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작가, 언론인, 정치인, 사회운동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9- 03:20:22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지식인이자 대중작가 유시민은 *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 학생운동가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 이후 16·17대 국회의원과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하며 정계에서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 2013년 정계 은퇴를 선언한 뒤에는 썰전 알쓸신잡 등 여러 방송에 출연하며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작가 및 언론인으로서의 입지를 다졌습니다. * 2018년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취임하여 사회적 영향력을 이어갔으며 때로는 뜨거운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습니다.
- 유시민의 탄생
- 학생운동의 중심
- 항소이유서로 세상에 알려지다
- 드라마 작가로 데뷔
- '97대선 게임의 법칙' 저술
- 김대중 대통령 비판 칼럼
- '100분 토론' MC 활약
- 정치 입문과 창당
- 성폭력 옹호 발언 논란
- 이라크 파병 입장 번복 논란
- 16대 국회의원 당선
- 선거법 위반 논란
- '민노당 사표론' 논란
- 보험료 미납 의혹
- 보건복지부 장관 취임
- '한나라당 집권 99%' 발언
- 대선 출마 선언
- 18대 총선 낙선
- 노 전 대통령 수사 비판
- 경기도지사 단일 후보
- DJ 비판 사과
- 경기도지사 선거 낙선
- 통합진보당 창당
- 서기호 판사 비례대표 논란
- 정계 은퇴 선언
- '썰전' 출연으로 인기 재점화
- 노무현재단 이사장 취임
- '알릴레오' 방송 시작
- '알릴레오' 성희롱 발언 논란
1959
[유시민의 탄생]
경상북도 경주에서 2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13대조는 임진왜란 극복에 큰 힘을 보탠 명재상 서애 류성룡입니다.
유시민은 1959년 7월 28일 경상북도 경주시에서 아버지 유태우와 어머니 서동필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조부 대에 안동에서 처가가 있는 경주로 이주했다고 전해집니다. 아버지는 경주여자고등학교의 역사 교사였고, 큰아버지 유석우는 내남면 면장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1980
[학생운동의 중심]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으로 활동했습니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 섰습니다.
1980년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이었습니다. '서울의 봄' 민주화 운동이 거세지던 5월 15일, 서울역 시위에서 학생회장단이 철수를 결정한 '서울역 회군' 당시, 그는 철수에 반대하는 입장에 섰습니다.
1985
[항소이유서로 세상에 알려지다]
민간인 프락치를 감금, 고문한 '서울대 민간인 감금 폭행 사건'의 주모자로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항소심에서 제출한 '항소이유서'를 통해 세상에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이 항소이유서는 그의 저서 《아침으로 가는 길》에 실렸습니다.
1985년 '서울대 민간인 감금 폭행 사건'의 주모자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한 항소이유서는 판사들도 돌려봤다는 루머가 돌며 그의 이름을 대중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문서는 후에 그의 저서 《아침으로 가는 길》에 수록됩니다.
1988
[드라마 작가로 데뷔]
수배 중이던 시절, '유지수'라는 필명으로 MBC 월화 미니시리즈 8부작 《그것은 우리도 모른다》의 각본을 썼습니다.
그는 집필료를 불법 유인물 제작에 모두 사용했다고 밝혔습니다.
1988년 3월 7일부터 4월 11일까지 방송된 MBC 월화 미니시리즈 8부작 《그것은 우리도 모른다》의 각본을 '유지수'라는 가명으로 집필했습니다. 이어서 1989년 3월 26일에는 MBC 베스트셀러극장 〈신용비어천가〉의 각본을 본명으로 썼는데, 이 작품은 5공 신군부의 언론통제와 기자에 대한 협박, 회유 등을 다루었으며 배우 문성근의 TV 드라마 데뷔작이기도 합니다.
1997
['97대선 게임의 법칙' 저술]
언론인으로서 '97대선 게임의 법칙' 등을 저술하며 당시 김대중 후보의 대통령 당선 확률이 '제로에 가깝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후에 그의 정치적 행보와 대비되며 회자됩니다.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97대선 게임의 법칙'을 저술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김대중 후보가 직접 출마하기보다는 제3의 후보인 조순 서울시장을 대리전으로 내세워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김대중 후보의 대통령 당선 확률이 제로에 가깝다고 분석했습니다.
