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 내전
내전, 분쟁, 전쟁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5:42
알제리 정부와 이슬람 반군 간 10년간 이어진 참혹한 내전. 1991년 이슬람 정당의 선거 승리 무효화 쿠데타가 발단. ‘더러운 전쟁’이라 불릴 만큼 극단적 폭력과 학살이 만연. 최대 20만 명의 사망자를 낸 비극적인 사건. 내전 종식 후에도 알카에다 연계 반란으로 이어져 불안정한 상황 지속.
1991
[내전의 서막: 쿠데타 발발]
알제리에서는 1991년 12월, 이슬람 구국전선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자 군부가 충격적인 쿠데타를 일으켜 선거 결과를 무효화했습니다.
이는 국민의 선택을 무시한 행위였고, 결국 이슬람 구국전선은 활동이 금지되고 수천 명이 체포되면서 거대한 무장 저항으로 이어져 알제리 내전의 비극적인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슬람 구국전선이 민족해방전선을 1991년 알제리 선거에서 패배시키며 승리했으나, 군부가 이를 취소하고 정권을 장악하며 차들리 벤예디드 대통령이 물러났습니다. 이에 수천 명의 이슬람 구국전선 지지자들이 검거되었고,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정부를 상대로 무장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다양한 무장단체를 조직하여 게릴라전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1994
[폭력 확산과 극단주의 등장]
초기 소강상태였던 알제리 내전은 1994년을 기점으로 극단적인 양상으로 치달았습니다.
이슬람주의자들이 '성전'을 주장하며 폭력을 광범위하게 확산시켰고, '협상도, 정전도, 대화도 없다'는 구호를 내건 알제리 무장이슬람단체(GIA)가 등장해 심지어 온건파 이슬람 구원전선에도 선전포고하며 혼란을 가중시켰습니다.
이때부터 전쟁은 걷잡을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이슬람 무장운동과 함께 더욱 강경한 알제리 무장이슬람단체(GIA)가 결성되었으며, GIA는 정부뿐 아니라 이슬람 구원전선(FIS)에 대해서도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이슬람 구원전선을 따르는 세력들은 이슬람 구국군(AIS)을 결성하며 분열과 대립이 심화되었습니다.
1995
[학살의 시대, 대선 강행]
대화가 결렬된 1995년, 알제리 정부는 대통령 선거를 강행했고, 정부군 출신 리아민 제루알이 당선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분쟁을 더욱 격화시켰습니다.
극단적인 알제리 무장이슬람단체(GIA)는 반군뿐만 아니라 무고한 민간인을 대상으로도 무차별적인 학살을 자행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잔혹한 행위는 1997년에 절정에 달해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습니다.
'더러운 전쟁'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참혹했습니다.
정부군 후보 리아민 제루알이 1995년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지만, 이와 동시에 알제리 무장이슬람단체(GIA)는 이슬람 구원군(AIS) 및 민간인 마을에 대한 대규모 학살을 저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잔혹한 행위는 알제리 내전의 가장 어두운 시기를 만들었습니다.
1997
[민심 이반, 휴전 협정]
극단적인 폭력과 학살에 지쳐 민심을 잃어버린 이슬람 저항군은 1997년, 결국 정부와의 휴전 협정에 서명했습니다.
특히 양쪽으로부터 공격받던 이슬람 구국군(AIS)이 정부와 손을 잡으면서 내전의 판도는 크게 변화했습니다.
같은 해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친정부 성향의 정당이 압승을 거두며 정부의 통제력이 강화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알제리 무장이슬람단체(GIA)의 학살 정책으로 이슬람 저항군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이에 이슬람 구국군(AIS)은 1997년 알제리 정부와 휴전협정을 체결했고, 같은 해 국회의원 선거에서 친정부 당이 압승을 거두는 등 정부의 입지가 강화되었습니다.
2002
[내전 종식과 새로운 시작]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1999년 취임하면서 새로운 사면법을 시행, 수많은 반군이 무기를 내려놓고 귀향하면서 내전의 폭력은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가장 극악했던 알제리 무장이슬람단체(GIA)의 잔존 세력도 2년간의 집중적인 소탕 작전 끝에 2002년 2월 8일, 마침내 완전히 소멸하며 공식적인 내전 종식을 선언했습니다.
이로써 10년간 이어진 알제리 최악의 비극이 막을 내렸습니다.
1999년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새로운 사면법을 도입하여 많은 반군이 무기를 내려놓게 했습니다. 남아있던 알제리 무장이슬람단체(GIA)의 잔당들은 2002년에 완전히 소탕되면서 알제리 내전은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수만 명의 희생, '더러운 전쟁']
알제리 내전은 '더러운 전쟁'이라는 오명을 남겼습니다.
정부군과 반군 모두 민간인을 대상으로 극단적인 폭력과 잔혹 행위를 서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끔찍한 10년 동안 무려 4만 4천 명에서 최대 2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숫자는 알제리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기록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알제리 내전은 양측이 민간인에 대한 극심한 폭력과 잔혹 행위를 저질러 '더러운 전쟁'이라 불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외국인 및 여행객을 포함해 70명 이상을 살해하기도 했습니다. 총 사망자 수는 44,000명에서 200,000명 사이로 추정되며, 이는 알제리 역사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2003
[알카에다 연계 반란 발생]
내전이 종식된 후에도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2003년 10월, 극단주의 분파인 '설교와 전투를 위한 살라프파 단체(GSPC)'가 결성되어 알카에다에 대한 지지를 선포하며 또 다른 반란을 시작했습니다.
이 반란은 알제리 국경을 넘어 북아프리카 전체로 확산되어 현재까지 이어지는 '마그레브 반란'의 불씨가 되었으며, 알제리는 다시금 불안정한 시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알제리 내전이 종식된 후에도 '설교와 전투를 위한 살라프파 단체(GSPC)'가 2003년 10월에 설립되어 알카에다에 대한 지지를 선포하며 반란을 이어갔습니다. 이 반란은 나중에 마그레브 지역 전체로 확산되어 '마그레브 반란'으로 발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