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주 (야구인)

야구 선수, 내야수, 국가대표, 올림픽 메달리스트,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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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12- 00: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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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주 (야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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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목곰 오월동주 별명으로 불린 KBO 리그 두산 베어스의 전설적인 3루수. - 2003년 타격왕 2007년 출루율왕 다수의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며 KBO를 대표하는 강타자로 자리매김했다. - 잠실 야구장 개장 이래 최초의 장외 홈런을 기록하며 그의 압도적인 파워를 증명했다. - 1998년 방콕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며 국가대표로서도 빛나는 활약을 펼쳤다. - 개인사 논란에도 불구하고 KBO 통산 1000타점 이상을 기록하며 한국 야구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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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

[야구인 김동주 탄생]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로 이사한 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이후 배명중학교와 배명고등학교를 거쳐 야구 선수로서의 기량을 키웠다.

1997

[국가대표 첫 출전]

고려대학교 야구부 4학년 시절, 1997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출전하며 국제 무대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렸다.

1998

[OB 베어스 입단]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98년 OB 베어스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하며 프로 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김인식 감독의 지지 아래 신인 시즌 전반기에는 주로 외야수로 활약하다 후반기부터 본격적으로 3루수를 맡았다.

[방콕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야구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대한민국 팀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KBO 데뷔 및 첫 타점]

KBO 리그 해태 타이거즈전에서 프로 데뷔 경기를 치렀으며, 동시에 개인 통산 첫 타점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프로 첫 발을 내디뎠다.

1999

[두산 베어스 소속]

소속팀 OB 베어스가 '두산 베어스'로 구단명을 변경하며 두산 베어스 선수가 되었다.

이후 그는 두산 베어스의 상징적인 선수로 활약하게 된다.

2000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2000 시드니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팀의 동메달 획득에 크게 기여했다.

[첫 골든 글러브 수상]

프로 데뷔 후 첫 골든 글러브(3루수 부문)를 수상하며 KBO 리그 정상급 3루수임을 입증했다.

[잠실 야구장 최초 장외 홈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에밀리아노 기론을 상대로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개장 이래 '''최초'''의 장외 홈런을 쳐냈다.

이 역사적인 홈런을 기리는 기념비가 현재 잠실 야구장 외곽에 세워져 있다.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야구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대한민국 팀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하며 다시 한번 아시아 최고임을 입증했다.

2003

[KBO 타격왕 등극]

2003년 KBO 리그에서 압도적인 활약으로 .342의 타율을 기록하며 생애 첫 타격왕 타이틀을 획득했다.

[골든 글러브 수상 (2003)]

2003년에도 골든 글러브(3루수 부문)를 수상하며 리그 최고의 3루수로 인정받았다.

[아시아 야구 선수권 동메달]

2003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야구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팀의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2004

[첫 번째 은퇴 소동]

2015년 공식 은퇴 이전인 2004년에 한 차례 은퇴를 선언했다가 번복하는 소동이 있었다.

당시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전처와의 이혼 및 양육비 갈등을 주요 이유로 언급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김동주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낸 5살 연상의 부인과 결혼했으나, 어린 아들과 임신 중인 아이를 두고 이혼했다. 전처는 그가 외도를 했다고 주장했으며, 김동주 본인도 결혼 생활 자체를 후회했다고 언급했다. 연봉의 50%를 양육비로 지원하기로 한 합의가 은퇴 선언의 이유라는 추측과 함께 그의 무책임함에 대한 비난이 있었다. 특히 전처가 양육권을 선택하고 양육비 청구를 포기하자, 김동주가 아이들을 만나지 않아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2006

[샌디에이고 WBC 동메달]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야구 국가대표로 선발되었으나, 아시아 예선 도중 부상으로 인해 아쉽게 정성훈 선수와 교체되었다.

대한민국 팀은 이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2007

[KBO 출루율왕]

2007년 KBO 리그에서 .457의 높은 출루율을 기록하며 생애 첫 출루율왕 타이틀을 획득했다.

[골든 글러브 수상 (2007)]

2007년 골든 글러브(지명타자 부문)를 수상하며 뛰어난 타격 능력을 다시 한번 인정받았다.

[통산 700타점 달성]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5회 중월 2점 홈런을 터뜨리며 개인 통산 700타점을 달성했다.

이는 KBO 역대 19번째 기록이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대한민국 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금메달 획득의 주역이 되었다.

[골든 글러브 수상 (2008)]

2008년 골든 글러브(지명타자 부문)를 수상하며 리그 최고 지명타자로서의 위용을 과시했다.

[통산 800타점 달성]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1회 2타점 중전 적시타를 기록하며 개인 통산 800타점을 달성했다.

이는 KBO 역대 14번째 기록이었다.

2009

[두산 주장직 이양]

2009 시즌 후 오랜 기간 '두목곰'이라는 별명처럼 팀을 이끌었던 주장직을 손시헌 선수에게 넘기며 리더십을 발휘했다.

[잠실 통산 100호 홈런]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릭 바워를 상대로 잠실 야구장 통산 세 자릿수 홈런(100호)을 기록하며 잠실을 대표하는 홈런타자로 등극했다.

[통산 900타점 달성]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1회 좌월 3점 홈런을 터뜨리며 개인 통산 900타점을 달성했다.

이는 KBO 역대 10번째 기록이었다.

2011

[통산 1000타점 달성]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5회 3타점 우중간 적시타를 기록하며 개인 통산 1000타점을 달성했다.

이는 KBO 역대 6번째 기록으로, 그의 꾸준함과 클러치 능력을 보여주었다.

2012

[FA 재계약]

FA를 선언한 후 3년 총액 32억원에 두산 베어스와 재계약했다.

이는 2012년 FA 선수 중 가장 늦게 성사된 계약으로 화제가 되었다.

[햄스트링 부상]

2012 시즌 중 후반기에 햄스트링 부상으로 인해 아쉽게 시즌을 조기에 마감해야 했다.

2013

[마지막 1군 경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가 KBO 리그 1군 무대에서의 마지막 출장이 되었다.

이후 사실상 무기한 2군행을 통보받고 1군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2014

[보류 선수 명단 제외]

두산 베어스의 보류 선수 명단에서 제외되며 사실상 팀을 떠나게 되었다.

그는 현역 연장 의지를 보였으나 쉽지 않은 상황에 직면했다.

2015

[현역 은퇴 선언]

kt 위즈 이적을 추진했으나 협상이 결렬되었고, 다른 팀을 찾지 못하면서 결국 17년간의 화려했던 프로 야구 선수 생활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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