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야구인, 투수, 감독,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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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18- 04: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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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
야구인, 투수, 감독,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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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야구와 일본 프로야구를 모두 평정한 국보급 투수. KBO 통산 최저 방어율 최다 완봉승 등 전무후무한 기록 보유. 선수로서 6회 한국시리즈 우승 감독으로서 2회 한국시리즈 우승 견인. 한국 야구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야구계의 살아있는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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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

[야구 전설의 탄생]

1963년 1월 10일, 대한민국 광주에서 한국 야구의 역사를 바꿀 '국보급 투수' 선동열이 태어났습니다.

1981

[세계 청소년 대회 MVP]

미국 뉴어크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방어율왕과 MVP를 차지하며 일찌감치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3경기 24이닝 동안 단 1자책점, 36탈삼진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1982

[야구 월드컵 우승 견인]

서울에서 열린 야구 월드컵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다시 한번 MVP와 다승왕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4경기 29이닝 1자책, 30탈삼진으로 국가대표 에이스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1985

[해태 타이거즈 입단]

한국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에 1차 3순위로 입단하며 프로 무대에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데뷔전은 KBO 1985년 7월 2일 대구 삼성전 선발 등판이었습니다.

입단 첫 해부터 1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며 '괴물 신인'의 탄생을 알렸습니다.

1986

[KBO 최초 압도적 시즌]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시즌을 보냈습니다.

24승 6패, 0.99의 경이로운 평균자책점(규정이닝 달성), 214탈삼진을 기록하며 정규 시즌 MVP,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고,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이는 '국보 투수' 선동열 신화의 시작을 알리는 해였습니다.

262.2이닝을 던지며 24승과 0.9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sWAR는 무려 14.89에 달했습니다. 또한, 49⅓이닝 연속 무실점이라는 KBO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습니다.

1987

[두 번째 0점대 ERA]

162이닝 동안 0.89의 평균자책점과 4완봉승을 기록하며 전년도에 이어 압도적인 모습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1986년부터 1987년에 걸쳐 37이닝 연속 선발 무실점 기록(역대 2위)을 세웠습니다.

1988

[무적의 에이스 활약]

16승 5패, 1.21의 평균자책점과 200탈삼진을 기록하며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최동원 선수와의 역사적인 15회 완투 대결(1987.5.16)이 있었던 해입니다.

1989

[세 번째 MVP 수상]

21승 3패, 1.17의 평균자책점, 198탈삼진, 6완봉승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정규 시즌 MVP를 차지했습니다.

이때부터 1991년까지 3년 연속 다승왕 타이틀을 차지하며 KBO 리그를 지배했습니다.

1990

[MVP 2년 연속 석권]

22승 6패, 1.13의 평균자책점, 189탈삼진, 6완봉승을 기록하며 2년 연속 KBO 정규 시즌 MVP에 등극했습니다.

1989년 5월 9일부터 1990년 9월 25일까지 1,186타석 최다 연속 타석 무피홈런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1991

[투수 5관왕 위업]

19승 4패, 1.55의 평균자책점, 210탈삼진을 기록하며 5년 연속 방어율 1위, 3년 연속 다승왕, 4년 연속 탈삼진왕 등 투수 5관왕을 달성했습니다.

그의 전성기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입니다.

1993

[마무리 변신 & 가수 데뷔]

어깨 부상 이후 마무리 투수로 전향하여 49경기 출장, 126.1이닝을 던지며 0.78의 평균자책점과 31세이브를 기록하는 기행을 보였습니다.

같은 해 후배 이종범, 가수 양수경과 프로젝트 그룹 'Two & One'을 결성해 앨범을 발표하며 가수 활동도 했습니다.

1995

[KBO 마지막, 전설의 마무리]

한국 프로야구 마지막 시즌, 48경기 109.1이닝 동안 0.49라는 믿기 어려운 평균자책점과 33세이브를 기록했습니다.

