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한

야구선수, 야구코치, KBO 리그, 올림픽 메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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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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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선수, 야구코치, KBO 리그, 올림픽 메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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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롯데 자이언츠와 NC 다이노스에서 빛난 전설적인 투수. 2000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WBC와 아시안게임 메달 등 국제 무대에서도 활약했습니다. 특히 2005년 팀이 포스트시즌 미진출에도 MVP를 수상하며 KBO 최초 기록을 세웠습니다. 40세가 넘어 최고령 10승 투수 최고령 포스트시즌 선발승 등 수많은 최고령 기록을 세우며 불혹의 에이스로 불렸습니다. 은퇴 후 코치로서 NC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함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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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

손민한은 1975년 1월 2일 대한민국 부산직할시에서 태어났습니다.

1991

[부산고 주역]

부산고등학교 2학년으로, 제43회 화랑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염종석, 주형광 등과 함께 팀의 우승을 이끌며 잠재력을 드러냈습니다.

1992

[청소년 국가대표]

3학년 시절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 국가대표팀으로 선발되었으나 아쉽게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습니다.

1993

[고려대 진학]

고려대학교 체육교육학과에 진학하여 아마추어 야구 선수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1994

[국제대회 메달]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야구 국가대표로 은메달을 획득하며 국제 무대에서 첫 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같은 해 야구 월드컵에서도 은메달을 추가했습니다.

1995

[아마 MVP]

아마야구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하며 최고의 아마추어 선수로 인정받았습니다.

또한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와 하계 유니버시아드에서도 각각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1996

[올림픽 참가]

하계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로 출전하며 올림픽 무대를 경험했습니다.

[롯데 입단]

롯데 자이언츠에 계약금 5억원, 연봉 2천만원에 입단했습니다.

이는 당시 임선동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많은 계약금으로 큰 기대를 모았습니다.

1997

[롯데 1차 지명]

199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롯데 자이언츠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KBO 데뷔]

KBO 리그 데뷔전에서 해태 타이거즈를 상대로 구원 등판했으나 끝내기 폭투를 범해 패전 투수가 되는 아쉬운 시작을 보였습니다.

2000

[올림픽 동메달]

시드니 하계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팀이 동메달을 획득하는 데 기여하며 병역 혜택을 받았습니다.

같은 해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12승을 기록하며 기대에 부응했습니다.

2001

[다승/승률왕]

신윤호 선수와 함께 KBO 리그 최다승(15승, 선발로만 달성)과 승률왕 타이틀을 동시에 획득하며 리그 정상급 투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04

[트레이드 후 선발 전환]

박석진, 김대익 선수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노장진, 김승관 선수가 롯데에 입단하자 후반기부터 다시 선발 투수로 전향하여 9승을 기록했습니다.

2005

[MVP 석권]

KBO 리그 다승왕(18승), 평균자책점 1위, MVP, 골든 글러브 투수상을 싹쓸이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습니다.

특히,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상황에서 MVP를 수상한 것은 KBO 리그 최초의 기록이었고, 17선발승으로 선동열과 정규시즌 MVP 최다 선발승 타이기록을 세웠습니다.

2006

[WBC 및 아시안게임 메달]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야구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으며, 특히 미국전에서 선발 등판하여 승리투수가 되는 활약을 펼쳤습니다.

같은 해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도 동메달을 획득했습니다.

2007

[선수협 회장 선출]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정기총회에서 2008년부터 2009년까지 협회를 이끌 선수협회 회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2008

[선수협 활동]

선수협 회장으로서 현대 유니콘스 해체 저지를 위해 10억을 기탁하고, 도핑테스트 수용 합의를 이끌어냈습니다.

또한 장원삼 트레이드 사건에 대해 선수 트레이드 거부권 도입을 요구하며 선수 권익 보호에 앞장섰습니다.

2009

[WBC 주장으로 참가]

제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국가대표팀 주장으로 뽑혔으나, 어깨 컨디션 난조로 인해 결승전까지 단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해 팬들 사이에서 '실종설' 패러디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1군 복귀 승]

어깨 부상 등으로 7개월 만에 1군에 복귀하여 두산 베어스전에서 6이닝 무실점 쾌투로 팀의 영봉승을 이끌어냈습니다.

[통산 100승 달성]

한화 이글스전에서 역대 20번째로 개인 통산 세 자릿수 승리(100승)를 달성하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통산 100선발승 달성]

두산 베어스전에서 역대 11번째로 개인 통산 100선발승을 달성하며 선발 투수로서의 꾸준함을 입증했습니다.

