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균 (1982년)

야구 선수, 스포츠인, 해설위원, 구단 관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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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레전드이자 한국 야구 대표 거포. 2001년 신인왕 2008년 홈런·장타율왕 등 KBO 다수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일본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팀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끌며 해외에서도 성공을 거뒀다. 국가대표로 2009 WBC 홈런·타점왕 2010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획득하며 한국 야구의 별로 빛났다. 은퇴 후 한화 이글스 단장 어드바이저 겸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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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야구의 별, 김태균 탄생]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태어났습니다.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김태균이 1982년 5월 29일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훗날 KBO 리그의 전설적인 타자로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1990

[야구 인생의 첫 발걸음]

아버지의 영향으로 초등학교 2학년 2학기부터 야구를 시작했습니다. 천안북중, 북일고를 거치며 야구 유망주로 성장했습니다.

김태균은 천안남산초등학교 2학년 2학기 때 아버지의 권유로 야구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천안북중학교와 북일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야구 유망주로서 기량을 갈고닦았으며, 북일고 시절에는 박찬호 야구 장학금을 받기도 했습니다.

2000

[세계 무대 첫 우승, 청소년 대표팀 활약]

청소년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세계 청소년 야구 국제대회에 출전, 이대호, 정근우, 추신수 등과 함께 팀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김태균은 2000년 세계 청소년 야구 국제대회에 청소년 야구 국가대표로 출전했습니다. 동갑내기 야구 스타 이대호, 정근우, 추신수와 함께 팀의 우승을 이끌며 세계 무대에서 뛰어난 타격 실력을 선보였습니다. 이 대회에서 타율 0.433, 3홈런, 11타점을 기록하며 맹활약했습니다.

2001

[한화 이글스 입단, 프로 데뷔의 시작]

200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으로 한화 이글스에 입단했습니다. 계약금 1억 6,000만원, 연봉 2,000만원의 조건이었습니다.

김태균은 2001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의 1차 지명을 받으며 프로 무대에 입성했습니다. 당시 계약 조건은 계약금 1억 6,000만원, 연봉 2,000만원이었습니다. 이는 그의 화려한 프로 선수 생활의 첫걸음이었습니다.

[KBO 리그 첫 출장]

KBO 리그 수원에서 현대 유니콘스를 상대로 프로 데뷔 경기를 치렀습니다.

김태균은 KBO 리그에서 2001년 4월 17일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에서 현대 유니콘스를 상대로 첫 출장 경기를 가졌습니다. 이날 경기를 시작으로 그는 KBO 리그의 대표적인 강타자로 성장하게 됩니다.

[프로 첫 홈런포 가동]

대전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프로 데뷔 첫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2001년 5월 19일, 대전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김태균은 프로 데뷔 첫 홈런을 터뜨리며 그의 장타력을 팬들에게 각인시켰습니다. 이는 그의 KBO 리그 홈런 기록의 시작점이었습니다.

[데뷔 시즌 압도적 활약, 신인왕 수상]

입단 첫 해 88경기에 출전하여 3할대 타율과 20홈런을 기록하며 그 해 신인왕을 수상했습니다.

김태균은 2001년 입단 첫 시즌에 88경기에 출전해 3할이 넘는 높은 타율과 함께 20홈런을 기록하는 괴물 신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그 해 KBO 리그 신인왕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2002

[등번호 교체와 부활의 서막]

등번호 10번을 달고 2년차 징크스에 시달렸으나, 이후 상징적인 등번호 52번으로 교체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았습니다.

2002년, 김태균은 등번호 10번을 달고 2년차 징크스에 빠지며 잠시 주춤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그의 상징이 된 등번호 52번으로 교체하며 슬럼프를 극복하고 다시금 뛰어난 활약을 펼칠 준비를 했습니다.

2003

[4번 타자 입지 확립]

31홈런을 기록하며 팀 내 4번 타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습니다.

김태균은 2003년 시즌 동안 31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팀의 핵심 4번 타자로서 완벽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이 시즌을 통해 그는 한화 이글스의 중심 타선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성장했습니다.

[프로 첫 만루홈런 폭발]

광주 KIA 타이거즈전에서 프로 데뷔 첫 만루홈런을 기록하며 팀의 중심 타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03년 6월 10일, 광주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김태균은 프로 데뷔 후 첫 만루홈런을 쏘아 올렸습니다. 이 홈런은 그의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팀 내 4번 타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5

[첫 골든글러브 수상]

3할대 타율, 146안타, 23홈런, 100타점을 기록하며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습니다.

김태균은 2005년 시즌에 타율 3할대, 146안타, 23홈런, 100타점을 기록하는 뛰어난 활약을 펼쳤습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루수 부문에서 개인 첫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KBO 리그 정상급 선수임을 증명했습니다.

