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 정치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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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07- 19:3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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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변호사에서 대통령까지 드라마틱한 삶의 주인공.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원한 동지로 불리며 두 차례의 대선 도전 끝에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재임 중 남북정상회담 3기 신도시 발표 등 굵직한 정책을 추진했지만 경제 및 인사 논란 등도 겪었다. 퇴임 후에도 다양한 이슈의 중심에 서며 여전히 대중의 관심을 받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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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

[탄생]

대한민국 경상남도 거제군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한국 전쟁 당시 흥남 철수 작전에 참여하여 거제에 정착한 실향민이었다.

1965

[초등학교 졸업]

가난한 환경 속에서 남항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경남중학교에 입학했다.

1968

[경남고 수석 입학]

경남중학교 졸업 후 경남고등학교에 수석으로 입학, 학업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나 가난으로 방황하기도 했다.

1971

[재수 시작]

고교 시절 방황 끝에 대학 입시에 실패, 종로학원 진입 시험에서 1등을 하며 학원비를 면제받고 재수를 시작했다.

1972

[경희대 법대 수석 입학]

경희대학교 총장의 권유로 4년 전액 장학금을 약속받고 경희대학교 법대에 수석으로 입학했다고 알려졌으나, 일화의 사실관계는 검증되지 않았다는 의혹도 존재한다.

1975

[학생운동 구속]

경희대학교 총학생회 총무부장으로서 유신 독재에 항거하는 집회를 주도하다 구속.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되었고,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대학에서 제적당했다.

[특전사 강제 징집]

출소 후 신체검사 없이 군에 강제 징집되어 특수전사령부 예하 제1공수특전여단에서 복무.

특수 훈련에서 우수한 평가로 정병주 특전사령관과 전두환 공수여단장으로부터 두 차례 최우수 특전사 표창을 수상했다.

복무기간: 1975년 8월~1978년. 소속: 육군특수전사령부 제1공수특전여단 제3특전대대. 계급: 병장.

1978

[군복무 마침]

육군특수전사령부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했다.

1980

[신군부 항거 투옥]

경희대학교에 복학해 복학생 대표로 전두환 군부 독재에 항거하다가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로 긴급 체포되어 청량리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옥중 사법시험 합격]

옥중에서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하며 석방되었다.

사법연수원 수료 후 학생운동 전력으로 판사 임용이 거부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1982

[인권변호사 활동 시작]

사법연수원 수료 후 부산에서 노무현 변호사와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며 인권변호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인권 신장에 기여했다.

1988

[정치 입문 거절]

김영삼으로부터 노무현, 김광일과 함께 국회의원 영입 제안을 받았으나, 3명 중 유일하게 정치 입문을 거절하고 인권변호사 활동에 전념했다.

1995

[법무법인 부산 대표]

노무현과 함께 운영했던 합동 사무소를 '법무법인 부산'으로 개칭하고 대표 변호사로 이름을 올렸다.

2002

[노무현 대선 지원]

노무현이 제1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자 새천년민주당 부산 선대위원장직을 맡아 노무현의 당선에 기여했다.

2003

[민정수석 임명]

노무현 당선 이후 변호사 업무에 복귀하려 했으나, 노무현의 제안을 받아 참여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을 역임했다.

2004

[민정수석 사임]

녹내장과 고혈압 등 건강 악화로 인해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 자리에서 물러났다.

[노무현 탄핵 변호]

네팔 산행 중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식을 듣고 즉시 귀국, 변호인단을 꾸려 탄핵 변호인단의 간사를 맡았다.

2005

[청와대 복귀]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 정무특보를 거치며 참여정부의 주요 직책을 역임했다.

2006

[국정자문위원 보선]

국정자문회의 의원 138명 보궐 시 국정자문위원으로 추가 보선되었다.

2007

[대통령 비서실장]

참여정부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청와대 안에서 '왕수석'으로 불리며 2인자로 주목받기도 했다.

[군사분계선 도보 제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게 군사분계선을 도보로 넘어갈 것을 제의했고, 노무현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여 실행되었다.

2008

[변호사 복귀]

참여정부 종료 후 경남 양산시로 칩거하다가 5년 만에 자신이 세운 법무법인 부산으로 복귀하여 대표 변호사로 취임했다.

2009

[노무현 국민장 상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되어 서거하자, 담당 변호사를 맡았으며 국민장 위원회에서 상주를 맡아 장례 절차 전체를 총괄했다.

