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
축구 선수, 행정가, 해설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07- 11:38:09
대한민국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 압도적인 활동량과 뛰어난 전술 이해도로 두 개의 심장이라 불리며 유럽 최고 리그에서 활약했다. UEFA 챔피언스리그 FIFA 클럽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최초의 아시아 선수이며 프리미어리그 우승 메달을 받은 첫 아시아 선수이다. 월드컵 3회 연속골을 기록한 아시아 최초의 선수로 대한민국 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1981
[서울 출생 및 성장]
서울특별시 신림동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릴 적 왜소한 체격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으나, 아버지의 보약 덕분에 급성장하여 축구 선수로서의 꿈을 키웠다.
박지성은 서울 신림동에서 박성종과 장명자 사이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고향인 전남 고흥에서 잠시 성장했으며, 수원으로 이사 후 산남초등학교 축구부에 들어갔다. 축구부 해체로 세류초등학교로 전학하여 4학년부터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했다. 어려서 키가 작고 왜소해 수원공고 1학년 때는 기본 훈련만 받았을 정도였으나, 아버지의 보약 덕분에 7cm가 자랐다고 한다.
2000
[국가대표 A매치 데뷔]
AFC 아시안컵 예선 라오스전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히딩크호의 유일한 비(非)K리거 선수로 남아 은퇴 시까지 K리그 소속팀이 없었다.
대학 재학 중이던 박지성은 2000년 4월 5일 AFC 아시안컵 예선 라오스전에서 A대표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히딩크호 엔트리 23명 중 차두리와 더불어 K리그 경력이 없는 2명뿐인 선수였으며, 차두리가 K리그에 입성한 뒤에는 히딩크호 유일의 비K리거로 남아 은퇴 시까지 K리그에 소속되지 않았다.
[교토 퍼플 상가 입단]
일본 J리그의 교토 퍼플 상가에 입단하며 프로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명지대학교 김희태 감독의 추천으로 일본 무대에 도전하게 되었고, 이적료 1억원이 교토에서 명지대로 지급되었다.
대학 재학 중이던 박지성은 김희태 감독의 추천으로 2000년 6월 일본 J리그의 교토 퍼플 상가에 입단하며 프로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이 때 명지대에는 축구부 발전 기금 명목으로 1억원이 교토에서 지출되었다.
2001
[교토 J1리그 승격 기여]
J2리그로 강등되었던 교토 퍼플 상가에서 미드필더로 맹활약하며 팀의 J1리그 승격에 크게 기여했다.
38경기에 출전해 3골을 기록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교토가 J2리그로 강등한 2001 시즌, 박지성은 주로 미드필더 포지션에서 38경기에 출전해 3득점을 올리며 두각을 나타냈고, 교토의 J1리그 승격에 공헌했다. 동시에 한국 A대표팀에서도 점차 주전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했다.
2002
[포르투갈전 월드컵 결승골]
2002 FIFA 월드컵 조별리그 포르투갈전에서 환상적인 발리슛으로 결승골을 넣어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고, 이 경기의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었다.
이 골은 한국 축구팬들이 뽑은 '2002년 최고의 골'로 선정되기도 했다.
2002년 6월 14일 인천에서 열린 포르투갈과의 2002년 FIFA 월드컵 예선 3차전에서 예술적인 골을 성공시켜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고, 이 경기의 맨 오브 더 매치 (Man of the match)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이 골은 한국 축구팬들이 뽑은 '2002년 최고의 골'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후 스페인과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2번째 키커로 나와 골을 성공시켰다. 2002년 FIFA 월드컵에 주전 미드필더로 맹활약하여 대한민국의 월드컵 4강 진출에 크게 공헌했다.
[PSV 에인트호번 이적]
2002 월드컵 이후 거스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고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하며 유럽 리그에 진출했다.
계약 기간 3년 6개월, 연봉 100만 달러의 조건이었다.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4강 진출에 크게 기여한 박지성은 거스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고 2002년 12월 계약기간 3년 6개월에 연봉 100만 달러라는 조건으로 에레디비지에의 PSV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하였다.
2003
[교토 천황배 우승 견인]
천황배 전일본 축구 선수권 대회 결승에서 가시마 앤틀러스를 상대로 동점골을 터뜨리며 팀의 2-1 역전승과 첫 우승컵을 안기는 데 크게 기여했다.