2006

[첫 WBC 국가대표 발탁]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국가대표로 선출되어 대한민국 야구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김태균은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이 대회에 출전하여 대한민국 야구팀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데 일조하며 국가대표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팀은 동메달을 획득했습니다.

2007

[올스타전 홈런 레이스 우승]

KBO 올스타전 홈런 레이스에서 9개의 홈런을 터뜨리며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김태균은 2007년 KBO 올스타전에 출전하여 팬들의 큰 기대 속에 홈런 레이스에 참여했습니다. 그는 무려 9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실력으로 우승을 차지, 그의 장타력을 다시 한번 과시했습니다.

2008

[홈런왕 및 골든글러브 수상]

홈런왕, 최고 장타율 타이틀을 획득하고, 두 번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KBO 리그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김태균은 2008년 시즌 동안 타율 5위, 홈런 1위, 타점 4위, 장타율 1위를 기록하며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이로써 홈런왕과 최고 장타율 타이틀을 거머쥐었으며, 유효표 중 332표를 얻어 최다 득표로 두 번째 골든글러브(1루수 부문)를 수상하며 리그 최고의 타자로 공고히 자리매김했습니다.

[2008년 시즌 만루홈런 기록]

대전 LG 트윈스전에서 만루홈런을 기록했습니다.

2008년 7월 17일, 김태균은 대전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5회말 2-3 풀카운트 상황에서 투수 이재영을 상대로 만루홈런을 쏘아 올렸습니다. 이 홈런은 팀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2009

[2009 WBC 홈런왕-타점왕, 은메달 주역]

WBC에서 홈런왕과 타점왕을 차지하는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대한민국 야구팀의 은메달 획득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김태균은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멕시코전, 베네수엘라전 등 주요 경기에서 홈런을 터뜨리는 등 맹활약하며 대회 홈런왕(3홈런)과 타점왕(11타점)을 차지했습니다. 그의 활약에 힘입어 대한민국은 준우승(은메달)을 차지하며 전 세계에 야구 강국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활약으로 WBC 우수 선수로 선정되었습니다.

[통산 1,000안타 대기록 달성]

목동 히어로즈전에서 개인 통산 1,000안타를 기록하며 역대 56번째 대기록을 달성했습니다.

2009년 4월 21일, 김태균은 목동에서 열린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개인 통산 1,000번째 안타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KBO 리그 역대 56번째 기록으로, 그의 꾸준함과 뛰어난 타격 능력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경기 중 부상으로 인한 재활]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 중 홈 쇄도 과정에서 충돌하여 뇌진탕으로 병원에 후송, 이후 2군에서 재활했습니다.

2009년 4월 26일, 김태균은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홈으로 쇄도하던 중 포수 최승환과의 충돌을 피하려다 넘어져 뇌진탕 진단을 받고 병원으로 후송되었습니다. 이 부상으로 인해 한때 2군에서 재활 치료를 받으며 선수 생활에 위기를 맞기도 했습니다.

[2009년 시즌 만루홈런 추가]

히어로즈전에서 만루홈런을 터뜨리며 장타력을 과시했습니다.

2009년 7월 7일, 김태균은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조용훈 투수를 상대로 만루홈런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그의 뛰어난 타격감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기록이었습니다.

[일본 프로야구 진출 선언]

FA 자격을 취득 후 일본 프로야구 지바 롯데 마린스와 최장 3년간 총액 7억엔(약 90억 원)에 계약하며 일본 진출을 선언했습니다.

2009년 11월 13일, FA 자격을 취득한 김태균은 국내외 여러 구단의 러브콜을 뒤로하고 일본 프로야구 진출을 선언했습니다. 지바 롯데 마린스와 최장 3년간 총액 7억엔(약 90억 원)에 계약을 맺으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등번호는 한화 이글스에서 사용하던 52번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2010

[아시안 게임 금메달 획득]

광저우 아시안 게임 야구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김태균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금메달 획득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대만전에서는 4타석 4볼넷을 기록하는 등 뛰어난 선구안을 보여주며 팀의 승리에 일조했습니다. 이는 그의 주요 국제대회 메달 중 하나입니다.

[NPB 리그 첫 출장]

일본 프로야구 세이부 돔에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를 상대로 지바 롯데 마린스 소속으로 첫 경기를 치렀습니다.

김태균은 2010년 3월 20일, 일본 프로야구 세이부 돔에서 열린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개막전에서 지바 롯데 마린스 소속으로 4번 타자 겸 1루수로 선발 출전하며 일본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1회 초 첫 타석에서 상대 투수 와쿠이 히데아키에게 헛스윙 삼진을 당했습니다.

[NPB 리그 첫 안타 기록]

세이부 돔에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3차전에서 노가미 료마를 상대로 일본 프로야구 첫 안타를 기록했습니다.

