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변호사, 정치인, 서울특별시장, 국회의원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9- 02:33:59
대한민국 최초 4선 서울시장을 지낸 변호사 출신 정치인 오세훈의 삶과 정치 여정을 흥미롭게 풀어냅니다. 환경 변호사로서 이름을 알리고 방송인으로 대중적 인지도를 쌓은 그는 제16대 국회의원을 거쳐 서울시장에 당선되며 디자인 서울 한강 르네상스 등 혁신적인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시장직에서 물러났으나 10년 만에 화려하게 복귀하며 서울시장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갔습니다.
1961
[오세훈 출생]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조선 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오윤겸의 후손이며, 경기도 용인에서 10대째 살아온 집안입니다.
1978
[배우자 송현옥과의 만남]
대일고등학교 3학년이던 송상호와 짝이 되었는데, 송상호의 여동생 송현옥과 만나 후에 결혼까지 이르게 됩니다.
1979
1984
[제26회 사법시험 합격]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에 16기로 입소했습니다.
(졸업시험 중 병원 후송으로 17기로 수료).
1987
[첫 무료 변론 승소]
사법연수원생 신분으로 강간치상 혐의 피고인을 무료 변론하여 무죄 판결을 받아냈습니다.
오세훈은 이 사건의 변론요지서를 '내 인생의 사과나무'라 소개했습니다.
1988
1990
1991
[대한민국 최초 일조권 소송 승소]
변호사를 개업한 후 인천 산곡동 아파트 주민들의 일조권 침해 소송을 수임하여, 2년 6개월 법정 싸움 끝에 주민들의 손을 들어주는 대한민국 최초의 판결을 이끌어냈습니다.
이는 헌법의 환경권이 실질적 권리로 인정받은 기념비적인 사건입니다.
당시 헌법35조에 명시된 환경권은 조문일 뿐 판례는 전무했습니다. 오세훈 변호사는 일본의 건축기본법과 판례를 연구해 변론에 활용했고, 한국감정원의 감정촉탁의뢰와 서울대 건축공학과 교수를 감정인으로 선임해 과학적인 피해보상액을 산정했습니다. 이 판결로 '동지일을 기준으로 9시부터 15시까지 6시간 동안 일조시간이 2시간 이상 연속으로 확보되어야 한다'는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되어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 사건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 언론에 보도되며 화제가 되었습니다.
1992
[환경운동연합 활동 시작]
일조권 침해 소송을 계기로 최열 대표와 함께 환경운동연합 창립 멤버로 참여했으며, 시민상담실 실장으로서 5년간 무료상담을 진행했습니다.
1994
[방송인 활동 시작]
일조권 소송 성공 후 MBC 뉴스 손석희 아나운서와의 인터뷰를 본 방송국 관계자의 권유로 MBC 《생방송 오변호사 배변호사》 진행자가 되며 방송인으로 데뷔했습니다.
프로그램의 인기로 저서 《가끔은 변호사도 울고 싶다》가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정장 브랜드 CF 모델로도 활동하며 '가장 사귀고 싶은 유부남' 1위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한국 복장기술경영협회에서 양복이 제일 잘 어울리는 베스트 드레서 10인에 선정되었고, 씨네2000에서 미혼 여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가장 사귀고 싶은 유부남' 1위에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로가디스 및 생명보험협회 TV CF 모델로 활동했습니다. 1996년 동아일보의 결혼하고 싶은 남성(상) 설문조사에서 배우 이병헌을 제치고 6위에 올랐습니다.
1996
[《그것이 알고 싶다》 진행]
1996년 10월부터 1년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진행을 맡았습니다.
이 기간 중 이권단체들로부터 회유와 협박을 받았으나 굴복하지 않고 방송을 진행했습니다.
1997
1998
1999
2000
[제16대 국회의원 당선]
서울 강남구 을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하여 제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습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하며, 4년 연속 시민단체 주관 국정감사 우수위원으로 선정되는 등 성실성을 인정받았습니다.
