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고대국가, 통일왕조, 남북국시대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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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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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국가, 통일왕조, 남북국시대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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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존재했던 신라는 기원전 57년부터 기원후 935년까지 약 992년간 이어져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이 긴 역사를 자랑하는 왕국입니다. 진한의 작은 사로국에서 출발해 삼국을 통일하고 남북국 시대를 열었으며 독자적인 문화와 통치 체제를 발전시켰습니다. 그러나 9세기에 이르러 혼란기에 접어들어 후삼국 시대를 맞이한 후 결국 935년 고려에 귀순하며 천년 역사의 막을 내렸습니다. 신라는 강력한 왕권과 화려한 불교 예술로 한반도 역사에 깊은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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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로국 건국]

진한의 소국 중 하나였던 '사로국'을 기반으로 혁거세 거서간이 나라를 세우며 신라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이후 약 1000년간 이어질 대장정의 서막이었습니다.

[금성 축조]

혁거세 거서간 재위 31년, 신라의 수도 경주에 금성(金城)이 축조되며 국가의 기틀을 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신라의 안정적인 성장을 보여주는 중요한 진척이었습니다.

79

[영토 확장 시작]

탈해 이사금 재위 23년, 장군 거도의 활약으로 현재의 울산 지역 우시산국과 부산 지역 거칠산국을 병합하며 경주 외곽으로 영토를 확장하기 시작했습니다.

381

[중국 전진과 교류]

내물 마립간 재위 26년, 중국 전진에 위두를 보내 토산물을 바치며 중국과의 첫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신라가 국제 무대에 첫발을 내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399

[고구려의 신라 구원]

내물 마립간 재위 44년, 왜·가야·백제 연합군의 침입으로 위기에 처하자, 신라는 고구려에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이듬해 광개토대왕이 대군을 파견하여 왜군을 격퇴하며 신라를 보호해주었습니다.

이 사건은 신라가 고구려의 영향력 아래에서 점차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며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433

[나제동맹 체결]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 정책에 위협을 느낀 백제 비유왕과 신라 눌지왕이 동맹을 맺었습니다.

이는 삼국 간 세력 균형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503

[국호 ‘신라’ 확정]

지증왕 4년, 국호를 '왕의 덕업이 날로 새로워져 사방을 망라한다'는 뜻의 '신라(新羅)'로 확정하고, 군주의 칭호도 '왕'으로 바꿨습니다.

이는 신라가 고대국가의 면모를 갖추는 중요한 이정표였습니다.

517

[병부 설치 및 율령 반포]

법흥왕 4년, 병부를 설치하여 군사 제도를 개혁하고, 율령을 반포하며 통치 질서를 확립했습니다.

이는 왕권 강화와 중앙집권 국가로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528

[불교 공인]

법흥왕 15년, 불교를 국가 종교로 공인하며 사상적 통합을 이루고 왕권 강화에 기여했습니다.

이는 신라 문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532

[금관가야 정복]

법흥왕 19년, 낙동강 하류의 강력한 세력이었던 금관가야를 정복하며 영토를 확장하고 중앙집권 체제를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536

[연호 '건원' 사용]

법흥왕 23년, '건원(建元)'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며 중국과의 대등한 자주국가로서의 위상을 대외에 과시했습니다.

이는 신라의 자부심을 보여주는 중요한 상징입니다.

551

[한강 상류 점령]

진흥왕 12년, 백제와 동맹하여 고구려의 한강 상류 지역을 점령하며 삼국 항쟁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553

[한강 유역 완전 확보]

진흥왕 14년, 나제동맹을 파기하고 백제가 점령했던 한강 하류 지역까지 장악했습니다.

이는 백제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수·당과의 직교역로인 당항성을 확보하는 등 신라의 국제적 입지를 강화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554

[백제 성왕 전사]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 성왕이 신라군에 의해 전사했습니다.

이는 나제동맹의 완전한 파기와 함께 삼국 관계의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562

[대가야 정복]

진흥왕 23년, 사다함의 활약으로 낙동강 서쪽에 위치한 대가야를 정복하며 가야 연맹을 완전히 해체했습니다.

이로써 신라는 한반도 남부의 대부분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565

[북제로부터 책봉]

북제로부터 진흥왕이 동이교위 낙랑군공 신라왕으로 책봉되었습니다.

이는 중국 동방 세계에서 고구려에 이어 신라의 우위를 인정받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평가됩니다.

608

[원광의 걸사표]

진평왕 30년, 원광법사가 수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는 '걸사표'를 지었습니다.

이는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의 압박에 맞서기 위해 대외적인 도움을 모색했음을 보여줍니다.

642

[대야성 함락 위기]

선덕여왕 대에 고구려와 백제의 강력한 반격으로 서라벌의 관문인 대야성을 빼앗기며 국가적인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이 사건은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한 강력한 동기가 됩니다.

648

[나당동맹 체결]

진덕여왕 2년, 김춘추의 외교적 노력으로 신라와 당나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대동강을 경계로 삼는 군사 동맹을 체결했습니다.

이는 삼국통일의 발판을 마련한 결정적인 동맹입니다.

