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범

야구 선수, 야구 지도자, 야구 해설가

num_of_likes 117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4- 04:40:15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이종범
연혁 피인용 수 1
야구 선수, 야구 지도자, 야구 해설가
report
Edit

‘야구 천재’ ‘바람의 아들’ ‘종범신’ 등 수많은 별명을 가진 대한민국 야구의 살아있는 레전드. KBO 리그와 일본 프로 야구를 오가며 활약했으며 KBO 최초 3할-30홈런-30도루 최소 경기 500도루 1회 선두타자 홈런 1위 등 전무후무한 기록들을 세웠습니다. 2006년 WBC 4강 신화의 주역으로서 한국 야구사에 한 획을 그은 유틸리티 플레이어입니다.

연관 연혁
주요사건만
최신순

1970

[이종범 탄생]

야구 천재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 태어나다.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야구 선수 이종범이 태어났다.

1989

[국가대표팀 첫 발탁]

건국대학교 1학년 재학 중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처음 발탁되어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건국대학교 1학년이던 이종범이 6월에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에 발탁되며 국제 대회 경력을 시작했다.

[국제 대회 첫 출전]

푸에르토리코 산후안에서 열린 1989년 인터콘티넨털컵에 참가하여 국제 대회에 데뷔했다.

8월 푸에르토리코 산후안에서 열린 1989년 인터콘티넨털컵에 참가하여 국제 대회에 처음 출전했고, 팀은 4위를 기록했다.

[아시아 선수권 공동 준우승]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린 1989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일본과 공동 준우승을 차지했다.

9월 자국 서울에서 열린 1989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일본의 뒤를 이어 중화 타이베이와 공동 준우승을 차지했다.

[IBA 회장배 우승]

중화민국 타이베이에서 열린 국제 야구 연맹 회장배에 참가하여 대표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11월 중화민국 타이베이에서 열리는 국제 야구 연맹(IBA) 회장배에 참가하여 대표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1990

[국가대표 최초 사이클링 히트]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1990년 야구 월드컵 멕시코전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로는 최초로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했다.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1990년 야구 월드컵 예선 A조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로는 최초로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 대회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3위에 올랐다.

[아시안 게임 야구 은메달 획득]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1990년 아시안 게임 야구 종목에 참가하여 대한민국팀이 일본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10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1990년 아시안 게임에 참가했다. 해당 대회 야구 종목은 시범 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대한민국팀은 일본의 뒤를 이어 2위에 올랐다.

[IBA 회장배 3위]

타이베이에서 열린 국제 야구 연맹 회장배 대회에 참가하여 팀이 3위의 성적을 거뒀다.

11월 타이베이에서 열린 국제 야구 연맹 회장배 대회에 참가하여 3위의 성적을 거뒀다.

[체육훈장 기린장 수훈]

1990년 야구 월드컵 동메달 획득 공로로 대표팀 동료 선수들과 함께 체육훈장 기린장을 받았다.

1990년 야구 월드컵에서 3위에 오른 공로를 인정받아 1991년에 대표팀 동료 선수들과 함께 체육훈장 기린장을 수훈했다.

1991

[IBA 회장배 전승 우승]

서울에서 열린 국제 야구 연맹 회장배 대회에 참가하여 대한민국 대표팀이 6경기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6월 서울에서 열린 국제 야구 연맹 회장배 대회에 참가했으며 대한민국 대표팀은 6경기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인터콘티넨털컵 메달 실패]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1991년 인터콘티넨털컵에 참가했으나, 예선에서 메달 결정전 진출에는 실패했다.

7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1991년 인터콘티넨털컵에 참가했고 예선에서 6승 3패의 기록으로 메달 결정전 진출에는 실패했다.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1990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1992년 하계 올림픽 야구 예선 겸함)에 참가하여 3위를 기록, 올림픽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다.

9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1990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다. 이 대회는 1992년 하계 올림픽 야구 예선을 겸한 대회로 대표팀은 일본과 중화 타이베이의 뒤를 이어 3위를 하면서 올림픽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다.

1993

[단일 경기 최다 도루 신기록]

단일 경기 최다 도루 6개를 기록하며 '바람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입증했다.

