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법조인, 정치인,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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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법조인, 정치인,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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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출신 법조인이자 대한민국 5선 국회의원. 한나라당/자유한국당 대변인 및 원내대표 등 주요 당직 역임. 스페셜올림픽코리아 회장으로서 장애인 인식 개선에 크게 기여. 헌정사상 최초 여성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을 역임하며 외교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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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

[서울 동작구에서 출생]

홍신학원 설립자 나채성 이사장의 장녀로 서울 동작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했습니다.

계성초등학교 재학 중에는 아동극 연극부 활동을 하며 배우 서인석에게 발탁되기도 했습니다.

숭의여자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여자고등학교에서는 2학년 때 전체 1등을 차지하는 등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나경원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국제법을 전공했으며, 30세가 되던 1992년 사법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서울대학교 동기인 김재호 판사와 결혼하여 1남 1녀를 두었으며, 딸은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습니다.

1992

[사법시험 합격]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국제법을 전공한 나경원은 30세에 사법시험에 합격했습니다.

1995

[판사로 임용]

사법연수원 24기를 수료한 후 부산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되어 4년간 근무했습니다.

이후 인천지방법원, 서울행정법원 판사로 재직하며 총 7년 6개월간 판사로 활동했습니다.

2002년 9월까지 총 7년 6개월간 판사로 재직했습니다.

2002

[한나라당 입당, 정계 입문]

제16대 대선 기간 중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요청으로 한나라당에 입당하며 정치에 입문했습니다.

이는 한국에서 여성 판사가 판사직을 그만두고 정치권에 뛰어든 두 번째 사례입니다.

나경원은 이회창 후보를 법관 시절부터 존경해왔다고 밝혔습니다.

2003

[변호사 활동 시작]

이회창 후보가 대선에서 패배하자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11년 7월에는 법무법인 바른의 주요 구성원으로 활동했습니다.

[한나라당 운영위원 선출]

한나라당 운영위원으로 선출되며 다시 정치계에 복귀했습니다.

이후 17대 총선을 앞두고 공천심사위원으로 임명되었습니다.

2004

[제17대 국회의원 당선]

제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 11번으로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습니다.

당선 직후 교수 출신 당선자들과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정책을 공부하는 등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을 쌓아 나갔습니다.

당선자 연찬회에서는 “감동을 주는 정치를 하겠습니다”라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중도개혁보수를 지향하는 초재선 의원 모임인 ‘푸른정책연구모임’에 참여했습니다.

[장애인 복지 활동 시작]

다운증후군을 앓는 딸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회의원, 장애아동 부모, 전문가들이 함께하는 연구 모임 '장애 아이, We Can'을 만들어 회장을 맡았습니다.

또한 한나라당 장애인복지특위 위원장을 역임하며 장애인 처우 개선과 복지·인권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17대, 18대 국회의원 임기 동안 '장애성년 후견법안' 1건과 '특수교육진흥법 일부개정안' 4건을 대표 발의하여 모두 대체 입법으로 통과시켰습니다. 이 외에도 10건의 장애인 및 특수교육 관련 법안을 공동 발의했습니다.

[국정감사에서 활약]

국정감사에서 금융감독위원회의 론스타 외환은행 인수 승인 적극 검토 문건, 증권선물위원회 감리위원회의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 중징계 반대 의사록 등을 공개했습니다.

또한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수도이전집회 관제데모 의혹이 허위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국정감사 활동을 바탕으로 '국내 금융산업의 현황과 과제' 정책자료집을 발간하고, 행정부 산하 자문위원회들의 국회 통제를 강화하는 '자문위원회 기본법' 제정안을 제출했습니다.

2005

[한나라당 원내부대표 임명]

한나라당 원내부대표로 임명되었고, 2월에는 당 윤리위원으로 위촉되었습니다.

이후 한나라당의 공보부 대표로 활동하며 사학법 통과 반발, 검찰 X파일 수사 공정 진행 입장 등을 발표했습니다.

또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여 출자총액제한제 폐지를 골자로 했습니다. 이외에도 노무현 대통령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언급과 관련하여 “노무현 대통령은 입만 열면 설화를 일으키는 개구즉화”라는 논평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北 인권 결의안 최초 제출]

초선 의원으로서 'UN 북한인권(참여촉구) 결의안'을 최초로 제출하며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활동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북한 인권 문제의 국제적 이슈화는 '유엔 북한인권사무소' 건립으로 이어졌습니다.

2006

[한나라당 공동대변인]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에 의해 유기준 의원과 함께 한나라당 공동대변인으로 임명되었습니다.

대변인으로서 김병준 교육부총리 논문 이중보고 비판, 노무현 대통령 조카의 바다이야기 관련 의혹 제기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2008

[제18대 국회의원 당선]

총선 출마를 위해 대변인 자리에서 물러난 후 서울 중구에 공천을 받아 제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습니다.

경찰의 조계종 총무원장 불심검문과 관련하여 공직자의 종교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의 국가공무원법 및 지방공무원법을 제출했으며, 어청수 경찰청장의 사퇴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2008년부터 스페셜올림픽 유치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사이버 모욕죄 법안 발의]

일명 '사이버 모욕죄'로 불리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이 법안은 사람을 모욕하는 정보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가 취급거부, 정지, 제한 명령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위반 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법안에 대해 "사이버 모욕 행위는 명시적 기준이 없어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2010

[한나라당 최고위원 역임]

한나라당 최고위원과 공천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당내 주요 직책을 맡았습니다.