1999
[김대중 대통령 비판 칼럼]
동아일보 칼럼 <유시민의 세상읽기-김대중 대통령님께>를 통해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국민 지지 하락을 강하게 비판하며 '인의 장막'을 경계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1999년 12월 6일자 동아일보 칼럼 <유시민의 세상읽기-김대중 대통령님께>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낮은 국민 지지율과 집권당의 위기를 지적하며, '수평적 정권교체'의 기쁨이 2년 만에 퇴색했다고 비판했습니다. 또한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인의 장막'을 경계하는 지식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고 질책했습니다.
2000
['100분 토론' MC 활약]
MBC의 대표 시사 토론 프로그램 '100분 토론'의 진행을 맡아 2002년 1월까지 활동하며 대중적인 인지도를 크게 높였습니다.
2000년 7월부터 2002년 1월까지 MBC '100분 토론'의 진행자로 활약했습니다. 그의 날카로운 질문과 논리적인 진행은 프로그램의 인기를 견인했으며, 그의 지적인 이미지를 대중에게 각인시켰습니다.
2002
[정치 입문과 창당]
신당 창당을 결심하고 절필을 선언하며 본격적인 정치 활동에 뛰어들었습니다.
그 해 10월에는 '개혁국민정당' 창당을 주도했습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신당 창당을 결심하며 8월에 절필을 선언하고 정치에 뛰어들었습니다. 10월에는 '개혁국민정당' 창당을 주도하며 노무현 후보 지지를 위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구상했습니다. 뜻이 맞는 40여 명과 각자 500만 원씩 모아 2억 원으로 신당을 만들었습니다.
[성폭력 옹호 발언 논란]
개혁국민정당 내 성폭력 사건 조사 필요성에 대해 '해일이 몰려오는데 조개 줍고 있냐'는 발언을 해 성희롱적이고 경시하는 태도라는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2002년 대선 기간 중 개혁국민정당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과 관련하여, 사건 조사 필요성을 경시하며 '해일이 몰려오는데 조개 줍고 있냐'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습니다. 이는 성폭력 사건의 심각성을 간과하고 여성 인권을 무시한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2003
[이라크 파병 입장 번복 논란]
개혁당원들과 함께 이라크 파병 반대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쳤습니다.
당시 '이라크 다음은 북한'이라며 '인간방패'까지 자처하겠다고 발언했으나, 후에 입장을 바꿔 파병을 찬성하며 '말 바꾸기' 논란을 겪었습니다.
2003년 3월 18일, 이라크 파병 반대 운동을 펼치며 '우리 국민들이 원하지 않기 때문에 파병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도록 명분을 쥐어주어야 한다', '이라크 다음은 북한, 저도 인간방패가 되어 북으로 갈 작정' 등의 강력한 발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김선일씨 피랍 사건 당시 '사람 하나 죽는다고 국가가 정책을 바꿔야 하느냐'며 파병을 당위시하는 모습을 보였고, 2005년 2차 연장 동의안에는 찬성표를 행사하며 입장을 번복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16대 국회의원 당선]
곽치영 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개혁국민정당 후보로 경기 고양시 덕양구 갑에 출마, 당선되며 제16대 국회에 입성했습니다.
2003년 4월 24일 보궐선거에서 경기 고양시 덕양구 갑 지역구에 개혁국민정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 제16대 국회에 진입했습니다. 당선 직후 4월 29일 의원 선서 시 캐주얼 복장으로 등원하여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개혁당, 열린우리당에 통합]
개혁국민정당이 진성당원 투표를 거쳐 열린우리당에 통합되면서 그는 열린우리당 소속이 되었습니다.
2003년 11월 열린우리당이 출범할 때, 개혁국민정당은 상당수 당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진성당원 투표를 통해 열린우리당에 통합되었습니다. 그는 열린우리당의 전자정당위원장, 경기도당 위원장, 제4정책조정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주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2004
[선거법 위반 논란]
16대와 17대 총선에서 사전선거운동 및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선거법 위반 피소되어 재판을 받았습니다.