2010

[노무현재단 이사장]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듬해인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의 이사장직을 맡았다.

2012

[제19대 총선 당선]

제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통합당의 대선 예비주자로 거론되었다.

[대선 출마 선언]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보통 사람이 중심 된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슬로건은 '사람이 먼저다', 캠프명은 '담쟁이 캠프'로 정해졌다.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국민참여경선에서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과 겨루어 전국 순회경선 13회 전승을 거두며 민주통합당의 제18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되었다.

[민주통합당 대행]

2기 지도부 총사퇴에 의해 민주통합당의 대표권한대행이 되었다.

[안철수 후보 사퇴]

유력 대권후보로 떠오른 안철수와의 단일화를 추진하였으나, 단일화 과정을 둘러싼 문제로 안철수가 대선 후보직을 사퇴했다.

[제18대 대선 패배]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14,692,632표(48.0%)를 득표했으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약 100만 표 차이로 패배했다.

이는 탈락 후보 사상 최다 득표였다.

2013

[대선평가보고서]

민주통합당의 대선평가보고서에 따르면, 패배의 주원인은 캐릭터 정립 실패로 국민들에게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는 판단이다.

2014

[공동 선대위원장]

새로 창당된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문재인과 손학규를 공동 선대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세월호 사고 비판]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사망자 수가 늘어난 것에 대해 '왜 이렇게도 무기력하냐'며 '우리의 수준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총리 후보 비판]

새 총리 후보로 문창극이 지명되자 '국민도 불행하고 박근혜 정부에도 불행한 길'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사회적 가치' 법안 발의]

'사회적 가치 기본법'을 발의했다.

이는 공공기관이 정책 수립 및 집행에 있어 이윤과 효율뿐만 아니라 인권, 노동권, 안전, 생태 등 '사회적 가치'를 중시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통진당 해산 비판]

통합진보당이 헌재 판결로 해산되자 '너무나 안타깝다'며 '민주주의가 상처를 입었다'고 비판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하는 이유는 다름을 포용하는 유일한 제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권 도전 선언]

새정치민주연합의 당권 도전을 선언하며 '정치인생 걸겠다'고 밝혔다.

당 대표가 되면 차기 총선에 불출마하겠다고 약속했다.

2015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제1차 전당대회에서 45.3%를 얻으며 당대표에 당선되었다.

박지원 후보(41.8%)를 앞섰다.

[의원 400명 발언]

'국회의원 정수가 부족하다'며 OECD 주요 국가와 비교해 낮다고 주장했고, '국회의원 수를 늘리면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논란이 일자 '개인적 생각'으로 선을 그었다.

[메르스 대처 비판]

메르스 유행 시기, 박근혜 대통령의 대처에 대해 '정부의 대응을 보면 세월호 참사 때와 마찬가지로 무능하고 부실하기 짝이 없다'고 비판했다.

[안철수 탈당]

안철수 의원의 탈당을 필두로 당이 분열되었다.

문재인은 이를 두고 '정말 정치가 싫은 날'이라고 말했으나, '총선 승리 항해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당명 개명]

새정치민주연합이 '더불어민주당'으로 개명했다.

이는 안철수계의 흔적을 지우는 행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6

[당대표 사퇴]

기자회견을 열고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를 사퇴한다고 발표했다.

[총선 불출마 선언]

차기 정권교체를 위해 제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부산 사상구 후임으로 배재정을 언급하며 지역구를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독도 방문]

울릉도에 이어 독도를 방문하여 '8·15 광복절을 앞두고 영토 주권을 확고히 하자는 목적'이라고 밝혔다.

최낙정 전 해양수상부 장관이 동행했다.

[거국내각 요청]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알려지면서 박근혜 정권을 향한 민심이 폭발하자, 박근혜 정부에 거국중립내각을 요청했다.

[촛불집회 참석]

촛불집회에 참석하여 '200만 촛불이 세상을 바꾸는 횃불이 될 것'이라고 발언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적인 하야를 촉구했다.

[탄핵 가결 '국민 승리']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되자 '국민이 이겼다'고 주장하며,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덧붙였다.

이 무렵 지지율 1위로 유력 대권주자로 꼽혔다.

2017

[박근혜 파면 후 대세론]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통해 최종 파면되었다.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기록하며 '문재인 대세론'이 굳어졌다.

