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원

축구 선수, 축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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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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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의 전설 날쌘돌이 서정원 감독의 빛나는 여정! * K리그 데뷔 후 폭발적인 스피드로 팬들을 사로잡은 최고의 윙어. * 대한민국 선수 최초로 프랑스 리그 진출 유럽에서도 올해의 최고 선수로 인정받음. * 수원 삼성의 전성기를 이끌고 아시아 정상을 두 번이나 차지한 핵심 주역. * 지도자로 변신 후 친정팀 수원에 FA컵 우승을 안기고 중국 팀을 1년 만에 1부 리그로 승격시킨 탁월한 리더십의 소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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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

[날쌘돌이의 탄생]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에서 태어난 서정원은 100m를 11초대에 주파하는 폭발적인 스피드 덕분에 '날쌘돌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양발을 자유자재로 쓰는 탁월한 능력을 갖추며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재능을 선보였습니다.

1990

[아시안 게임 동메달]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 축구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국제 무대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국가대표 A매치 데뷔]

다이너스티컵 일본과의 경기를 통해 국가대표팀 A매치에 데뷔했습니다.

이후 한국 축구의 중요한 순간마다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1992

[K리그 데뷔 및 유럽 러브콜]

LG 치타스(현 FC 서울)에 입단하며 프로 무대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데뷔와 동시에 탁월한 기량을 선보이며 K리그의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스웨덴전 활약 후 FC 바르셀로나를 포함한 해외 명문팀들의 러브콜을 받았으나 군 문제와 구단의 이적료 거부로 아쉽게 무산되었습니다.

1992년 9월 2일 포항제철 아톰즈와의 리그컵 경기에서 프로 데뷔골을 기록했으며, 10월 3일 현대 호랑이와의 경기에서 K리그 데뷔골을 기록했습니다. 당시 FC 퀼른 등 독일 분데스리가 팀들도 영입 제의를 하였으나, 이적료 문제로 무산되었습니다.

1994

[미국 월드컵 동점골]

1994년 미국 월드컵 스페인과의 조별 예선 첫 경기에서 종료 직전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리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 골은 한국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기억됩니다.

[방위병 월드컵 출전]

방위병으로 입대했으나, 특이하게 상무에 파견 근무 형식으로 배속되었습니다.

덕분에 1994년 미국 월드컵에 출전하는 이례적인 기회를 얻었습니다.

또한 당시 규정에 따라 원소속팀인 LG 치타스의 홈 주말 경기에 출전할 수 있었습니다.

군 복무 중에도 프로 경기에 출전할 수 있었던 특혜 덕분에 1994년 4경기, 1995년 4경기의 LG 치타스 서울 동대문운동장 홈경기에 출전했습니다. 당시 월급은 8,000원이었다고 합니다.

1997

[리그컵 득점왕과 벤피카 불발]

K리그 리그컵 득점왕에 오르며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습니다.

유럽 명문 벤피카로부터 9번을 주겠다는 영입 제의를 받고 훈련까지 함께했지만, 당시 차범근 대표팀 감독의 반대와 군 문제로 이적이 불발되어 큰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벤피카가 당시 리그 성적이 좋지 않아 서정원이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 뛰지 않는 조건을 제시했으나, 차범근 감독이 월드컵 진출을 위해 핵심 멤버인 서정원을 붙잡으려 했습니다. 결국 대한축구협회의 이적동의서가 나오지 않아 이적이 무산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벤피카 9번 유니폼을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간절했던 이적이었습니다.

1998

[한국인 최초 프랑스 진출]

이적료 110만 불에 프랑스 르샹피오나 RC 스트라스부르로 이적하며 대한민국 축구 선수 최초로 프랑스 리그에 진출하는 새 역사를 썼습니다.