당선 후 미 국무부 초청으로 원희룡, 이종걸 의원 등과 함께 미국을 방문하여 정관계 인사들과 회담하고 공화당, 민주당 전당대회를 견학했습니다. 2000년 7월 3일 후원회 행사에서 피감기관 관련인들이 낸 200만원의 후원금을 관행이라며 돌려주어 화제가 되었습니다. 첫 환노위 국정감사에서 지하생활 공기질 문제 조사를 위해 직접 지하주차장에 오염측정기를 몰래 설치하여 '국감스타'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2003년 모 시민단체의 '16대 국회 의정활동 평가'에서 입법활동분야 우수의원으로 선정되어 새천년 정치인상을 수상했습니다. 2004년 문화일보 의정활동 평가에서 4개 부문(정책심의력, 대안제시력, 성실성, 공정성) 모두 10위권에 들었습니다.
2003
['5·6공 세력 퇴진' 주장]
한나라당이 수구적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5·6공 세력의 퇴진'을 요구했습니다.
2004
[설악 국제 트라이애슬론 완주]
설악 국제 트라이애슬론 대회에 참가하여 수영 1.5Km, 사이클 40Km, 마라톤 10Km를 3시간 25분 14초에 완주했습니다.
이후 'Tri-A'라는 동호회를 창단하여 회장직을 맡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활동했습니다.
[총선 불출마 선언 및 '오세훈법' 통과]
개혁적 이미지와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뒤로하고 '정치개혁과 한나라당 공천혁명의 밑거름이 되겠다'며 제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이후 기업의 정치자금 후원 금지를 골자로 하는 일명 '오세훈법'(정치자금법) 통과를 주도했습니다.
총선 불출마 선언 후 2500만원의 의정활동 잔여금 중 1500만원은 환경재단에, 1000만원은 서울문화재단에 기부했고, 신문광고 수익금 3000만원을 장애 아동과 북한 어린이를 위해 대한사회복지회에 기탁했습니다. 2004년 4월 1일 만우절을 맞아 신라대학교 모 학과에서 평가한 '거짓말 안 하는 정치인'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노무현 탄핵 표결 참여]
한나라당이 민주당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를 발의했을 때, 소장파 의원들과 함께 반대하여 서명하지 않았으나 본회의 표결에는 참가했습니다.
2005
2006
[제33대 서울시장 당선]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강금실 후보를 제치고 서울시장에 당선되었습니다.
세운상가와 동대문 운동장 철거, 강북 뉴타운 50곳 건설, 경유버스를 천연가스 버스로 교체 등의 공약을 내세웠습니다.
[창의 시정 정책 추진]
서울시 공무원 업무수행 중 창의적 제안을 제출할 수 있는 '상상뱅크'를 개설하고 '사이버정책토론방'을 활성화하여 2008년 UN 공공행정상 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를 발전시켜 '천만상상 오아시스'도 개설하여 2009년 UN 공공행정상 우수상을 재차 수상했습니다.
2007
['디자인 서울' 정책 추진]
창의적인 디자인을 통해 도시 브랜드 가치를 높이자는 취지의 '디자인 서울'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세빛섬,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등이 이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습니다.
2010년 유네스코로부터 세계 디자인 창의도시로 지정되었습니다.
2008년부터는 '서울 디자인 올림픽'을 개최했습니다. 중국 사회과학원 세계 주요도시 경쟁력 순위에서 2006년 27위였던 서울시가 2010년 9위로 올랐습니다. 영국계 컨설팅그룹 Z/Yen의 국제금융센터지수(GFCI) 조사에서 서울시의 국제금융 경쟁력은 2007년 43위에서 2011년 11위로 상승했습니다. 국제협회연합(UIA) 컨벤션 순위에서 서울은 2006년 11위였으나 2010년과 2011년에는 5대 도시에 선정되었습니다.
[장기전세주택 시프트 도입]
중산층과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전세 시세 80% 이하 가격에 최장 20년까지 임대하는 장기전세주택 '시프트(SHift)'를 추진했습니다.
이는 난지공원 복원, 청계천 정비와 더불어 도시주거정책의 모범사례로 인정되어 UN-Habitat 특별상을 수상했습니다.