1993년 KBO 리그에서 단일 경기 최다 도루 6개를 기록하는 놀라운 스피드를 보여주며 야구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바람의 아들' 프로 데뷔]

해태 타이거즈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으며, KBO 리그에 데뷔하여 공수주에서 화려한 플레이를 펼치며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1993년 해태 타이거즈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으며, 4월 10일 광주 LG전에서 KBO 리그에 데뷔했다. 입단 초기부터 내야수로서 공수주에서 화려한 플레이를 펼쳐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신인 한국시리즈 MVP]

1993년 한국시리즈에서 맹활약하며 신인으로는 김정수 이후 두 번째로 한국시리즈 MVP에 올랐다.

1993년 한국시리즈에서 맹활약해 신인으로는 김정수 이후 2번째로 한국시리즈 MVP에 올랐다. 아쉽게도 신인왕은 라이벌 팀 삼성 라이온즈의 양준혁에게 밀려 수상에는 실패했다.

[가수 데뷔(?)]

1993년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선배 선동열, 가수 양수경과 함께 프로젝트 그룹 'Two & One'을 결성해 앨범을 냈다. 이는 해태 구단의 우승 보너스 마련을 위한 이벤트였다.

1993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이후 같은 팀 선배였던 선동열, 가수 양수경과 함께 프로젝트 그룹 'Two & One'을 결성해 앨범을 냈다. 그는 MBC의 예능 프로그램인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해 당시 해태 구단 사정이 넉넉하지 못해 우승 보너스를 주기 위해 이벤트 성으로 당시 해태 타이거즈의 감독이었던 김응용 몰래 제작했지만 의도와 달리 욕을 먹었다고 말했다.

1994

[24연속 도루 성공 신기록]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24연속 도루 성공을 기록하며 KBO 리그 역대 시즌 최다 기록을 세웠다.

1994년 6월 1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24연속 도루 성공을 기록하며 종전 이호성 선수의 23도루 기록을 넘어섰다.

[KBO 리그 최강자로 군림]

KBO 리그 정규 시즌 MVP, 타격왕, 도루왕(84개로 역대 시즌 최다 기록)을 차지했으며, 단일 시즌 최다 안타(196개), 100경기 이상 시즌 최고 타율(0.393)을 기록하는 등 압도적인 시즌을 보냈다.

1994년 KBO 리그에서 84도루로 역대 시즌 최다 기록을 세웠고, 3할대 후반 타율, 196안타를 기록하며 KBO 리그 타격왕과 정규 시즌 MVP를 모두 차지했다. 이외에도 득점 1위, 안타 1위, 출루율 1위, OPS 1위 등 리그를 지배하는 압도적인 활약을 펼쳤다.

1997

[300도루 달성]

해태 소속으로 현대와의 경기에서 역대 3번째로 300도루를 달성했다.

1997년 8월 24일 해태 소속으로 광주에서 현대와의 경기에서 역대 3번째로 300도루를 달성했다. 당시 27세 9일이었다.

[KBO 최초 30-30 클럽 가입]

KBO 리그에서 최초로 30홈런-30도루 클럽에 가입하며 호타준족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1997년 KBO 리그에서 30홈런 64도루 타율 0.324를 기록하며 프로야구 최초로 3할-30홈런-30도루를 달성했다. 득점, 도루에서 리그 1위를 차지했다.

[일본 진출, 외야수 전향]

1997년 시즌 후 일본 주니치 드래건스로 이적하여 내야수(유격수)에서 외야수로 전향했다.

1997년 시즌 후 일본 주니치 드래건스로 이적하면서 내야수(유격수)였던 수비 위치를 외야수로 전향했다. 이종범은 '대한민국의 이치로'라는 평가를 받으며 큰 기대를 모았다.

1998

[일본 생활 부진의 시작, 팔꿈치 부상]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에서 팔꿈치에 공을 맞아 골절상을 당하며 부진의 늪에 빠졌다.

6월 23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에서 투수 가와지리 데쓰로가 던진 공에 팔꿈치를 맞아 골절상을 당했다. 이후 9월에 복귀했으나 67경기 출전에 그치며 성적 부진과 심각한 스트레스, 원형 탈모증까지 겪었다.

2001

[친정팀 복귀 (KIA)]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대한민국으로 복귀하여, 해태 타이거즈를 인수한 KIA 타이거즈로 이적했다.

일본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미국행을 추진했으나, 당시 해태 타이거즈 사장이었던 정기주의 설득으로 대한민국 복귀를 결정했다. 마침 현대자동차그룹이 해태 타이거즈를 인수하여 KIA 타이거즈로 재창단한 직후인 7월에 대한민국으로 복귀했다.

2002

[아시안 게임 금메달 획득]

부산에서 열린 2002년 아시안 게임에서 국가대표팀 주장을 맡아 타율 0.353을 기록하며 금메달 획득에 크게 기여했다.

