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의사, 기업인, 교수, 정치인

num_of_likes 91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8- 22:03:22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안철수
의사, 기업인, 교수, 정치인
report
Edit

한국의 빌 게이츠 V3의 아버지 청춘 멘토라 불리며 의사 기업가 교수라는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고 대중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인물. 백신 개발로 공익을 추구하고 낡은 정치를 바꾸려는 그의 도전은 늘 파란만장한 역사를 만들었다.

연관 연혁
  1. 등록된 연관연혁이 없습니다.
주요사건 목차
주요사건만
최신순

1962

[안철수 출생]

대한민국의 의사, 기업인, 정치인, 대학 교수 안철수가 경상남도 부산시 부산진구 범천동에서 출생했습니다.

이후 가족 병원 개업으로 부산진구로 이주했습니다.

1982

[컴퓨터에 눈 뜨다]

서울대학교 의대 재학 중 처음으로 컴퓨터를 접하며 본격적으로 흥미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공부 외 독서를 즐기던 평범한 학생에서 고3 때 전교 1등을 차지하고 서울대 의대에 입학한 후, 3학년 가을 처음으로 컴퓨터를 만나게 됩니다. 이는 의학 실험을 위한 특기 쌓기가 목적이었으나, 이후 그의 인생을 크게 바꿉니다.

1986

[의학 학사 학위 취득]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의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원 생리학 교실에서 기초의학을 전공하게 됩니다.

1988

[의학 석사 학위 취득]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원에서 '동방 결절 내에서의 흥분 전도에 미치는 Adrenaline, Acetylcholine, Ca++ 및 K+의 영향' 논문으로 의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세계 최초 백신 V1 개발]

자신의 디스켓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을 계기로 밤샘 분석 끝에 '백신'(Vaccine)이라는 이름의 안티바이러스 프로그램인 V1을 개발했습니다.

그는 이 백신을 '세계 최초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이라고 밝혔습니다.

의사로서 전공 실험을 돕기 위해 컴퓨터를 공부하던 중, 소프트웨어 잡지에서 한국에 바이러스가 나왔다는 기사를 접하고 자신의 디스켓을 검사하다 감염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바이러스의 원인을 파악한 후, 감염 과정을 역으로 되돌리는 방식으로 치료 프로그램을 만들어 성공했습니다. 이후 혼자서 만든 백신을 무료로 배포하며 낮에는 의사, 밤에는 백신 제작자로 7년간 이중 생활을 했습니다.

1989

[V3+ 네오 무료 제공]

당시 백신 시장에 무료 배포가 많았던 시기였기에, 개인 사용자들에 한해서 도스용 백신 소프트웨어인 V3+ 네오를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1991

[의학 박사 학위 취득]

'토끼 단일 심방근 세포에서 Bay K 8644와 Acetylcholine에 의한 Ca2+ 전류의 조절기전' 논문으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원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V3 완성 및 군 입대]

미켈란젤로 바이러스가 극성을 부리던 시기, V3 최초 버전을 만들어 PC통신으로 전송한 뒤 군에 입대했습니다.

당시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고 떠나 화제가 되었습니다.

군 입대 전날까지 백신 업데이트에 매달렸으며, 이로 인해 가족에게 군대 가는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고 후에 회고했습니다. 이는 그가 얼마나 백신 개발에 몰두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1994

[해군 군의관 전역]

해군 군의관(대위)으로 복무를 마친 후 전역했습니다.

1995

[미국 유학 (공학 석사)]

회사를 세운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1997년까지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공학 석사 과정을 공부했습니다.

[안철수연구소 창업]

백신 사업을 비영리 공익 법인으로 운영하려 했으나 정부 부처와 삼성 등에서 거절당한 후, 소프트웨어 업체 관계자의 조언에 따라 '안철수연구소'를 창업했습니다.

당시 안철수는 돈벌이가 안 되는 백신 사업을 혼자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 7년간 모아둔 백신 자료를 바탕으로 비영리 공익 법인 설립을 시도했으나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 소프트웨어 관계자의 조언을 받아 기업 설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초창기 4년간은 월급 걱정을 해야 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1997

[맥아피 인수 제의 거절]

미국의 거대 백신업체 맥아피로부터 1000만 달러(약 130억 원)에 회사 인수 제의를 받았으나 단번에 거절했습니다.

