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 전쟁
전쟁, 분쟁, 내전, 집단학살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5:44
보스니아 전쟁은 1992년부터 1995년까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벌어진 참혹한 분쟁입니다. 유고슬라비아 해체 과정에서 보스니아의 독립을 둘러싸고 보스니아인 세르브인 크로아트인 간에 벌어진 민족 간의 충돌이었죠. 이 전쟁은 무차별 포격 인종 청소 대규모 강간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에서 최초로 발생한 스레브레니차 집단학살로 기록됩니다. 최종적으로 나토의 개입과 데이턴 협정으로 종식되었지만 10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220만 명이 넘는 실향민이 발생하며 현대 유럽사에서 가장 파괴적인 전쟁으로 남았습니다.
- 카라조르제보 회담
- 보스니아 주권국 선언
- 스릅스카 공화국 선포
- 보스니아 독립투표 & 총격
- 보스니아 독립 선언
- 리스본 협정 철회
- 포차 인종청소
- 보스니아 전쟁 개전
- 프리예도르 인종청소
- 스릅스카 공화국군 창설
- 보스니아 유엔 가입
- 사라예보 도심 포격
- 회랑 '92 작전 시작
- 유엔보호군 보스니아 파견
- 야이체 함락
- 부총리 피살 사건
- ICTY 설립 결의
- 디나이 플라이트 작전
- 아흐미치 학살
- 유엔 안전지대 지정
- 모스타르 전투 시작
- ICTY 정식 설치
- 네레트바 '93 작전
- 1차 마르칼레 학살
- 나토 사라예보 공습 승인
- 크로아-보스니아 종전
- 나토, 세르비아 항공기 격추
- 워싱턴 협정 체결
- 고라주데 공세와 나토 공습
- 미국, 무기 금수 조치 해제
- 겨울 '94 작전 시작
- 투즐라 학살
- 스레브레니차 집단학살
- 스플리트 협정
- 스톰 작전
- 2차 마르칼레 학살
- 딜리버레이트 포스 작전
- 사나 작전 시작
- 미스트랄 2 작전
- 평화 협정 기본원칙 합의
- 남향이동 작전
- 데이턴 평화 협상 시작
- 데이턴 협정 체결
- 파리 평화 협정 서명
1991
[카라조르제보 회담]
크로아티아의 프라뇨 투지만 대통령과 세르비아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분할에 합의했다는 논란의 회담이 열렸습니다.
이는 보스니아 내 민족 간 긴장을 고조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유고 인민군 증파]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이 모스타르 인근과 비셰그라드를 통해 부코바르 전선으로 병력을 증파했습니다.
이는 보스니아 전쟁이 발발하기 약 7개월 전 보스니아에서 발생한 최초의 유혈 충돌로 기록됩니다.
[라브노 공격]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이 크로아티아 남부 두브로브니크 공격 작전의 일환으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내 크로아티아계 마을인 라브노를 공격했습니다.
[보스니아 주권국 선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회주의 공화국 의회가 과반수 의석으로 주권국 선언을 통과시켰습니다.
세르브계 보스니아인 의원들은 이를 보이콧하며 반발했습니다.
1992
[스릅스카 공화국 선포]
세르브계 보스니아인들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세르브인 공화국" 수립을 선포하며, 보스니아의 유고슬라비아 연방 잔류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는 이후 스릅스카 공화국으로 발전합니다.
[보스니아 독립투표 & 총격]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독립 국민투표가 실시되어 97% 찬성으로 통과됩니다.
하지만 투표 당일 사라예보에서 세르브인 결혼식장 총격 사건이 발생해 신랑측 아버지가 사망하며 보스니아 전쟁의 첫 사망자로 기록됩니다.
세르브계 보스니아인들은 투표를 보이콧했으며, 이후 독립 투표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결혼식 총격 사건은 라미즈 델랄리치라는 보스니아계 준군사조직 '그린베레' 일원의 소행으로 지목되었습니다.
[사라예보 바리케이드]
보스니아 독립 국민투표 직후, 무장한 복면을 쓴 세르브계 지지자들이 사라예보 시내 주요 번화가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기 시작하며 긴장이 고조되었습니다.
[보스니아 독립 선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정부가 유고슬라비아로부터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세르브인과 보스니아 정부군 간 산발적인 교전이 시작됩니다.
[리스본 협정 서명]
보스니아의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 세르브인의 라도반 카라지치, 크로아트인의 마테 보반 등 세 민족 대표가 평화안인 리스본 협정에 서명했습니다.
