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
야구인, 방송인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9- 03:52:55
KBO 리그 최초 타격 7관왕 9경기 연속 홈런 세계 신기록을 세운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 한미일 세 리그에서 모두 활약하며 정상급 타자로 군림했고 롯데 자이언츠의 두 번째 영구 결번 선수로 은퇴했습니다. 팬들에게 빅 보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사랑받았습니다.
1982
[출생]
부산직할시 수영구에서 태어났다. 3세 때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마저 재혼하여 할머니 손에서 자라는 등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대호는 1982년 6월 21일 부산직할시 수영구에서 태어났다. 3세 때 아버지를 잃었고 이후 어머니도 재혼을 하여 집을 나가면서 할머니인 오분이 여사 아래에서 자랐다. 오분이 여사는 수영팔도시장에서 장사를 하면서 이대호가 야구선수가 될 수 있도록 성심성의껏 지원했다.
1990
수영초등학교 3학년 때 전학 온 추신수의 눈에 띄어 야구를 시작했다.
2000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 출전]
추신수, 정근우, 김태균 등과 함께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에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2000년에는 추신수, 정근우, 김태균과 함께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2000년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2001
[롯데 자이언츠 입단 및 타자 전향]
2001년 한국프로 야구 드래프트에서 롯데 자이언츠에 2차 1순위로 지명받았다. 투수로 입단했으나 전지훈련 중 어깨 부상을 당해 타자로 전향했다.
2001년 한국프로 야구 드래프트에서 2차 1순위로 롯데 자이언츠의 지명을 받았다. 학생 시절부터 투수로 활동했고 입단할 당시에도 투수였다. 그러나 첫 전지 훈련에서 어깨 부상을 당했고, 당시 2군 감독이었던 우용득의 권유로 동년 5월부터 타자 전향 훈련을 시작한 그는 당시 감독이었던 김명성의 승인을 받아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했다.
[프로 1군 데뷔]
펠릭스 호세의 징계로 인해 1군으로 콜업되었고, 그 날 대타로 타석에 들어서며 프로 데뷔 첫 경기를 치렀다.
팀이 8경기를 남겨 놓은 상태에서 배영수 폭행 사건으로 펠릭스 호세가 징계를 받아 남은 경기에 나설 수 없게 되자, 우용득 감독 대행은 2001년 9월 19일에 펠릭스 호세를 말소하고 그를 1군으로 콜업했다. 그는 1군에 올라온 그 날 대타로 타석에 들어와서 1군 데뷔전을 치렀다.
2001년 9월 20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데뷔 첫 안타를 기록했다.
2002
2002년 당시 감독이었던 백인천으로부터 체중 감량을 명령받아 무리한 훈련 중에 무릎 부상을 당했다.
2005
2005년에는 올스타전 MVP를 수상했다.
2006
[KBO 역대 2번째 타자 트리플 크라운 달성]
강병철 감독 부임 후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며 타율, 안타, 홈런 부문에서 1위를 차지, KBO 역대 2번째 타자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득점권 타율과 장타율에서도 1위를 기록했으며 1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2006년에 강병철이 감독으로 부임하며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06년에 타율, 안타, 홈런 부문에서 1위를 해 이만수 이후 KBO 리그 역대 2번째 타자 부문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했다. 득점권 타율은 0.390로 가장 높았고 장타율 부문에서도 1위를 했다. 이 덕분에 1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하지만 정규 시즌 MVP 투표에서는 류현진에게 밀려 2위에 그쳤다.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동메달]
강민호와 함께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에 처음으로 선발되어 카타르 도하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여 동메달을 획득했다.
2006년 강민호와 함께 처음으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 같은 해 12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06년 아시안 게임에 출전했으며 동메달에 획득했다.
2007
2007년 4월 21일에 사직야구장 개장 이래 최초 장외 홈런을 기록했다. 2번째 사직야구장 장외 홈런도 그가 2010년 8월 20일에 기록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및 병역 특례]
송승준, 강민호와 함께 베이징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3할대 타율, 3홈런, 10타점으로 활약하며 금메달을 획득하고 병역 특례를 받았다.
2008년 송승준, 강민호와 함께 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 종목에 참가하는 국가대표팀의 일원이 되어 3할대 타율, 3홈런, 10타점으로 활약을 펼쳐 금메달을 획득하며 병역 특례를 받았다.
2009
[KBO 올스타전 홈런 더비 장외 홈런]
KBO 리그 올스타전 홈런 더비에서 장외 홈런을 기록하며 김창렬 매니저의 차량을 파손시키는 해프닝을 연출했다.
2009년 KBO 리그 올스타전 홈런 더비에서 장외 홈런을 쳐 냈다. 당시 KBS의 천하무적 야구단 팀이 왔었고, 그 중 한 멤버였던 김창렬의 매니저의 차가 그의 홈런 타구에 맞고 파손됐다. 행사 후 KIA 타이거즈에서 배상한다고 약속했다.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참가했으며 2할대 타율에 그쳤다.
