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태
야구 선수, 투수, 코치, 해설위원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19:56
정민태는 대한민국 야구계의 전설적인 인물로 다음과 같은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 KBO 리그 20세기 마지막 20승 투수이자 21연승 세계 신기록 보유자. * 한국시리즈 MVP 2회 다승왕 3회 승률왕 1회 수상에 빛나는 특급 에이스. *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 진출과 KBO 성공적 복귀. * 은퇴 후 투수코치 및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발히 활동하며 야구 발전에 기여 중.
- 프로 지명 거절
- 아마야구 국제대회 우승
- 아마야구 MVP & MLB 관심
- 병역 비리 혐의
- 신인 최고 몸값 계약
- 프로 데뷔전
- 재기 및 KS 진출 기여
- 현대 유니콘스 합류
- 올스타전 부정 투표 논란
- 한국시리즈 준우승
- 현대 유니콘스 첫 승
- 2년 연속 연봉 100% 인상
- 팀 MVP 선정
- 정규리그 우승 주역
- 첫 월간 MVP 수상
- 한국시리즈 MVP 등극
- 첫 골든글러브 수상
- 팀 내 최고 연봉 계약
- 20세기 마지막 20승 투수
- 日 진출 불발 논란
- MLB 사무국 관심
- 구단 요구액 논란
- 골든글러브 2년 연속 수상
- 다승왕 2년 연속 수상
- 플레이오프 MVP 수상
-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 요미우리 자이언츠 입단
- 일본 리그 부진 및 복귀
- 투심 연마로 부활
- 세계 신기록 21연승
- 다승 승률왕 및 KS 우승
- 최고 연봉 계약 및 다관왕
- 세 자릿수 선발승 달성
- '먹튀' 오명과 연봉 삭감
- 부상 및 부진 시작
- KIA 타이거즈 이적
- 선수 경력 마지막 경기
- 선수 은퇴 선언
- 히어로즈 투수코치 부임
- 목동야구장 은퇴식
- 롯데 자이언츠 이적
- 한화 이글스 코치 부임
- SPOTV 해설위원 활동
- 삼성 라이온즈 코치 부임
1970
1988
[프로 지명 거절]
연고 팀 태평양 돌핀스의 1차 지명을 받았지만, 프로 입단을 거절하고 한양대학교 체육학과에 진학하며 엘리트 야구의 길을 선택했다.
1989
[아마야구 국제대회 우승]
아마추어 국가대표팀의 에이스로 국제 야구 연맹(IBA) 회장배 아마추어 야구 대회에서 한국의 우승을 이끌며 투수 부문 베스트 9에 선정되었다.
1990
[아마야구 MVP & MLB 관심]
13승 3패, 1.26의 압도적인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그 해 아마추어 야구 대회 MVP에 등극했다.
심지어 LA 다저스에서 입단 제의를 받을 정도로 그의 재능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았다.
1991
[병역 비리 혐의]
태평양 돌핀스 동료들과 함께 구단주가 허위 진단서로 병역을 면제시켰다는 혐의에 휘말려 수감 위기에 처하는 큰 시련을 겪었다.
1992
[신인 최고 몸값 계약]
집행 유예로 풀려난 후, 1억 7,200만원이라는 당시 신인 최고 몸값에 태평양 돌핀스에 정식 선수로 입단하며 프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프로 데뷔전]
KBO 리그 태평양 돌핀스 소속으로 쌍방울 레이더스와의 경기에서 선발 등판하며 꿈에 그리던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1994
[재기 및 KS 진출 기여]
오랜 재활 끝에 서서히 재기하며 팀이 인천 연고 팀 중 최초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데 핵심적인 기여를 했다.
1995
[다패 타이 기록]
시즌 8승을 기록했지만, 동시에 13패를 기록하며 한화 이글스의 한용덕, 구대성과 함께 리그 다패 공동 1위를 기록하는 아쉬운 시즌을 보냈다.
1996
[올스타전 부정 투표 논란]
올스타전 베스트 10에 이름을 올렸지만, 팀의 조직적인 부정 투표 의혹이 제기되어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뛰어난 시즌 성적]
시즌 15승 9패, 2점대 평균자책점, 127탈삼진이라는 뛰어난 성적으로 다승 6위에 오르며 팀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현대 유니콘스 첫 승]
현대 유니콘스 소속으로 치른 개막전에서 선발 등판하여 첫 승을 거두며 팀의 새 시대를 열었다.
[2년 연속 연봉 100% 인상]
9,000만원에 재계약하며 2년 연속 연봉 100% 상승이라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다.
1997
[2년 연속 개막전 승리]
1996년에 이어 2년 연속 개막전 선발 투수로 나서 승리를 거두며 팀의 기둥 역할을 했다.
1998
[첫 월간 MVP 수상]
4월에 4승을 기록하며 이승엽과 함께 KBO 리그 첫 월간 MVP(투수 부문)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한국시리즈 MVP 등극]
LG 트윈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 1, 4차전 선발승과 6차전 세이브를 기록하며 팀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끌었고, 한국시리즈 MVP의 영광을 안았다.
1999
[팀 내 최고 연봉 계약]
1억 5,200만원에 재계약하며 정명원에 이어 팀 내에서 두 번째로 높은 연봉을 받는 선수가 되었다.
[20세기 마지막 20승 투수]
대망의 20승 고지를 밟으며 다승왕을 차지했다.
이는 KBO 리그 역사상 20세기 마지막 20승 투수라는 빛나는 기록으로 남았다.