[리스본 협정 철회]
보스니아의 이제트베고비치 대통령이 리스본 협정 서명을 돌연 철회하고 통합 국가만을 추구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평화적 해결 노력이 좌절됩니다.
[포차 인종청소]
세르비아군이 포차 지역을 점령한 후 2,700명 이상의 보스니아인 민간인을 학살하는 잔혹한 인종 청소 사건을 벌였습니다.
[보스니아 전쟁 개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독립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면서, 세르비아군은 수도 사라예보에 대한 포격을 시작했습니다.
많은 역사가들이 이날을 보스니아 전쟁의 공식적인 시작일로 보고 있습니다.
[프리예도르 인종청소]
세르비아군이 프리예도르를 함락시키고, 이 지역에 거주하던 보스니아인과 크로아트인 약 3천 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사라예보 포위 공격 격퇴]
보스니아계 준군사조직 그린베레와 지역 갱단이 사라예보를 양갈래로 포위하려는 세르비아군의 무질서한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냈습니다.
[이제트베고비치 납치 & 공격]
이제트베고비치 대통령이 사라예보 공항에서 유고슬라비아 인민군 장교에게 납치되어 인민군의 안전한 철수 통로 확보에 이용되었습니다.
이후 보스니아군은 인민군 대열을 공격하여 폭력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그라츠 협정]
크로아트계 마테 보반과 세르브계 라도반 카라지치가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만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영토 분할에 대해 논의하는 휴전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스릅스카 공화국군 창설]
라트코 믈라디치가 총지휘관으로 임명되며 스릅스카 공화국군(VRS)이 공식 창설되었습니다.
이는 전쟁의 새로운 국면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투즐라 유고 인민군 공격]
투즐라에서 철수 중이던 유고슬라비아 인민군 대열이 공격을 받아 병사 52명이 사망하고 40명이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보스니아 유엔 가입]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화국이 유엔에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하며 국제적인 승인을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사라예보 도심 포격]
사라예보 도심에서 발생한 격렬한 포격 사태는 서방 세계의 개입을 촉발했으며,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 제757호로 세르비아에 대한 제재가 시작되었습니다.
[라트코비치 점령]
보스니아군이 스레브레니차 인근의 세르브계 마을 라트코비치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세르브계 민간인 24명이 살해되었습니다.
[회랑 '92 작전 시작]
세르브계 보스니아군이 베오그라드-바냐루카-크닌 도로 확보를 위해 보스니아 북부에서 '회랑 '92 작전'을 시작했습니다.
이 작전 중 바냐루카 병원의 산소 부족으로 신생아 12명이 사망했다는 보고가 있었으나, 전시 프로파간다 논란도 있었습니다.
[유엔보호군 보스니아 파견]
유엔보호군(UNPROFOR)이 사라예보 국제공항 보호를 위해 사라예보에 파견되었으며, 이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전역으로 인도적 보호 활동을 확대했습니다.
[유고 인민군 사라예보 철수]
격렬한 시가전과 포격 속에서 마지막 유고슬라비아 인민군 병력이 사라예보에서 철수하며, 도시의 포위가 심화됩니다.
[야이체 함락]
스릅스카 공화국군이 야이체 마을을 점령했습니다.
보스니아군과 크로아티아 국방위원회 간 방어 협력이 부족했던 것이 주요 패인으로 지적되며, 2만 명의 보스니아인 난민이 발생했습니다.
1993
[크라비차 공격]
보스니아군이 스레브레니차 인근의 세르브계 마을 크라비차를 공격하여 군인과 민간인을 포함해 세르브인 46명이 사망했습니다.
이 공격은 유엔 안전지대에서 감행되어 논란이 되었습니다.
[부총리 피살 사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하키야 투라일리치 부총리가 공항에서 유엔 호송대에 의해 이동 중 세르비아군에 의해 살해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스켈라니 마을 공격]
보스니아 공화국군이 스레브레니차 인근 스켈라니 마을을 공격하여 40~65명이 사망했습니다.
세르비아 측은 이 공격으로 어린이 2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했습니다.
[ICTY 설립 결의]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에서 국제인도법 위반 책임자들을 기소할 국제재판소를 수립해야 한다는 결의안 제808호가 통과되었습니다.
[비행금지구역 설정]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결의 제816호를 통해 모든 유엔 회원국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상공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지정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디나이 플라이트 작전]
나토(NATO)가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보스니아 상공의 비행금지구역을 유지하기 위한 '디나이 플라이트 작전'을 시작했습니다.
