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노동운동가, 정치인, 진보주의자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2- 01:26:25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노동운동가 출신 3선 국회의원. 진보정치의 상징이자 대중적 소통 능력으로 큰 사랑을 받음. 삼성 X파일 폭로 등 권력형 비리 고발에 앞장서며 사회 정의 실현에 기여. 정의당 원내대표 역임 중 불법 정치자금 의혹으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함.
- 노회찬 출생
- 유신 독재 반대 민주화운동 시작
- 노동운동 투신
- 위장취업 및 수배 시작
- 인민노련 창립
- 인민노련 활동 중 체포
- 만기 출소 및 진정추 활동
- 국민승리21 정책기획위원장
- 민주노동당 창당 및 부대표
- 17대 총선 당선 및 3김시대 종식
- 삼성 X파일 검사 실명 공개
- 진보신당 창당 및 공동대표
- 촛불시위 적극 참여
- 진보신당 대표 선출
- 진보신당 탈당 및 새진보연대 결성
- 19대 총선 노원병 당선 (재선)
- 삼성 X파일 사건으로 의원직 상실
- 20대 총선 창원 성산구 당선 (3선)
- 국회 특수활동비 폐지 주장
- 드루킹 불법 정치자금 수수
- 비극적인 사망
- 사망 후 정의당 지지율 급등
1956
1973
[유신 독재 반대 민주화운동 시작]
경기고 1학년 재학 중 박정희 유신 독재에 반대하는 유인물을 제작하고 배포하면서 민주화운동을 시작했다.
이 시기 저항적 지식인들을 만나게 되었다.
1980
[노동운동 투신]
광주 민주화 운동에 큰 영향을 받아, 노동자들이 조직화되고 세력화될 때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고 본격적인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1982
[위장취업 및 수배 시작]
노동운동을 위해 전기용접기능사 2급 자격을 취득한 뒤 서울, 부천, 인천에서 용접공으로 위장취업을 시작했다.
이 시기 각종 시위 주도 및 불온문서 배포 혐의로 수배 생활이 시작되었다.
1987
[인민노련 창립]
6월 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 이후, 인천 부평에서 인민노련 창립을 선포했다.
인민노련은 주체사상파와 제헌의회파를 교조주의로 인식하고 실사구시적 활동을 전개했으며,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진보정당)를 목표로 했다.
1988
1989
[인민노련 활동 중 체포]
인민노련 중앙위원, 격주간 《사회주의자》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던 중 체포되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다.
1992
[만기 출소 및 진정추 활동]
감옥에서 만기 출소 후 진보정당추진위원회(진정추) 사무총장과 2~4기 대표를 역임했다.
진정추는 '창당에 이르는 안정된 중간단계로서 준정당적 조직'으로 위상을 규정하며 통합을 추진했다.
1997
[국민승리21 정책기획위원장]
민주노총과 전국연합, 진보정치연합을 중심으로 1997년 대선 기구인 국민승리21이 출범했으며, 노회찬은 정책기획위원장으로 활동하며 권영길 위원장을 대선 후보로 내세워 선거를 치렀다.
2000
[민주노동당 창당 및 부대표]
민주노동당이 창당되었고, 노회찬은 초대 부대표를 맡았다.
이후 16대 총선, 3회 지방선거, 17대 총선에서 선대본부장을 맡아 당의 대부분의 선거를 지휘했다.
2004
[17대 총선 당선 및 3김시대 종식]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8번으로 출마하여 당선되며, 자유민주연합의 비례대표 배정 실패로 김종필이 낙선하면서 3김시대의 막을 내리는 데 기여했다.
선거 지휘 동안 쓴 일기가 《힘내라 진달래》로 묶여 출판되었고, 제13회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했다.
