대선 출마 및 유행어]

대통령 선거에 민주노동당 후보로 출마하여 100만 표에 가까운 득표(약 3.89%)를 기록했다.

당시 '국민 여러분 살림살이 많이 나아지셨습니까?'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내며 대중적 인지도를 크게 높였다.

비록 낙선했으나, TV 토론 등을 통해 진보 정당의 노선과 정책을 알리는 데 큰 성과를 거두었다.

2004

[국정감사 우수국회의원상]

시민단체의 국정감사 참관에서 국정감사 NGO 모니터링단 우수국회의원상을 처음으로 수상했다.

이후 2008년, 2009년에도 수상하며 총 3회 수상 기록을 세웠다.

[17대 국회의원 당선]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남 창원시 을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권영길 의원을 비롯해 총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며 진보주의 정당이 처음으로 원내 진입하는 역사적인 성과를 이루었다.

2006

[한미 FTA 반대 주도]

노무현 정부의 한미 FTA 추진에 적극 반대하며, 한미 FTA 연구 의원모임 공동대표와 한미 FTA 비상시국회의 공동대표를 지내는 등 범국민적 반대 운동에 동참했다.

[불법 집회 벌금형 선고]

과거 불법 집회 주도 혐의에 대한 항소심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부터 원심을 파기하고 벌금 1,500만원을 선고받았다.

[북한 핵실험 규탄 결의안 반대]

북한의 핵실험을 규탄하고 핵폐기를 촉구하는 결의안에 대해 국회에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2007

[17대 대선 재출마]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민주노동당 후보로 다시 출마했으나, 71만여 표(3.01%)를 얻어 5위로 낙선했다.

2008

[18대 국회의원 재선]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남 창원시 을 지역구에 다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는 진보정당 국회의원으로서 지역구에서 사상 처음으로 재선된 기록적인 사건이다.

[불법 집회 벌금형 확정]

과거 불법 집회 주도 혐의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2008년 11월 17일 확정되었으며, 최종적으로 벌금 1,500만원이 선고되며 13년에 걸친 재판이 마무리되었다.

2009

[재외국민 참정권 찬성]

해외 거주 대한민국 국민들의 참정권을 회복하기 위한 공직선거법, 주민투표법, 국민투표법 일부개정법률안 가결에 모두 찬성했다.

2010

[민주노동당 원내대표 역임]

18대 국회에서 교육과학기술위원회 및 운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2010년 민주노동당 원내대표를 지냈다.

또한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국회 호민관클럽 공동대표 등에 선임되기도 했다.

[연평도 포격 규탄 결의안 기권]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을 규탄하는 결의안에 대해 국회에서 기권했다.

2012

[경남지사 보궐선거 출마]

대선 예비 후보로 김두관이 경남도지사직을 사퇴하자, 권영길은 경상남도지사 보궐선거에 범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했다.

그러나 12월 19일 선거에서 홍준표 후보에게 밀려 2위로 낙선했다.

2013

[전격 정계 은퇴 선언]

이석기 의원 사건으로 진보 진영이 혼란스러웠던 2013년 9월 10일, "지금 진보 정당은 사실상의 사망 선고를 받은 것과 다름없다"고 언급하며 정계 은퇴를 전격 선언했다.

이후 다시 정당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시민운동에 종사하겠다고 밝혔다.

[시민운동 법인 설립]

정계 은퇴를 선언한 2013년 9월 10일, 사단법인 '권영길과 나아지는 살림살이'를 창립하고 이사장을 맡으며 시민운동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2014

[자가면역결핍 질환 발병]

6·4 지방선거 이후 자가면역결핍으로 인한 질환이 발병하여 5년여간 투병 생활을 했다.

현재는 증세가 많이 호전되어 조심스럽게 활동을 재개하고 있다.

2016

[정의당 총선 상임고문]

제20대 총선에서 정의당 선거대책위원회 상임고문을 역임하며 정의당 후보들의 지원 유세에 나섰다.

본인은 무소속 신분임을 밝혔다.

2018

[설암 발병 및 치료]

혀 염증 치료를 위해 서울대병원에 입원했으며, 수술 결과 악성종양(설암)으로 밝혀졌다.

이후 치료를 통해 어느 정도 치유되어 현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2019

[평화철도 운동 주도]

이사장으로 있던 사단법인 '권영길과 나아지는 살림살이'가 '평화철도와 나아지는 살림살이'로 법인명을 변경하고, 남북철도 연결 침목 기증 운동을 벌이며 활발한 평화 운동을 펼치고 있다.

2022

[노동자 정치세력화 전도사]

8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 정치위원회 강연을 시작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전도사(부흥사)임을 자임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23년 3월 현재까지 20여 차례의 강연을 기록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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