프로 선수들의 국제 대회 참가가 허용된 후인 2002년 부산에서 열리는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다시 국가대표에 발탁되었다. 이 대회에서 대표팀 주장을 맡았고 타율 0.353, 4득점, 2도루의 기록을 내면서 대표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2003

[단일 시즌 최다 2루타 신기록]

단일 시즌 최다 2루타 43개를 기록하며 장타력까지 겸비한 선수임을 입증했다.

2003년 KBO 리그에서 단일 시즌 최다 2루타 43개를 기록하며 또 하나의 개인 기록을 세웠다.

[최고령 20-20 클럽 가입]

KBO 리그에서 20홈런, 50도루를 기록하며 당시 최고령 20-20 클럽 가입 및 2003년 시즌 도루 부문 최고 기록을 세웠다.

2003년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5회 2사 0-0 상황에서 1점 홈런을 기록하며 20-20 클럽에 가입했다. 그 해 20홈런, 50도루를 기록했고, 50도루는 2003년 시즌 도루 부문 최고 기록이었다. 이 기록은 당시 최고령 20-20 클럽 가입이었다.

2006

[WBC 영웅, 대회 올스타 선정]

2006년 WBC 국가대표로 뽑혀 주장을 맡았고, 일본전 8회 초 후지카와 규지 상대로 2타점 2루타 등 맹활약하며 대회 후 베스트 9에 뽑혔다. 팀은 3위에 올랐다.

2006년 WBC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주장을 맡았다. 일본 대표팀과의 예선전 8회 초에 일본의 마무리 투수 후지카와 규지를 상대로 2타점 2루타를 기록하는 등 발군의 활약을 보였다. 대한민국팀은 이 대회에서 3위에 올랐고, 이종범 자신은 대회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2008

[KBO 통산 1500안타]

KBO 리그 역대 8번째로 통산 1500안타 기념패를 수상했다.

2008년 6월 3일 KBO 리그 역대 8번째로 1500안타 기념패를 수상하며 꾸준함을 입증했다.

2009

[500도루-1000득점 대기록 수립]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최소 경기(1439경기) 통산 500도루(역대 2번째)와 통산 네 자릿수 득점(1000득점, 역대 4번째)을 달성했다.

2009년 6월 5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최소 경기(1439경기) 통산 500도루(역대 2번째)와 통산 네 자릿수 득점(1000득점, 역대 4번째)을 달성하며 KBO 리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그는 이 기록 달성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기리기 위해 기록 달성을 미루는 모습을 보였다.

[KIA 타이거즈 한국시리즈 우승 견인]

2009년 시즌 부활하여 팀의 10번째 우승이자 개인 4번째 우승, KIA 타이거즈 재창단 후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2009년 시즌 부활하며 팀의 10번째 우승이자 개인 통산 4번째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타이거즈 팀의 운영 주체가 바뀐 이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의 감격을 안았으며, 우승 확정 후 외야수 이용규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린 장면은 현재도 회자되고 있다.

2010

[한일 통산 2000안타 금자탑]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2루타를 쳐 한일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다.

2010년 7월 9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2루타를 쳐 대한민국과 일본 프로 야구를 통틀어 통산 2000안타를 달성하는 금자탑을 세웠다.

2011

[포스트시즌 최고령 출전]

41세 1개월 27일의 나이로 포스트시즌에 출전하여 최고령 출전 기록을 세웠다.

2011년 포스트시즌에서 41세 1개월 27일의 나이로 경기에 출전하며 KBO 리그 역대 포스트시즌 최고령 출전 기록을 세웠다.

2012

[현역 은퇴 선언]

2012년 시즌 준비 중 당시 감독이었던 선동열 및 구단에게 은퇴 권고를 받고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2012년 시즌 준비 중 당시 감독이었던 선동열, 수석코치였던 이순철 및 구단에게 은퇴 권고를 받고 2012년 3월 31일에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바람의 아들' 영구 결번]

광주무등경기장 야구장에서 은퇴식을 치렀으며, 그의 등번호 7번은 KBO 리그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2012년 5월 26일 광주무등경기장 야구장에서 모든 선수들이 7번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임했으며, 경기 후 성대한 은퇴식을 치렀다. 그의 등번호 7번은 KBO 리그 영구 결번으로 남았다.