이 해 서울시장 경선에 도전했으나 오세훈 후보에게 패배했습니다.

이후 오세훈 선대위원장으로 합류하여 지방선거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평창 스페셜올림픽 유치 성공]

전설적인 체조 스타 나디아 코마네치와 아놀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참여한 가운데 평창 스페셜올림픽 유치를 발표했습니다.

유치 성공을 위해 정부 관계자와 의원들을 설득하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했습니다.

대회를 100일 앞둔 2012년 10월 21일에는 걷기대회와 전광판 제막 행사를 열어 홍보에 힘썼습니다. 이 걷기대회에는 김연아, 황영조 등 유명 스포츠 스타와 남경주 뮤지컬 배우 등이 대거 참석했습니다.

2011

[서울특별시장 보궐선거 낙선]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퇴로 치러진 서울특별시장 보궐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박원순 후보에게 약 29만 표 차이로 낙선했습니다.

2011년 12월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재보선 패배 책임을 지고 사퇴하자 이틀간 한나라당 대표 권한대행을 역임했습니다. 이후 2012년 4.11 총선에는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2013

[평창 스페셜올림픽 개최]

'Together We Can' 슬로건 아래 전 세계 106개국 3,000여 명의 선수단이 참가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평창 동계 스페셜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했습니다.

하루 평균 3만 명, 총 20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최다 관중 동원을 기록했습니다.

이 대회는 지적장애인들의 권리 보호를 위한 국제 정상회담인 '글로벌 개발 서밋'과 '세계 청소년 회담'을 처음으로 개최했으며, 개발 서밋에서는 '평창선언'을 채택했습니다. 대회 이전 0%에 가까웠던 지적장애인 및 스페셜올림픽 인지도를 71%까지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습니다. 국제스페셜올림픽위원회는 평창 대회를 “모든 부문에서 역대 최고의 대회”라고 평가했습니다. 이 성공은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의 초석을 다진 대회로도 평가받았습니다. 이후 '투게더 위 워크', '슈퍼블루 캠페인', '스페셜 뮤직&아트 페스티벌'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2014

[제19대 국회의원 당선]

정몽준 의원의 서울시장 출마로 공석이 된 서울 동작구 을 지역구 보궐선거에 출마하여 야권 단일후보 노회찬을 꺾고 당선, 새누리당 내 유일한 여성 3선 의원이 되었습니다.

2015

[최초 여성 외통위원장 당선]

국회 본회의에서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에 당선되었습니다.

이는 헌정사상 최초로 여성 의원이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에 선출된 기록입니다.

취임 당시 리퍼트 미국 대사 피습, 독도 문제, 일본 근대산업시설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등 다양한 외교 난제들이 산적했습니다. 나 의원은 당선 인사에서 “정부와 국회가 소통과 협업을 통해 산적한 현안들을 풀고, 남북관계를 풀어 통일의 초석을 놓는 데 국회가 앞장서겠다. 10년간 미뤄온 북한인권법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LA 스페셜올림픽 최고 성적]

SOK(스페셜올림픽 코리아) 회장이자 국제스페셜올림픽위원회의 이사 자격으로 한국 선수단을 이끌고 2015 LA 스페셜올림픽에 참가했습니다.

한국 선수단은 12개 종목에서 금메달 35개, 은메달 21개, 동메달 25개로 총 81개의 메달을 획득하며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한중 FTA 비준동의안 처리]

외교통일위원장으로서 외통위 전체회의를 열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을 처리했습니다.

이는 협상 타결 1년여 만에, 정식 서명 6개월 만에 이루어진 성과입니다.

일본의 조선인 강제노동시설 세계문화유산 등재 움직임에 대해 명확히 반대 입장을 고수하며, 유네스코 사무총장 면담, 위원국 방문외교 등 적극적인 저지 노력을 펼쳤습니다. 또한 멕시코를 방문하여 양국 간 협력 공고화를 위한 활동도 전개했습니다.

2016

[제20대 국회의원 당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동작구 을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 4선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강행에 대해 '북한의 제4차 핵실험 규탄 및 핵폐기 촉구 결의안'을 제안하여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통과시켰으며, 미·러 주한대사 및 EU연합 회원국 대사들을 만나 북핵 제재 UN 안보리 결의를 요청하는 등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한편, 통일 노력의 일환으로 프랑스 파리 방문 시 유네스코 사무총장에게 북한 방문을 제안하고 개성 만월대를 방문하는 등 남북 문화교류에도 힘썼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찬성]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에 찬성하는 결의를 표명했습니다.

2018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선출]

국회 의원총회에서 김학용 의원을 제치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로 선출되었습니다.

원내대표 임기 동안 선거제 개혁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안 등의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에서 자유한국당의 국회선진화법 위반 논란과 국회 공전이 발생했습니다. 또한 국회 정상화 합의안이 의원총회에서 추인되지 못하는 등 리더십 평가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2019

[원내대표 연임 실패]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로서 강경 투쟁을 고수하며 패스트트랙 정국에서의 원내 전략 부재 등의 평가를 받으며, 사실상 당 지도부의 불신임을 받아 원내대표 연임에 실패했습니다.

2020

[제21대 총선 낙선]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동작구 을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후보에게 패배하여 5선 달성에 실패했습니다.

2024

[제22대 국회의원 당선]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동작구 을 국민의힘 후보로 공천되어 류삼영 후보를 꺾고 당선, 5선 국회의원에 성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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