계약 만료에도 불구하고 팀을 위해 출전하여 찬사를 받았다.
2003년 1월 1일 일본의 FA컵 대회격인 천황배 전일본 축구 선수권 대회 결승에서 가시마 앤틀러스를 맞아 0-1로 뒤지던 후반 7분 프리킥을 받아 헤딩으로 동점골을 성공시키면서 팀의 2-1 역전승을 도우며, 교토 상가가 처음으로 우승컵을 안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때 박지성과 교토 퍼플상가의 계약은 2002년 12월 31일자로 종료되었으나 팀의 컵 대회 우승을 위해 계약 기간이 만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에 출전해 팀을 우승으로 이끌어 찬사를 받은 바 있다.
[PSV 공식 입단]
PSV 에인트호번 공식 입단식을 가졌다.
이적 초반에는 부상과 부진으로 홈 팬들의 야유를 받으며 어려움을 겪었으나, 이후 뛰어난 활약으로 팀의 핵심 선수로 성장했다.
2003년 1월 12일 입단식을 가졌다. 2003년 이적 초기에는 월드컵 이후 소속팀에서 무리한 출전으로 인한 부상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들쭉날쭉한 플레이를 펼쳤다. 그로 인해 홈팬들의 야유를 받기도 했으며, 팀 동료 마르크 판 보멀의 비판까지 받았다. 그러나 이후 차차 페이스를 끌어올리면서 점점 발군의 기량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후 팀내 주요 선수로 발돋움했다.
2005
[UCL AC밀란전 한국인 최초 득점]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AC 밀란과의 2차전 홈 경기에서 선제골을 터뜨리며 한국인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본선에서 득점을 기록했다.
비록 원정 다득점 원칙으로 결승 진출은 좌절되었으나, 외신들의 극찬을 받으며 '위숭 빠르크' 송의 주인공이 되었다.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AC 밀란과의 원정 1차전 0-2 패배 이후,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박지성은 AC 밀란과의 2차전 경기 초반 디다의 640분 무실점 기록을 종결짓는 선제골을 기록하며 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에서 최초로 골을 터뜨린 한국인이 되었다. 이 경기에서 PSV 에인트호번은 박지성의 선제골과 필립 코퀴의 2골을 포함 3-1로 승리하여, AC 밀란과 승점과 골득실 부문에서 모두 동률을 이루었으나,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결승에는 오르지 못하였다. 그러나 경기 내내 종횡무진 활약을 보였던 박지성은 외신들의 찬사를 받았고, 그렇게 박지성을 괴롭혔던 PSV 에인트호번 팬들의 야유가 열광적인 '위숭 빠르크' 송으로 바뀌었다.
[맨유 이적 확정]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계약을 맺으며 꿈의 무대인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했다.
PSV 에인트호번 시절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보여준 활약이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눈에 띄어 영입이 성사되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UEFA 챔피언스리그 2004-05 16강전에서 AC 밀란에 2연패를 당하며 탈락했다. 두 경기 모두 0-1 패배로, 밀란의 두터운 수비벽을 뚫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패인이었다. 그런데 이 대회에서 PSV 에인트호번 소속이었던 박지성은 AC 밀란과의 4강 2차전 홈경기에서 불과 전반 9분만에 순간적인 돌파를 통해 선제골을 기록하였고, 이것을 주목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 영입을 결심하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박지성은 2005년 6월 22일 계약을 하고서, 2005년 7월 14일 입단식을 갖고 등번호 13번을 배정받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 공식 입단하였다.
2007
[아시아인 최초 EPL 우승 메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2006-07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우승함에 따라 아시아 선수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우승 메달을 받았다.
이는 그가 유럽 최고 리그에서 정상급 활약을 펼쳤음을 증명하는 기록이다.
팀이 2006-07 시즌에 우승함에 따라 아시아 선수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우승 메달을 받았다. (최초의 프리미어리그 우승 경험자는 2001-02 시즌 일본의 이나모토 준이치이나, 단 한 경기의 리그경기 출전도 못해 메달을 받지 못했다.)
2008
[아시아인 최초 UCL, 클럽월드컵 우승]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첼시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박지성은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한 최초의 아시아 축구 선수가 되었다.