[코니츠 전투 시작]
보스니아 공화국군이 크로아티아 국방위원회가 장악한 코니츠 외곽을 공격하기 시작하며, 중부 보스니아에서 헤르체고비나 북부로도 크로아티아-보스니아 전쟁이 확대됩니다.
[아흐미치 학살]
크로아티아 국방위원회 민병대가 비테즈 동쪽 아흐미치 마을에 진입하여 보슈냐크인 민간인 117명에서 120명을 무차별 학살했습니다.
이 잔혹한 행위는 영국 유엔 평화유지군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트루시나 학살]
야블라니차 북쪽의 트루시나 마을에서 보스니아 공화국군이 크로아트 민간인 15명과 포로 7명을 학살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유엔 안전지대 지정]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사라예보, 스레브레니차, 투즐라, 제파, 고라주데 및 인근 지대를 '유엔 안전지대'로 지정하는 결의 제824호를 통과시켰습니다.
[모스타르 전투 시작]
크로아트계와 보슈냐크계가 각각 장악하던 모스타르의 동부와 서부가 포격을 받으면서 치열한 모스타르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ICTY 정식 설치]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 제827호가 통과되며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가 정식으로 설치되어 전쟁 범죄자들을 기소하고 재판하게 됩니다.
[트라브니크 공격]
보스니아 공화국군이 트라브니크의 크로아티아 국방위원회 지휘본부를 공격하여, 수적으로 열세였던 크로아티아 국방위원회가 패퇴하고 수천 명의 크로아트인 민간인이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샤프 가드 작전]
나토와 서유럽 연합이 아드리아해를 봉쇄하는 '샤프 가드 작전'을 시작하여 1996년까지 유고슬라비아 지역의 무기 금수조치를 시행했습니다.
[부고이노 점령]
보스니아 공화국군이 부고이노 마을을 점령하여 1만 5천 명 이상의 크로아트인 난민이 발생했습니다.
전투 후 800명의 크로아트인이 포로수용소에 수용되기도 했습니다.
[네레트바 '93 작전]
보스니아 공화국군이 헤르체그보스니아를 공격하는 대규모 군사 작전인 '네레트바 '93 작전'을 시작했습니다.
이 작전은 1993년 보스니아 전쟁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작전 중 하나였습니다.
[그라보비차 학살]
밤사이 보스니아 공화국군이 크로아트인 민간인 33명 이상을 살해하는 잔혹한 그라보비차 학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1994
[1차 마르칼레 학살]
사라예보 시내의 붐비는 마르칼레 시장에 세르브인 민병대가 발사한 박격포탄이 떨어져 68명이 사망하고 144명이 부상당하는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이는 사라예보 포위전 중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단일 공격으로 기록됩니다.
[나토 사라예보 공습 승인]
나토(NATO)가 유엔보호군(UNPROFOR)의 요청에 따라 사라예보 및 인근 지역의 세르브계 대포 및 박격포 진지를 공습하는 작전을 승인했습니다.
[크로아-보스니아 종전]
크로아티아 국방위원회와 보스니아 공화국군 참모총장이 자그레브에서 휴전 협정에 서명하며 1993년부터 이어진 크로아티아-보스니아 전쟁이 공식적으로 종전되었습니다.
[나토, 세르비아 항공기 격추]
나토(NATO)가 보스니아 중부 상공에서 유엔 비행금지구역을 위반한 세르비아 항공기 4기를 모두 격추했습니다.
이는 나토 역사상 처음으로 강행한 공습 작전으로 기록됩니다.
[워싱턴 협정 체결]
미국 중재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크로아티아, 헤르체그보스니아 대표가 워싱턴 D.C.에서 평화 협정에 서명했습니다.
이로써 크로아티아 국방위원회와 보스니아 공화국군이 장악한 영토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 내의 자치주로 분할되었습니다.
[고라주데 공세와 나토 공습]
세르비아군이 고라주데 완전 점령을 목표로 대규모 공세를 펼치자, 나토는 세르비아군 지휘부 전초기지와 전차에 대한 공습을 감행했습니다.
세르비아군은 고라주데에서 유엔보호군 인질 150명을 잡기도 했습니다.
[뵐레방크 작전]
덴마크 평화유지군이 스웨덴 감시초소를 구출하던 중 세르브계 보스니아군의 매복에 당하자, 유엔군은 '뵐레방크 작전'이라는 대규모 포격으로 보복하여 세르브군을 흩어놓았습니다.