16대 혐의는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17대 혐의는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16대 총선 때 공식 선거운동 기간 전에 홈페이지를 통해 지지를 호소했다가 선거법 위반으로 피소되어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어 17대 총선 홍보물에 '서울대 민간인 감금 폭행 사건 관련자들이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명예회복됐다'는 허위사실을 기재한 혐의로 피소되었으나, 항소심에서 '허위일 가능성을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민노당 사표론' 논란]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압승이 예상되자, 민주노동당 의원을 찍는 행위는 '사표(死票)'가 될 것이라며 '민노당 사표론'을 주장해 민주노동당과의 갈등을 유발했습니다.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압승이 확실해지자, 그는 진보정당의 원내 진출을 원하는 유권자들에게 '정당표는 민노당에 주더라도 후보표는 열린우리당에 주어야 한다'며 민주노동당 의원을 찍는 행위가 사표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발언은 민주노동당과의 심각한 갈등을 야기하며 독설가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2005
[대연정 옹호]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했을 때,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선거구제 개편에 필요하다며 이를 옹호하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2005년 8월 3일 '우리나라 정당정치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 참석하여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에 대해 선거구제 개편, 특히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통한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는 이러한 충격이 정당 개편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2006
[보험료 미납 의혹]
보건복지부 장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국민연금 보험료 미납 및 건강보험료 축소 신고 의혹이 제기되어 해명했습니다.
2006년 2월 보건복지부 장관 인사청문회 직전, 야당으로부터 1999년 7월부터 2000년 8월까지 13개월간 국민연금 보험료를 미납하고 소득을 축소 신고하여 건강보험료 수백만원을 덜 냈다는 의혹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에 대해 '일시적으로 미납하게 된 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해명했습니다.
2006년 2월 10일 제44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취임하여 2007년 5월 22일까지 장관직을 수행했습니다. 장관직 퇴임 후에도 정치 활동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2007
['한나라당 집권 99%' 발언]
열린우리당 분당 사태를 강하게 비판하며 '한나라당의 집권 가능성이 99%'라고 발언해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2007년 2월 20일 열린우리당의 분당 사태에 대해 비판하며 '한나라당의 집권 가능성이 99%'가 되었다고 발언했습니다. 그는 열린우리당이 총선 압승 이후 공화제적인 공천 구조를 정립하지 못해 분당에 이르렀다고 주장했습니다. 범여권에서는 해당 발언이 부적절하다며 비판했습니다.
[대선 출마 선언]
'대한민국 개조론'을 출간하며 제17대 대선 출마를 선언했으나, 낮은 지지율로 인해 당내 경선에서 사퇴하고 이해찬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2007년 7월 11일 '대한민국 개조론'을 출간하고 8월 20일 열린우리당 임시전당대회 직후 제17대 대선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지지율이 낮아 단일화 움직임에 따라 당내 경선에서 사퇴하고 이해찬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습니다.
2008
[18대 총선 낙선]
제18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대구 수성구 을에 출마했으나 낙선했습니다.
이후 '유연한 진보정당'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혔습니다.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대변인인 한나라당 주호영 의원과 대구 수성구 을에서 대결하여 낙선했습니다. 그는 민주당의 의사결정 구조를 비판하며 신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를 위한 5년 구상을 밝혔습니다.
2009
[노 전 대통령 수사 비판]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를 '이명박 정권의 전임 대통령 모욕주기 공작'으로 규정하며 '졸렬한 정치 보복'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
2009년 4월 21일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를 '이명박 정권의 전임 대통령 모욕주기 공작'으로 규정하며 '전쟁포로라 할지라도 적장에 대해서까지 이토록 졸렬한 방법으로 모욕을 줘선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4월 30일에는 봉하마을을 방문하여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출두에 앞서 '옛날에는 군인들이 정치를 했는데, 요즘은 검사들이 정치하는 것 같다'며 '이런 정치보복을 노 전 대통령이 잘 이겨내고 오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국민참여당 창당 참여]
권태홍, 천호선 등의 설득으로 '국민참여당' 창당에 함께 참여하며 다시금 정치 활동의 폭을 넓혔습니다.
2009년 11월 10일 당시 창당준비위원회를 이끌던 권태홍, 천호선, 이병완 등의 설득으로 국민참여당 창당에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2010년 9월부터는 국민참여당 참여정책연구원장을, 2011년 3월부터 12월까지는 국민참여당 대표를 역임했습니다.
2010
[경기도지사 단일 후보]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민주당 김진표 후보와의 단일화 경선에서 승리하여 야권 단일 후보가 되는 이변을 연출했습니다.
2010년 5월 13일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민주당 김진표 후보와의 단일화 경선에서 승리하며 단일 후보로 결정되었습니다. 이후 민주노동당 후보와 2차 단일화에 합의하며 야권 단일 후보로 최종 확정되었습니다.
