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리비아 내전

내전, 전쟁, 아랍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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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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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 전쟁, 아랍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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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간 리비아를 통치한 무아마르 카다피 독재에 맞선 2011년 시민 봉기로 시작된 내전. 국제 사회의 비난과 유엔의 비행금지구역 설정 나토 연합군의 개입 속에 수도 트리폴리가 함락되고 카다피가 사망하며 독재 정권은 막을 내렸습니다. 아랍의 봄의 상징적 사건이나 이후 리비아는 파벌 대립으로 혼돈이 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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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리비아 내전 시작]

42년간 리비아를 통치한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에 대항하는 평화 시위가 리비아 제2의 도시 벵가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투옥된 인권 변호사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대가 경찰과 친정부 세력과 충돌하며 38명이 부상했습니다.

이 시위는 이후 '아랍의 봄'의 일부로 리비아 전역으로 확산될 불씨가 됩니다.

[시위 확산과 정부 탄압]

시위는 계속되어 2월 17일 '분노의 날'로 선포되었고, 여러 도시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습니다.

보안군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16일과 17일 이틀간 24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정부는 수천 명의 친정부 세력을 동원해 트리폴리에서 맞불 집회를 열며 긴장이 고조되었습니다.

[반정부군 도시 점령]

벵가지에 군이 배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반정부 시위대는 알베이다를 점령하고 친정부 민병대를 처형했습니다.

벵가지 등 5개 도시에서 수천 명 규모의 시위가 실탄으로 진압되어 35명이 사망했고, 총 사망자는 84명에 달했습니다.

벵가지에서는 수감자들이 탈출하여 경찰서에 방화하는 등 혼란이 가중되었습니다.

[카다피 아들 첫 등장]

총 사망자가 250명에 달하는 가운데, 카다피의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이 국영 TV에 등장해 정치 개혁을 시사하면서도 내전 발발을 경고하며 엄격한 조치를 예고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날 벵가지에서는 정부군의 국민 공격에 반발한 군의 일부가 시위대에 가담하여 벵가지가 해방되고, 방송국이 습격당하는 장면이 국영 TV에 방영되며 카다피 정권 내부의 균열이 드러났습니다.

[수도 트리폴리 시위 확산]

반정부 시위가 마침내 수도 트리폴리까지 확산되어 정부 기관이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리비아 정부는 공습을 지시해 250명을 사망에 이르게 했고, 장갑차, 헬리콥터, 심지어 전차까지 동원하여 자국민 학살을 시작했습니다.

이에 리비아 국제 연합 주재 부대사를 비롯한 고위 외교관과 장관들이 사임하며 카다피 정권을 비난하고 국제형사재판소의 조사를 요청했습니다.

공군기 2대가 명령을 거부하고 몰타로 망명하는 초유의 사태도 발생했습니다.

[카다피 망명설 부인]

카다피는 국영 TV에 직접 등장해 트리폴리에 있다고 밝히며 망명설을 부인했습니다.

동시에 "톈안먼 사건처럼 때려 잡는다"는 강경 발언으로 철저한 항전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는 리비아 정세에 관한 긴급 회의를 열고 국민에 대한 무력 행사를 비난하는 성명을 채택했습니다.

이 시점까지 리비아 동부 대부분이 반정부 시위대에 장악된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카다피의 무기 개방]

카다피는 트리폴리의 그린 광장에서 지지자들에게 "아직 사용하지 않은 무기가 있다"며 무기고 개방을 선언, 반정부 세력과의 철저 항전을 호소했습니다.

이는 과거 리비아가 폐기 선언에도 불구하고 보유하고 있던 '이페릿(머스타드 가스)' 같은 화학 병기 사용 가능성을 시사하여 국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스위스 정부는 카다피 측근의 자산을 동결하는 등 국제적 압박이 가중되었습니다.

[과도국가위원회 설립]

카다피 정권에 반기를 들고 사임한 무스타파 압둘 잘릴 전 법무장관이 벵가지에서 잠정 정권인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 설립을 선언하며 카다피 정권 타도와 리비아 국민의 결속을 호소했습니다.

같은 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리비아에 대한 제재 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하고 국제형사재판소에 조사를 의뢰하며 카다피 정권에 대한 국제적 압박을 최고조로 끌어올렸습니다.

[내전 양상 본격화]

압둘 잘릴이 이끄는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 아래 당초 난립하던 반정부 세력의 자치 정권이 결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써 리비아는 사실상 두 개의 국가로 나뉘는 장기전의 양상을 띠게 되었고, 언론에서는 이를 봉기나 반정부 시위 대신 '내전'으로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반정부 세력은 각국에 군사 개입과 비행 금지 구역의 설정을 요청했습니다.

[프랑스, 과도위 정식 승인]

프랑스 정부는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를 리비아의 정식 정부로 승인했습니다.

이는 국제 사회에서 과도국가위원회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첫 번째 주요 국가의 움직임으로, 다른 국가들의 승인에도 영향을 미치며 반카다피 세력에 큰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유엔 비행금지구역]

미국, 영국, 프랑스의 공습 준비가 완료된 가운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리비아 상공에 대한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찬성 10표, 기권 5표로 통과된 이 결의는 유엔 헌장 제42조에 의거한 리비아 사태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최초 무력 공격 승인으로, 민간인 보호를 위한 모든 조치를 허용했으나 지상군 배치는 제외했습니다.

[나토 연합군 개입]

유엔의 비행금지구역 설정 이후, 나토군이 리비아 주요 지역을 폭격하는 '오디세이 새벽 작전'을 시작했으며, 이외에도 여러 연합군이 리비아 내전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내전의 양상을 크게 바꾸고 카다피 정권에 대한 결정적인 압박으로 작용했습니다.

나토군은 3월 31일까지 이 작전에 참여했습니다.

[수도 트리폴리 함락]

반카다피 세력인 시민군이 수도 트리폴리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카다피 정권의 마지막 보루였던 카다피의 관저 '바브 알아지지아'가 함락되면서, 트리폴리 시내 전역이 시민군의 통제에 들어가며 독재 정권의 종말이 임박했음을 알렸습니다.

[무아마르 카다피 사망]

카다피의 고향인 시르테가 함락됨과 동시에, 하수도에 숨어있던 무아마르 카다피가 시민군에게 발각되어 총상을 입고 사망했습니다.

이로써 42년간 리비아를 통치했던 독재자의 시대가 막을 내렸고, 제1차 리비아 내전은 사실상 종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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