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규 (1974년)
야구 선수, 야구 감독, 해설가, KBO 리그 레전드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0:32
이병규는 적토마라는 별명처럼 그라운드를 질주했던 KBO 리그 LG 트윈스의 전설적인 외야수이자 지명타자다. 30-30 클럽 가입 두 차례 타격왕 여러 차례 안타왕 등 수많은 기록을 남겼으며 특히 KBO 최고령 사이클링 히트라는 진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 프로야구 진출과 성공적인 복귀 그리고 등번호 9번의 영구 결번까지 선수로서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룬 선수로 평가받는다. 은퇴 후에는 해설위원 코치 감독으로서 야구 인생 2막을 열며 한국 야구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그의 열정적인 플레이와 꾸준함은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 야구의 전설, 탄생
- 아시안게임 은메달 획득
- 황금빛 신인왕 데뷔
-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
- 30-30 클럽 가입!
- 아시아 선수권 금메달
- 올림픽 야구 동메달 획득
- 득점왕과 안타왕의 위업
-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 생애 첫 타격왕 등극
- WBC 동메달 획득
- 일본 진출과 아시안게임 동메달
- 일본 프로야구 데뷔 & 우승
- 일본 생활 마침표
- 친정팀 LG로의 귀환
- 올스타전 MVP 수상
- LG 트윈스 주장 선임
- 한일 통산 2000안타 달성
- 최고령 사이클링 히트!
- KBO 통산 1900안타
- 연타석 최다 안타 신기록
- FA 재계약, LG 잔류
- 영광스러운 마지막 타석
- '적토마' 현역 은퇴 선언
- 해설위원으로 새 출발
- 등번호 9번 영구 결번 & 은퇴식
- LG 트윈스 코치 부임
- 질롱 코리아 감독 데뷔
- 삼성 라이온즈 수석코치
- LG 트윈스 2군 감독 복귀
1974
[야구의 전설, 탄생]
전 KBO 리그 LG 트윈스의 외야수이자 지명타자, 그리고 현재는 LG 트윈스 2군 감독인 이병규가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태어났다.
1974년생 동갑내기 부인과 아들 이승민(SSG 랜더스 외야수)을 두었다.
1994
[아시안게임 은메달 획득]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야구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며 국제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997
[황금빛 신인왕 데뷔]
LG 트윈스의 1차 지명을 받아 프로에 입단한 후, KBO 리그 전주 쌍방울전에서 첫 출장을 기록하며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데뷔 첫 해 3할대 타율, 23도루를 기록하며 KBO 신인왕을 거머쥐었고, 그의 빛나는 미래를 예고했다.
1998
1999
[30-30 클럽 가입!]
3할대 타율, 30홈런, 31도루라는 경이로운 기록으로 KBO 역사상 손꼽히는 30-30 클럽에 가입했다.
특히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을 홈으로 쓰는 구단 선수 중 유일한 30-30 클럽 가입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또한 192안타로 최다 안타왕에도 등극했다.
[아시아 선수권 금메달]
1999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 선수권 대회 야구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아시아 최강임을 입증했다.
2000
[올림픽 야구 동메달 획득]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야구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올림픽 시상대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
2001
[득점왕과 안타왕의 위업]
2001년 KBO 득점왕 타이틀을 거머쥐며 득점 생산 능력 또한 최고 수준임을 입증했다.
또한 1999년부터 2001년까지 3년 연속 KBO 안타왕을 차지하며 꾸준함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2002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안방에서 열린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야구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국민들에게 큰 기쁨을 선사했다.
2005
[생애 첫 타격왕 등극]
생애 첫 KBO 타격왕에 오르며 최고의 타격 재능을 만개시켰다.
김성근 감독이 백인천 이후 4할 타자가 나온다면 그가 주인공일 것이라고 극찬할 정도로 뛰어난 컨택 능력을 선보였다.
또한 2005년에도 KBO 안타왕을 차지했다.
2006
[WBC 동메달 획득]
초대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한국 야구가 세계 무대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데 기여하며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일본 진출과 아시안게임 동메달]
FA 자격을 얻은 뒤, 한국 야구 선수로는 선동열, 이상훈, 이종범에 이어 4번째로 일본 프로 야구 센트럴 리그의 명문 구단 주니치 드래건스에 입단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또한 2006년 도하 아시안 게임 야구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2007
[일본 프로야구 데뷔 & 우승]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건스 소속으로 첫 출장을 기록했다.
이후 2007년 일본 시리즈 우승에 크게 기여하며 선수 생활 첫 우승의 감격을 맛보았다.
2009
[일본 생활 마침표]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계약이 만료되며 일본 프로야구 마지막 경기를 치르고 3년간의 일본 생활을 마무리했다.
2010
[친정팀 LG로의 귀환]
2년 총액 9억 원의 조건으로 친정팀 LG 트윈스에 복귀하며 한국 프로야구 무대에 다시 발을 디뎠다.
복귀 시즌 2할 9푼 타율, 9홈런, 64타점으로 무난한 활약을 펼쳤다.
2011
2012
[LG 트윈스 주장 선임]
선수들과 코치진의 투표로 LG 트윈스의 주장에 선임되며 리더십을 인정받았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개막전에서 차우찬을 상대로 만루 홈런을 치는 등 활약을 이어갔다.
2013
[최고령 사이클링 히트!]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KBO 리그 역대 최고령(만 38세 8개월 10일)으로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하는 대기록을 세우며 노장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KBO 통산 1900안타]
NC 다이노스전에서 4타수 4안타를 치며 KBO 리그 역대 4번째로 통산 1900안타 고지에 올랐다.
[연타석 최다 안타 신기록]
7월 3일부터 10일까지 4경기에서 무려 10타수 10안타를 기록하는 KBO 신기록을 달성하며 놀라운 타격감을 선보였다.
햄스트링 부상 복귀 후 꾸준한 타격감을 보여주며 두 번째 타격왕을 차지했고, 시즌 후 지명타자 부문 골든 글러브까지 수상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FA 재계약, LG 잔류]
2번째 FA 자격을 얻은 후, 3년 총액 25억 5천만 원(연봉 8억 원, 계약금 1억 5천만 원)에 LG 트윈스와 잔류 계약을 맺으며 '원 클럽 맨'의 길을 이어갔다.
2016
[영광스러운 마지막 타석]
시즌 최종전에서 1군에 등록돼 대타로 출전, 두산 베어스의 더스틴 니퍼트를 상대로 안타를 기록하며 그의 선수로서 마지막 타석과 마지막 안타를 장식했다.
['적토마' 현역 은퇴 선언]
보류 선수 명단 제출 마감일을 하루 앞두고, 정든 LG 트윈스에 현역 은퇴 의사를 밝히며 20년간의 프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2017
[해설위원으로 새 출발]
은퇴 후 JTBC WBC 해설을 시작으로 스카이 스포츠 야구 해설위원으로 데뷔하며 방송인으로서의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했다.
[등번호 9번 영구 결번 & 은퇴식]
현역에서 은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상징인 등번호 9번이 LG 트윈스의 역대 2번째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며 영원한 레전드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7월 9일에는 잠실 야구장에서 성대한 은퇴식을 가졌다.
2018
[LG 트윈스 코치 부임]
친정팀 LG 트윈스의 타격 코치로 부임하며 후배 양성에 힘썼다.
2021년에는 팀 타격 부진으로 2군 야수담당코치로 보직이 변경되기도 했다.
2022
[질롱 코리아 감독 데뷔]
LG 트윈스와 결별 후 호주 프로야구 리그 팀인 질롱 코리아의 감독을 맡아 지도자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2023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