2013

[한화 이글스 코치 데뷔]

김응용 감독의 부름을 받아 2013년부터 2014년까지 한화 이글스의 주루코치로 활동하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012년 은퇴 후 2013년부터 2014년까지 한화 이글스의 주루코치를 담당하며 지도자로서의 새로운 경력을 시작했다.

2014

[야구 해설위원 변신]

MBC 스포츠플러스와 계약을 맺고 2015년 시즌부터 야구 해설자로 변신하여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2014년 아시안 게임에서 KBS 객원 해설을 맡았고, 2014년 11월 6일 MBC 스포츠플러스와 계약을 맺고 2015년 시즌에 야구 해설자로 변신했다.

2016

[KBO 최초 '부자 MVP' 탄생]

장남 이정후가 넥센 히어로즈에 1차 지명되면서 KBO 리그 역대 최초로 1차 지명이자 리그 MVP로 프로에 입성한 부자로 화제를 모았다.

2016년에 장남 이정후가 넥센 히어로즈에 1차 지명되자 KBO 리그 역대 최초로 1차 지명이자 리그 MVP로 프로에 입성한 부자(父子)로 화제를 모았다.

2017

[국가대표 코치 활동]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외야/주루 코치로 활동하며 국가대표 지도자 경험을 쌓았다.

2017년부터 2018년까지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외야/주루 코치로 활동했다.

2019

[LG 트윈스 코치 부임]

2019년 LG 트윈스 2군 총괄 및 타격코치로 활동하며 지도자 경력을 이어갔다.

2019년에 LG 트윈스의 2군 총괄 및 타격코치로 활동했다.

2020

[주니치 드래건스 연수코치]

일본 주니치 드래건스의 연수코치로 활동하며 국제적인 지도자 경험을 쌓았다.

2020년 주니치 드래건스의 연수코치로 활동했다.

2021

[LG 트윈스 작전코치 활동]

LG 트윈스 작전코치 및 2군 작전코치로 활동하며 선수들을 지도했다.

2021년 LG 트윈스 작전코치와 2군 작전코치를 겸임하며 팀의 전략을 담당했다.

2022

[LG 트윈스 2군 감독 부임]

LG 트윈스 2군 감독을 맡아 팀을 이끌었다.

2022년 LG 트윈스 2군 감독을 맡았다.

2023

[LG 트윈스 외야/주루 코치 활동]

LG 트윈스 1군 외야/주루 코치로 활동하며 선수들의 수비와 주루를 지도했다.

2023년 LG 트윈스 외야/주루 코치로 활동했다.

2024

[텍사스 레인저스 연수코치]

미국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 연수코치로 활동하며 선진 야구를 경험했다.

2024년 텍사스 레인저스 연수코치로 활동하며 해외 리그 지도자 경험을 확대했다.

2025

[KT 위즈 코치 합류]

  KT 위즈의 2025시즌 코칭스태프 명단에 1군 외야수비·주루 코치로 공식 합류했다. 이강철 KT 감독의 부름을 받고 지도자 생활을 재개했다.  


[ KT 코치 활동]

2025 KBO리그 정규시즌 동안 KT 위즈 1군 코치로서 선수들을 지도하며 활동했다. (6월 14일 삼성과의 원정경기에서 안현민 선수와 하이파이브하는 모습이 기사에 포착되기도 했다.)  

[ '최강야구' 감독설 보도]

시즌 중 돌연 KT 위즈를 떠나 JTBC 예능 프로그램 '최강야구 2025'의 새 감독으로 합류한다는 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 KT 위즈에 사의 표명]

  이종범 코치가 구단 측에 사의를 공식 표명했다. 구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프로 지도자직을 내려놓고 예능 프로그램으로의 이직을 결정했다.  

[ '최강야구' 감독 공식 선임]

JTBC 예능 프로그램 '최강야구'의 새 감독으로 공식 선임되었다. 이로써 프로 야구 지도자 경력에 큰 변화를 맞이했다.  

[ 예능행 후폭풍]

 시즌 중 프로팀을 떠나 예능으로 직행한 것에 대해 야구계 안팎에서 논란이 일었으며, '프로 감독 미련을 접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뒤따랐다.  

[ '최강야구 2025' 첫 방송]

 JTBC '최강야구 2025' 첫 방송에 '브레이커스 감독'으로 출연하며 새로운 감독 타이틀로 대중 앞에 섰다. 그는 이 결정에 대해 "조금 힘든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야구 32년 만에 갑자기 다른 방향을 택하게 되어 실망시켜 죄송하다"는 소감을 밝혔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댓글 게시판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