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전쟁 (2001년~2021년)
전쟁, 군사 작전, 국제 분쟁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5:36
2001년 9.11 테러 응징을 명분으로 시작된 미국 주도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세계 최장 기간 미국의 전쟁으로 기록되었으나 결국 탈레반의 승리로 종결.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와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패배 사례로 남음. 소련-아프간 전쟁부터 이어진 복잡한 역사적 배경을 가짐.
1979
[소련-아프간 전쟁 발발]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으로, 미국은 소련에 대항하는 이슬람 전사 '무자헤딘'을 지원했고, 이 과정에서 훗날 미국에 맞서는 세력이 되는 알카에다와 탈레반이 성장했다.
이 전쟁은 아프가니스탄의 혼란과 현재 전쟁의 씨앗이 되었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1979-1989)은 무자헤딘의 등장을 이끌었으며, 사우디 부호 오사마 빈 라덴이 이들을 자금적으로 후원하며 알카에다를 조직했다. 소련 철수 후 아프가니스탄이 무정부 상태에 빠지자,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은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대부분을 장악하며 빈 라덴에게 은신처를 제공했고, 이는 미국과 탈레반의 적대 관계로 이어졌다.
2001
[9.11 테러 발생]
알카에다가 미국에서 항공기 4대를 납치하여 세계 무역 센터와 펜타곤에 충돌시킨 대규모 테러.
이 사건으로 2,996명이 사망했으며, 미국 역사상 최악의 테러로 기록되어 아프가니스탄 전쟁 발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19명의 아랍인 납치범들이 아메리칸 항공 11편과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을 뉴욕 세계 무역 센터 쌍둥이 빌딩에 충돌시켰고, 아메리칸 항공 77편은 워싱턴 D.C. 인근 펜타곤에, 유나이티드 항공 93편은 워싱턴 DC로 향하다 셰익스빌에 추락했다.
[탈레반, 빈라덴 인도 거부]
9.11 테러 직후, 미국은 탈레반에게 빈 라덴 인도 및 알카에다 캠프 폐쇄를 24~48시간 내에 수용할 것을 최후 통첩했다.
탈레반은 고민 끝에 빈 라덴을 보호하기로 결정하며 미국의 요구를 거부했고, 이는 전쟁 발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미국은 파키스탄 대통령에게 탈레반 지원 중단 및 파키스탄 영공 사용 허가를 요청했으며, 당일 모든 조건이 수락되었다. 탈레반은 협상을 통해 시간을 끌려 했으나, 결국 빈 라덴을 보호하는 선택을 했다.
[아프간 침공 작전 준비]
부시 대통령은 9.11 테러 4일 후, 빈 라덴 사살을 목표로 군사 작전 준비를 지시했다.
미국 합동참모본부는 대규모 지상군 대신 순항 미사일, 폭격기, 특수전 부대를 결합한 공중 폭격 중심의 침공 방안을 제시하며 전쟁을 준비했다.
제5특전단장 존 멀홀랜드 대령은 북부동맹과의 연합 작전을 제안했고, CIA는 공작팀 '조 브레이커'를 파견하여 북부동맹과 동맹을 맺고 탈레반 정권 타도를 시도했다. 럼스펠드 국방장관 지휘 하에 공군력과 특수전 부대 동원이 본격화되었다.
[항구적 자유작전 개시]
미국은 영국과 함께 탈레반에 대한 대규모 군사 공습인 '항구적 자유작전'을 시작했다.
해군 수상함과 잠수함에서 토마호크 미사일이, 폭격기에서 순항 미사일이 발사되었고, 항공모함과 공군 폭격기가 탈레반 및 알카에다 기지를 맹폭하며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특수부대-북부동맹 연합]
아프가니스탄에 침투한 미 제5특전단 소속 특수부대(ODA)는 탈레반에 적대적인 북부동맹과 연합 작전을 시작했다.
이들은 직접 전투보다는 항공지원 조율과 표적 정보 제공을 통해 강력한 미 공군력을 유도하며 탈레반 진지를 폭격했다.
각 ODA는 10~12명의 소규모 병력으로 북부동맹의 각 파벌에 분산 배치되었다. ODA 595는 라시드 도스툼 장군 부대와 협력하여 AN/PEQ-1 SOFLAM 레이저 표적지시기로 탈레반 참호를 확인하고, SATCOM으로 미 공군 B-52 폭격기를 호출하여 JDAM 유도폭탄을 투하했다.
