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민
변호사, 정치인, 사회운동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8- 02:32:40
거리의 변호사로 불리며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변호사 출신 정치인. 특히 세월호 참사 유가족 변론으로 대중에 깊은 인상을 남기며 정계에 입문. 제20대부터 제22대까지 3선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 등 주요 보직을 역임. 임대차 3법 논란 등 여러 이슈의 중심에 서기도 했지만 꾸준히 사회 현안에 목소리를 내는 인물.
1973
['거리의 변호사' 탄생]
서울 성북구에서 태어난 박주민은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하며 인권 운동에 눈을 떴습니다.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변호사를 꿈꿨고,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과 법무법인 '이공'을 설립하며 '거리의 변호사'라는 별명과 함께 공익 변론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대원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학과에서 수학하며 사회 정의에 대한 깊은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배경은 훗날 그가 사회적으로 굵직한 인권 사건들을 도맡아 처리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2003
2006
2011
2012
[민변 사무처장 및 이공 설립]
공익 변론에 특화된 법무법인 '이공'을 설립하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며 본격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변론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쌍용차 해고, 밀양 송전탑 등 굵직한 사건들을 맡으며 '거리의 변호사'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법무법인 이공의 변호사이자 민변의 사무처장으로서,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 서서 다양한 인권 및 노동 관련 변론을 수행하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또한 공동 저서 <시민을 고소하는 나라>를 출간하며 시민의 권리 옹호에 앞장섰습니다.
2014
[올해의 법조인 선정]
한 해 동안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고 사회 정의 실현에 기여한 법조인에게 주어지는 '올해의 법조인'에 선정되며 변호사로서의 역량과 사회적 기여를 인정받았습니다.
2015
[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
시민사회단체 참여연대의 부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시민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2016
[20대 국회 입성]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은평구 갑 지역구에 당선되며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는 대원외국어고등학교 출신으로는 김재연에 이어 '두 번째 국회의원'이 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마지막 전략 공천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유가족의 헌신적인 지지 속에 국회에 진출, 변호사로서 한계를 느꼈던 세월호 진상 규명 문제 해결에 힘을 쏟게 됩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활동 중 변호사로서의 한계를 느끼고 정계 입문을 결심했으며, 당시 현직 의원의 지원과 세월호 유가족들의 헌신적인 지지 덕분에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당선될 수 있었습니다.
2017
[<별종의 기원> 출간 및 백봉신사상]
단독 저서 <별종의 기원>을 출간하고, 제19회 백봉신사상 대상을 수상하며 정치인으로서의 소신과 역량을 대외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이외에도 여러 공동 저서에 참여하며 활발한 저술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해당 연도에 <별종의 기원> 외에도 <대통령의 7시간 추적자들>, <좋아요 문재인>, <소년소녀, 정치하라!> 등 여러 공저에 참여하며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2018
[민주당 최고위원 최다득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선거에서 출마 후보 8명 중 '가장 높은 득표율인 21.28%'을 기록하며 최고위원에 당선, 당내 핵심 리더십으로 부상했습니다.
당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최고위원에 당선되며 당내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2019
[<주민의 헌법> 출간]
단독 저서 <주민의 헌법>을 출간하며 본인의 정치 철학과 비전을 공유했습니다.
또한 더불어민주당 국회혁신특별위원회 및 검찰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며 당내 주요 현안 해결에 앞장섰습니다.
2020
[21대 국회 재선]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시 한번 서울 은평구 갑 지역구에 당선되며 재선에 성공, 지역구 기반을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임대료 인상 논란]
본인이 대표 발의한 '임대차 3법' 통과를 앞두고 자신의 아파트 임대료를 약 9% 인상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큰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이 논란은 박주민 의원의 청렴한 이미지에 타격을 주었으며,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킨 주요 사건 중 하나입니다. 해당 논란으로 인해 사회적 파장이 컸습니다.
[민주당 당대표 경선]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경선에 출마하며 당의 수장 자리에 도전했습니다.
비록 3위로 낙선했지만, 당내 주요 인사로서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습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발의]
우원식 의원과 함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발의하며 사회적 안전망 강화와 기업의 책임 강화를 위한 입법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2021
[이재명 캠프 합류]
제20대 대통령 선거 더불어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이재명 캠프의 총괄본부장을 맡아 선거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2022
[서울시장 경선 중도 포기]
제8회 전국지방선거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참여했으나, 최종적으로 중도 포기를 선언하며 광역자치단체장 도전의 꿈을 잠시 접었습니다.
2023
[원내운영수석부대표]
더불어민주당 원내운영수석부대표로 임명되어 당의 원내 활동을 지원하고 조율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2024
[22대 국회 3선 성공]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은평구 갑 지역구에 당선되며 '3선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이는 그가 지역구민들에게 꾸준히 신뢰받는 정치인임을 보여줍니다.
[보건복지위원장 선출]
제22대 국회 전반기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어 대한민국의 보건 및 복지 정책을 이끌어가는 핵심적인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