그는 직원들의 해고와 한국 백신 시장 독점을 우려하여 결정을 내렸으며, 이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맥아피 회장이 직접 안철수 앞에서 인수 발표를 할 정도로 적극적이었으며, 회사를 매각했던 일본인 대표까지 동원해 설득했지만 안철수의 뜻을 꺾지 못했습니다. 이는 한국 백신 기술의 자존심을 지키고, 직원들의 고용을 보호하겠다는 그의 신념에서 비롯된 결정입니다.

1999

[연매출 100억 돌파]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업체 중 한글과컴퓨터에 이어 두 번째로 연매출 100억 원을 돌파했습니다.

이후 세후 순익 100억 원 돌파는 안철수연구소가 최초로 달성했습니다.

[CIH 바이러스 사건]

CIH 바이러스(체르노빌 바이러스) 사건이 발생하며 30만 대 가량의 컴퓨터가 파괴되고 수천억 원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바이러스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변화하며 안철수연구소는 급격한 매출 증가와 함께 흑자로 전환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안철수연구소는 하루 종일 전화가 불통이 되고, 컴퓨터를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룰 정도로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습니다. 이는 안철수연구소가 백신 시장의 주요 기업으로 성장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2000

[직원들에게 주식 배분]

안철수연구소 전 직원 125명에게 각각 650주씩, 자신의 지분에서 총 8만주(전체 발행 주식수의 1.5%)를 나눠주었습니다.

그는 '전체가 잘될 수 있다면 개인적 이해타산과 상관없이 어떤 선택도 할 수 있는 마음 자세를 갖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2001

[정책기획위 자문위원 위촉]

김대중 정부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제5분과(교육정보) 자문위원으로 위촉되며 공적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03

[대통령 취임식 국민대표]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 국민대표 8인 중 한 명으로 참석했습니다.

이는 그의 사회적 영향력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최태원 탄원서 논란]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출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는 이후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저서에서 재벌기업의 전횡을 비판한 내용과 모순된다는 비판으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재벌2, 3세와 벤처기업인이 모여 만든 사교모임 V-Society 회원으로 활동하며 1조 5천억 원대의 분식회계 혐의로 구속 기소된 최태원 회장을 위해 탄원서를 제출했습니다. 이후 안철수 측은 '회원 전체가 서명했던 일이고 내키지 않아 맨 마지막에 서명했다'고 해명했으나, 일부 회원은 서명하지 않아 논란이 계속되었습니다.

2005

[안랩 대표이사 사임]

회사를 창립한 지 만 10년이 되는 날, 안철수연구소의 대표이사직을 사임하고 이사회 의장 자리를 맡았습니다.

이는 자신의 능력을 산업 전반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결정이었습니다.

[POSCO 사외이사 선임]

국내 주요 기업인 포스코의 사외이사가 되어 경영에 참여했습니다.

이후 2010년에는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됩니다.

2008

[KAIST 교수 부임]

귀국 후 KAIST 경영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기업가 정신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유학 마치고 귀국]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벤처 비즈니스 과정과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샌프란시스코 캠퍼스 MBA 과정을 마친 후 귀국했습니다.

이후 KAIST 경영학과 교수로 부임했습니다.

미국 유학 당시 아내가 로스쿨에 유학하며 온 가족이 함께 도서관에서 공부했던 기억이 가장 소중했다고 회고했습니다.

2009

[무릎팍도사 출연]

MBC 예능 프로그램 '황금어장 무릎팍도사'에 출연하여 개인사와 철학을 공개, '한국의 빌 게이츠', 'V3의 아버지' 등으로 불리며 대중적 인지도를 크게 높였습니다.

방송에서 어린 시절의 독서 습관,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개발 계기, 군 입대 당시의 일화, 아내와의 만남, 그리고 안철수연구소 창업 과정과 맥아피 인수 제의 거절 등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털어놓으며 국민적 호감과 신뢰를 얻었습니다.