[타린 코트 점령 성공]
하미드 카르자이가 이끄는 파슈툰족 반군과 미군 특수부대, CIA 팀이 탈레반의 주요 거점인 칸다하르 북쪽에 위치한 타린 코트를 공략했다.
소수의 병력으로 탈레반 정예군의 공격을 막아냈으며, 미군의 레이저 조준기를 이용한 정확한 폭격 유도가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탈레반의 근거지인 남부 지역에서 반격 준비를 시작하자, 하미드 카르자이는 타린 코트에서 반군을 조직했다. 시민들의 반란과 미군의 레이저 조준기를 이용한 정밀 폭격으로 탈레반은 80여대의 차량과 300~500명의 정예군 병력에도 불구하고 타린 코트를 포기하고 후퇴했다.
[마자르이샤리프 함락]
북부동맹과 미군은 아프가니스탄 북부의 전략적 요충지인 마자르이샤리프 공략 작전을 성공시켰다.
2주간의 맹폭격 끝에 탈레반 진지를 초토화시키고, 특히 핵무기급 위력을 가진 BLU-82 열압력 폭탄 두 발을 투하하여 탈레반의 사기를 완전히 꺾었다.
탈레반은 마자르이샤리프를 지키기 위해 1만 5천 명의 병력을 동원했으나, 미군의 하루 120회 이상의 공습과 JDAM 폭탄의 정확한 타격으로 패퇴했다. 이 승리로 카불 진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아프간 수도 카불 함락]
마자르이샤리프 함락 직후, 북부동맹과 미군은 탈레반이 시가전을 준비할 틈도 주지 않고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로 신속히 진격했다.
특별히 격렬한 전투 없이 카불을 함락시켰으며, 이는 탈레반에게 정치적, 군사적으로 매우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빈 라덴의 토라보라 탈출]
카불 함락 후 9.11 테러의 주범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는 천연 요새인 토라보라 동굴에 숨었으나, 미군의 폭격으로 동굴이 공략당했다.
그러나 미군의 제한된 병력과 백악관의 안일함으로 봉쇄선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타 빈 라덴은 파키스탄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토라보라 동굴은 깊이 300m, 철문, 식량/무기, 수력 발전 등으로 1,000명 수용 가능한 요새였다. 미군은 빈 라덴 제거를 위한 추가 병력 지원 요청을 거부하며 이라크 전쟁을 논의하는 등 자만심을 보였고, 이는 빈 라덴의 탈출로 이어지는 치명적인 실수였다.
[칸다하르 점령, 탈레반 항복]
미군과 카르자이 연합군이 탈레반의 실질적 수도인 칸다하르로 진격했다.
핵심 교량이 있는 사이드 알림 카라이 마을에서 치열한 전투 끝에 승리했으며, 미 해병대도 칸다하르 국제공항을 확보했다.
결국 전쟁 발발 2개월 만에 탈레반이 항복하며 초기 군사작전이 일단락되었다.
탈레반은 미군의 폭격 학습 후 동굴 진지를 활용한 지연전을 펼쳤으나, BLU-52 열압력 폭탄 등 미군의 강력한 화력 앞에 전의를 상실했다. 이로써 2001년 아프가니스탄 침공의 주요 목표가 달성되었다.
[국제안보지원군(ISAF) 창설]
UN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국제안보지원군(ISAF)이 창설되었다.
이는 NATO가 9.11 테러를 미국에 대한 군사적 공격으로 간주하고 상호안보조약에 근거해 치안 유지군을 파병하기로 결정한 결과였다.
ISAF는 아프가니스탄의 안정화 작업과 치안 유지 임무를 맡았다.
2009년 1월 기준 ISAF는 55,100명 규모였으며, NATO 소속 26개국과 대한민국을 포함한 12개 협력국이 참여했다. 주요 파견국은 미국, 영국, 캐나다,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이었다. 2003년 8월부터 NATO가 ISAF의 지도권을 인수했다.
2002
[아나콘다 작전 개시]
아프가니스탄의 혼란 해결과 탈레반-알카에다 잔당 소탕을 위해 미군과 ISAF 연합군이 아나콘다 작전을 개시했다.
샤히코트 계곡에 숨어든 잔당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으며, 결국 1,500여 명의 탈레반과 알카에다 병력을 섬멸하는 데 성공했다.
제3, 5특전단, 제10산악사단, 제101공수사단 외에도 호주, 덴마크, 프랑스, 독일 등 ISAF 소속 연합군과 아프가니스탄 병사들이 참여했다. 탈레반은 숨어서 게릴라전을 펼쳤으나, ISAF는 84mm 칼 구스타프 무반동총을 활용하여 동굴 속 적을 섬멸하며 장기 작전을 성공시켰다.