2006년 은평뉴타운 고분양가 논란이 일자 서울시가 건설하는 모든 아파트에 대해 건설 공정이 80% 이상 진행된 이후 분양하는 ‘아파트 후분양제’를 도입했습니다. 2007년에는 SH공사 공급 아파트의 50여 개 항목 분양원가를 상세히 공개하고 자치구 분양승인에도 새로운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천명했습니다. 2010년부터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공공관리자제도’와 ‘클린업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120 다산 콜센터 도입]
서울시 관련 민원을 전화로 해결해주는 120 다산 콜센터 운영을 개시했습니다.
2009년 한국표준협회 서비스분야 KS표준 대상1호 및 한국경제 주관 고객감동경영대상을 수상했습니다.
2008
[재산세 공동과세 제도 도입]
재정격차 해소를 위해 재산세의 50%를 특별시세로 징수하여 25개 자치구에 균등 배분하는 '재산세 공동과세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이로 인해 최대 16.6배에 이르던 강남북 재산세 세입 격차가 4.7배로 크게 줄었습니다.
[유엔 공공행정상 첫 수상]
서울시 '사이버정책토론방' 활성화로 UN 공공행정상 우수상을 수상하며 첫 유엔 공공행정상 수상 기록을 세웠습니다.
[서울시 청렴도 1위 달성]
국민권익위원회 광역자치단체 청렴도 평가에서 2006년 15위였던 서울시가 2008년과 2010년 1위를 차지했습니다.
공금횡령 등 비리에 대해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전국 최초로 실시하고 클린신고센터를 설치하는 등 강력한 청렴 시책을 추진했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실시하는 '부패방지시책 평가'에서 서울시는 시·도 가운데 유일하게 최상위 '매우 우수' 등급을 받았고, 2008년과 2009년 연속 1위를 차지했습니다.
2009
[경제살리기 특별훈령 발표]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금융위기에 대응하여, 16개 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경제살리기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서울시장 특별훈령'을 발표했습니다.
중소기업 지원 확대, 일자리 창출 확대, 공공사업 조기 집행 등을 골자로 총 14개 정책을 연말까지 시행했습니다.
[일자리 플러스 센터 설립]
전문상담사가 계층별 전문상담과 취업알선 및 창업상담을 진행하는 '일자리 플러스 센터'를 설립했습니다.
[서울형 어린이집 출범]
일정한 기준과 조건을 갖춘 어린이집을 서울시장이 공인하여 보육료와 보육교사 인건비를 국공립 수준으로 낮추고 시가 차액을 지원하는 '서울형 어린이집'을 출범했습니다.
2010
[세계도시 전자정부 협의체(WeGO) 설립]
서울시의 전자정부 사업 추진 결과, '세계 100대도시 전자정부 평가' 4회 연속 1위를 차지했으며, 2010년에는 WITSA WCIT에서 '서울 모바일포털'로 지방자치단체 최초 Excellence Award를 수상했습니다.
같은 해 '세계도시 전자정부 협의체(WeGO)'를 설립하여 초대 의장으로 활동했습니다.
[꼬마버스 타요 방영]
대중교통 브랜드 홍보 및 어린이 교통안전 강화를 위한 애니메이션 '꼬마버스 타요'가 EBS를 통해 방영되기 시작했습니다.
캐릭터 번호 120은 다산콜센터 번호, 02는 서울 시내전화 지역번호, 1000은 서울의 천만 시민을 의미합니다.
[제34대 서울시장 재선]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명숙 후보에게 개표 초반 뒤지다가 강남 3구 개표로 역전하여 제34대 서울시장으로 재선되었습니다.
2011
[세계 최초 4년 연속 유엔 공공행정상 수상]
서울시의 '공개세무법정'과 '가출위기 10대 여성 자립지원'이 각각 유엔 공공행정상 우수상으로 선정되며, 2008년부터 4년 연속으로 수상하는 세계 최초의 기관으로 기록되었습니다.