2010
[9경기 연속 홈런 세계 신기록 달성]
8월 4일부터 14일까지 9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며 세계 신기록을 경신했다. 또한 이 기간 동안 16경기 연속 득점 한국 신기록을 세웠다.
2010년 8월 4일부터 8월 14일까지 9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며 세계 신기록을 경신했다. 또 이 경기에서 16경기 연속 득점으로 한국 신기록을 세웠다.
[KBO 최초 타격 7관왕 및 MVP 수상]
두산 베어스전에서 홍상삼 상대로 장외 홈런이자 시즌 40호 홈런을 기록했다. 도루를 제외한 타격 7개 부문에서 1위를 기록, KBO 리그 최초 타격 7관왕을 달성했고 정규 시즌 MVP를 수상했다.
2010년 8월 20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홍상삼을 상대로 장외 홈런이자 이승엽, 심정수 이후 7년만에 시즌 40홈런을 달성했다. 이후 도루를 제외한 타격 7개 부문(타율, 안타, 홈런, 타점, 득점, 장타율, 출루율)에서 1위를 기록하며 KBO 리그 최초 타격 7관왕을 차지했고, 2010년에는 정규 시즌 MVP를 수상했다.
2010년 아시안 게임 야구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2011
[KBO 타격 3개 부문 2연패]
3할대 타율, 최다 안타, 출루율 등 타격 3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며 해당 부문 2연패에 성공했다.
2011년 3할대 타율, 최다 안타, 출루율 등 타격 3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며 해당 부문 2연패에 성공했다. 홈런은 최형우에게 밀려 수상에 실패했다.
[오릭스 버팔로스 이적]
롯데 자이언츠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일본 프로 야구 오릭스 버팔로스와 2년 총액 최대 7억 6,000만 엔에 계약하며 해외 진출을 이뤘다.
2008년 시즌 후 처음으로 상위권에 진입한 일본 프로 야구의 팀인 오릭스 버팔로스는 리그 우승을 위해 그를 영입하려고 꾸준히 노력했으며 2011년 12월 5일에 계약했다. 계약 기간 2년, 계약금 2억엔, 연봉은 2억 5,000만엔, 인센티브는 연간 3,000만엔으로 총액 최대 7억 6,000만엔(약 111억원)이었다.
2012
[NPB 퍼시픽 리그 타점왕]
퍼시픽 리그 최하위 팀 소속임에도 정규 시즌 전 경기에 4번 타자로 출전하여 한국인 최초로 퍼시픽 리그 타점왕을 획득했고 1루수 부문 베스트 나인에 선정됐다.
2012년에 퍼시픽 리그 최하위였지만 그는 정규 시즌 전체 144경기에서 모두 4번 타자로 출전했고 올스타에 선정됐다. 월간 MVP 2회(5월, 7월), 올스타전 홈런더비 우승, 2할대 타율, 24홈런, 91타점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첫 시즌을 보냈다. 그리고 한국 프로야구 출신의 한국인으로는 첫 타이틀인 퍼시픽 리그 타점왕을 획득했고, 1루수 부문 베스트 나인에 선정됐다.
[NPB 데뷔 첫 홈런]
일본 진출 17경기 만에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의 투수 다케다 마사루를 상대로 첫 솔로 홈런을 쳐냈다.
2012년 4월 21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닛폰햄 투수 다케다 마사루를 상대로 솔로 홈런을 쳐 내 일본 진출 17경기 만에 첫 홈런을 기록했다.
2013
[소프트뱅크 호크스 이적]
오릭스 버팔로스에서의 성공적인 시즌 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2년 보장 총액 9억 엔에 계약하며 팀을 옮겼다.
2013년 12월에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계약했다. 보장액은 2년간 총액 9억엔이며 3년째에 그가 재계약 선택권을 갖는 조건으로 계약했다.
2014
[NPB 퍼시픽 리그 우승]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소속으로 오릭스 버팔로스와의 치열한 경쟁 끝에 퍼시픽 리그 정규 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2014년 시즌에 오릭스 버팔로스와의 경쟁 끝에 퍼시픽 리그 정규 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2015
[한국인 최초 일본시리즈 MVP 수상 및 MLB 진출 선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끌고 한국인 최초로 일본시리즈 MVP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시즌 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진출을 선언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2015년 시즌에도 퍼시픽리그 정규 시리즈에서 우승했고, 팀이 일본 시리즈에 진출했으며 일본시리즈에서 2홈런을 포함한 활약으로 팀을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우승과 동시에 한국인 최초로 일본 시리즈 MVP에 선정됐고, 2015년 시즌 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MLB 진출을 선언했다.