당시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고 구속인 155km/h를 기록하며 여전한 위력을 과시했습니다.

KBO 통산 최저 방어율(1.20)과 최저 WHIP(0.80)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1996

[최초의 일본 진출]

해태 타이거즈의 등번호 18번이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며 그의 업적을 기렸습니다.

한국 프로야구 선수 중 최초로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건스에 진출하여 해외 무대의 문을 열었습니다.

일본 무대 첫 등판은 1996년 4월 5일 히로시마 전 구원이었습니다.

1997

[NPB 최다 세이브 기록]

일본 프로야구에서 개인 최다인 38세이브를 기록하며 사사키 가즈히로와 함께 세이브 부문 공동 1위를 차지했습니다.

1.28의 평균자책점으로 일본 무대에서도 '아시아의 마무리'라는 별명을 얻으며 압도적인 구위를 선보였습니다.

1999

[일본 무대 우승 후 은퇴]

소속팀 주니치 드래건스의 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한 뒤, 11월 22일 선수 생활 은퇴를 공식 선언했습니다.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최고의 투수로 인정받으며 화려했던 선수 경력을 마무리했습니다.

2000

[야구 행정가 변신]

은퇴 후 KBO 홍보위원으로 위촉되고 시드니 올림픽 국가대표팀 전력분석관으로 활동하며 야구 행정 및 분석 분야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2003

[주니치 코치 연수]

친정팀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으며 지도자의 길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2004

[삼성 코치 & 감독 선임]

은사 김응용 감독의 부름을 받아 삼성 라이온즈 수석 코치로 부임하며 KBO 리그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같은 해 11월 9일, 김응용 감독의 사퇴 이후 삼성 라이온즈의 제12대 감독으로 승격되었습니다.

2005

[감독 데뷔 첫 해 우승]

삼성 라이온즈 감독 부임 첫 해 정규 리그 1위(74승 48패 4무)를 차지하고, 한국시리즈에서 두산 베어스를 4연승으로 스윕하며 감독으로서 첫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박진만, 심정수 등 호화 멤버진을 구축하며 '레알 삼성' 시대를 열었습니다.

2006

[한국시리즈 2연패 달성]

한화 이글스를 4승 1무 1패로 꺾고 삼성 라이온즈를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며 명장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선수와 감독으로서 모두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몇 안 되는 인물입니다.

2010

[삼성 감독직 경질]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4연패로 준우승을 기록한 뒤, 삼성그룹의 조직 개편과 맞물려 감독직에서 경질되었습니다.

이후 구단 운영 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2011

[KIA 타이거즈 감독 부임]

친정팀 KIA 타이거즈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고향 팀에서의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영구 결번 18번 대신 등번호 90번을 달았습니다.

2014

[KIA 감독 자진 사퇴]

2012년 시즌 5위, 2013년·2014년 시즌 8위라는 아쉬운 성적과 더불어 내야수 안치홍에 대한 임의 탈퇴 발언 논란이 불거지며 재계약 발표 6일 만에 감독직에서 자진 사퇴했습니다.

2017

[국가대표 전임 감독]

2015년 WBSC 프리미어 12 국가대표팀 투수 코치로 활동한 뒤, 2017년 7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전임 감독으로 선임되었습니다.

이는 한국 야구 역사상 첫 전임 감독 자리였습니다.

2018

[아시안 게임 논란 및 사퇴]

2018 아시안 게임 야구 결승전에서 오지환, 박해민 선수의 군 면제를 위한 출전 논란에 휩싸여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하는 등 큰 파장이 일었습니다.

이 논란으로 인해 국가대표팀 감독직에서 자진 사퇴했습니다.

이 논란은 병역 특례 제도의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비판으로 이어지며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2021

[kt 위즈 인스트럭터]

2021년부터 kt 위즈의 인스트럭터로 활동하며 다시 야구 현장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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