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수 전쟁

전쟁, 역사, 국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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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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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역사, 국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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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수 전쟁은 598년부터 614년까지 고구려와 수나라가 벌인 네 차례의 대규모 전쟁입니다. 수나라가 고구려를 정벌하려 대규모 병력을 동원했으나 고구려의 강력한 저항과 특히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 활약으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전쟁은 수나라가 멸망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으며 고구려 역시 국력을 소진했지만 동북아시아의 강국으로서 위상을 공고히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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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8

[1차 고구려-수 전쟁]

수 문제의 대규모 침공으로 시작된 1차 고구려-수 전쟁은 수나라군이 전염병과 보급 문제로 고전하며 퇴각, 고구려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수나라의 첫 침략 의지를 꺾은 중요한 전투였습니다.

수나라 문제(文帝)는 고구려의 요서 지방 선제공격을 빌미로 30만 대군을 동원하여 고구려를 침공했습니다. 그러나 수나라군은 고구려의 강력한 방어와 더불어, 장마철에 발생한 전염병과 보급선 문제로 인해 병력의 3분의 1을 잃는 피해를 입고 퇴각했습니다. 이로써 1차 전쟁은 고구려의 승리로 마무리되었습니다.

612

[2차 고구려-수 전쟁]

수 양제는 역사상 유례없는 113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했으나,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 지략에 의해 수나라 별동대가 전멸에 가까운 대패를 당했습니다.

이는 동북아시아 전쟁사에 기록될 고구려의 빛나는 승리이자 수나라 멸망의 결정적 계기입니다.

수 양제는 100만 명이 넘는 역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원정군을 동원하여 고구려를 침공했습니다. 요동성 등 주요 거점에서 고구려군의 끈질긴 저항에 부딪혔고, 우중문이 이끄는 30만 5천 명의 별동대가 평양성을 향해 나섰습니다. 을지문덕 장군은 거짓 항복과 청야 전술로 수나라군을 유인하여 살수(현재 청천강)에서 대규모 수공 작전을 펼쳤습니다. 그 결과 수나라 별동대는 단 2,700명만이 살아 돌아가는 전멸에 가까운 참패를 당했습니다. 이 살수대첩의 대승은 수나라 멸망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고, 고구려의 군사적 역량을 전 세계에 과시한 사건으로 평가됩니다.

613

[3차 고구려-수 전쟁]

수 양제는 2차 전쟁의 대패에도 불구하고 고구려 침공을 재개했으나, 수나라 내부에서 양현감의 대규모 반란이 발생하며 황급히 철수했습니다.

이는 수나라의 불안정한 내부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수 양제는 살수대첩의 참패에도 불구하고 613년 다시 고구려 정벌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원정 중 수나라 내부에서 양현감의 대규모 반란이 발생하자, 양제는 고구려 공격을 중단하고 급히 회군하여 반란을 진압해야 했습니다. 이로 인해 3차 전쟁은 고구려에 큰 타격을 주지 못한 채 수나라의 내부 문제로 인해 중단되었으며, 수나라의 국력은 더욱 소진되었습니다.

614

[4차 고구려-수 전쟁]

수 양제는 고구려를 굴복시키기 위한 마지막 원정을 감행했으나, 고구려의 방어와 내부 반란으로 인해 결국 고구려의 거짓 항복에 속아 전쟁을 끝냈습니다.

이로써 16년간의 고구려-수 전쟁은 고구려의 최종 승리로 막을 내렸습니다.

수 양제는 고구려를 끝장내기 위해 4차 원정을 감행했습니다. 하지만 연이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수나라 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전과는 달리 고구려 영양왕은 수나라의 제안에 거짓 항복을 하여 양제를 안심시켰습니다. 이때 수나라 본토에서 또 다른 반란이 발생하자, 수 양제는 고구려의 항복을 받아들이고 급히 철군했습니다. 결국 수나라는 이 전쟁으로 국력이 완전히 소진되어 지방 반란이 확산되었고, 이는 수나라 멸망으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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