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야구 선수, 스포츠인, 해설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07- 15:32:28
대한민국 야구의 전설 코리안 특급 박찬호. 한국인 최초로 MLB에 진출하여 아시아 투수 역대 최다승(124승)을 기록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한미일 3개 리그에서 모두 선발승을 거둔 유일한 선수이자 1998년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특례를 받으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끊임없는 도전과 극복의 아이콘으로 기억됩니다.
1973
[코리안 특급의 탄생]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공주중동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습니다.
공주중학교 3학년 시절 투수로 포지션을 변경하며 훗날 대한민국 야구의 역사를 쓸 '코리안 특급'의 기틀을 닦았습니다.
1994
[한국인 최초 MLB 진출]
한양대학교 경영학과 2학년 재학 중 학교를 중퇴하고 LA 다저스에 입단,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역사적인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플로리다주에서 춘계 훈련을 거치며 빅리그 데뷔를 준비했습니다.
3월 4일 뉴욕 메츠와의 시범경기에서 선발 등판해 '마운드의 신사'라는 별명을 얻었고,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메이저리그에 직행한 역대 17번째 선수로 기록되었습니다.
[MLB 꿈의 무대 데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전에서 9회 구원 등판하며 꿈의 메이저리그 무대에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러나 초반에는 어려움을 겪으며 더블A 마이너리그로 내려갔지만, 버트 후튼의 지도로 후반기 맹활약하며 메이저리그 복귀 기회를 잡았습니다.
1996
[한국인 투수 첫 MLB 승]
시카고 컵스전에서 갑작스러운 구원 등판에도 불구하고 강타자 새미 소사를 삼진 처리하는 등 4이닝 7탈삼진 맹활약으로 팀 승리를 이끌며 한국인 야구 선수 최초로 메이저리그 첫 승리를 거두는 역사적인 순간을 만들었습니다.
1998
[7월의 투수 선정]
다저스 홈 개막전 시즌 첫 승을 시작으로 7월 한 달 동안 6경기 선발 등판, 4승 무패, 방어율 1.05, 탈삼진 34개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이달의 투수(Pitcher of the Month)'로 선정되었습니다.
이는 그의 전성기 진입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9월 28일 밀워키전에서 시즌 15승을 달성하며 2년 연속 팀내 최다승 투수로 등극했습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
방콕 아시안게임 야구 국가대표팀 에이스로 활약하며 팀을 금메달로 이끌었습니다.
이 금메달은 그에게 예술체육요원 자격을 부여, 현역 군 복무 없이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999
[한만두 사건의 주인공]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에서 페르난도 타티스에게 한 이닝에 만루 홈런 2개를 허용하는 진기록 아닌 진기록을 남겼습니다.
'한만두(한 이닝 만루홈런 두 개)'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당시 야구 팬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경기 중 격투 및 퇴장]
애너하임 에인절스전에서 상대 투수 팀 벨처와의 충돌로 격렬한 난투극에 휘말려 메이저리그 진출 이래 첫 퇴장을 당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7경기 출장 정지 중징계를 받았으며, 훗날 메이저리그 10대 난투극 중 6위로 선정될 정도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2000
[아시아인 최다승 투수 등극]
필라델피아 필리스전에서 시즌 최다승 타이 기록(15승)을 달성한 후, 애리조나전에서 시즌 16승을 거두며 노모 히데오가 세운 아시아인 최다승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이어서 샌디에이고전에서 시즌 17승을 추가하며 아시아 투수 최다승 기록을 단독 경신하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이 해 8월 25일 몬트리올전에서는 투수로서 메이저리그 첫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메이저리그 첫 완봉승]
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전에서 9이닝 동안 단 2안타만 허용하며 메이저리그 데뷔 첫 완봉승을 거뒀습니다.
이 날 13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투수로서 최고의 시즌을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시즌 18승 10패, 방어율 3.27은 그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기록이었습니다.
2001
[MLB 올스타전 무대]
내셔널리그 올스타에 선정되어 시애틀 세이프코 필드에서 열린 제72회 올스타 게임에 출전했습니다.
은퇴를 앞둔 칼 립켄 주니어를 첫 타자로 맞아 홈런을 허용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지만, 빅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로서 위상을 보여주었습니다.
2002
[텍사스 레인저스 이적]
다저스 시절 5년 연속 13승 이상을 기록하며 FA 시장에서 투수 부문 1위로 평가받아 텍사스 레인저스와 5년 6,500만 달러(옵션 포함 7,100만 달러)의 대형 계약을 맺었습니다.
하지만 햄스트링 부상과 홈구장의 영향 등으로 부진하며 '실력 대비 고액 연봉'의 대명사로 불리는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이 기간 동안 2003년 7경기 1승, 2004년 16경기 4승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며 팬들에게 안타까움을 안겼습니다.
2005
[MLB 통산 100승 금자탑]
캔자스시티 로열스전에서 초반 난타를 당하며 패전 위기에 몰렸지만, 텍사스 강타선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승리 투수가 되며 미국 진출 11년 만에 메이저리그 통산 100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위업이었습니다.
2009
[생애 첫 월드시리즈 경험]
필라델피아 필리스 입단 후 부상으로 선발에서 불펜으로 전환했지만, 구속 회복과 함께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팀의 핵심 구원투수로 자리 잡았습니다.
소속팀이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며 생애 최초로 꿈의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았고, 무실점 투구를 선보였습니다.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그의 끈기는 빛났습니다.
2010
[MLB 아시아 투수 최다승]
피츠버그 파이리츠 소속으로 플로리다 말린스전에서 구원 등판, 3이닝 6탈삼진의 호투와 함께 승리 투수가 되며 개인 통산 124승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노모 히데오의 기록을 넘어선 아시아 투수 역대 메이저리그 최다승 기록으로, 박찬호의 위대한 커리어를 상징하는 마지막 기록입니다.
2012
[한화 입단 및 연봉 기부]
자신의 오랜 꿈이었던 고향 팀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기 위해 KBO 특별법 심의를 거쳤고, 구단에 연봉을 백지 위임하여 프로야구 신인 최저 연봉인 2,400만원에 계약했습니다.
또한 6억원을 아마추어 야구 발전 기금으로 기부하며 진정한 야구인으로서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KBO 리그 데뷔 및 은퇴]
두산 베어스전에서 KBO 리그 첫 선발 등판하여 6이닝 5탈삼진 2실점 호투로 팀의 첫 승리를 이끌며 화려하게 국내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같은 해 11월 30일,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적으로 현역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며 19년간의 프로 야구 인생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2013
[야구 해설가로 변신]
은퇴 후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을 통해 JTBC에서 해설가로 데뷔하며 야구 팬들에게 친숙하고 위트 있는 해설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SBS 해설위원으로도 활동하며 마이크를 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