2008년 사이버정책토론방(우수상), 2009년 아리수 실시간 수질공개서비스(대상), 천만상상 오아시스(우수상), 2010년 여성이 행복한 서울 프로젝트(대상), 희망플러스통장(우수상)에 이어 4년 연속 수상이라는 신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서울 바이오펀드 조성]
민선 5기 핵심 공약으로 GRDP 4만불 달성을 내세우며, 마곡지구에 바이오 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바이오 벤처 육성을 위한 펀드 조성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약 700억원 규모의 '서울 글로벌 바이오 펀드'를 조성했으며, 2015년 투자금 회수 과정에서 429%의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습니다.
[서울 폭우 및 '디자인 서울' 논란]
서울에 폭우가 내려 큰 피해를 입자, '디자인 서울' 정책으로 인해 빗물받이 구멍이 좁아지고 물 빠짐 기능이 부족한 화강판석 사용 등이 수해 원인으로 지적되며 논란이 일었습니다.
수해 방지 예산 삭감 주장도 제기되었으나 서울시는 특별회계와 재난관리기금까지 포함하면 오히려 예산이 늘었다고 반박했습니다. 하지만 민주당은 하수도 특별회계와 수해방지와 무관한 항목들이 포함되었다며 재반박했습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실패 및 사퇴]
저소득층 선별적 복지를 주장하며 서울시의회 다수당이 추진하는 전면 무상급식에 반대하여 주민투표를 제안하고, 투표율 미달로 투표함 개봉 기준(33.3%)에 미달하자 8월 26일 시장직에서 사퇴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전면 무상급식에 최소 4000억 원이 들고 복지 정책은 불가역성 때문에 비용이 더 늘어난다고 주장하며, 대중영합주의 정치를 넘어서기 위해 주민투표 추진이 가치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주민투표 사흘 전에는 실패 시 사퇴를 공언하며 '대한민국 복지 방향을 정립하지 않으면 미래가 주저앉을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2012
2013
[KOICA 페루 자문단 활동]
KOICA의 페루 중장기자문단 도시행정분야 모집에 지원하여, 6개월간 페루 리마시청에서 도시행정분야 자문을 담당했습니다.
2014
[KOICA 르완다 자문단 활동]
페루 활동 후 KOICA 르완다 중장기자문단 도시행정분야에 지원하여, 르완다 키갈리시청에 파견되어 활동을 수행했습니다.
2015
[고려대 기술경영 석좌교수]
고려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에 임용되었고, '미래사이테크 포럼' 대표를 맡아 세미나를 개최했습니다.
2016
[제20대 총선 종로구 출마]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종로구 출마를 선언하고 새누리당 공천을 받았으나, 정세균 후보에게 패배하여 낙선했습니다.
['공생연구소' 설립]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공존과 상생을 위한 연구소'(공생연구소)를 열고 소장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2017
[새누리당 탈당 및 바른정당 가입]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개혁보수신당(바른정당)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했습니다.
바른정당 윤리TF팀장으로 임명되어 당대표 당원소환제,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등 정치 개혁을 주도했습니다.
[대선 불출마 선언]
'새누리당이 사당화되는 것에 제대로 목소리조차 내지 못했던 무능과 무책임함을 통감한다'고 밝히며 대통령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2018
[바른정당 탈당 및 자유한국당 복당]
국민의당과의 합당에 반대하여 바른정당을 탈당하고, 같은 해 11월 29일 자유한국당에 복당했습니다.
2020
[제21대 총선 광진구을 출마]
서울 광진구을 국회의원 후보로 제21대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했으나,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후보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배하여 낙선했습니다.
2021
[제38대 서울시장 당선 및 복귀]
2021년 서울특별시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로 선출되었고,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누르고 보수 야권 단일후보가 되었습니다.
선거 결과 박영선 후보를 압도적인 격차로 누르고 제38대 서울시장에 당선되며 10년 만에 서울시장으로 복귀했습니다.
서울특별시 25개 자치구 모두에서 승리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2022
[최초 4선 서울시장 당선]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선출되어 송영길 후보를 큰 차이로 이기며 대한민국 최초의 4선 서울시장으로 당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