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갑
농민 운동가, 정치인, 국회의원
최근 수정 시각 : 2025-10-07- 01:04:10
- 농민 운동가 출신으로 제17·18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진보 정치인. - 한복 두루마기 긴 수염이 트레이드 마크로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김. - 전국농민회총연맹 부회장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 대표 등 주요 보직 수행. - 한미 FTA 반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 참여 등 농민 권익 보호에 앞장. - 공중부양 에피소드 개그콘서트 출연 등 독특한 행보로 대중적 관심을 모음. - 정계 은퇴 후 농부로 복귀 고향에서 매실 농장을 경영하며 삶을 이어가고 있다.
1951
[농민 운동가의 탄생]
강기갑은 경상남도 사천군 사천면 장전2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활달한 성격과 기지를 보였다.
이후 사동국민학교, 사천중학교, 사천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1971
[농부로서의 삶 시작]
사천농업고등학교 졸업 후 젖소, 과수 농사 등 농업에 종사하며 농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허리 부상으로 잠시 쉬었으나, 결국 다시 농업에 투신하며 평생 농업에 뿌리내렸다.
1976
[농민운동의 시작]
한국 가톨릭농민회에 입회하며 농사일과 농민운동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농민운동에 헌신하며 농촌 현장을 지켰다.
정권의 탄압으로 많은 동료들이 떠났을 때 농민들에 대한 실망과 좌절에 빠져 수도원에 들어가 수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1987년 수도원에서 다시 농촌에 대한 마음을 다잡고 돌아왔다.
1988
[농민단체 활동 확대]
가톨릭농민회 경남사천군 협의회장, 한국 가톨릭농민회 경상남도 연합회장 등 다양한 농민단체 직책을 역임하며 농민 권익 보호에 앞장섰다.
한겨레신문사 사천군 지국장으로도 일하며 언론 활동을 병행했다.
1989
[농촌총각 결혼 주선]
우루과이 라운드 반대 집회 중 농촌 총각 문제를 접하고 '전국농촌총각결혼대책위원회'를 조직, 위원장을 맡아 약 130여 쌍의 결혼을 주선하며 사회적 화제를 모았다.
이는 농민 문제에 대한 그의 깊은 관심과 실천력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경찰서 유치장에서 각 지역 농민운동가들과 수인사를 하던 도중 서른 중반을 넘긴 많은 청년 농민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1991
[우루과이 라운드 투쟁]
우루과이 라운드 수입 개방이 결정되자 많은 농민들과 함께 서울에서 상경 투쟁을 주도하며 정부의 농업 정책에 강력히 항의했다.
1996
[전국농민회 부회장 취임]
사천시 농민회장, 전국농민회총연맹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농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핵심 인물로 활동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의 주요 보직을 맡으며 농민 운동의 폭을 넓혔다.
2004
[17대 국회의원 당선]
민주노동당 농민 비례대표로 제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한복과 고무신, 긴 수염의 독특한 외모는 당시 정치인들 사이에서 단연 눈길을 끌었다.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와 윤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농민들의 삶과 직결된 문제 해결에 주력했다.
2005
[한미 FTA 반대 단식투쟁]
한미 FTA 비준 저지 투쟁에 앞장서며 무려 28일간 단식투쟁을 벌였다.
이는 당시 정치인 단식 최장 기록을 세울 정도로 강한 의지를 보여주며 농민들의 결사적인 저항을 대변했다.
2007
[정계 입문과 당 입당]
FTA 비준 저지 투쟁 끝에 민주노동당에 입당하며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협상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김영선 PD가 진행하는 '단박인터뷰'에서 정부의 쇠고기 청문회 증인 제외와 문서 고의 제출 지연을 비판했다.
2008
[미국산 쇠고기 촛불 시위]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협상에 강력히 반대하며, 관련 촛불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당시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하는 등 대중에게 정부 정책의 부당함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18대 총선, 이변의 당선]
제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텃밭인 경남 사천시에서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이자 한나라당 사무총장인 이방호 후보를 불과 178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는 이변을 연출하며 전국적인 화제가 되었다.
이는 출구조사에서 크게 패배하는 것으로 나타났음에도 실제 개표에서 역전승을 거둔 것으로, 사천시가 1995년 통합된 이후 옛 사천군 출신 국회의원이 나오지 않았던 점과 농민 출신 후보에 대한 지역 주민의 호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되었다.
[민노당 원내대표 선출]
제18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민주노동당 원내대표에 피선되어 원내 협상을 이끌었다.
야3당의 한미 FTA 재협상 선언 전까지 국회 등원을 거부하는 등 강경한 대정부 투쟁을 이어갔다.
[민노당 당대표 취임]
민주노동당 당대표 선거에서 이수호 후보를 제치고 당선되어, 당을 이끄는 수장에 올랐다.
이와 함께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국토해양위원회 위원을 겸임하며 활발한 의정 활동을 펼쳤다.
[FTA 날치기 저지 투쟁]
한미 FTA 관련 법안의 날치기 통과에 항의하며 국회 본회의장 농성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2009년 1월 5일, 국회 사무총장실에 들어가 집기를 부수고 소란을 피웠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민주당 의원들의 농성이 해제된 후에도 민주노동당 당직자들과 함께 농성을 이어갔다. 국회 사무처의 강제 해산 과정에서 손가락 골절을 당했으며, 이에 항의하며 사무총장실에서 과격한 행동을 보였다. 이 사건으로 검찰에 고발당하고 의원직 제명 논의까지 일었으나, 이후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2009
[국회 공중부양 논란]
국회 사무총장실에서 항의하는 과정에서 책상 위로 뛰어오르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공중부양 강기갑'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큰 화제가 되었다.
이 사건은 그의 강렬한 이미지를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이 일로 특수공무집행방해, 모욕죄, 폭력죄 등으로 고발당했으며, 한나라당에서는 의원직 제명을 주장했다. 이후 항소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2010
[개콘 남보원 직접 출연]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한복과 수염을 패러디한 KBS '개그콘서트-남성인권보장위원회(남보원)' 코너에 직접 출연하여 '서민인권보장위원회'를 열며 큰 화제와 웃음을 선사했다.
이는 정치인이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2011
[통합진보당 창당 참여]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의 합당으로 통합진보당이 창당되자 창당에 참여하고 원내대표직을 맡으며 진보 정당의 통합과 발전에 기여했다.
2012
[통진당 비대위원장 취임]
통합진보당 내 구 당권파와 신 당권파 간 파쟁이 심화되자 비상대책위원장이 되어 당내 갈등과 분쟁을 수습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깊어진 계파 갈등을 해결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었다.
[통진당 당대표 선출]
비상대책위원장에서 통합진보당 당대표로 선출되었으나, 당내 계파 간의 깊은 골은 해소되지 않았다.
결국 단식까지 불사하며 당을 수습하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권태홍 사무총장 임명과 비례대표국회의원 문제 등 당내 갈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정계 은퇴와 농부 복귀]
통합진보당 내 갈등을 수습하지 못하고 결국 당직에서 물러나 탈당했다.
이후 정치에서 은퇴하고 고향인 경상남도 사천에서 다시 농부로 복귀하여 매실 농장을 경영하고 있다.
상징과 같았던 긴 수염도 깎으며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무소속으로 농부 일을 하고 있지만, 정의당에 애정을 가지고 선대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당을 종종 돕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