[어깨 수술]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부터 좋지 않았던 오른쪽 어깨 관절에 대한 수술을 미국 LA 다저스 지정 병원에서 받았습니다.

2011

[선수협 사퇴 및 방출]

계속된 어깨 부상과 재활 실패로 결국 시즌 후 롯데 자이언츠에서 방출되었고, 선수협 간부의 비리 논란으로 선수협 회장직에서도 사퇴했습니다.

2013

[NC 신고선수 계약]

방출 후 신생 구단 NC 다이노스의 입단 테스트를 거쳐 연봉 5천만원에 신고선수 계약을 맺고 재기를 노렸습니다.

[KBO 6월 MVP 선정]

NC 다이노스 복귀 첫 달인 6월에 4경기 선발 등판하여 3승, 평균자책점 0.77을 기록하는 맹활약으로 KBO 리그 6월 MVP에 선정되었습니다.

[NC 1군 복귀승]

롯데 방출 후 4년 만에 NC 다이노스 소속으로 1군에 복귀하여 SK 와이번스전에서 선발 등판, 1,407일 만에 선발승을 거두며 화려한 재기를 알렸습니다.

[데뷔 첫 홀드]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홀드를 기록하며 새로운 역할을 소화했습니다.

[프로 첫 타석]

한화 이글스전에서 프로 데뷔 17년 만에 처음으로 타석에 들어섰으나 아쉽게 삼진 아웃당했습니다.

2014

[통산 1600이닝 달성]

SK 와이번스전에서 2이닝 1실점을 기록하며 역대 18번째로 개인 통산 1600이닝을 달성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통산 110승 달성]

KIA 타이거즈전에서 구원승을 거두며 역대 15번째로 개인 통산 110승을 달성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2015

[프로 선수 은퇴]

2015년 시즌을 끝으로 19년간의 빛나는 프로 야구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공식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최고령 선발승 기록]

한화 이글스전에서 6이닝 1실점으로 선발 승리를 기록하며 만 40세 3개월 3일의 나이로 송진우, 박철순에 이어 역대 3번째 최고령 선발 승리 투수가 되었습니다.

[통산 7000타자 및 110선발승]

두산 베어스전에서 역대 17번째로 개인 통산 7000타자 상대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이 경기 승리로 역대 최초 통산 110선발승을 달성하는 겹경사를 맞았습니다.

[통산 1700이닝 달성]

kt 위즈전에서 5이닝 4실점(2자책)을 기록하며 역대 19번째로 개인 통산 1700이닝을 달성하는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통산 120승 달성]

KIA 타이거즈전에서 시즌 8승이자 역대 13번째로 개인 통산 120승을 달성하는 기념비적인 기록을 세웠습니다.

[최고령 올스타 선정]

감독 추천 선수로 올스타전에 발탁되어 만 40세 6개월 16일의 나이로 KBO 리그 최고령 올스타전 투수가 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최고령 우완 선발 갱신]

두산 베어스전에서 만 40세 6개월 22일의 나이로 오른손 투수 최고령 선발 등판 기록을 갱신하며 건재함을 과시했습니다.

이는 송진우, 구대성에 이어 역대 세 번째 최고령 선발 등판 기록입니다.

[최고령 10승 투수 기록]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시즌 두 자릿수 승리(10승)를 달성하며 만 40세 8개월 9일의 나이로 역대 최고령 10승 투수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2008년 이후 7년 만의 10승이었습니다.

[PO 최고령 승리 기록]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 3차전에 선발 등판하여 승리 투수가 되었습니다.

이 승리로 만 40세 9개월 19일의 나이로 포스트시즌 최고령 선발 승리 투수 기록을 세웠고, 16년 만의 개인 포스트시즌 승리였습니다.

2016

[코치 경력 시작]

은퇴 후 곧바로 NC 다이노스의 유소년팀 코치로 활동을 시작하며 후배 양성에 힘썼습니다.

2017

[티볼 코치 활동]

김해대곡초등학교에 방문하여 티볼 코치로 활동하며 유소년 야구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2018

[수석/투수 코치]

NC 다이노스 수비코치였던 이동욱 감독이 승격되자 팀의 수석코치 겸 투수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습니다.

2019

[투수 코치 전념]

강인권 수석코치가 새롭게 영입되면서 투수코치 역할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2020

[코치로 한국시리즈 우승]

NC 다이노스가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하면서, 선수 시절에는 껴보지 못했던 우승 반지를 코치로서 획득하는 감격을 맛보았습니다.

2023

[부경고 코치 활동]

부경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코치로 활동하며 고교 야구 유망주 육성에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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