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고구려-수 전쟁
전쟁, 역사, 고구려, 수나라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5:26
- 수나라 양제가 고구려를 침공한 역사적인 대전쟁입니다. - 113만 명에 달하는 중국 역사상 유례없는 최대 규모의 병력이 동원되었습니다. - 고구려는 요동성과 평양성을 굳건히 지켜냈으며 특히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은 수나라 육군 주력부대를 전멸시키며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 이 전쟁의 패배는 결국 수나라 멸망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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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양제, 고구려 위협]
수나라 양제가 돌궐을 방문했을 때 고구려 사신을 만났습니다.
황문시랑 배구는 고구려 정벌을 강력히 건의했고, 양제는 고구려 사신에게 조공을 바치지 않으면 직접 군사를 이끌고 토벌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그러나 영양왕은 이에 굴하지 않고 전쟁에 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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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양제, 고구려 정벌 결정]
수 양제는 고구려 정벌을 최종 결정하고 거대한 규모의 준비에 착수했습니다.
전함을 대량 건조하고 전국에서 말과 식량, 병기를 수도인 탁군으로 집중시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백성들의 반란은 모두 진압하며 전쟁 준비를 강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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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군, 평양성 기습 실패]
육로에서의 교착 상태가 이어지자, 내호아가 이끄는 수나라 수군 12만 병력(1천여 척의 함대)이 평양성으로 직행했습니다.
이들은 평양성 근처에서 고구려군을 격파하고 성을 육박했으나, 고구려의 지휘관(고건무로 추정)은 복병을 활용한 유인 작전으로 수나라 정예군 4만 명을 성내로 유인하여 전멸시켰습니다.
내호아는 간신히 목숨만 건져 도망쳤고, 수군은 대패하여 평양성 공략에 실패했습니다.
[수나라의 처참한 패배]
요동성 방어의 성공, 평양성 기습의 실패, 그리고 살수대첩에서의 육군 전멸로 수나라 양제는 결국 철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나라에게는 아무런 소득 없이 막대한 병력과 물자를 탕진한 치명적인 패배였고, 이는 수나라 내부의 반란을 심화시켜 결국 멸망에 이르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고구려 또한 청야전술 등으로 인해 막대한 인적, 물적 피해를 입었습니다.
[113만 대군 고구려 침공]
수 양제는 '오만하고 불손한 고구려를 정벌한다'는 조서를 발표하며 직접 113만 3,800여 명(실제로는 200만 명으로 불림)의 대군을 이끌고 탁군에서 고구려를 향해 진격했습니다.
군량 운반병까지 합치면 그 수는 상상을 초월했으며, 960리에 달하는 대열이 40일 만에야 모두 출발을 마쳤습니다.
이는 중국 역사상 가장 거대한 군사 동원이었습니다.
수나라의 군대는 좌우 24개 군으로 나뉘어 고구려의 여러 길로 진군했으며, 최종 목표는 고구려의 수도 평양이었습니다. 이처럼 거대한 병력 동원은 수나라에 막대한 경제적 부담과 백성들의 불만을 초래했습니다.
[요하 방어전 돌입]
수나라 대군이 고구려 국경의 요하에 도착하며 대규모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고구려는 강을 막고 굳건히 방어하여 수군의 도하를 저지했습니다.
수 양제는 부교를 놓아 강을 건너려 했으나 고구려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고, 이 과정에서 수나라 장수 맥철장 등 3만 명이 넘는 병력을 잃는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수나라, 요하 도하]
두 달간의 치열한 공방 끝에 수나라는 마침내 요하를 건너는 데 성공했습니다.
수 양제는 도하한 병력 중 일부에게 요동성을 포위하게 하고, 좌로군에게는 요동 각 성을 공격하여 고구려 성들의 지원을 차단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또한 내호아가 이끄는 수군에게는 평양성을 직접 공격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요동성 포위 및 공방전]
요하를 건넌 수나라 대군은 고구려의 핵심 방어선인 요동성을 포위하고 맹공격을 퍼부었습니다.
요동성은 평지성이지만 고구려의 가장 견고한 성 중 하나였고, 고구려군은 끈질기게 저항했습니다.
수나라 장수들은 성의 함락 직전에도 항복 요청에 대한 보고를 기다리느라 기회를 놓치곤 했습니다.
결국 수개월간 요동의 20여 성 중 단 한 곳도 함락되지 않았고, 수나라 수군 3개 군이 몰살당하는 큰 손실을 입었습니다.
[살수대첩, 수군 전멸!]
수나라 육군 별동대 30만 5천 명은 을지문덕 장군의 지친 기색을 보이는 유인 전술에 속아 평양성 30리 밖 살수(청천강으로 추정)까지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을지문덕은 우중문에게 '만족함을 알면 돌아가라'는 시를 보내 퇴각을 유도했고, 퇴각하는 수나라군이 살수를 반쯤 건넜을 때 총공격을 개시했습니다.
이 기습으로 수나라 군대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고, 30만 5천 명 중 겨우 2천 7백 명만이 살아남아 돌아가는 인류 전쟁사상 전무후무한 대승리를 고구려가 거두었습니다.
이 전투는 단일 전투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의 전멸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수나라의 최정예 육군이 사실상 괴멸되었으며, 이는 수나라의 국력을 크게 약화시켜 멸망의 길로 접어들게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