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호

축구 선수, 축구 감독,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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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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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호는 한국 축구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전설적인 공격수이자 명장입니다. 아시아의 호랑이라는 별명처럼 1980년대 한국 축구를 대표하며 맹활약했습니다.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프로 축구 리그에 진출하는 이정표를 세웠고 은퇴 후에도 포항 스틸러스 강원 FC 등 다수의 팀을 이끌며 지도력을 증명했습니다. K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등 그의 발자취는 한국 축구 역사에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현재 수원 FC 단장으로 활약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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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

[전설의 탄생]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대한민국 축구의 역사를 바꿀 최순호가 태어났습니다.

(호적상 생일은 1962년 1월 10일이지만, 실제로는 1960년 9월 1일생입니다.).

최순호는 충청북도 청주시 출생으로 청주대성중학교, 청주상업고등학교, 광운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의 뛰어난 기량은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1979

[첫 국제 무대 데뷔]

한국 축구의 미래를 짊어질 최순호 선수가 FIFA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를 통해 처음으로 국제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 대회에서의 활약을 발판 삼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축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1980

[포항제철 입단]

최순호 선수가 실업 축구팀 포항제철 축구단에 입단하며 성인 무대 선수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광운대학교 야간 전기공학과에도 진학하여 학업과 축구 선수 생활을 병행했습니다.

주간에는 포항제철 축구단 소속 축구 선수로 활동하고 야간에는 광운대에서 공부만 한 것인지 아니면 광운대 축구부에서 축구 선수 생활까지 했는지는 불분명하여 확인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국가대표 A매치 데뷔]

대통령배 국제 축구 대회에서 말레이시아와의 경기를 통해 A매치 데뷔전을 치르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선수로서의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이후 1991년 7월 27일 일본과의 A매치 경기가 그의 마지막 국가대표 경기가 되기까지 총 95경기에서 30골을 기록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격수로 활약했습니다.

[아시안컵 득점왕 등극]

AFC 아시안컵에서 무려 7골을 터뜨리며 이란의 베타시 파리바와 함께 공동 득점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는 그가 아시아 최고 수준의 공격수임을 입증한 순간입니다.

최순호는 이 대회를 통해 '아시아의 호랑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으며, 대한민국 대표팀은 이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981

[청소년 축구 최고 선수]

다시 한번 FIFA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 출전해 이탈리아 U-20 대표팀을 상대로 2골을 기록했으며, AFC 청소년 선수권 대회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하며 차세대 스타임을 확실히 했습니다.

그는 이 시기부터 국제 무대에서 꾸준히 좋은 기량을 선보이며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1983

[K리그 시대의 개척자]

K리그 출범과 함께 포항제철 돌핀스(현 포항 스틸러스)에서 프로 선수로서의 화려한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한국 프로 축구의 원년 멤버가 된 것입니다.

포항제철 아톰즈에서 1983년부터 1987년까지 활약하며 55경기 출장, 21골을 기록했습니다.

1986

[K리그 우승 및 AG 금메달]

포항제철 아톰즈의 K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며, 같은 해 서울 아시안게임에서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금메달 획득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선수로서 최고의 한 해를 보냈습니다.

그는 1990년 아시안게임에서도 동메달을 획득하며 아시안게임에서 총 금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목에 걸었습니다.

[월드컵 이탈리아전 득점]

멕시코에서 열린 1986 FIFA 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환상적인 골을 성공시키며 한국 축구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이 골은 월드컵 무대에서 기록한 1골 3도움 중 하나로, 그의 월드클래스 실력을 증명했습니다.

최순호는 1986년과 1990년 두 차례 FIFA 월드컵에 주전 공격수로 출전하며 대한민국 대표팀의 공격을 이끌었습니다.

1988

[럭키금성으로 이적]

프로 데뷔팀인 포항을 떠나 당시 그의 고향인 충청 지역을 연고로 하는 럭키금성 황소(현 FC 서울)로 전격 이적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럭키금성 황소에서 1988년부터 1990년까지 28경기에 출장하여 2골을 기록했습니다. 1989년 K리그 준우승과 1990년 K리그 우승을 경험했습니다.

1990

[럭키금성 K리그 우승]

럭키금성 황소의 K리그 우승을 이끌며 팀의 핵심 선수로서 활약했습니다.

같은 해 대한축구협회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하며 개인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1990년 K리그 우승은 최순호가 두 번의 K리그 우승을 경험한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그는 1991년 친정팀 포항제철 아톰즈로 복귀했습니다.

1992

[한국인 최초 프랑스 진출]

K리그에서 공식 은퇴한 뒤, 프랑스 리그 2의 로데스 AF로 이적하며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프로 축구 무대에 진출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는 한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업적입니다.

로데스 AF에서 1992-1993 한 시즌 동안 활약하며 지도자 수업을 병행했습니다. 선수 은퇴 후 곧바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한 것이 특징입니다.

2000

[포항 감독 대행 취임]

박성화 감독의 사퇴로 인해 친정팀 포항 스틸러스의 감독 대행을 맡으며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2001년 정식 감독으로 취임했습니다.

그는 2000년부터 2004년까지 포항 스틸러스 감독으로 활동하며 2004년 K리그 준우승, 2001년과 2002년 FA컵 준우승을 이끌었습니다.

2005

[울산미포조선 감독 부임]

내셔널리그의 울산 현대미포조선 돌고래 감독에 선임되어 축구계에 성공적으로 복귀했습니다.

그는 2006 시즌부터 팀을 이끌기 시작했습니다.

울산 현대미포조선 돌고래를 이끌고 2007년과 2008년 내셔널리그 2연속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하며 지도자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했습니다.

2008

[강원 FC 초대 감독 선임]

울산 현대미포조선 돌고래의 내셔널리그 2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한 뒤, 새롭게 창단된 강원 FC의 초대 감독으로 선임되며 큰 기대를 모았습니다.

그는 울산 현대미포조선의 주전 선수들을 드래프트로 영입하며 전 소속 팀에서 이루지 못한 K리그 승격의 꿈을 대신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2011년 4월 4일 리그 개막 후 4연패에 빠지자 자진 사퇴했습니다.

2016

[포항 스틸러스 재취임]

12년 만에 친정팀 포항 스틸러스의 제11대 감독으로 재취임하며 팬들의 뜨거운 환영과 기대를 한몸에 받았습니다.

그는 포항의 '레전드'로서 팀에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2019년 4월 22일, 성적 부진으로 인해 감독직에서 사임하고 김기동 코치에게 감독직을 넘겨주었습니다.

2023

[수원 FC 단장 선임]

김호곤의 후임으로 수원 FC의 단장으로 선임되며 현재까지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선수, 감독에 이어 단장으로서도 한국 축구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현재 수원 FC의 단장으로서 팀 운영과 발전에 힘쓰며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의 아들 최원우 선수 또한 K리그에 도전장을 내밀어 세 번째 부자(父子) K리그 선수 기록을 세운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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