데뷔전에서 득점을 기록하며 팀의 강등권 탈출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스트라스부르에서 활약했으나, 다음 시즌 부임한 르 로이 감독이 아프리카 선수들만 중용하며 인종차별적 대우를 했습니다. 스위스 리그 임대를 제안받자 자존심 상해 무단으로 가족여행을 떠나는 등 불화가 심화되었고, 결국 팀을 떠나게 됩니다. 당시 올리비에 다쿠르, 발레리앙 이스마엘 등 유능한 동료들도 감독과의 불화로 팀을 떠났습니다.

1999

[수원삼성 전성기 주역]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K리그 우승(1999년)과 리그컵 3회 우승(1999, 2000, 2001), 슈퍼컵 2회 우승(1999, 2000) 등 수원의 전성기를 이끄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수원 삼성 복귀 (이적 분쟁)]

프랑스 생활을 정리하고 K리그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전격 복귀했습니다.

이는 친정팀 안양 LG 치타스(현 FC 서울)가 아닌 수원으로 이적하며 K리그에 큰 이적 분쟁과 함께 '지지대 더비'의 기폭제가 되는 사건의 시작이었습니다.

스트라스부르 이적 당시 안양 LG 치타스와 '국내 복귀 시 친정팀으로 돌아온다'는 조건으로 이적료 절반을 지급받았습니다. 하지만 서정원은 수원과 계약한 뒤 안양 LG에 복귀 협상인 척 속이며 이적을 강행했고, 결국 구단 간 민사소송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사건은 K리그에 여러 유산을 남겼습니다.

[수원 삼성 복귀골]

수원 삼성 입단 후 부산 대우 로얄즈와의 경기에서 2골 1도움의 맹활약을 펼치며 팀의 승리를 이끌고 첫 골을 기록했습니다.

이 경기를 시작으로 서정원은 수원의 핵심 선수로 자리 잡았습니다.

2001

[아시아 최정상에 서다]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우승(2001, 2002년 2연패)과 아시아 슈퍼컵 우승(2001, 2002년)에 크게 기여하며 아시아 정상에 올랐습니다.

특히 2001년에는 아시아 슈퍼컵 MVP와 K리그 MVP,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습니다.

2002

[FA컵 우승 및 MVP]

FA컵 우승에 일조하며 대회 MVP를 수상했습니다.

또한 팀의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며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2003

[K리그 20-20클럽 가입]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경기에서 K리그 통산 42번째로 '20-20클럽'(20골-20도움)에 가입하며 K리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습니다.

꾸준함과 뛰어난 공격 포인트를 증명하는 기록입니다.

2004

[이적 분쟁 법정 공방 종결]

오랫동안 끌어왔던 안양 LG 치타스(현 FC 서울)와의 이적 분쟁이 대법원에서 FC 서울의 승소로 최종 판결되며 3억 원을 배상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판결은 K리그 이적 시스템의 중요한 선례를 남겼습니다.

판결에 따르면, 서정원 측은 국내 복귀 시 안양 LG 치타스와 성실히 입단 협상을 할 의무가 있었으나, 이미 수원 삼성과 계약을 완료해놓고 안양 LG를 속인 점, 그리고 타 구단 이적으로 안양 LG가 입게 된 손해가 인정되어 3억 원 배상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안양 LG와 수원 삼성 간 '지지대 더비'가 격화되는 기폭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K리그 우승 견인]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K리그 우승을 이끌며 팀의 두 번째 리그 정상 등극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2005

[오스트리아 리그 평정]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SV 잘츠부르크에 입단하며 다시 한번 유럽 무대에 도전했습니다.

이후 SV 리트로 이적하여 플레잉코치 계약을 맺고,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오스트리아 유력지에서 '올해의 최고 선수'와 '리그 내 모든 선수 중 평점 1위'로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2005년 말 오스트리아 유력 일간지 '쿠리어'와 스포츠 주간지 '스포르트보헤'에서 각각 '올해의 최고 선수'와 '평점 1위'로 선정되었습니다.

2006

[UEFA컵 진출 공헌]

SV 리트의 UEFA 인터토토컵 우승에 기여하며 팀의 사상 첫 UEFA컵 진출을 이끌었습니다.

