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원

야구 선수, 투수, 코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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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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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선수, 투수, 코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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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O 리그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에서 활약한 한국 프로야구의 상징적인 투수. • 1994년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단일 시즌 40세이브를 기록한 전설. • 1996년 한국시리즈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며 불멸의 기록을 남김. • 선수 은퇴 후 투수코치 및 2군 감독으로 후진 양성에 기여. • 강렬한 카리스마와 승부 근성으로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베테랑 야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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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

[정명원 탄생]

KBO 리그에서 전설적인 투수로 이름을 날린 정명원 선수가 태어났습니다.

1989

[프로 입단 및 데뷔]

태평양 돌핀스에 2차 2라운드 지명으로 프로 입단, '마운드 신인 3총사'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11승을 기록,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빠른 직구와 포크볼을 주무기로 삼았으며, 팀은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아쉽게도 한국시리즈에는 오르지 못했습니다.

1990

[2년차 징크스와 부상]

2년차 징크스와 부상으로 인해 27.1이닝, 7점대 평균자책점으로 부진하며 시련을 겪었습니다.

1991

[성공적인 복귀]

부상에서 복귀하여 12승 6패, 2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1994

[역사적인 40세이브]

마무리 투수로 보직을 변경하여 KBO 리그 최초 40세이브 대기록을 달성하며 1점대 평균자책점과 함께 투수 부문 골든 글러브, 올스타전 미스터 올스타 MVP에 선정되었습니다.

팀의 첫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었습니다.

이 해 50경기에 등판하여 4승 2패를 기록했으며, 올스타전에서 3이닝 퍼펙트를 기록해 쏘나타2를 부상으로 받았습니다. 팀은 창단 첫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LG 트윈스에게 4전 전패로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1995

[마무리 활약 지속]

마무리 투수로서 1점대 평균자책점, 9승 7패, 16세이브를 기록하며 꾸준히 활약했습니다.

1996

[삼성전 빈볼 시비]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상대 팀의 빈볼에 대한 보복으로 양준혁과 이승엽에게 위협구를 던진 후 몸에 맞는 볼을 기록, KBO 상벌위원회로부터 10경기 출장 정지 및 벌금 처분을 받으며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6점차로 앞선 9회초, 마무리 투수였던 그가 자진 등판하여 이러한 행동을 보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삼성과 현대는 더욱 앙숙 관계가 되었으며, 그는 고위 간부로부터 금일봉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한국시리즈 노히트 노런]

팀이 1승 2패로 위기에 몰린 1996년 한국시리즈 4차전, 마무리 투수였던 그가 선발 등판하여 해태 타이거즈를 상대로 한국시리즈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습니다.

이는 침체된 팀 분위기를 단번에 반전시키는 결정적인 활약이었습니다.

당시 주전 포수 장광호가 부상으로 빠진 상황에서 무명 포수 김형남과 호흡을 맞추며 9이닝 무피안타, 3사사구, 9탈삼진을 기록했습니다. 비록 이 경기 승리에도 불구하고 팀은 6차전에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1997

[포크볼 위력 감소]

마무리 투수로 3점대 평균자책점, 2승 10패, 28세이브를 기록했으나, 주무기였던 포크볼의 위력이 서서히 쇠락하기 시작하며 불안한 모습을 자주 보였습니다.

1998

[최소 방어율 및 첫 우승]

팀의 주장으로 선임되며 선발 투수로 보직을 변경, 14승 8패와 함께 시즌 최소 방어율(1.86)을 달성하며 팀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승리 투수가 되었고, 우승 후에는 동고동락했던 동료 선수들과 영광을 함께하지 못해 아쉽다는 소감을 밝히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1999

[부진과 보직 변경]

시즌 초반 선발 투수로 3연패를 당하는 등 부진하여 마무리 투수로 보직을 옮겼으나 4점대 평균자책점, 5승 4패, 7세이브에 그쳤습니다.

2000

[두 번째 우승]

선발 투수로 5승 2패를 기록했으며, 팀이 두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선수 생활의 유종의 미를 거두었습니다.

2001

[성대한 은퇴식]

염경엽 선수와 함께 시즌 개막전에서 은퇴식을 갖고 13년간의 빛나는 프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2002

[현대 코치 경력 시작]

은퇴 후 현대 유니콘스의 2군 투수코치로 활동하며 유망주 육성에 힘썼고, 2007년에는 1군 코치로 승격했습니다.

2008

[히어로즈 코치 부임]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한 우리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에서 투수코치로 임명되었으며, 재활군 코치로도 활동했습니다.

2009년 재활군 코치로 임명된 후, 시즌 후 2군 투수코치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2011

[두산 베어스 코치]

김진욱 당시 두산 베어스 감독의 부름을 받아 투수코치로 자리를 옮겨 선수들에게 자신의 주무기였던 포크볼을 전수하는 등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2013

[두산 코치직 사퇴]

자신을 두산 코치로 불렀던 김진욱 감독이 프런트와의 불화로 해임되자, 이에 책임을 지고 두산 베어스 투수코치직에서 전격 사퇴했습니다.

2014

[kt 위즈 코치 이적]

김민재 코치와 함께 신생팀 kt 위즈로 이적하여 투수코치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2018

[kt 위즈 잔류군 코치]

kt 위즈에서 2군 투수코치를 거쳐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잔류군 투수코치로 활동했습니다.

2021

[KIA 코치 및 2군 감독]

KIA 타이거즈 투수코치로 부임했으며, 2022년에는 2군 감독, 2023년에는 투수코치와 잔류군 투수코치를 겸임하며 지도자 경력을 이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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