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정치인, 국회의원, 국무총리, 교육부 장관, 당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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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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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국회의원, 국무총리, 교육부 장관, 당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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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정치의 거물 7선 국회의원이자 김대중 정부 교육부 장관 노무현 정부 국무총리 역임. - 학생운동가 출신으로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으며 출판사를 운영하며 사회과학 서적을 보급. - 파격적인 교육 개혁과 실세 총리로서의 면모로 대중의 이목을 끌었으며 더불어민주당 대표로서 총선 압승을 이끈 후 정계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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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

[청양에서 태어나다]

충청남도 청양군에서 5남 2녀 중 다섯째이자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해방 후 청양면장을 지낸 아버지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1972

[학생운동 투신]

유신 선포를 계기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고향에서 아버지의 질책을 듣고 상경, 학생운동 써클에 가입하며 민주화 운동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1974

[민청학련 사건 연루]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1년 동안 투옥되었습니다.

이후에도 생계를 위해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출판 활동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출소 후 무역회사, 동아일보 해직 기자 번역실, 엠네스티 한국지부 상근자 등으로 일하며 출판업에 대한 관심을 키웠습니다. 광장서적을 설립하고 불온서적 출판으로 등록이 취소되자 돌베개 출판사를 설립해 사회과학 서적을 주로 출판했습니다.

1980

[김대중 내란음모 연루]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2년 6개월간 수감생활을 한 뒤 크리스마스 특사로 석방되었습니다.

이후 재야 운동에 본격적으로 투신하여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총무국장에 선출되는 등 반독재 운동에 매진했습니다.

1985

[서울대 14년 만에 졸업]

무려 14년 만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이는 그의 치열했던 학생운동과 재야 활동을 짐작하게 합니다.

1987

[6월 항쟁 주역]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고, 6월 항쟁 당시 상황실장을 맡아 민주화 운동의 최전선에서 활약했습니다.

[한겨레신문 창간 발기인]

한겨레신문 창간발기인으로 참여하며 언론 개혁에도 힘썼습니다.

이후 김대중 후보를 지지하는 재야 인사들과 함께 평화민주당에 입당하며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1988

[국회의원 첫 당선]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관악구 을 지역구에 평화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며,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했습니다.

이후 5회 연속 당선되어 7선 국회의원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광주청문회 스타 부상]

국회 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 특별위원회 간사로 선출되어 5공 관련자들을 집중 추궁하며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그의 날카로운 질문과 진실 추구는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1991

[야당 개혁론 제기]

정치 개혁을 위해 야당 쇄신을 주장하며 김대중 당시 당 대표를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민주당을 탈당했다가 야권 통합 후 재입당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신동아』 1991년 7월호에 '이 야당으로는 정권 교체 못한다'는 글을 기고하며 김대중 대표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피력했습니다.

1994

[안기부 비밀장부 폭로]

안기부의 사찰 및 야당인사 탄압에 관련된 비밀장부를 폭로하여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정보기관의 불법적인 행태를 세상에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1995

[서울시 정무부시장 발탁]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 조순 서울시장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당선에 기여했습니다.

이후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에 발탁되어 행정가로서의 역량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공무원 폭행 논란]

서울시 정무부시장 재직 중 형의 부동산 등기 문제로 송파구 공무원 4명을 부시장실로 불러 폭언과 함께 뺨을 때린 사실이 논란이 되었습니다.

이전에도 유사한 폭행 논란이 있었습니다.

1987년에는 민통련 간부 시절 잘못된 기사를 보도한 기자에게 뺨을 때린 사실을 인정했으며, 1995년에는 딸의 학교에서 성희롱이 발생하자 서울시 교육청 장학관에게 욕설을 했다는 의혹도 있었습니다.

1998

[교육부 장관 취임]

김대중 정부의 제38대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고교 평준화, 연합고사 폐지, 야간 자율학습 폐지 등 파격적인 교육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교원 정년 단축과 성과급 제도 도입으로 교직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교원의 촌지 근절 및 비리 단속을 강화하고 학교폭력을 최초로 단속하여 가해 학생들에게 강력한 처벌을 가했습니다. 그러나 성급한 개혁으로 '이해찬 세대'의 학력 저하 논란과 교원들의 강한 반발에 직면했으며, 한국교총의 퇴진 서명운동 끝에 1999년 5월 24일 장관직에서 물러났습니다.