[DJ 비판 사과]
김대중 도서관을 방문하여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에게 과거 김대중 대통령 비판 발언에 대해 사과하며 '정부 경험을 통해 김 전 대통령의 큰 업적을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2010년 5월 24일 서울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을 방문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을 만났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시사 평론할 때 김 전 대통령을 몇 차례 비판했던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정부(장관)에 있어보니 김 전 대통령이 얼마나 힘든 과정을 뚫고 거기까지 이뤘는지 알 것 같았다'며 과거 비판 발언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이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도입하며 남북 관계에 새 길을 열었다고 강조했습니다.
[경기도지사 선거 낙선]
제5회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했으나 당시 김문수 경기도지사에게 4% 차이로 아쉽게 낙선했습니다.
2010년 6월 2일 제5회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여 김문수 당시 경기도지사와 접전을 펼쳤으나, 47.79%의 득표율로 4%p 차이로 낙선했습니다.
2011
국민참여당의 당내 의사결정과정을 거쳐 민주노동당과의 합당을 결의했습니다. 2011년 12월 이정희, 심상정, 노회찬, 조승수 등과 함께 통합진보당을 창당하고 공동상임대표에 취임했습니다. 그러나 2012년 1월 말, 당내 특정 계파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며 한동안 당무를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2012
[서기호 판사 비례대표 논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선정 과정에서 서기호 판사의 비례대표 선정에 반대하며 이정희 공동대표와 갈등을 빚었습니다.
서기호 판사는 결국 비례대표에서 탈락했습니다.
통합진보당 유시민 공동대표는 이정희 공동대표가 사법 개혁을 내세우며 직접 영입한 서기호 판사가 비례대표가 되는 것에 대해 검증 미비를 근거로 반대했습니다. 이로 인해 당내 갈등이 발생했고, 서기호는 결국 비례대표에서 탈락했습니다. 당 관계자들은 서기호의 탈락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2013
2012년 10월 진보정의당 창당에 참여하기도 했으나, 2013년 2월 19일 최종적으로 정계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이는 그의 오랜 정치 경력에 마침표를 찍는 사건이었습니다.
2016
['썰전' 출연으로 인기 재점화]
정계 은퇴 후 JTBC '썰전'에 진보 진영 패널로 출연하며 날카로운 시사 분석과 입담으로 큰 인기를 얻고 방송인으로서의 입지를 다졌습니다.
2016년부터 JTBC '썰전'에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패널로 출연하기 시작했습니다. 보수 진영 패널인 전원책 변호사, 그리고 이후 박형준 전 정무수석과 함께 시사 이슈를 심도 있게 다루며 높은 시청률을 견인했습니다. 그의 탁월한 논리와 재치 있는 언변은 대중적 인기를 얻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2018
[노무현재단 이사장 취임]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추천으로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내정되었습니다.
10월 15일 제5대 이사장으로 정식 취임했습니다.
2018년 9월 26일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내정되었으며, 10월 15일 제5대 노무현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했습니다. 그는 노무현재단을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치와 정신을 계승하고 확산시키는 데 주력했습니다.
2019
['알릴레오' 방송 시작]
팟캐스트 채널 '유시민의 알릴레오'를 개설하고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방송 하루 만에 관련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가 폭증하며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2019년 1월 팟캐스트 채널 '유시민의 알릴레오'를 열고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이 방송은 유튜브 채널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과 팟캐스트에 업로드되며, 방송 하루 만에 '사람사는세상노무현재단'의 구독자 수가 10만에서 43만으로 급등하는 등 엄청난 파급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알릴레오'와 '고칠레오'로 구성되어 전문가를 초청해 현안을 이야기하고 '가짜뉴스'를 정정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알릴레오' 성희롱 발언 논란]
'알릴레오' 방송 '케이비에스 법조팀 사건의 재구성' 편에서 한 패널이 특정 여성 기자의 취재 과정을 성희롱적으로 폄하하는 발언을 하여 큰 논란이 일었고, 유시민 이사장이 직접 사과했습니다.
2019년 10월 15일, 유시민이 진행한 '알릴레오'의 '케이비에스 법조팀 사건의 재구성' 편에 출연한 장용진 기자가 KBS 특정 기자를 언급하며 '기자를 좋아하는 검사들이 많아서 (수사 내용을) 술술술 흘렸다', '검사가 다른 마음이 있었는지는 모르겠고 많이 친밀한 관계가 있었다'고 발언했습니다. 이 발언은 여성 기자의 취재 활동을 인신공격하고 폄하하는 성희롱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유시민 이사장이 이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며 공식 사과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