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1969년)
정치인, 변호사, 인권 운동가, 여성 운동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7:42
이정희는 대한민국의 변호사이자 정치인으로 인권·여성 운동에 헌신했습니다. - 제18대 국회의원과 민주노동당 및 통합진보당 대표를 역임하며 진보 정치의 중심에 섰습니다. - 호주제 폐지 기무사 민간 사찰 폭로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굵직한 사건들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 제18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출마하여 대선 토론회에서 거침없는 발언으로 전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1969
[이정희, 삶의 시작]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 재래시장 지하 단칸방에서 맞벌이 부모의 딸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학업에 매진했습니다.
1987
[인문계 여자수석 서울대 진학]
서문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치러진 학력고사에서 340점 만점에 323점을 획득하며 인문계 여자수석을 차지하는 뛰어난 성적으로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했습니다.
[6월 항쟁, 인권운동가의 길]
서울대학교 법학과 신입생 시절, 격동의 6월 항쟁을 겪으며 사회 변혁에 눈을 떴고, 이를 계기로 인권운동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습니다.
1992
[윤금이 사건과 인권변호사 결심]
동두천에서 발생한 주한미군에 의한 윤금이 피살 사건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그녀가 인권변호사이자 사회운동가로 활동할 결심을 굳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6
[사법시험 합격]
제38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에 입소했습니다.
법률가의 길을 걸으며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활동을 준비했습니다.
2000
[변호사 개업 및 인권 활동 시작]
사법연수원(제29기)을 차석으로 수료하는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하고, 법무법인 덕수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무차장 등을 역임하며 인권 변호사로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2003
[호주제 폐지 운동의 선봉장]
오랫동안 여성 운동가들의 염원이었던 호주제 폐지를 위해 호주제 위헌심판 청구 소송의 변호인으로 참여하며, 법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2005
[호주제 폐지의 역사적 승리]
호주제 위헌심판 청구 소송에서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판결을 이끌어냈습니다.
이는 이태영 변호사가 호주제 위헌 주장을 시작한 지 무려 51년 만에 얻어낸 역사적인 승리로, 여성 인권 신장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2007
[민주노동당 입당, 정계 입문]
민주노동당의 비례대표직 제안을 수락하며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인권 변호사에서 국민의 대표로 활동 영역을 넓혔습니다.
2008
[제18대 국회의원 당선]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3번으로 공천받아 제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습니다.
국회 정무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운영위원회 등 주요 상임위에서 활발한 의정 활동을 펼쳤습니다.
[광우병 촛불 집회 현장 연행]
광우병 촛불 집회가 한창이던 서울 광화문에서 시위 중이던 시민들이 공권력에 의해 강제 연행되자 이를 말리려다 함께 연행되는 과감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당시 그녀의 격렬한 항의가 담긴 영상은 누리꾼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2009
[민주노동당 대표 역임]
민주노동당 대표로 선출되어 당을 이끌었습니다.
한미 FTA 강행 처리에 반대하며 국회에서 격렬한 의정 활동을 펼쳐 2009년 가장 돋보이는 의정활동을 벌인 의원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기무사 민간사찰 충격 폭로]
국군 기무사령부 소속 대위의 민간인 사찰 증거 자료(수첩, 메모, 감시 동영상 등)를 폭로하며 정부와 공권력의 불법 행위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이는 야당 인사 탄압 논란으로 이어지며 큰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2010
[연평도 포격 입장 표명 논란]
연평도 포격 사건 발생 직후, 자신의 트위터에 "남북관계를 악화시킨 결과를 정부는 똑똑히 봐야 한다.
대결로 생겨나는 것은 비극뿐이다"라는 글을 게재하며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다음날 국회 대북 규탄 결의안에는 기권표를 던졌습니다.
2011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피선]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새진보통합연대가 통합하여 통합진보당이 결성될 때 공동대표로 선출되었습니다.
진보 진영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데 일조했습니다.
2012
[총선 후보직 중도 사퇴]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관악을 후보로 출마했으나, 통합진보당 개표부정 사건의 파장이 커지자 사태 수습을 위해 후보직을 중도 사퇴하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통합진보당 예비후보 자격으로 전국 유세에 나섰습니다.
보수와 진보 진영 모두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대선 토론회 '사이다' 발언]
대통령선거 후보자 1차 토론회에서 "박근혜를 떨어트리기 위해 나왔다", "다카키 마사오" 등의 직설적인 발언으로 엄청난 파장과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는 당시 대선 판도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대선 후보 자격 반납]
야권의 정권교체를 위한 전략적 판단으로 대선 후보 자격을 자진 반납했습니다.
이후 선거 보조금 반납 여부를 둘러싸고 정치권에서 격렬한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2013
[통합진보당 대표 선출]
통합진보당 당대표에 다시 선출되어 해산 전까지 당을 이끌었습니다.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 장례식 조문단을 이끄는 등 대외 활동도 이어갔습니다.
2014
[통합진보당 해산]
헌법재판소의 위헌정당 해산 심판 결정으로 통합진보당이 해산되고 당대표직을 상실했습니다.
이정희는 이후 장기간 정치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침묵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2020
[6년 만의 대중 복귀]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민중당 지지를 호소하며 근 6년 만에 공식적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녀의 등장은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