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고려-거란 전쟁

전쟁, 고려-거란 전쟁, 한반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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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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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고려-거란 전쟁, 한반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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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0년 요나라 성종의 40만 대군이 고려를 침략하며 발발. - 초반 강조의 대패와 개경 함락으로 고려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 - 현종의 나주 몽진과 양규 김숙흥 등 고려군의 끈질긴 항전으로 전세 역전. - 퇴각하는 거란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며 국체를 보전. - 고려가 자주성을 지켜낸 역사적 승리이자 중요한 전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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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개경 함락과 왕의 피난길]

강조의 패배 후, 거란군은 곽주와 안주 등 주요 성들을 손쉽게 함락시키며 수도 개경을 향해 맹렬히 진격했습니다.

왕실은 혼비백산했고, 조정 대신들 사이에서는 항복하자는 의견이 팽배했습니다.

그러나 강감찬의 결사적인 반대로, 현종은 수도를 버리고 먼 남쪽 나주까지 피신하며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졌습니다.

고려는 건국 이래 최대의 치욕을 감수하며 국가의 명운을 건 사투를 이어갔습니다.

[거란의 40만 대군 침략]

1010년 11월, 요나라 성종이 무려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했습니다.

명분은 강조의 정변을 응징한다는 것이었지만, 진짜 목적은 고려가 송나라와 교류하는 것을 막고 전략 요충지인 강동 6주를 되찾는 것이었습니다.

압도적인 병력으로 시작된 이 전쟁은 고려 역사상 가장 큰 위기 중 하나였습니다.

[강조, 통주서 처참한 대패]

거란군은 전략적 요충지인 흥화진을 공격했으나, 성주 양규의 굳건한 항전으로 막혔습니다.

그러나 통주에서 강조가 이끄는 30만 고려군은 거란의 압도적인 전력에 맞서 처참하게 패배했고, 강조 자신마저 사로잡혀 처형당하는 비극을 맞이했습니다.

고려는 전쟁 초반부터 지도부를 잃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며 큰 혼란에 빠집니다.

1011

[양규·김숙흥, 거란군 대패시키다]

수도를 함락한 거란군은 보급선이 길어지고 후방의 고려군 잔존 세력에게 끊임없이 시달리며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이에 고려의 하공진이 화친을 제의하자, 요나라 성종은 현종의 친조를 조건으로 퇴각을 결정합니다.

그러나 철수하던 거란군은 구주 등지에서 양규와 김숙흥이 이끄는 고려군에게 끈질기게 추격당하며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습니다.

수많은 거란군이 죽고, 양규와 김숙흥 두 영웅은 이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며 고려를 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 대승은 거란에게 엄청난 손실을 입히며 전쟁을 사실상 종결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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