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덕
야구 선수, 감독, 투수, 코치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0:04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전설적인 투수이자 감독. 신고선수로 입단 후 무관의 투수왕으로 불리며 팀의 주축 투수로 활약.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이자 개인 통산 100승을 달성한 베테랑. 은퇴 후 코치와 감독으로 활동하며 한화 이글스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끔.
1965
동아대학교에 입학했지만, 1학년 때 어려워진 가정 환경과 무릎 관절염으로 인해 야구를 포기하고 대학을 자퇴하는 어려운 시간을 겪었다.
대구에서 태어나 대전으로 이주하여 대전천동초등학교에서 야구를 시작했고, 충남중학교를 거쳐 북일고등학교에서 김영덕 감독과 인연을 맺었다. 북일고 시절 포지션은 유격수였다.
1987
[빙그레 이글스 신고선수 입단]
병역을 마친 후 야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북일고 시절 은사였던 김영덕 감독의 주선으로 빙그레 이글스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동아대학교 중퇴 후 방위병으로 복무하며 병역을 마쳤고, 야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선수로서의 꿈을 이어가던 중 북일고 시절 은사였던 김영덕 감독의 주선으로 빙그레 이글스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1988
입단 다음 해인 정식 선수로 승격되며 프로 야구 선수로서의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했다.
KBO 리그 빙그레 이글스 소속으로 인천 숭의야구장에서 태평양 돌핀스와의 경기에 출장하며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1989
1989년 시즌을 마친 후, 전년도 최다 선발승 투수 한희민, 포수 김상국, 투수 송진우, 내야수 장종훈, 강석천 등과 함께 일본 다이에 호크스 추계 훈련에 참가하여 기량 향상을 꾀했다. 이는 당시 빙그레 이글스 선수들의 기량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90
[변화구 습득 및 주축 투수 도약]
일본 전지 훈련지에서 일본인 인스트럭터의 도움으로 여러 가지 변화구를 익히며 그 해 13승을 거둬 팀의 주축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1990년 시즌 전 일본 전지 훈련에서 일본인 인스트럭터의 도움으로 다양한 변화구를 익히며 한층 더 발전된 투구를 선보였다. 그 해 13승(8선발승)을 기록하며 팀의 주축 투수로 성장했다.
1991
[KBO 최다 선발승 기록 (16선발승)]
KBO 리그에서 16선발승으로 그 해 최다 선발승을 기록했으나, 개인 타이틀로는 인정받지 못했다. 이는 그가 '무관의 투수왕'으로 불린 이유 중 하나이다.
1991년, 총 16선발승을 기록하며 KBO 리그 전체 투수 중 최다 선발승을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인 개인 타이틀은 획득하지 못해 '무관의 투수왕'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이는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운이 따르지 않았던 그의 커리어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1999
1999년, 한화 이글스의 소중한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하며 팀의 일원으로서 빛나는 순간을 함께했다.
2000
[개인 통산 100승 달성 (프로 통산 14번째)]
프로 통산 14번째로 개인 통산 100승을 달성하며 KBO 리그의 전설적인 투수로 기록되었다.
2000년 8월 23일, KBO 리그 역사상 14번째로 개인 통산 100승을 달성하는 위업을 이루며 그의 뛰어난 투수 커리어를 확고히 했다.
2004
2004년 4월 27일, 대전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KBO 리그 선수로서의 마지막 경기를 치르며 그의 선수 커리어에 마침표를 찍었다.
2004년 10월 12일, 자유계약선수(FA) 자격으로 풀린 뒤 현역 은퇴를 공식 선언하며 17년간의 찬란했던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2005
2005년 시즌이 끝난 후 단행된 한화 이글스 코칭 스태프 정비에서 2군 투수코치로 임명되며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은퇴식 거행 및 스카우트 활동 시작]
개막 경기에 앞서 은퇴식을 거행했으며, 이후 한화 이글스의 스카우트로 활동을 시작하며 새로운 야구 인생을 열었다.