또한 2008 FIFA 클럽 월드컵 우승으로 최초의 아시아인 선수로 기록되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2008년 5월 21일 첼시 FC와의 맞대결로 결정된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첼시를 6-5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였다. 비록 박지성은 이 경기에 명단 제외로 출전하지 못했으나, 팀의 우승과 함께 아시아 선수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한 선수가 되었다. 그는 FIFA 클럽 월드컵에서도 우승을 한 최초의 아시아인 선수이다.
[국가대표팀 주장 임명]
국가대표팀의 주장 자리를 이어받아 은퇴 직전까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었다.
그의 리더십은 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08년 10월, 김남일이 경고 누적으로 명단에서 제외되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 자리를 이어받았고, 이후 국가대표 은퇴 직전까지 주장을 맡았다.
2009
[아시아인 최초 UCL 결승 출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선발 출전하여 66분간 활약함으로써, 이 대회 결승전에 출전한 최초의 아시아 선수가 되었다.
(팀은 FC 바르셀로나에 0-2로 패해 준우승).
2009년 5월 27일, FC 바르셀로나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선발 출전하여 66분간 활약함으로써, 이 대회 결승전에 출전한 최초의 아시아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팀은 이 경기에서 바르셀로나에 0-2로 완패하여 준우승에 그쳤다.
2010
[월드컵 3회 연속골 달성]
2010 FIFA 월드컵 1차전 그리스를 상대로 골을 넣어 월드컵 3개 대회 연속골을 기록하며 아시아인 최초 기록을 달성했다.
또한 한국 선수 월드컵 최다 득점 기록(3골)과 타이를 이뤘다.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박지성은 1차전 상대인 그리스를 상대로 후반 7분 단독 드리블에 의한 두 번째 골을 넣었고, 이 경기의 맨 오브 더 매치(Man of the match)에 선정되었다. 이로써 2002년 월드컵, 2006년 월드컵에 이은 월드컵 3개 대회 연속골로, 아시아인 최초 본선 3회 연속 골이라는 기록을 달성했으며 안정환이 갖고 있던 아시아인 본선 최다 골(3골)과도 타이를 이루었다.
[월드컵 원정 첫 16강 견인]
2010 FIFA 월드컵 조별리그 최종전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2-2 무승부를 거두며 대한민국 대표팀의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끌었다.
이 경기에서도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었다.
나이지리아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2대 2 무승부를 거두고 대표팀의 사상 첫 원정 16강을 이끌었다. 이 첫 활약상으로, 박지성은 이 경기의 맨 오브 더 매치 (Man of the match)에 선정되었다.
2011
[A매치 100경기 센추리 클럽]
2011 AFC 아시안컵 4강 일본전에서 자신의 A매치 100번째 출장 기록을 달성하며 대한민국 선수 중 역대 8번째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다.
이 경기가 그의 마지막 A매치 경기가 되었다.
2011년 AFC 아시안컵 대회 4강 일본전에서 박지성은 자신의 A매치 100번째 출장 기록을 달성, 대한민국 선수 중 역대 8번째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한 선수가 되었다. 이 경기가 박지성의 마지막 A매치 경기가 되었다. 아시안컵을 마감한 후 2011년 1월 31일 오전 11시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공식 은퇴 선언을 하며 11년간 뛰었던 국가대표에서 은퇴하였다.
2012
[맨유 통산 200경기 출전]
첼시와의 리그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통산 200경기 출전을 달성했다.
이는 구단 역사상 92번째, 아시아인으로는 최초의 기록이다.
2012년 2월 6일, 첼시 FC와의 리그 23라운드 경기에서 후반 40분경 대니 웰벡과 교체 투입되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 통산 200경기 출전을 하였는데, 이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역사상 92번째 기록이며, 아시아인으로는 최초의 기록이다.
[QPR 이적 및 주장 선임]
이적료 500만 파운드에 퀸즈 파크 레인저스(QPR)로 이적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이와 함께 팀의 새 주장으로 임명되었고, 등번호 7번을 배정받았다.
2012년 7월 9일, 박지성은 이적료 500만 파운드(약 88억원)로 2년 계약을 하며, 퀸즈 파크 레인저스로 이적하였다. QPR은 공식 트위터를 통해 박지성의 번호는 아델 타랍이 사용하던 등번호 7번으로 결정됐다고 발표했다. 7번은 박지성이 선호하는 백넘버이며, 팀내 에이스의 상징이기도 하다. 2012-13 시즌 팀의 새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이적 시즌 부상과 소속팀 강등을 겪으며 주장 완장을 반납했다.