2010년 3월 22일, 김태균은 세이부 돔에서 열린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세 번째 경기 5회 초에 노가미 료마 투수로부터 우전 안타를 때려내며 일본 프로야구 첫 안타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개막 6연타석 삼진 이후 첫 안타였습니다.

[NPB 리그 첫 타점 기록]

지바 마린 스타디움에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2차전에서 다르빗슈 유를 상대로 희생플라이를 치며 첫 타점을 올렸습니다.

김태균은 2010년 3월 27일, 지바 마린 스타디움에서 열린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와의 두 번째 경기 3회 말에 다르빗슈 유 투수를 상대로 희생플라이를 성공시키며 일본 프로야구 첫 타점을 기록했습니다.

[NPB 리그 첫 홈런포 가동]

교세라 돔 오사카에서 오릭스 버펄로스 1차전에서 곤도 가즈키를 상대로 중월 투런 홈런을 터뜨리며 첫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2010년 4월 2일, 김태균은 교세라 돔 오사카에서 오릭스 버펄로스와의 첫 경기 5회 초에 곤도 가즈키 투수를 상대로 중월 투런 홈런을 쏘아 올리며 일본 프로야구 데뷔 첫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그의 일본 무대 적응을 알리는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김치 태균 버거' 완판 해프닝]

홈구장 첫 홈런을 기록하자, 롯데리아에서 그의 등번호와 같은 52개 한정 '김치 태균 버거'를 50엔에 판매하는 이벤트가 8분 만에 완판되었습니다. 이어진 연타석 홈런으로 치즈버거 판매 해프닝도 발생했습니다.

2010년 5월 3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와의 경기에서 김태균이 홈구장 첫 홈런을 치자, 지바 롯데 마린스 홈구장 내 롯데리아에서 그의 활약을 기념하여 등번호와 같은 52개 한정으로 '김치 태균 버거'를 50엔에 판매하는 이벤트를 진행했습니다. 이 버거는 8분 만에 완판되었고, 이후 김태균의 연타석 홈런이 터지자 준비된 김치 버거가 없어 통상 410엔짜리 치즈버거를 50엔에 판매하는 이색 해프닝이 벌어졌습니다. 이 기획은 당시 팀 동료였던 이구치 감독의 발안이었습니다.

[NPB 리그 첫 만루홈런]

메이지 진구 구장에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4차전에서 마스부치 다쓰요시를 상대로 일본 프로야구 첫 만루홈런을 기록했습니다.

2010년 6월 7일, 김태균은 메이지 진구 구장에서 열린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경기 7회 초에 마스부치 다쓰요시 투수를 상대로 좌월 만루홈런을 터뜨리며 일본 프로야구 데뷔 첫 만루홈런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그의 일본 무대에서의 위력을 다시 한번 보여준 순간이었습니다.

[한일 통산 200홈런 대기록]

도쿄 돔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 2차전에서 후쿠다 사토시를 상대로 투런 홈런을 기록하며 한일 통산 200홈런을 달성했습니다.

2010년 6월 16일, 김태균은 도쿄 돔에서 열린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후쿠다 사토시 투수를 상대로 투런 홈런을 쏘아 올렸습니다. 이 홈런으로 그는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를 통틀어 개인 통산 200홈런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이는 그의 꾸준한 장타력을 증명하는 의미 있는 기록이었습니다.

[NPB 올스타전 최다 득표 (한국인 최초)]

일본 진출 첫 해,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일본 프로야구 올스타전 팬 투표에서 퍼시픽 리그 1루수 부문 1위이자 최다 득표를 기록했습니다.

김태균은 2010년 일본 프로야구 진출 첫 해에 팬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으며 올스타전 팬 투표에서 퍼시픽 리그 1루수 부문 1위는 물론, 전체 최다 득표 선수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이는 일본에 진출한 한국 선수 중 최초의 기록이며, 그의 높은 인기와 실력을 입증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본 시리즈 우승 주역]

지바 롯데 마린스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하며 개인 첫 우승을 경험했습니다.

김태균은 2010년 지바 롯데 마린스가 퍼시픽 리그 플레이오프를 넘어 일본 시리즈에 진출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일본 시리즈에서도 안타와 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에 일조했고, 이는 그의 프로 경력에서 첫 번째 우승 기록이 되었습니다.

2011

[NPB 리그 마지막 경기]

도쿄 돔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상대로 일본 프로야구 마지막 경기를 치렀습니다.

김태균은 2011년 6월 15일, 도쿄 돔에서 열린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를 끝으로 일본 프로야구에서의 선수 생활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이 경기를 통해 2년간의 일본 무대 도전을 마무리했습니다.

[한화 이글스 복귀, 역대 최고 연봉 계약]

한국으로 복귀한 후 한화 이글스와 역대 최고 연봉인 15억 원에 계약하며 친정팀으로 돌아왔습니다.