[19대 대선 출마]

동영상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바라는 온 국민의 뜻을 모아 이제 정권교체의 첫발을 내딛는다'고 제19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 확정]

수도권 경선에서 60.4%를 득표하며 전 지역 1위 압승을 거두어, 최종 결선 투표 없이 곧바로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되었다.

[제19대 대통령 당선]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41.1%를 득표하여 24%를 득표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역대 최다 표차 승리.

[제19대 대통령 취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당선인 결정 시간인 2017년 5월 10일 8시 9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없이 바로 제19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국회 취임식은 취임 선서로만 간소하게 진행되었다.

[야4당 방문]

취임 첫날 '국민 통합'을 강조하며 야4당을 방문하여 국정 협조를 부탁했다.

[새 정부 개혁 지시]

박근혜 정부의 황교안 국무총리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의 사표가 수리되었다.

국정교과서 폐지 및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지시했다.

[사드 예산 언급]

미국 민주당 딕 더빈 상원 원내총무가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국이 사드 배치를 원치 않으면 미국 정부가 사드 배치 관련 예산을 다른 곳에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안경환 후보 사퇴]

1기 내각 인사 문제로 논란이 계속되자,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가 각종 결격 사유로 인한 논란으로 자진사퇴했다.

[미 의회 사드 발언]

미국 워싱턴D.C.에서 미 의회 지도부와 간담회를 갖고 '사드 배치는 한미동맹에 기초한 합의이며 한국 국민과 주한미군 생명 보호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조대엽 후보 사퇴]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가 각종 결격 사유로 인한 논란으로 자진사퇴하며 인사 문제가 계속 불거졌다.

[8·2 부동산 대책]

강남 3구, 서울 11개구, 세종시 등을 투기지역으로 지정하고,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을 각각 40%로 일괄 하향 조정하는 등 강력한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취임 100일 회견]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을 사전 각본 없이 진행하며 소통의 모습을 보였다.

[포항 지진, 수능 연기]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두고 포항 지진이 발생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수능을 1주일 연기하는 초유의 결정을 내렸다.

[중국몽 동행 발언]

베이징 대학을 방문하여 강연하며 중국몽을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중국을 산봉우리의 대국, 대한민국은 소국이라고 표현했다.

2018

[1차 남북정상회담]

판문점에서 1차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판문점 선언'이 발표되었다.

이에 대한 기대로 지지율이 70%대를 기록했다.

[2차 남북정상회담]

판문점에서 2차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졌다.

[북미정상회담 개최]

싱가포르에서 북미정상회담이 이루어졌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은 각각 70%대, 50%대를 유지하며 국정 운영에 힘이 실렸다.

[최저임금 공약 파기]

2019년 최저임금이 2018년 대비 10% 오르게 되면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 목표는 사실상 어려워졌다'며 대선 공약 파기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고용 지표 최악]

취업자 증가폭이 5천 명을 기록해 2010년 1월 이후 역대 최악의 고용 상황으로 드러났다.

실업자는 103만 9천 명으로 증가했다.

[은산분리 완화 추진]

인터넷전문은행의 은산분리 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야당은 환영했으나, 기존 지지층에서는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전기료 누진제 완화]

2018년 폭염으로 인해 청와대와 여당은 주택 전기료 누진제를 7~8월 동안 한시적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가구당 평균 19.5%의 인하 효과가 기대되었다.

[통계청장 경질 논란]

황수경 통계청장을 경질하고 강신욱 선임연구위원을 새 통계청장에 임명했다.

정부 정책기조에 맞지 않는 통계조사 결과로 인한 압박성 인사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중폭 개각 단행]

장관급 인사 5명과 차관급 인사 4명에 대한 개각을 단행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등 논란이 있었던 인사들이 교체되었다.

[판문점 선언 비준]

판문점 선언 비준동의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었고, 통일부는 비용 추계서와 함께 국회에 제출했다.

2019년에 2986억 원이 추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9·13 부동산 대책]

서울·세종 전역 등 조정대상지역 2주택 이상 보유자에 대해 주택분 종합부동산세 최고세율을 노무현 정부 수준 이상인 최고 3.2%로 중과하는 강력한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3차 남북정상회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직할시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역대 대통령 중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3번째로 평양을 방문했다.

[김정은 서울 방문 약속]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가까운 시일 안에 서울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다.

[백두산 천지 방문]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백두산 천지를 방문하여 두 정상 부부 동반 산책을 했다.

