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미국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
학생 운동, 민주화 운동, 한미 관계, 시위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5:01
1985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5주기를 맞아 대학생 73명이 서울 미국문화원을 점거한 사건입니다. 이들은 5.18 진상 규명과 전두환 정부 타도 미국의 지원 중단을 요구하며 72시간 동안 농성했습니다. 당시 정부의 정통성과 미국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며 한국 민주화 운동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985
[점거 농성 계획 시작]
1985년 5월 초, 광주민주화운동 5주년을 맞아 함운경, 김민석 등 대학생들이 광주 사건의 진상 규명과 전두환 정부 타도, 미국 지원 중단을 요구하는 '5월 투쟁'을 계획했습니다.
이들은 서울대 '민민투'를 결성하고, 고려대, 연세대, 성균관대 등 주요 대학 투쟁위원회와 연대하여 투쟁을 전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함운경은 미국이 광주 사건 무력 진압을 지원한 것에 항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 농성을 구상했습니다. 이를 통해 국내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정부에 타격을 주며, 최종적으로는 정부 타도와 외세 축출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출입이 쉬운 미국문화원이 목표가 된 이유입니다.
[미국문화원 기습 점거]
1985년 5월 23일, 서울대, 고려대 등 5개 대학 학생 73명이 을지로에 있던 서울 미국문화원을 기습 점거했습니다.
이들은 미문화원 도서관 창문에 '광주학살 책임지고 미국은 공개 사죄하라'는 등의 구호를 내걸고 주한 미국대사와의 면담을 요구하며 2층에서 단식 농성을 벌였습니다.
민족통일민주쟁취민중해방투쟁위원회(삼민투위)의 주도로 이루어진 이 점거 농성은 당시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농성을 이어가겠다는 결의를 보였습니다.
[자진 해산 및 연행]
미국문화원을 점거한 학생들은 72시간 만인 5월 26일 자진 해산했고, 곧바로 연행되었습니다.
경찰은 서울대 삼민투위원장 함운경, 신정훈 등 25명을 구속했으며, 김민석 서울대 총학생회장도 함께 재판을 받았습니다.
고진화 전 의원은 외부 연계 세력으로 수배 후 구속되었습니다.
이번 사건은 당시 전두환 정부에 대한 학생 운동권의 강력한 저항 의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국내외에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9
[광주특위에 미국 입장 발표]
1989년 6월 19일, 미국 정부는 국회 광주특위의 질의에 대해 25쪽 분량의 성명서를 보냈습니다.
미국은 이 성명에서 '광주에 투입된 특전사 부대나 20사단 부대는 한미연합사 작전통제권 하에 있지 않았다'며, '미국은 특전사 부대 배치 사실을 사전에 몰랐으며, 그들의 행동에 대한 책임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성명서는 또한 '한미연합군 사령부 설치 협정은 양국이 상대방 동의 없이 자국 부대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행사할 주권을 보장했다'고 주장하며, '미국의 강력한 종용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태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극히 미비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는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미국의 개입 및 책임론에 반박하는 내용으로, 사건 이후에도 계속된 논란의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