[나토 사라예보 무기고 공습]
유엔 보호군의 요청으로 나토 항공기가 사라예보 인근의 세르브계 보스니아군 무기고를 공습했습니다.
[아만다 작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그라다차츠 인근 감시초소를 복구하기 위한 '아만다 작전'이 덴마크 평화유지군의 지휘 아래 시작되었습니다.
[2차 쿠프레스 전투]
워싱턴 협정 이후 크로아트계와 보스니아계의 첫 합동 군사 작전인 '제2차 쿠프레스 전투'가 벌어져, 세르브스카 공화국군이 장악하던 쿠프레스를 재탈환했습니다.
[미국, 무기 금수 조치 해제]
미국이 보스니아 정부에 대한 유엔의 무기 금수 조치를 일방적으로 해제했습니다.
이는 보스니아군의 전력 증강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나토, 크로아티아 공중지원 연장]
북대서양 이사회가 크로아티아 내 유엔군 보호를 위해 크로아티아 지역의 근접항공지원 임무를 연장하는 안건을 통과시켰습니다.
[나토, 우드비나 공습]
나토 항공기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비하치 지역을 향한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세르비아가 장악한 크로아티아의 우드비나 비행장을 공습했습니다.
[겨울 '94 작전 시작]
크로아티아 국방위원회와 크로아티아군이 보스니아 서남부를 향한 '겨울 '94 작전'을 시작하여 약 200km² 넓이의 영토를 장악하고 스릅스카 공화국과 크닌을 잇는 주요 도로를 위협했습니다.
1995
[투즐라 학살]
나토의 공습에 대한 보복으로 스릅스카 공화국군이 투즐라를 포함한 유엔 안전구역을 포격하여 71명이 사망하고 150명이 부상당하는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스레브레니차 집단학살]
라트코 믈라디치 장군이 이끄는 스릅스카 공화국군이 유엔 '안전지대'인 스레브레니차를 점령한 후 남성 8,000명 이상을 학살하고 여성과 어린이를 강제 추방했습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발생한 최초의 집단학살로 기록됩니다.
[스플리트 협정]
투지만 크로아티아 대통령과 이제트베고비치 보스니아 대통령이 스플리트 협정을 체결하여, 보스니아 서부에서 크로아티아군과 크로아티아 국방위원회의 합동 군사 공세를 시작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스톰 작전]
크로아티아군이 '스톰 작전'을 시작하여 며칠 만에 세르비아 크라이나 공화국을 완전히 붕괴시켰습니다.
이는 보슈냐크계-크로아트계 동맹이 전쟁 주도권을 쥐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2차 마르칼레 학살]
스릅스카 공화국군이 사라예보의 마르칼레 시장을 박격포로 공격하여 43명이 사망하는 제2차 마르칼레 학살이 발생했습니다.
[딜리버레이트 포스 작전]
제2차 마르칼레 학살에 대한 보복으로 나토(NATO)가 세르브계 보스니아군 진지에 대한 광범위한 공습 작전인 '딜리버레이트 포스 작전'을 개시했습니다.
이는 전쟁 종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사나 작전 시작]
보스니아 공화국군이 보스니아 서북부에서 '사나 작전'을 시작하여 보산스카크루파, 보산스키페트로바츠, 클류치, 산스키모스트 등 여러 도시를 점령하고 스릅스카 공화국을 북쪽으로 밀어냈습니다.
[미스트랄 2 작전]
크로아티아군과 크로아티아 국방위원회가 '미스트랄 2 작전'을 통해 스릅스카 공화국이 점령하던 야이체, 시포보, 드르바르 등 중부 보스니아 마을을 점령하고 2,500km²에 달하는 영토를 탈환했습니다.
[평화 협정 기본원칙 합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크로아티아, 신유고 연방의 외무장관들이 미국 뉴욕에 모여 평화 협정의 기본 원칙에 합의했습니다.
[남향이동 작전]
안테 고토비나 장군이 지휘하는 크로아트계 군사가 '남향이동 작전'을 시작했습니다.
이 공세로 스릅스카 공화국은 므르코니치그라드를 잃고 바냐루카 남쪽 25km 지점까지 밀려났습니다.
[데이턴 협정 체결]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에서 역사적인 '데이턴 협정'이 체결되며 보스니아 전쟁이 공식적으로 종전되었습니다.
[파리 평화 협정 서명]
프랑스 파리에서 보스니아 전쟁의 최종 평화 협정이 서명되었습니다.
이 협정에 따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전역에 나토의 평화이행군(IFOR)이 배치되어 평화 유지 임무를 수행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