2010

[POSCO 이사회 의장]

포스코의 이사회 의장에 선임되어 이사회 활동을 이끌었습니다.

[미래기획위 민간위원]

이명박 정부 말기까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제2기 민간위원직을 수행하며 국정 운영에 참여했습니다.

2011

[서울대 융합대학원장 부임]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대학원장으로 부임하여 학계에서의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서울시장 출마설 부상]

윤여준의 발언을 시작으로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출마 가능성이 언론에 제기되며 정치권의 큰 관심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층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안철수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안철수는 출마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였지만, '내가 정말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일인지', '지속적으로 열정을 가질 수 있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일인지' 등 자신의 철학적 기준을 제시하며 고민을 드러냈습니다.

[서울시장 후보 양보]

압도적인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박원순 변호사와 만나 서울시장 후보직을 양보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아름다운 합의'로 평가받으며 큰 화제를 모았고, 박원순의 서울시장 당선에 기여했습니다.

17분간의 대화 끝에 조건 없는 양보를 선언하며 '진정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었다'는 박원순의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결정은 정치권에 큰 파장을 일으키며 그의 비정치인 이미지를 강화했습니다.

[주식 절반 사회 환원]

자신이 보유한 안철수연구소 주식 37.1%의 절반(약 1500억 원 상당)을 저소득 가정 자녀 교육을 위해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주식은 2011년 12월 9일 기준으로 약 2500억 원의 가치로 평가되었습니다.

안철수는 창업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일부 주식을 남겨두고, 이 주식으로 인한 사적인 이익은 일절 배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기부 결정은 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으로 큰 찬사를 받았습니다.

2012

[민주통합당 경선 참여 요구]

민주통합당 문성근 최고위원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대해 '대선 후보로 뛸 생각이 있다면 민주통합당 경선에 나와 국민의 선택을 받는 게 예의'라고 발언하며 대선 출마에 대한 압박을 가했습니다.

[공익 재단 이사장 선출]

재산 기부로 설립될 공익 재단의 이사장에 박영숙이 선출되었습니다.

이 재단은 이후 명칭이 변경됩니다.

['안철수 재단' 명칭 선정]

공익 재단의 이름이 공모 결과 '안철수 재단'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이는 그의 이름을 건 첫 공익 재단으로 주목받았습니다.

['안철수의 생각' 출간]

국가 중대사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담은 정치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을 출간하며 정치적 야심을 드러낸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책 출간 하루 전 SBS '힐링캠프'에 출연하여 녹화 작업을 하며 대중과의 소통을 확대했습니다. 이 책은 그의 정치적 행보에 대한 본격적인 시동으로 해석되었습니다.

[18대 대선 출마 선언]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며 정치적 행보를 본격화했습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유력한 대권 주자로 떠올랐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박근혜를 상대로 1:1 가상대결에서 승리하는 등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며 '안철수 신드롬'을 이어갔습니다. 뉴욕 타임스는 그를 '한국의 정치 스타'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부인 다운계약서 논란]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지 1주일 만에 부인 김미경이 아파트를 사며 '다운계약서'를 작성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었습니다.

이후 안철수 본인도 다운계약서를 작성한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이에 대해 안철수 측은 '당시 부동산 거래 관행이었지만 잘못된 일'이라며 사과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당시에는 위법이 아니었으며 탈세 목적도 없었다고 보았으나, '정치적 도덕성' 측면에서 비판을 받았습니다.

[다운계약서 논란 사과]

다운계약서 논란에 대해 기자회견을 열고 '잘못된 일이고 국민들에게 사과드린다'고 밝혔습니다.

'앞으로 더 엄중한 잣대로 살아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학력 과장 논란]

국회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이 안철수의 펜실베이니아대 대학원 공학 석사와 워튼 스쿨 경영학 석사가 실제로는 '최고경영자 과정'이라며 학력 과장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이에 대해 안철수 측은 정상적인 MBA 과정이었음을 밝히고 학위증을 공개하며 반박했습니다.