2001

[의약분업 논란]

감사원 감사로 의약분업 관련 보건복지부의 문제점이 드러나자, 정책 결정 과정에서 책임을 전가하는 상황에 격분하여 정책 논의 도중 자리를 박차고 퇴장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보건복지부가 보험재정 적자 규모를 오판하고 약 조제비 증가를 예측하지 못한 점이 지적되었으며, 건강보험공단의 방만한 운영도 문제로 드러났습니다. 당시 청와대와 여당은 책임을 회피하려 했고, 이해찬은 '원칙 주장론자'로서 갈등을 빚었습니다.

2003

[열린우리당 창당 주도]

민주당을 탈당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지지하는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했습니다.

그는 창당기획단장으로서 새로운 정치 세력의 등장을 이끌었습니다.

2004

[국무총리 취임]

제36대 국무총리로 발탁되어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로 혼란했던 정국에서 국정 운영의 중책을 맡았습니다.

19년간 미결 과제였던 원전폐기물처리장 설치를 성공적으로 해결하는 등 '실세 총리'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안을 발의, 추진했으며, 노무현 대통령이 국무회의에 한 달에 한 번꼴로만 참석하여 이 총리가 의장 역할을 하는 등 책임총리제를 구현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 반대,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제안 반대 등으로 노 대통령과 의견 충돌을 빚기도 했습니다.

2005

[산불 중 골프 논란]

강원도 양양군 대형 산불 발생 당시 포천의 한 골프장에서 골프를 즐긴 사실이 알려져 언론과 정치권의 거센 비난을 받았습니다.

이는 그의 총리직 사퇴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해찬은 2004년 대전차포 오발 사고 희생자 조문 전 골프, 2005년 남부지방 호우경보 중 제주도 골프 등 여러 차례 '골프 파문'을 일으키며 구설에 올랐습니다. 특히 2006년 3.1절 기념식 불참 및 부산 상공인과의 골프 모임은 총리직 사퇴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6

[총리직 사퇴]

잦은 골프 파문과 논란 끝에 노무현 대통령이 총리직 사의를 수용하면서 국무총리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그의 퇴진은 공직사회의 골프 규제 강화로 이어졌습니다.

2012

[6선 국회의원 당선]

세종특별자치시 선거구에서 제19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국회에 6선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민주통합당 대표 경선을 통해 당 대표에 당선되며 야권의 주요 리더로 부상했습니다.

[민주통합당 대표 선출]

민주통합당 임시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정권교체를 향한 대장정이 시작됐다"고 밝히며,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매카시즘'에 단호히 맞서 싸우겠다고 선언해 '신 매카시즘'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이후 제18대 대통령 선거 관련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지도부 총사퇴를 결의하고 2012년 11월 18일 대표직에서 물러났습니다.

2017

[문재인 정부 중국 특사]

문재인 정부의 중국 특사로 임명되어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이는 새로운 정부의 외교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음을 보여줍니다.

2018

[더불어민주당 대표 당선]

더불어민주당 대표 경선에서 42.88%의 득표율로 당선되며 다시 한번 거대 여당의 수장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튼튼하게 뒷받침하겠다"고 밝히며 친문 핵심 인사로서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장애인 비하 발언 논란]

더불어민주당 전국장애인위원회 발대식 축사 자리에서 "신체장애인보다 더 한심한 사람들은…"이라는 발언에 이어 "정치권에는 저게 정상인가 싶을 정도로 정신장애인들이 많이 있다"고 말해 장애인 비하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이후 2020년 1월에도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인재영입된 최혜영 교수를 언급하며 "선천적인 장애인은 어려서부터 장애를 가지고 나와서 의지가 약하다"고 발언하여 재차 비판을 받았습니다.

2020

[정계 은퇴 선언]

제21대 총선에 불출마하고, 당 대표로서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을 이끈 뒤 임기 만료와 함께 정계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그는 이낙연에게 당 대표 자리를 인계하며 30년 넘게 이어온 정치 인생의 막을 내렸습니다.

7선 국회의원으로서 화려한 경력을 쌓고 민주화와 정권교체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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