20승을 기록하며 다승왕을 차지했으며, 이는 KBO 리그의 20세기 마지막 20승 투수라는 빛나는 기록으로 남았다. 당시 정규 시즌 MVP는 이승엽에게 돌아갔다.
[日 진출 불발 논란]
일본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영입 관심에도 불구하고, KBO가 해외 진출 규정을 이유로 허락하지 않아 일본 진출이 불발되었다.
[MLB 사무국 관심]
메이저 리그 커미셔너 사무국에서 그와 정민철의 신분 조회를 요청하며 MLB 진출 가능성이 언급되는 등 국제적인 관심을 받았다.
[골든글러브 2년 연속 수상]
1998년에 이어 2년 연속으로 KBO 골든 글러브 투수 부문을 수상하며 리그 최고의 투수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2000
[다승왕 2년 연속 수상]
207이닝을 던지며 18승, 3점대 평균자책점, 153탈삼진을 기록하며 임선동, 김수경과 함께 다승왕에 올라 2년 연속 다승왕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플레이오프 MVP 수상]
플레이오프에서 1차전과 4차전에 선발 등판하여 모두 승리하며 플레이오프 MVP를 수상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시드니 올림픽 야구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팀의 동메달 획득에 기여하며 국가대표 투수로서의 역량을 보여주었다.
2001
[요미우리 자이언츠 입단]
주니치 드래건스, 오릭스 블루웨이브 등 일본 야구팀들의 관심 속에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3년 계약에 이적료 약 5억 5천만 엔, 계약금 1억 5천만 엔, 연봉 1억 3천만 엔으로 당시 최고 대우를 받으며 일본으로 진출했다.
[코치와의 불화]
요미우리 자이언츠 입단 첫 해부터 수석코치 겸 투수코치였던 가토리 요시타카와의 불화로 팀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2002
[일본 리그 부진 및 복귀]
2001년부터 2002년까지 일본 리그 적응에 실패하며 통산 27경기 등판 2승 1패, 6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한 채 KBO 리그 현대 유니콘스로 복귀를 결정했다.
2003
[투심 연마로 부활]
KBO 복귀 후 투심을 새로 연마하고 슬라이더, 직구, 특유의 슬로 커브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며 리그 최정상급 투수로 화려하게 재림했다.
[세계 신기록 21연승]
2000년 기록에 이어 선발 21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세계 신기록을 달성하며 KBO 리그에 또 하나의 역사를 썼다.
[다승 승률왕 및 KS 우승]
17승 2패, 3점대 평균자책점, 122탈삼진을 기록하며 다승 1위, 승률 1위를 차지했고, 팀의 정규 리그 우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한국시리즈 MVP 2회 수상]
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 1, 4, 7차전에 선발 등판하여 모두 승리를 거두며 팀의 3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견인했다.
특히 7차전에서는 허벅지 통증에도 불구하고 완봉승을 펼치며 1998년에 이어 두 번째 한국시리즈 MVP에 선정되었다.
[최고 연봉 계약 및 다관왕]
1999년, 2000년에 이어 3번째 다승왕, 데뷔 첫 승률왕, 그리고 KBO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이러한 활약을 인정받아 당시 프로 야구 선수 중 역대 최고 연봉인 7억 4,000만원에 계약했다.
2004
['먹튀' 오명과 연봉 삭감]
7승 14패, 5점대 평균자책점으로 극심한 부진을 겪었으며 한국시리즈에서도 부진했다.
이로 인해 '먹튀'라는 오명을 얻었고, 이후 연봉이 대폭 삭감되는 수모를 겪었다.
2005
[부상으로 인한 침체기]
2007년까지 3년 동안 부상과 재활을 반복하며 마운드에 제대로 서지 못했고, 결국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10패만 기록하는 힘든 시기를 보냈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년 동안 부상과 재활을 반복하며 마운드에 제대로 서지 못했고, 결국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10패만 기록하는 힘든 시기를 보냈다.
2008
[KIA 타이거즈 이적]
소속팀 현대 유니콘스 해체 후 새로 창단한 우리 히어로즈와의 협상이 결렬되며 FA로 풀렸다.
이후 연봉 7,000만원에 계약하며 16년 만에 처음으로 KIA 타이거즈로 이적했다.
[선수 경력 마지막 경기]
KIA 타이거즈 소속으로 한화 이글스전에 시즌 첫 선발 등판했으나 3.2이닝 6실점하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
이 경기가 2008년 시즌 첫 경기이자 그의 현역 선수 생활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히어로즈 투수코치 부임]
김시진 감독의 요청을 수락하여 연봉 6,000만원에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 투수코치로 계약하며 새로운 야구 인생을 시작했다.
2009
[목동야구장 은퇴식]
코치로 활동하던 중 목동야구장에서 성대한 은퇴식을 가졌다.
태평양 돌핀스와 현대 유니콘스 시절의 동료 및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하여 의미를 더했다.
2013
2014
[한화 이글스 코치 부임]
롯데 자이언츠에서 보직 변경과 재계약 실패를 겪은 후, 한화 이글스의 투수코치로 부임하며 다시 현장으로 복귀했다.
2020
2023
[SPOTV 해설위원 활동]
SPOTV의 야구 해설위원으로 영입되어 1시즌 동안 해설가로 활동하며 팬들에게 야구의 재미를 전달했다.
2024
[삼성 라이온즈 코치 부임]
SPOTV 해설위원 활동을 마치고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코치로 영입되며 다시 프로야구 현장으로 복귀했다.
[삼성 2군 코치 보직 변경]
삼성 라이온즈 1군 투수코치로 활동 중 팀이 전반기를 5연패로 마감하자, 전반기 종료 후 2군 투수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