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하
싱어송라이터, 음악가, 작곡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9- 03:25:43
• 한국 대중음악사의 별 싱어송라이터. • 1962년 출생 1987년 25세 나이로 요절. • 단 한 장의 유작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는 한국 대중음악사에 불멸의 걸작으로 남아 후배 음악가들에게 지대한 영향. • 사후 유재하 음악 장학회 설립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통해 인재 발굴.
1962
[출생 및 유년기]
경상북도 안동에서 사업가의 여섯째 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으며,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악기를 접하며 음악적 재능을 키웠다.
1969
[악기 연주 시작]
은석초등학교에 입학하며 아코디언과 첼로를 배웠고, 5학년부터는 기타를 연주하며 일찍이 음악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1975
1981
[한양대학교 진학]
고등학교 졸업 후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에 진학하여 정원영, 전태관, 김종진 등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과 교류하며 음악적 깊이를 더했다.
1984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합류]
한양대학교 작곡과 재학 중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키보드 주자로 발탁되며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1986
[김현식과 협업]
대학 졸업 후 김현식의 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의 객원 멤버로 활동하며, 김현식 3집에 수록된 명곡 〈가리워진 길〉을 작곡해 초기 명반 탄생에 기여했다.
1987
[데뷔 앨범 발표]
단 한 장의 앨범이자 유작 앨범이 된 명반 《사랑하기 때문에》를 발표하며 자신만의 독보적인 음악 세계를 대중에게 선보였다.
당시 파격적인 음악으로 심의에 여러 번 반려되고 발매 초기 평론가들의 호평도 받지 못했으나, 이후 한국 발라드의 기준을 제시한 전설적인 앨범으로 평가받는다.
[음주운전 차량 동승]
그가 세상을 떠나게 되는 비극적인 교통사고의 전날, 친한 친구 성낙헌의 음주운전 차량에 동승했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요절]
앨범 발매 후 불과 3개월 만인 25세의 젊은 나이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은 한국 대중음악계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그가 남긴 단 한 장의 앨범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1988
[사망 관련 손해배상 판결]
유가족이 사망 사고 관련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음주운전 차량에 동승한 유재하에게도 50%의 과실이 있다고 판결하며 배상액을 일부 제한했다.
1989
[유재하 음악장학회 설립]
그의 아버지 유일청이 음반 수익과 성금을 기탁해 유재하 음악장학회를 설립하고, 1989년부터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를 개최하여 조규찬, 유희열, 김연우 등 한국 대중음악계에 수많은 인재를 발굴하는 산실이 되었다.
1996
[세계적 연주자 헌정]
세계적인 클래식 클라리넷 연주자 리처드 스톨츠만이 자신의 앨범 《Spirits》에 유재하의 대표곡 〈사랑하기 때문에〉를 수록하며, 유재하의 음악적 가치를 전 세계에 알렸다.
1997
[10주기 헌정 앨범 발표]
그의 10주기를 맞아 후배 음악가들이 헌정 앨범 《다시 돌아온 그대 위해》를 발표하며 고인을 추모하고 그의 음악적 업적을 기렸다.
2007
[한국 100대 명반 2위 선정]
유작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가 2007년 경향신문 선정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2위에 오르며 그의 음악적 가치와 영향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2017
[영화 '사랑하기 때문에' 개봉]
유재하의 앨범 제목을 딴 영화 《사랑하기 때문에》가 개봉하며 그의 음악이 세대를 넘어 대중에게 전파되는 계기를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