[논문 표절 의혹 해소]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이 선배 교수의 논문을 표절했다는 의혹에 대해 서울대학교 연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 결과 본 조사를 진행할 필요가 없다고 발표했습니다.

안철수 측은 문제가 된 '볼츠만 곡선 유도 설명'이 보편적으로 알려진 공식이며, 원저를 밝히지 않는 것이 관행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의 발표로 해당 논란은 해소되었습니다.

[18대 대선 후보직 사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에서 마찰이 지속되자,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제18대 대통령 후보직 사퇴를 선언했습니다.

대선 레이스 중도 하차라는 파격적인 결정은 정치권과 대중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후 문재인 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문재인 후보 지지 선언]

대선 후보직 사퇴 후 문재인 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이후 12일간 부산, 대전, 광화문 등 전국 40여 곳에서 공동 및 지원 유세를 펼쳤습니다.

2013

[공익 재단 명칭 변경]

기부 재산으로 설립된 '안철수 재단'의 명칭이 '동그라미재단'으로 변경되었고, 김영 이사장이 선임되었습니다.

[노원 병 국회의원 당선]

노원 병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60.5%의 득표율을 얻어 당선되며 국회에 입성했습니다.

이후 보건복지위원회 배정 과정에서 국회 내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단국대 경력 논란]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이 안철수 의원의 1989년부터 1991년까지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의예과 학과장 경력이 허위라고 주장했으나, 안철수 측은 단국대학교가 발급한 공식 경력증명서를 공개하며 반박했습니다.

[새정치 추진위 출범]

향후 건설될 안철수 신당의 모체가 될 '국민과 함께하는 새정치 추진위원회'(새정추)의 출범을 알리며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예고했습니다.

2014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전격적으로 제3지대 신당 창당을 선언하여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하고 초대 공동대표에 취임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사퇴]

새정치민주연합이 2014년 7월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하자 공동대표직을 사퇴하며 정치적 책임을 졌습니다.

2015

[새정치민주연합 탈당]

문재인 대표와의 '혁신전대' 제안 거부 등 갈등 끝에 국회 정론관에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며 정권교체를 할 수 있는 정치세력을 만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탈당 전날 문재인 대표가 그의 자택을 찾아 탈당을 만류했으나 결국 불발되었습니다. 이는 야권 재편의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2016

[국민의당 창당 및 공동대표]

안철수, 김한길, 천정배 등이 중심이 되어 '국민의당'(The People's Party)을 창당했으며, 안철수와 천정배 의원이 공동대표로 선출되며 공식 출범했습니다.

[야권 통합 제의 거부]

당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통합' 제안에 대해 야권 통합은 없다고 단호히 거부했으며, 결국 통합은 무산되었습니다.

[20대 총선 국민의당 약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이 선거 전 여론조사와 달리 38석이라는 큰 성과를 거두며 16년 만의 여소야대, 20년 만의 3당 체제 형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호남 지역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다른 지역에서의 성과는 미미하다는 한계도 지적받았습니다.

[국민의당 대표 사임]

4·13 총선 당시 같은 당 박선숙, 김수민 의원이 연루된 선거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 사건에 책임을 지고 국민의당 대표직을 사임했습니다.

2017

[19대 대선 출마 선언]

서울 종로구에서 '공정·자유·책임·평화·미래의 가치를 수호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제19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습니다.

[19대 대선 후보 선출]

당내 경선에서 손학규, 박주선 후보와 겨루어 국민의당 제19대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습니다.

후보 선출 직후 지지율이 급상승하며 문재인 후보와 한 자리수 차이의 양강 구도를 형성했습니다.

[단설유치원 공약 논란]

사립유치원 교육자대회에 참석하여 '(규모가) 대형인 단설유치원 건설을 자제하고 현재 사립유치원에 대해서는 독립운영을 보장하겠다'고 밝혀 학부모들의 비판을 받으며 논란이 되었습니다.

정의당과 더불어민주당은 학부모들의 수요가 가장 높은 국공립 단설유치원의 신설을 자제하겠다는 발상이 현실을 무시한 것이라며 비판했습니다.