660

[백제 멸망]

무열왕 7년, 나당 연합군이 백제의 수도 사비성을 함락하며 백제를 멸망시켰습니다.

이는 삼국통일 과정의 첫 번째 주요 성과입니다.

663

[백강 전투 승리]

백제 부흥운동을 지원하던 일본군과 나당 연합군이 백강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일본군이 대패하며 백제 부흥운동이 사실상 좌절되었습니다.

"연기와 불꽃은 하늘을 붉게 물들였고, 바닷물마저 핏빛이 되었다"는 묘사가 당시의 처절함을 보여줍니다.

668

[고구려 멸망]

문무왕 8년, 고구려가 당나라의 공격으로 멸망했습니다.

이로써 신라의 삼국통일은 눈앞에 다가왔지만, 당나라의 한반도 지배 야심이 드러나게 됩니다.

675

[매소성 대승]

문무왕 15년, 신라가 매소성에서 당나라 20만 대군을 격파하며 나당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했습니다.

이는 당나라의 한반도 지배 야심을 꺾는 결정적인 승리였습니다.

676

[삼국통일 완수]

문무왕 16년 11월, 기벌포에서 당나라 수군을 섬멸하며 나당 전쟁에서 최종 승리했습니다.

이로써 신라는 대동강 이남의 한반도 지역을 통일하고, 민족 최초의 통일 국가를 이룩했습니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외세를 끌어들였다는 비판도 있지만, 한반도 내에서 민족의 정체성이 확립되고 통일 왕조의 기틀을 다진 역사적 의미가 큽니다.

682

[국학 설립]

신문왕 2년, 국학을 설립하여 유교 교육을 장려하고, 왕권을 보좌할 유능한 인재를 양성했습니다.

이는 중앙집권 체제 강화를 위한 중요한 제도 개혁이었습니다.

687

[녹읍 폐지 및 9주 5소경 완성]

신문왕 7년, 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하여 귀족 세력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했습니다.

또한 지방 행정 제도인 9주 5소경 체제를 완성하며 통일 신라의 행정 기반을 공고히 했습니다.

698

[발해 건국]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이 만주에 발해를 건국하며 한반도 역사에 '남북국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신라의 통일이 북방을 완전히 아우르지는 못했음을 보여줍니다.

722

[모벌군성 축조]

성덕왕 21년 10월, 경주 동남쪽 경계인 모화군에 모벌군성을 쌓아 일본 도적들의 침입을 막았습니다.

성의 둘레는 6,792보 5척으로, 이는 당시의 군사적 긴장과 신라의 방어 의지를 보여줍니다.

731

[일본 침공 격퇴]

성덕왕 30년, 동쪽 해안으로 쳐들어온 일본 병선 300척을 격퇴하고 대규모 군사 훈련을 실시했습니다.

이는 신라와 일본 간의 긴장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751

[불국사 건립]

경덕왕 10년, 김대성의 발원으로 불국사가 건립되었습니다.

불국사와 함께 건축된 석굴암은 신라 불교 미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입니다.

755

[일본의 신라 정벌 계획]

당나라에서 '안사의 난'이 발발하며 혼란에 빠지자, 일본의 후지와라 나카마로는 이 틈을 타 신라 정벌을 계획하고 대규모 전함 건조 및 신라어 교육 등 전쟁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757

[녹읍제 부활]

경덕왕 16년, 녹읍제가 부활하고 관료전이 폐지되었습니다.

이는 귀족 세력의 반발과 왕권 약화의 조짐을 보여주는 중요한 변화였습니다.

780

[신라 하대 시작]

혜공왕이 사망하고 선덕왕이 즉위하며 신라 중대가 끝나고 하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시기부터 중앙 귀족들의 왕위 쟁탈전이 격화되고 지방 호족 세력이 성장하며 혼란이 가중됩니다.

788

[독서삼품과 실시]

원성왕 4년, 유교 교육을 장려하기 위해 '독서삼품과' 제도가 실시되었습니다.

이는 골품제도 속에서 인재 등용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는 노력이었습니다.

812

[발해-일본 동맹]

당나라의 요구에 따라 신라가 발해 원정에 참여하자, 발해는 일본과 동맹을 맺으며 신라와 당, 그리고 발해와 일본 간의 동아시아 이분 구도가 심화되었습니다.

828

[장보고의 청해진 설치]

흥덕왕 3년, 장보고가 해적 소탕과 국제 무역을 위해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했습니다.

그는 황해와 남해 일대 해상 무역을 장악하며 '해상왕'으로 불렸습니다.

900

[후백제 건국]

지방 호족 세력이었던 견훤이 완산주에 후백제를 건국하며 신라 말기의 혼란을 본격화시켰습니다.

이는 '후삼국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901

[태봉 건국]

지방 호족 세력이었던 궁예가 태봉을 건국하며 후삼국 시대의 대립 구도를 완성했습니다.

신라는 이제 두 강력한 후발 주자와 맞서게 되었습니다.

935

[신라 멸망 (고려 귀순)]

경순왕 9년 10월, 56대 992년간 이어져 온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이 백성의 희생을 막기 위해 고려 태조 왕건에게 항복하며 신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긴 역사를 마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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