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파

농구 선수, 농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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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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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선수, 농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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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농구의 전설적인 슈터이자 감독. 190cm 장신으로 아시아 무대를 휩쓴 득점 기계. 필리핀에서 신동파 신드롬을 일으키며 국제적 명성을 얻음. 국내 농구계에 슈터 개념을 처음 도입한 선구자. 선수와 감독으로서 한국 농구 발전에 크게 기여.

연관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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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사건만
최신순

1944

[농구 전설의 탄생]

함경남도 안변군에서 한국 농구의 역사를 바꿀 신동파 선수가 태어났습니다.

1962

[국가대표 발탁]

고교 시절부터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며 태극마크를 달았습니다.

1963

[아시아 선수권 첫 메달]

FIBA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일원으로 동메달을 획득하며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1965

[아시아 선수권 2연속 메달]

두 번째 FIBA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도 동메달을 따내며 대한민국 농구의 주축 선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66

[아시안게임 메달 획득]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대한민국 농구 대표팀이 동메달을 획득하는 데 기여하며, 아시아 최고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습니다.

1967

[실업팀 중소기업은행 입단]

연세대학교 졸업 후 실업팀 중소기업은행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서울 아시아 선수권 은메달]

자국에서 열린 FIBA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습니다.

[유니버시아드 은메달 획득]

도쿄 유니버시아드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국제 무대에서의 경쟁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1969

[필리핀을 뒤흔든 신동파 신드롬]

농구 인기가 높은 필리핀에서 열린 FIBA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맹활약하며 대한민국에 금메달을 안겼습니다.

그의 압도적인 득점력과 플레이는 현지 팬들에게 '신동파 신드롬'을 일으켰고, 그는 필리핀에서 아직까지도 유명 인사이자 아시아 농구 역사상 최고의 슈터 중 한 명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는 한국 농구계에 '슈터'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한 선수로도 평가받으며, 아시아 농구 역사상 독보적인 위상을 확립했습니다.

1970

[아시안게임 농구 금메달]

테헤란 아시안 게임에서 대한민국 농구 대표팀이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71

[아시아 선수권 동메달]

도쿄에서 열린 FIBA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꾸준한 기량을 보여주었습니다.

1973

[선수 생활 마지막 메달]

선수로서 참가한 마지막 국제 대회인 FIBA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습니다.

1974

[농구 선수 생활 마감]

한국 농구의 전설적인 선수로서 현역 생활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도전을 준비했습니다.

1975

[여자농구팀 감독 데뷔]

은퇴 후 여자 농구 실업팀 태평양화학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지도자로서의 새로운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1978

[여자농구 국가대표팀 지휘]

대한민국 여자 농구 국가대표팀의 코치와 감독을 겸임하며 여자 농구 전력 강화에 힘썼습니다.

1991

[SBS 농구단 창단 감독]

남자 농구로 무대를 옮겨 SBS 농구단의 창단 감독을 맡으며 새로운 팀을 이끌었습니다.

1997

[SBS 농구 해설위원 활동]

SBS 농구 해설위원으로 변신하여 대중에게 농구의 재미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1999

[농구협회 전무이사 역임]

대한농구협회 전무이사를 역임하며 한국 농구 행정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2002

[농구협회 부회장 취임]

대한농구협회 부회장으로 취임하여 한국 농구 발전을 위한 중책을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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