[19대 대선 낙선]

제19대 대선에서 21.4%를 득표하여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에 이은 3위로 낙선했습니다.

단설유치원 발언 논란과 TV토론에서의 부진 등이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 분석되었습니다.

[제보 조작 사건 사과]

지난 제19대 대선 당시 국민의당 당원이 문재인 후보 아들 관련 제보 내용을 조작한 혐의가 드러나며 국민의당 박주선 비상대책위원장에 이어 안철수도 대국민 사과를 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안철수는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으며, 정치권에서는 그의 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국민의당 당대표 당선]

정치적 타격 예상에도 불구하고 당대표 출마를 선언했으며, 국민의당 전당대회에서 51%의 득표율로 새 당대표에 당선되었습니다.

[바른정당 통합 논의]

당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바른정당과의 합당 논의를 본격화했습니다.

이후 당대표 재신임을 묻는 전당원투표를 실시하며 통합 추진에 힘을 실었습니다.

[통합 추진 전당원 찬성]

국민의당 전당원 투표에서 74.6%의 찬성으로 바른정당과의 통합 추진이 가결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박지원, 유성엽 의원 등 당내 일부 호남 의원들은 탈당하여 민주평화당을 창당했습니다.

2018

[바른미래당 창당]

전당원 투표에서 73.6%의 찬성으로 바른정당과의 합당이 가결됨에 따라 '바른미래당'이 창당되었고, 안철수는 대표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서울시장 출마 선언]

서울시의회 본관 앞에서 민선 7기 서울특별시장 출마를 공식 선언하며 온종일 초등학교 도입, 서울시 뉴타운 준공영개발 추진 등 다양한 공약을 내걸었습니다.

[서울시장 선거 낙선]

서울시장 선거에서 자유한국당 김문수 후보에 이어 3위로 낙선했습니다.

이 패배로 정계 입문 5년 9개월 만에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2020

[국민의당(2020) 창당]

안철수를 주축으로 하는 '국민의당'을 창당했으며 초대 대표가 되었습니다.

이후 21대 총선에는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2021

[서울시장 재보궐 출마]

2021년 재보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장으로 출마할 것을 발표하며 다시 한번 대중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퀴어축제 발언 논란]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자 토론회에서 퀴어문화축제 참석 의향을 묻는 질문에 '자신의 인권뿐 아니라 타인의 인권도 중요하며, 광화문 개최 시 원하지 않는 분들도 계시다'고 답해 논란이 되었습니다.

이후 '퀴어 특구' 발언으로 논란은 계속되었습니다.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는 '신체 노출이나 성적 표현 수위가 높은 축제에 아동과 청소년이 무방비하게 노출되는 걸 걱정하는 시민들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3월 토론회에서는 '퀴어 축제에 특화된 곳을 만들어 명소가 되면 서로 좋은 일일 것'이라고 발언하며 다시금 논란을 야기했습니다.

[야권 단일후보 오세훈 선출]

금태섭과의 제3지대 단일화 경선에서는 승리했으나, 최종적으로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로 선출되면서 서울시장 출마는 불발되었습니다.

2022

[대통령직인수위 위원장]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 겸 코로나 비상대응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윤석열 정부 출범 준비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분당갑 국회의원 당선]

2022년 6월 재보궐 선거에서 경기 성남시 분당구 갑 국회의원(3선)으로 당선되며 다시 국회에 입성했습니다.

2023

[전국민 정신건강검진 제안]

2023년 연쇄 흉기 난동 사건 발생 후, 예방책으로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정기 건강검진에 정신건강검진을 필수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는 처벌 강화뿐만 아니라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입장을 페이스북에 게시했습니다.

[상대 후보 욕설 논란]

강서구청장 재보궐선거 유세에서 더불어민주당 진교훈 후보를 향해 '정말로 지랄하고 자빠졌죠?'라는 표현을 사용해 논란이 되었습니다.

안철수 측은 '시민의 욕설을 유머로 승화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2024

[분당갑 국회의원 당선]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기 성남시 분당구 갑 국회의원(4선)으로 당선되며 자신의 지역구에서 다시 한번 승리했습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댓글 게시판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