2013
[PSV 에인트호번 복귀]
8년 만에 친정팀 PSV 에인트호번으로 1년 임대 이적하며 네덜란드 무대에 복귀했다.
PSV에서 23경기를 출전하여 2골을 기록하며 팀의 유로파리그 출전권 획득에 기여했다.
2013년 8월 6일 PSV 에인트호번과의 계약 절차를 마무리하고 8년 만의 네덜란드 복귀를 확정했다. 계약 조건은 1년 임대 이적으로 연봉 및 지급 방법 등의 세부 사항은 양 구단의 합의에 따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신임 감독으로 부임한 필립 코퀴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 백넘버는 33번으로 정했다. PSV 에인트호번에서 23경기를 출전하여 2골을 넣었고, 팀이 유로파리그 출전 티켓을 획득하는 데 일조한 뒤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2014
[현역 선수 은퇴 선언]
기자회견을 통해 현역 선수 생활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이후 그의 활약을 기리는 헌정 영상이 공개되는 등 세계 축구계의 찬사를 받았다.
2014년 5월 14일 박지성은 기자회견을 통해 은퇴를 선언하였고, 은퇴 선언 후 5월 15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박지성 하이라이트'란 제목의 박지성 헌정 영상을 공개했다.
[맨유 앰버서더 임명]
이전 소속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앰버서더로 부임했다.
이는 비유럽권 인물로는 처음으로 맨유의 앰버서더가 된 역사적인 기록이다.
2014년, 이전 소속팀이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앰버서더로 부임했다. 이로서 박지성은 비유럽권 인물로는 처음으로 맨유의 앰버서더가 되었다. 보비 찰튼, 알렉스 퍼거슨, 앤디 콜, 데니스 로, 게리 네빌, 브라이언 롭슨, 피터 슈마이켈에 이은 8번째 앰버서더이다. 2014년 10월 6일 2014-2015 프리미어리그 7라운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vs 에버턴 경기 전 박지성 선수는 올드 트래퍼드에서 퍼거슨 감독과 함께 앰버서더 임명 행사식을 가졌다.
2017
[KFA 유스전략본부장 취임]
대한축구협회 유스전략본부 본부장으로 취임하며 행정가로서의 첫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부임 1년 만인 2018년에 사임했다.
2017년 11월, 대한축구협회의 유스전략본부 본부장으로 취임했다. 하지만 부임 1년만인 2018년에 사임했다.
2018
[2018 월드컵 해설위원 화제]
2018 FIFA 월드컵 SBS 축구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독일 경기력에 대해 "저따위로 경기를 한다면 우리도 독일 상대로 비벼볼만 합니다."라는 발언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실제로 독일은 대한민국에 패배하며 그의 발언이 적중했다.
2018년 FIFA 월드컵을 앞두고 SBS의 해설진으로 합류하였고,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해설진을 맡았다. 특히 2018년 6월 18일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과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간의 경기를 중계하면서 독일의 경기력에 대해 "이번 월드컵에서 독일이 우승할 생각이 있는진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독일이 저따위로 경기를 한다면 우리도 독일 상대로 비벼볼만 합니다."라고 평가했다. 배성재 아나운서는 의아해 했으나 정작 진짜로 독일이 대한민국과 맞붙자 독일은 대한민국보다 훨씬 못한 실력으로 대한민국에게 질질 끌려다니면서 결국 손흥민에게 빈집털이까지 당한 끝에 0-2로 패하는 수모를 당하며 박지성의 이 발언이 완벽하게 적중했다.
2021
[전북 현대 클럽 어드바이저]
K리그 전북 현대 모터스의 클럽 어드바이저로 부임하며 다시금 K리그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테크니컬 디렉터를 거쳐 현재는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2021시즌을 앞두고 전북 현대 모터스의 클럽 어드바이저로 부임했다. 2022 시즌 중 전북과 계약 연장을 통해 어드바이저에서 테크니컬 디렉터로 직책을 변경하였고, 어드바이저 시절과 마찬가지로 비상근직으로 테크니컬 디렉터를 소화하게 되었다. 2024 시즌 중 테크니컬 디렉터 직을 마이클 김에게 넘기고, 전북의 고문으로 전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