2011년 한국으로 돌아온 김태균은 12월 12일, 친정팀인 한화 이글스와 역대 KBO 리그 최고 연봉인 15억 원에 계약하며 화려하게 복귀했습니다. 이는 그의 KBO 리그 복귀를 알리는 동시에, 리그 최고 선수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은 계약이었습니다.

2012

[KBO 리그 통산 200홈런]

대전 SK 와이번스전에서 윤희상을 상대로 홈런을 기록하며 KBO 리그 통산 200홈런을 달성했습니다.

2012년 7월 8일, 김태균은 대전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경기 6회 말에 투수 윤희상을 상대로 홈런을 터뜨리며 KBO 리그 개인 통산 200홈런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이는 KBO 리그 역사에 그의 이름을 새기는 중요한 기록 중 하나였습니다.

[한화 이글스 주장 선임]

한화 이글스의 주장으로 선임되었고, 시즌 초반 팀의 부진과 집중 견제 속에서도 맹활약했습니다.

김태균은 2012년 말 시즌 한화 이글스의 주장으로 선임되며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시즌 초반 팀이 심각한 부진에 빠지고 상대 팀의 집중 견제에도 시달렸으나, 그는 묵묵히 팀을 이끌며 주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했습니다.

[KBO 타격왕 및 출루율왕 수상]

장타력은 감소했지만 타격왕과 출루율왕을 차지하며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습니다.

김태균은 2012년 KBO 리그 복귀 시즌에 비록 홈런 수는 줄었지만, 9월까지 4할에 육박하는 타율을 기록하는 등 뛰어난 컨택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결과 KBO 타격왕과 출루율왕 타이틀을 거머쥐며 리그 최고의 타자로서의 입지를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2013

[9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 달성]

LG 트윈스전에서 우규민을 상대로 홈런을 기록하며 9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습니다.

2013년 10월 2일, 김태균은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투수 우규민을 상대로 홈런을 쳐내며 개인 통산 9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습니다. 허리 부상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장타력을 유지하며 그의 타격 능력을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2016

[KBO 최초 단일 시즌 300출루 달성]

잠실 두산 베어스전에서 KBO 리그 최초로 한 시즌 300출루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달성했습니다.

2016년 10월 3일, 김태균은 잠실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 1회 초에서 투수 안규영을 상대로 출루하며 KBO 리그 역사상 최초로 단일 시즌 300출루를 달성하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는 그의 압도적인 출루 능력과 타석에서의 집중력을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기록입니다.

[세 번째 KBO 골든글러브 수상]

KBO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여전히 리그 최정상급 타자임을 입증했습니다.

김태균은 2016년 시즌 뛰어난 활약을 바탕으로 KBO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습니다. 이는 그의 세 번째 골든글러브 수상으로, 오랜 기간 동안 리그에서 변함없는 최정상급 타격 실력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2020

[FA 계약으로 한화 잔류]

FA 자격을 취득한 후 1년 총액 10억 원에 한화 이글스에 잔류하며 은퇴 전 마지막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2019년 시즌을 마친 후 FA 자격을 취득한 김태균은 여러 선택지에도 불구하고 친정팀인 한화 이글스와 1년 총액 10억 원에 잔류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는 그의 선수 생활 마지막 계약이 되었으며, 팀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보여주었습니다.

[프로 야구 선수 은퇴 선언]

정든 그라운드를 떠나 은퇴를 선언하며 20년 간의 프로 야구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2020년 10월 21일, 김태균은 기자회견을 통해 프로 야구 선수로서의 은퇴를 공식적으로 선언했습니다. 2001년 데뷔 이후 20년 동안 KBO 리그와 NPB 리그를 오가며 활약했던 그의 화려한 선수 생활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2021

[새로운 커리어 시작, 프런트 및 해설위원 변신]

은퇴 후 한화 이글스 단장 어드바이저와 KBS N 스포츠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김태균은 2021년부터 선수 유니폼을 벗고 새로운 야구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한화 이글스의 단장 어드바이저로 팀의 발전에 기여하는 동시에, KBS N 스포츠의 야구 해설위원으로 마이크를 잡으며 팬들에게 전문적이고 생생한 해설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KBO 리그 은퇴 경기]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SSG 랜더스를 상대로 KBO 리그 은퇴 경기를 치렀습니다.

김태균은 2021년 5월 29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SSG 랜더스를 상대로 은퇴 경기를 가졌습니다. 이날 경기는 그의 선수 생활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하는 자리였으며, 은퇴 경기 특별 엔트리로 출전하여 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습니다.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 출연]

KBS2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두 자녀와 함께 출연하여 방송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김태균은 2021년 10월 24일부터 KBS2 인기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두 딸 김효린, 김하린과 함께 출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야구장 밖에서의 가정적인 모습과 육아 일상을 공개하며 대중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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