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갑용
야구 선수, 지도자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0:38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전설적인 안방마님이자 포수로 공격과 수비를 겸비한 만능 플레이어로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특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의 9전 전승 금메달 획득에 주장으로서 크게 공헌하며 국가대표팀의 핵심으로 활약했습니다. KBO 골든글러브 3회 수상(2002 2005 2006)으로 리그 최고의 포수 중 한 명임을 입증했습니다. 선수 은퇴 후에는 삼성 라이온즈와 KIA 타이거즈에서 배터리 코치 수석 코치 그리고 감독대행까지 역임하며 지도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입니다.
1974
1991
[화랑기 MVP 등 수상]
고교 야구 시절, 화랑기 최우수 선수상, 타격상, 안타상, 도루상을 휩쓸며 뛰어난 재능을 입증했습니다.
1992
[화랑기 MVP 등 2년 연속]
화랑기 최우수 선수상과 타격상을 다시 한번 수상하며 고교 야구 정상급 포수로서의 입지를 굳혔습니다.
1993
[유니버시아드 은메달]
대학 재학 중 1993년 버펄로 하계 유니버시아드 야구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국제 무대 경험을 쌓았습니다.
1994
[아시안게임 은메달]
고려대학교 2학년 때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야구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했고, 대학 선수권 타격상도 수상했습니다.
1995
[유니버시아드 은메달]
1995년 후쿠오카 하계 유니버시아드 야구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했으며, 백호기와 화랑기 수훈상을 받았습니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참가]
대통령기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아마추어 신분으로 애틀랜타 올림픽 야구에 참가했으나 한국 대표팀은 최하위를 기록했습니다.
1997
[OB 베어스 입단 및 데뷔]
1997년 드래프트 2차 1라운드에서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에 지명되며 프로에 입단했습니다.
같은 해 4월 12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KBO 리그에 데뷔하며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998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야구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국제 대회에서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이는 그의 경력에서 중요한 국제적 성과입니다.
1999
[삼성 라이온즈 이적]
OB 베어스에서 주전 경쟁에 밀리자 직접 트레이드를 요청, 투수 이상훈과 현금 4억 원을 상대로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습니다.
이는 삼성 라이온즈의 포수난을 해결하며 팀의 성공적인 트레이드로 평가받았습니다.
2002
[첫 골든 글러브 수상]
삼성 라이온즈의 정규 시즌 및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며 데뷔 첫 KBO 골든 글러브(포수 부문)를 수상했습니다.
이는 그가 삼성의 핵심 선수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주는 성과입니다.
[국가대표 도핑 적발]
2002년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 선발 과정에서 도핑에 적발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처음에는 소변에 약을 탔다고 주장했으나,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분석 결과 약물 복용이 확실해지자 주장을 번복하고 인정하며 팬들과 언론의 큰 비난을 받았습니다.
2003
[삼성 주장 선임]
2003년 시즌 후 삼성 라이온즈의 주장 자리를 물려받아 2008년 시즌까지 팀을 이끌며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2005
[골든 글러브 수상 (2회)]
2005년 KBO 골든 글러브(포수 부문)를 수상하며 뛰어난 기량을 재확인받았고, 팀의 연속 우승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2006
[골든 글러브 (3회) 및 WBC]
2006년 KBO 골든 글러브(포수 부문)를 2년 연속 수상하며 리그 최고의 포수임을 증명했습니다.
같은 해 세계 최초의 야구 국제 대회인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습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베이징 올림픽에서 허벅지 부상에도 불구하고 대표팀 주장으로서 투혼을 발휘,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이 9전 전승으로 올림픽 야구 사상 최초의 금메달을 따는 데 크게 공헌했습니다.
그의 리더십과 헌신은 팀의 역사적인 성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2009
[척골 골절 부상]
SK 와이번스전에서 투구에 맞아 좌측 척골 골절상을 입으며 시즌 아웃되었습니다.
이 부상은 그를 포함한 주전 선수들의 대거 부상으로 이어져 팀의 1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2011
[삼성 주장 복귀 및 우승]
2011년 팀 주장 자리에 복귀하여 삼성 라이온즈의 페넌트레이스 우승과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이끌었으며, 그 해 아시아 시리즈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뛰어난 리더십과 기여도를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2013
[WBC 참가 (2회)]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다시 한번 참가하여 국제 대회에서의 경험을 이어갔습니다.
2015
[현역 은퇴 선언]
프로야구 선수로서 현역 은퇴를 공식 선언하고, 삼성 라이온즈의 전력분석원으로 새로운 야구 인생을 시작하며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2017
[해외 연수 및 국가대표코치]
일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연수코치로 활동하며 해외 지도자 경험을 쌓았습니다.
같은 해부터 2023년까지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배터리코치로도 활동했습니다.
2018
2020
[KIA 배터리코치]
2019년 시즌 후 삼성과 재계약하지 못하고 KIA 타이거즈의 배터리코치로 옮겨 2021년까지 활동했습니다.
2022
2024
[KIA 2군 감독 부임]
2024년부터 KIA 타이거즈의 2군 감독을 맡아 유망주 육성과 팀의 미래를 책임지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KIA 타이거즈 감독대행]
2024년 1월 28일부터 2월 13일까지 KIA 타이거즈의 감독 대행을 맡으며 잠시 팀의 지휘봉을 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