이로 인해 경제 문제로 하락했던 지지율이 6.4%p 상승하며 급반등했다.

[3기 신도시 계획 발표]

주택 가격 안정을 위해 수도권 공공택지 17곳에서 3만 5천 호를 공급할 계획을 밝혔으며, '3기 신도시'를 조성하여 20만 호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화해치유재단 해산 통보]

미국 뉴욕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국민의 반대로 화해·치유재단이 정상적 기능을 못하고 고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재단 해산 뜻을 통보했다.

[경제 수장 교체]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동시에 교체되었다.

이는 실질적 성과가 없는 경제 현실 및 정책 엇박자로 인한 문책성 인사라는 분석이 제기되었다.

[카드수수료 인하]

금융위원회는 당정협의를 거쳐 '카드수수료 개편방안'을 확정했다.

연매출 30억원 이하 가맹점의 우대수수료율 적용 구간을 대폭 확대하고, 일반가맹점 수수료율도 2% 이내로 인하하기로 했다.

[국민연금 개편안]

국민연금 개편안이 발표되었다.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 조정을 포함한 4가지 방안이 제시되었다.

[3기 신도시 확정]

국토교통부는 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인천 계양 계양테크노밸리, 과천 4곳을 3기 신도시 개발 대상으로 발표하며 수도권 주택 공급 계획을 구체화했다.

[첫 부정평가 우위]

경제 문제와 청와대 특별감찰반 비위 의혹 등으로 인해 취임 후 처음으로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보다 높은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긍정 45%, 부정 46%).

2019

[광화문 집무실 공약 파기]

유홍준 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 자문위원은 현 단계에서 집무실을 광화문 청사로 이전할 대체 부지를 찾을 수 없어 사실상 공약이 파기되었다고 밝혔다.

[주요 참모진 개편]

임종석 비서실장 후임에 노영민 주중국대사, 한병도 정무수석 후임에 강기정 전 의원,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후임에 윤도한 전 MBC 논설위원 등 주요 참모진 개편을 발표했다.

[예타 면제 사업 발표]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총사업비 24조 1천억 원 규모의 23개 사업에 대해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한다고 발표했다.

수도권 제외가 원칙이었으나, 낙후 접경지역은 포함되었다.

[조국 장관 임명]

조국 전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으나, 가족 관련 논란으로 지명 철회 요청에도 불구하고 '법률 위반이나 본인 책임에 해당하는 일이 없다'는 이유로 임명을 강행했다.

[대규모 하야 요구 집회]

유신헌법의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는 우파 세력이 중심이 되어 광화문 광장과 청와대 앞에서 세 차례에 걸쳐 대규모 야간 집회를 개최하여 하야를 요구받았다.

[국민과의 대화]

사전 각본 없이 자유롭게 진행하는 국민과의 대화를 생방송으로 진행했다.

[한-아세안 정상회의]

임기 중에 남방정책을 추진하며 아세안 연합 10개국과 정상회담을 했던 문재인은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와 한·메콩강 정상회의를 잇달아 개최하였다.

2020

[수출 1호차 현장 방문]

평택 부두를 방문하여 올해 수출 1호차를 선적하는 자동차 운반선 앞에서 연설을 했다.

수출 강국에 중심을 두는 내용으로 방송되었다.

[코로나19 국내 유입]

대한민국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유입되었다.

이후 정부는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대응에 돌입했다.

[여름 휴가 취소]

전국적으로 호우 피해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면서, 여름 하계휴가를 포기하고 전국의 수해 복구를 시찰하는 데에 전념하기로 결정했다.

2021

[4.7 재보선 참패]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참패했으며, 비슷한 시기 지지율 또한 사상 최초로 20%대로 떨어졌다.

임기말 레임덕 우려가 제기되었다.

[얀센 백신 지원]

2021년 한미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나 한국군에게 얀센 코로나19 백신 100만 회분을 지원받는 성과를 냈다.

2022

[대통령 퇴임]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다음날 후임으로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풍산개 정부 반납]

퇴임 이후 기르던 풍산개 '곰이'와 '송강이'를 정부에 반납했다.

[서훈 전 안보실장 구속]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이 연평도 해역 공무원 피격 사망 사건으로 구속되었다.

[문재인 수사 언급]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문재인 전 대통령이 연평도 해역 공무원 피격 사망 사건의 수사 대상이 될 가능성을 언급했다.

민주당은 불쾌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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