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준 (농구인)
농구 선수, 스포츠인, 농구 지도자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1:42
1960
1960년 6월 3일, 서울특별시에서 김현준 선수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이후 대한민국 농구의 아이콘이 됩니다.
1981
[국가대표 맹활약]
1981년부터 1993년까지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의 주축 슈터로 활약하며 수많은 국제 대회에서 맹위를 떨쳤습니다.
특히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은메달, 1990년 베이징 아시안 게임 동메달을 비롯해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만 은메달 4회, 동메달 2회를 목에 걸며 한국 농구의 국제적 위상을 드높였습니다.
김현준 선수는 1981년부터 1993년까지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에 꾸준히 선발되어 국제 무대에서 빛나는 활약을 펼쳤습니다. 주요 메달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은메달 - 1990년 베이징 아시안 게임: 동메달 - 1985년 FIBA 아시아 선수권 대회: 은메달 - 1987년 FIBA 아시아 선수권 대회: 은메달 - 1989년 FIBA 아시아 선수권 대회: 은메달 - 1991년 FIBA 아시아 선수권 대회: 은메달 - 1983년 FIBA 아시아 선수권 대회: 동메달 - 1993년 FIBA 아시아 선수권 대회: 동메달
1983
[삼성전자 입단]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 농구의 명문 삼성전자 실업농구단에 입단하며 프로 선수로서의 화려한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전자슈터'라는 별명과 함께 팀의 간판 선수로 급부상했습니다.
1983년,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김현준은 삼성전자 실업농구단에 입단하며 실업농구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탁월한 슈팅 능력으로 곧바로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 잡았습니다.
1985
1984-85 농구대잔치에서 삼성전자 실업농구단이 우승을 차지하며 김현준의 활약이 더욱 빛을 발했습니다.
1988
[MVP 수상 및 우승]
1987-88 농구대잔치에서 소속팀의 우승을 견인했을 뿐만 아니라, 대회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되며 개인 기량까지 만천하에 과시했습니다.
1987-88 농구대잔치에서 김현준은 팀 우승의 주역이 되었고, 빼어난 활약으로 대회 MVP를 수상하며 한국 농구의 대표적인 선수로 인정받았습니다.
1989
[득점왕 4년 연속]
1989년부터 1992년까지 농구대잔치 득점왕을 무려 4년 연속으로 차지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그의 압도적인 득점력을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이는 한국 농구 역사상 기념비적인 업적으로 남아있습니다.
김현준은 1989, 1990, 1991, 1992년 농구대잔치에서 4년 연속 득점왕을 차지하며, 리그를 대표하는 최고의 슈터로 군림했습니다.
1993
1993년 농구대잔치에서 김현준은 개인 통산 5천 득점 고지를 넘어섰습니다.
1995
[은퇴 및 영구결번]
13년간의 빛나는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하며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그는 은퇴할 때까지 통산 6328점이라는 전설적인 기록을 남겼으며, 그의 등번호 10번은 삼성 썬더스 역사상 최초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며 영원히 기억될 상징이 되었습니다.
1995년, 김현준은 선수 생활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기록은 통산 6328점이었으며, 그가 사용했던 등번호 10번은 서울 삼성 썬더스 구단 역사상 최초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어 그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게 되었습니다.
1996
[코치 활동 시작]
은퇴 후 미국 유학을 다녀온 뒤, 수원 삼성 썬더스(당시 삼성 농구단)의 코치로 선임되며 농구 지도자로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1996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김현준은 수원 삼성 썬더스의 코치로 부임하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1997
[감독 대행 역임]
수원 삼성 썬더스의 감독 대행을 맡아 약 6개월간 팀을 이끌며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더욱 키웠습니다.
1997년 11월 8일부터 1998년 5월 17일까지 수원 삼성 썬더스의 감독 대행으로 팀을 이끌었습니다.
1999
[갑작스러운 별세]
택시로 출근하던 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대한민국 농구계는 그의 갑작스러운 별세에 깊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1999년 10월 2일, 김현준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역 부근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39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사망 소식은 한국 농구계에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