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래
축구인, 행정가, 감독, 선수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1:06
대한민국 축구의 컴퓨터 링커이자 명장으로 이름을 알린 인물. 선수 시절 아시안 게임 금메달 2개를 획득하며 한국 축구의 황금기를 이끌었음. 감독으로서는 K리그 우승과 조광래 유치원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유망주 발굴에 능했음. 대구 FC 단장으로서 축구전용구장 건립을 주도하여 지역 축구 흥행에 크게 기여한 행정가.
1954
[축구 천재의 탄생]
컴퓨터 링커라는 별명을 얻으며 한국 축구사에 한 획을 그은 조광래가 태어났습니다.
정교한 패스와 폭넓은 시야로 시대를 앞서간 그의 축구 인생이 시작된 날입니다.
1978
[아시안 게임 금메달 획득]
1978년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축구 금메달을 획득하며 한국 축구의 간판 선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는 그의 선수 경력에서 첫 번째 국제 대회 우승이었습니다.
1982
[프로 축구 선수 전환]
대우 축구단에 데뷔했고, 이듬해 K리그가 출범하며 자연스럽게 프로 축구 선수가 되어 그 해 팀의 준우승에 크게 공헌했습니다.
1986
[두 번째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에서 다시 한번 축구 금메달을 목에 걸며 선수로서 최고의 영광을 누렸습니다.
두 번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은 그가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였음을 증명합니다.
1987
[선수 은퇴 및 지도자 전환]
화려했던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곧바로 대우 로얄즈의 코치로 부임하며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1992
[첫 프로팀 감독 부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코치를 거쳐 대우 로얄즈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첫 사령탑을 맡았습니다.
하지만 1994년 성적 부진으로 해임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1999
[FC 서울 감독 복귀]
축구계에 복귀하여 안양 LG 치타스(現 FC 서울) 감독에 선임되었습니다.
김호 감독과의 악연으로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지지대 더비'의 한 축을 담당하며 큰 흥행을 이끌었습니다.
2000
[K리그 우승 달성]
안양 LG 치타스를 이끌고 K리그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아 올렸습니다.
이듬해에는 준우승을 차지하며 명장으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했습니다.
2002
[K리그 최고 연봉 기록]
2000년 K리그 우승 등 뛰어난 성과를 인정받아 프로축구 감독 최고 연봉으로 안양 LG 치타스와 3년 재계약을 체결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2004
[K리그 100승 달성]
K리그 통산 7번째로 개인 통산 100승을 달성하며 감독으로서 위대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는 K리그 역사에 그의 이름이 새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2007
2009
['조광래 유치원' 탄생]
경남 FC에서 어린 선수 위주로 팀을 개편한 후 무서운 무패행진을 이어가자 '조광래 유치원'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습니다.
이는 그의 유소년 발굴 능력을 상징하는 별명이 되었습니다.
2010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
대한축구협회에서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습니다.
2년 계약에 합의하며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를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2011
[아시안컵 3위 달성]
2011 AFC 아시안컵에서 51년 만의 우승은 좌절되었으나, 우즈베키스탄을 꺾고 3위를 차지하며 2015년 아시안컵 본선 자동 진출권을 획득했습니다.
[삿포로 참사 경험]
일본과의 정기전에서 0-3으로 대패하며 '삿포로 참사'라 불리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좋지 않은 경기력으로 인해 한국 축구 역사에 남을 만한 굴욕적인 패배로 기록되었습니다.
경기 지연과 관련된 논란에 휘말려 징계를 받기도 했습니다.
[대표팀 감독 경질]
레바논전 패배와 선수단 장악력 문제 등으로 대한축구협회로부터 국가대표팀 감독직에서 경질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의 후임으로는 최강희 감독이 긴급 선임되었습니다.
2012
[유소년 축구교실 개설]
FC 바르셀로나와 손잡고 유소년 선수를 육성하는 '바르셀로나 조광래 축구교실'을 열었습니다.
이는 한국 유소년 축구 발전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선구적인 시도였습니다.
2014
[대구 FC 단장 부임]
대구 FC의 대표이사 겸 단장으로 선임되며 본격적으로 프런트 행정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그의 축구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이었습니다.
2019
[DGB대구은행파크 탄생 기여]
그의 제안으로 대구시민운동장 주경기장이 축구전용구장 'DGB대구은행파크'로 리모델링되었습니다.
이는 대구 축구의 흥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의 결정은 대구시내와 가까운 위치에 축구전용구장을 조성하여 대구FC의 팬들에게 더욱 접근성 높은 축구 관람 환경을 제공하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