2005년 4월 5일, KBO 리그 개막 경기에 앞서 성대한 은퇴식을 치르고 마운드를 떠났다. 이후 한화 이글스의 스카우트로 활동하며 프로 야구에 대한 열정을 이어갔다.
2006
2006년 시즌 중반, 당시 플레잉 코치였던 지연규의 1군 합류와 발맞춰 한화 이글스 1군 투수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류현진에게 슬라이더 투구 전수]
2006년 시즌 후 열린 전지 훈련에서 당시 신인이던 류현진에게 슬라이더 투구를 전수하며 그의 성장에 큰 영향을 주었다.
2006년 시즌을 마친 후 진행된 전지 훈련에서, 당시 촉망받던 신인 투수 류현진에게 슬라이더 투구를 직접 전수하여 그의 투구 능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07
2007년 시즌 중반, 이상군 코치가 1군 투수코치로 승격됨에 따라 한화 이글스 재활군 코치로 보직을 변경하여 선수들의 재활을 도왔다.
2009
2009년 6월 22일, 위기에 빠진 한화 이글스의 코치진 개편에 따라 2군 투수코치에서 1군 투수코치로 이동하며 다시 한번 1군 마운드를 책임지게 되었다.
2012
2012년 시즌 중 한화 이글스의 수석코치로 승격되어 팀의 운영과 선수 지도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한화 이글스 감독 대행 임명 및 사임]
한대화 감독의 경질로 감독 대행을 맡아 남은 시즌을 치렀으나, 시즌 후 사의를 표명했다.
2012년 8월 28일, 한대화 감독의 성적 부진으로 인한 경질 후 한화 이글스의 감독 대행으로 임명되어 잔여 시즌을 지휘했다. 그러나 시즌이 끝난 후 감독직 사의를 표명했다. 임기는 2012년 10월 5일까지였다.
2013
[WBC 국가대표팀 투수코치 선임]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국가대표팀 투수코치로 선임되어 국제 무대에서 지도력을 발휘했다.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국가대표팀 투수코치로 선임되어 국제 대회에서 한국 야구의 마운드를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LA 다저스 코치 연수 및 한화 프런트 복귀]
WBC 이후 류현진의 해외 진출과 함께 LA 다저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고, 연수 후 한화 이글스 프런트로 복귀했다.
2013년 WBC 이후, 류현진 선수의 해외 진출에 맞춰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으며 선진 야구를 경험했다. 연수를 마친 후에는 한화 이글스의 프런트(전력분석원)로 복귀하여 구단 운영에 참여했다.
2014
[두산 베어스 2군 총괄 코치 영입]
두산 베어스에 2군 총괄 코치로 영입되며 새로운 팀에서 지도자 경력을 이어갔다.
2014년 12월 4일, 두산 베어스에 2군 총괄 코치로 영입되어 한화 이글스를 떠나 새로운 팀에서 지도자로서의 활동을 재개했다.
2015
2015년 김태형 감독이 두산 베어스의 감독으로 부임한 후, 1군 투수코치로 승격되어 팀의 투수진을 지도하는 핵심 역할을 맡게 되었다.
2016
2016년부터 2017년까지 두산 베어스에서 수석코치 겸 투수코치를 역임하며 팀의 전력 강화와 안정적인 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2018
2018년부터 한화 이글스의 감독으로 공식 선임되며, 오랜 시간 몸담았던 친정팀으로 돌아와 팀의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한화 이글스 감독 부임 첫 해, 팀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쾌거를 달성하며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이는 한화 이글스 팬들에게 큰 기쁨을 안겨주었다.
2020
[한화 이글스 감독직 자진 사퇴 (14연패 책임)]
팀 최초 14연패에 빠진 후 감독직에서 자진 사퇴하며 책임을 졌다.
2020년 6월 7일, 팀이 구단 역사상 최초로 14연패라는 극심한 부진에 빠지자,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한화 이글스 감독직에서 자진 사퇴를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