[한일 통산 300홈런 달성]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솔로 홈런을 쳐내며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 통산 300홈런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2015년 5월 8일 라쿠텐 골든이글스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과의 경기에서 솔로 홈런을 쳐 내며 한일 통산 300홈런을 기록했다.
[2015 WBSC 프리미어 12 금메달]
2015년 WBSC 프리미어 12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 국제대회에서의 위용을 이어갔다.
2015년 WBSC 프리미어 12 야구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2016
[시애틀 매리너스 입단]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시애틀 매리너스와 스프링캠프 초청권을 포함한 1년 총액 400만 달러에 스플릿 계약을 맺고 꿈에 그리던 MLB 진출에 성공했다.
많은 팀과 입단 협상을 벌였지만 좀처럼 계약 소식이 전해지지 않다가 2016년 2월 3일 미국 메이저 리그의 팀인 시애틀 매리너스와 스프링캠프 초청권을 포함한 1년 총액 400만 달러(약 45억원)에 스플릿 계약을 맺었다.
[MLB 시범 경기 첫 홈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시범 경기에서 첫 홈런을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진입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2016년 3월 8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시범 경기에서 첫 홈런을 기록했다. 스플릿 계약으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MLB 진입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에도 시범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하며 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메이저 25인 로스터에 진입, 애덤 린드의 백업 1루수로 시즌을 시작했다.
[MLB 데뷔 첫 끝내기 홈런]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 끝내기 2점 홈런을 기록하며 메이저 리그 데뷔 첫 끝내기 홈런을 성공시켰다.
2016년 4월 14일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 끝내기 2점 홈런을 기록하며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MLB 2호이자 데뷔 첫 끝내기 홈런을 기록했다.
[MLB 데뷔 첫 두 자릿수 홈런]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 솔로 홈런과 3점 홈런을 연이어 터뜨리며 메이저 리그 데뷔 첫 두 자릿수 홈런을 달성했다.
6월 11일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 솔로 홈런과 3점 홈런을 기록하며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MLB 데뷔 첫 두 자릿 수 홈런을 기록했다. 오른손 대타 요원으로써 대단한 활약을 보여준 그는 주전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했지만 감이 떨어진 탓에 오히려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였다. 손목 부상을 기점으로 약점도 드러났다. 메이저 104경기에 나서서 14홈런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2017
[KBO 복귀 및 역대 FA 최고액 계약]
시애틀과의 계약 만료 후 롯데 자이언츠와 4년 총액 150억 원에 계약하며 6년 만에 친정팀으로 복귀했다. 이는 KBO 리그 역대 FA 최고 금액이었다.
시애틀과의 계약이 만료된 후 2017년 1월 24일 계약 기간 4년, 총액 150억원에 계약하며 6년만에 복귀했고, 이는 KBO 리그 역대 FA 최고 금액이었다. 복귀 후 강민호에 이어 주장이 됐다.
2020
[롯데 자이언츠 FA 잔류]
시즌 후 FA 자격을 취득하여 롯데 자이언츠와 2년 총액 26억 원에 다시 계약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2020년 시즌 후 FA 자격을 취득했고, 2년 총액 26억원에 잔류했다.
[KBO 통산 3000루타 달성]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팀 최초이자 KBO 리그 역대 16번째로 통산 3000루타를 기록하는 대업을 달성했다.
2020년 6월 2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팀 최초이자 KBO 리그 역대 16번째 통산 3000루타를 기록했다.
2021
2021년 한미일 통산 2700안타 달성
2022
마지막 FA 계약기간이 만료되던 2022년 시즌을 앞두고 당 시즌이 끝나면 현역에서 은퇴하겠다고 선언을 하였다.
[KBO 골든글러브 최고령 수상]
은퇴 시즌인 2022년, 지명 타자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며 40세 최고령 수상 기록을 세웠다.
2022년 시즌 후 지명 타자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40세 이대호, 골든글러브 최고령 수상…이승엽 기록 깼다)
[은퇴 경기 및 영구 결번 지정]
LG 트윈스와의 은퇴 경기 후반에 투수로 깜짝 등판하여 상대 타자 고우석을 잡아내며 데뷔 첫 홀드이자 마지막 홀드를 기록했다. 구단은 성대한 은퇴식을 열고 등번호 10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은퇴 경기였던 2022년 10월 8일 LG 트윈스 LG전 후반에 투수로 깜짝 등판해 상대 타자로 나온 고우석을 잡아내며 데뷔 첫 홀드이자 마지막 홀드를 기록했다. 2022년 시즌 후 지명 타자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구단에서는 경기가 끝난 후 성대한 그의 은퇴식을 열었고, 등번호 10번을 최동원에 이어 2번째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2024
[대한민국 퍼스트브랜드 대상 수상]
대한민국 퍼스트브랜드 대상 스포테이너 부문을 수상하며 은퇴 후에도 대중적 인기를 이어가고 있음을 입증했다.
2024년 대한민국 퍼스트브랜드 대상 스포테이너 부문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