지난 시즌 2부에서 승격한 팀을 리그 4위까지 끌어올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2007

[현역 은퇴 선언]

독일 분데스리가 팀들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지도자 생활을 준비하기 위해 심사숙고 끝에 SV 리트와 결별하고 현역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유럽에 남아 본격적인 지도자 수업을 받기로 결정했습니다.

[국가대표 공식 은퇴식]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 하프타임에 공식 은퇴식을 가졌습니다.

대한민국 축구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날쌘돌이' 서정원은 팬들의 뜨거운 박수 속에 정든 그라운드를 떠났습니다.

2009

[지도자 경력 시작]

홍명보 감독의 대한민국 U-20 청소년 대표팀 코치로 임명되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올림픽 대표팀과 국가대표팀 코치를 역임하며 차세대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키웠습니다.

2009년 FIFA U-20 월드컵이 끝난 후 홍명보 감독이 올림픽 대표팀 감독에 취임함에 따라 올림픽 대표팀 코치가 되었고, 이후 조광래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 국가대표팀 코치로 승격했으나, 조광래 감독의 해임으로 코치직을 사임했습니다.

2012

[수원 삼성 감독 부임]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수석 코치를 맡다가, 시즌 종료 후 윤성효 감독의 사임으로 수원의 제4대 감독으로 승격했습니다.

친정팀의 지휘봉을 잡으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당시 스승이었던 데트마어 크라머 전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 그의 멘토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4

[K리그 클래식 준우승]

K리그 클래식에서 시즌 초반 어려움을 겪었으나, 월드컵 휴식기 이후 팀 순위를 크게 끌어올리며 리그 준우승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달성했습니다.

이를 통해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획득하며 지도력을 인정받았습니다.

19승 10무 9패의 성적으로 K리그 클래식 2위를 기록했습니다. 다음 해인 2015년에도 리그 준우승을 차지하며 수원의 강세를 이어나갔습니다.

2016

[FA컵 우승 달성]

K리그에서는 하위 스플릿으로 추락하는 부진을 겪었으나, FA컵 결승전에서 숙명의 라이벌 FC 서울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팀에 6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안겼습니다.

감독 부임 후 첫 우승으로 지도력을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울산과의 원정경기 패배 후 팬들이 버스를 가로막자 직접 내려 사과하는 등 어려운 시기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FA컵 우승으로 모든 비판을 잠재우고 팀과 팬들에게 큰 기쁨을 선사했습니다.

2017

[지도력 재평가 및 재계약]

시즌 초 부진으로 '쎄오 아웃'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7라운드 강원 원정 이후 놀라운 상승세를 타며 지도력을 재평가받았습니다.

수원과 2020년까지 재계약을 맺으며 신뢰를 회복했습니다.

2018

[수원 감독직 사임 및 복귀]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수원 삼성 감독직에서 사임했으나, 선수들의 강력한 요청과 팀에 대한 책임감으로 10월 15일 감독직에 복귀했습니다.

하지만 2018 시즌까지만 감독을 맡겠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수원 삼성 감독직 종료]

제주 유나이티드전을 마지막으로 약 6년간 정들었던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직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났습니다.

그는 수원 팬들에게 깊은 감동과 아쉬움을 동시에 남기며 아름다운 이별을 택했습니다.

2020

[중국 청두 룽청 감독 부임]

중국 갑급 리그(2부리그) 청두 룽청과 계약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구단주의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 약속 속에 김대의 수석코치, 곽태휘 코치 등 자신의 사단을 구성해 부임했습니다.

조나탄 선수와도 재회하며 팀을 꾸려나갔습니다.

2022

[청두 룽청 슈퍼리그 승격]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호물로의 결승골로 1대0 승리, 합산 스코어 2대1을 기록하며 청두 룽청을 1년 만에 중국 슈퍼리그로 승격시키는 기적을 이뤄냈습니다.

이는 그의 뛰어난 지도력과 리더십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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