2003
[탈레반 재조직 및 반란]
파키스탄으로 후퇴했던 탈레반이 무하마드 오마르의 지휘 아래 세력을 회복하고, 2003년부터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국제안보지원군(ISAF)에 맞서 대규모 반란을 일으키며 전쟁을 소모전으로 이끌기 시작했다.
탈레반은 하카니 네트워크, 헤즈비 이슬라미 굴부딘 등과 연합하여 게릴라전, 매복, 자살 테러 등을 효과적으로 수행했다.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부패를 이용해 남부와 동부 교외 지역에서 다시 영향력을 확대하며 전쟁 장기화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2008
[스완 전투 (미 해병대)]
아프가니스탄 팔라하 스완 마을에서 미 해병대 30명과 탈레반 250명이 맞붙은 전투.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미 해병대 지정사수의 활약으로 큰 위기 없이 성공적으로 방어하며 승리했다.
2009
[키팅진지 방어전투]
미군 키팅진지에 주둔하던 80명의 병력이 고지대에서 공격해 온 탈레반에 맞서 치열한 방어전을 펼쳤다.
진지가 낮은 계곡에 위치하여 취약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전차 화기와 박격포 공격을 막아내며 백병전까지 감행했다.
결국 미군 전투기의 지원으로 탈레반을 후퇴시키며 진지를 사수했다.
탈레반은 RPG-7 대전차 화기와 박격포 등을 동원해 공격했으며, 미군은 AH-64D 아파치 공격헬기로 대응했으나 저지당하기도 했다. F-15E 전투기의 폭격이 탈레반 박격포 진지를 타격하면서 전세가 역전되었다.
2011
[미국의 점진적 철군 결정]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성공 후, 미국은 전쟁 장기화로 인한 피로와 경제 위기 등의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2011년 NATO 회의에서 점진적 철군을 결정했고,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치안권을 이양하며 20년에 걸친 전쟁 종결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2012년 5월 NATO 시카고 회담에서 군대 철수를 지지했으며, 2014년 5월 미국은 주요 작전이 2014년 12월 종료되고 잔여 병력을 철수한다고 선언했다. 영국군도 2014년 10월 마지막 기지를 아프가니스탄 군에 인계하며 전투를 공식 종료했다.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오바마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넵튠 스피어 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어 9.11 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이 파키스탄 아보타바드 은신처에서 미군 네이비 실 특수부대에 의해 사살되었다.
이는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상징적인 대테러 작전 중 하나로 기록된다.
2011년 4월 29일 오바마 대통령이 작전을 지시했고, 24명의 정예 특수전 병력이 블랙호크 헬기를 타고 빈 라덴 저택에 침투하여 작전을 완수했다.
2014
[ISAF 전투 임무 종료]
NATO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국제안보지원군(ISAF)의 전투 작전권을 공식적으로 종료하고,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안보 책임권을 완전히 인계했다.
대신 ISAF의 후속 임무로 훈련과 지원 중심의 '확고한 지원 임무(RSM)'를 시작하며 전쟁의 성격이 전환되었다.
2021
[미군 철수, 탈레반 급속 재장악]
2021년 5월부터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본격적인 철수를 시작하자, 전쟁 판세는 탈레반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미군 철수가 완료되기 전부터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주요 도시들을 빠르게 장악하며 전역을 재통제하기 시작했다.
[헤라트·칸다하르 함락]
미군 철수 과정에서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은 급속히 붕괴되었고, 8월 12일에는 아프가니스탄 제2, 3의 주요 도시인 헤라트와 칸다하르가 탈레반에게 함락되었다.
이는 탈레반이 전국을 장악하는 데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아프간 정부 항복, 카불 함락]
탈레반이 수도 카불에 육박하자,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결국 항복을 선언하며 2001년 전쟁 발발 이후 20년 만에 탈레반이 카불에 무혈입성했다.
이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사실상 종결을 의미하며, 미국의 장기 전쟁이 실패로 끝났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아프간 전쟁 최종 종식]
2001년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2021년 8월 30일 미군의 최종 철수와 함께 공식적으로 종식되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으로 기록된 이 20년 전쟁은 약 23만 명 사망, 500만 명 난민, 1100조원(한화)의 재산 피해를 남기며 탈레반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철군 과정에서 카불 공항 테러가 발생하여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으며, 이 전쟁은 베트남 전쟁에 이은 미국의 대표적인 패배 사례로 손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