2005
[삼성 X파일 검사 실명 공개]
MBC의 삼성 X파일 공개 후, 국회 법사위 회의에 앞서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삼성그룹의 뇌물을 받은 전·현직 검사 7명의 실명을 공개하여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러나 검찰은 고위 검사들을 처벌하지 않고 노회찬 의원과 이상호 기자를 기소했다.
X파일은 1997년 대선 과정에서 안기부가 삼성그룹 이학수 부회장과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의 대화를 도청한 녹음테잎과 보고서로, 삼성의 전방위 로비 실태와 최고위급 검찰 간부들에게 떡값을 뿌리며 인맥을 관리한 내용 등이 담겨 있었다.
2008
[진보신당 창당 및 공동대표]
심상정과 함께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고 진보신당을 창당했으며, 심상정, 이덕우, 박김영희, 김석준과 함께 공동대표에 취임했다.
[촛불시위 적극 참여]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인한 촛불시위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진보신당 칼라TV' 리포터로 활동했고, 시위 배후설에 대해 '촛불시위의 배후는 이명박 정부'라고 반박했다.
2009
[진보신당 대표 선출]
제2창당 작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정기당대회에서 당 대표 경선에 단독 출마하여 투표율 58.7%, 97.9%의 압도적인 찬성을 받아 진보신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2011
[진보신당 탈당 및 새진보연대 결성]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의 통합 논의가 종북주의 문제로 결렬되고 진보신당 대의원 대회에서 통합 안건이 부결되자, 심상정, 조승수 등과 함께 당을 탈당해 '새진보정치연대'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2012
[19대 총선 노원병 당선 (재선)]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노원구 병 선거구에 출마하여 57% 득표율로 당선되며 재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2013
[삼성 X파일 사건으로 의원직 상실]
대법원이 '안기부 X파일' 공개로 인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 징역 4월(집행유예 1년)과 자격정지 1년을 확정하며 의원직을 상실했다.
이는 불법 도청 내용을 공개하면 안 된다는 법 조항에 근거한 것으로, 권력 비리 고발자의 처벌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노회찬은 '국민 누구나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1인 미디어 시대에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배포하면 면책특권이 적용되고 인터넷을 통해 일반 국민에게 공개하면 의원직 박탈이라는 시대착오적 궤변'이라며 판결을 비판했다. 이 시기 황교안 법무부 장관 후보가 '삼성 X파일' 특별수사팀을 지휘했던 사실이 재조명되며 논란이 심화되었다.
2016
[20대 총선 창원 성산구 당선 (3선)]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권유로 경남 창원 성산구에 출마하여 야권 단일후보로 선출되었고, 당선되어 3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국회 특수활동비 폐지 주장]
국회 특수활동비 폐지를 주장하며 관련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정의당은 이 기조를 이어받아 노회찬 몫으로 지급된 2018년 7월 특활비를 사용하지 않았다.
[드루킹 불법 정치자금 수수]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경제적 공진화 모임)'로부터 모두 4천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이 유서를 통해 밝혀졌다.
노회찬은 청탁이나 대가 약속은 없었으나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고 유서에 남겼다.
2018
[비극적인 사망]
드루킹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서울 중구 신당동 자택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했다.
유서에는 드루킹 측으로부터 4천만원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고 가족과 당에 미안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경찰에 따르면 7월 23일 오전 9시 38분경 아파트 1층 현관 앞에서 노 원내대표가 쓰러져 있는 것을 경비원이 발견했으며, 투신 장소로 보이는 17~18층 사이 계단에서 그의 외투, 지갑, 신분증, 유서 3통이 발견되었다. 이 사건은 정치권에 큰 충격을 주었고, 고인이 지향했던 진보와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애도가 이어졌다. 그의 장례는 정의당장으로 치러진 뒤 국회장으로 승격되었다.
[사망 후 정의당 지지율 급등]
노회찬 의원 사망 이후 한국갤럽 8월 1주차 여론조사에서 정의당의 지지율이 일시적으로 15%로 최고치를 기록하며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을 넘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