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
가수, 싱어송라이터, 트로트 황제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2- 01:17:56
트로트 황제 나훈아는 압도적인 가창력과 독보적인 퍼포먼스로 반세기 넘게 가요계를 평정한 대한민국 대표 가수이다. 남진과의 치열한 라이벌 구도 속에서도 끊임없이 히트곡을 발표하며 대중음악 활성화에 기여했으며 테스형! 같은 파격적인 시도로 전 세대에게 사랑받는 전설적인 싱어송라이터이다. 특히 나는 대중 예술가라는 신념으로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아티스트로 기록된다.
1947
[트로트 황제, 세상에 나오다]
경상남도 부산부 초량동에서 2남 2녀 중 셋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대외적 활동은 1947년생으로 시작했으나, 실제 출생년도는 1951년으로 알려져 데뷔 당시 미성년자 문제로 출생년도를 조정했다는 비화가 있다.
나훈아가 자신의 대외적 출생년도를 1947년으로 정한 이유는, 데뷔 당시에 그는 아직 미성년자였는데 이 점이 데뷔에 지장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1968
[가요계에 첫발을 내딛다]
오아시스레코드와 계약 후 '내사랑'을 발표하며 가요계에 공식적으로 데뷔했다.
자신만의 간드러진 꺾기 창법과 독특한 매력으로 단숨에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중학교 졸업 후 서울로 상경해 1967년 서라벌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데뷔 후 고교 2학년 때 학교를 중퇴했다.
1969
[초대형 히트곡 탄생]
'천리길', '사랑은 눈물의 씨앗', '님 그리워' 등 다수의 곡을 히트시키며 대중적 인기를 확고히 했다.
1970
[남진과의 라이벌 구도]
1970년대 가요계의 양대 산맥인 남진과 치열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대중가요의 활성화를 이끌었다.
두 스타의 경쟁은 침체된 가요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실제 방송사 기록을 보면 남진이 주로 가수왕상을 수상하며 1위를 기록했고, 나훈아는 주로 2위를 차지한 것으로 집계되었으나, 그들의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1972
[공연 중 피습 사건]
서울시민회관 공연 중 정체불명의 남성에게 깨진 사이다 병으로 피습당해 왼쪽 얼굴에 5cm의 큰 부상을 입고 72바늘을 꿰매는 대수술을 받았다.
이 사건은 한동안 연예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당시 언론은 용의자가 라이벌 남진의 사주를 받았다는 루머를 확산시켰고, 이로 인해 양측 팬들이 크게 대립했으나, 양측 모두 사실이 아님을 부인하며 일단락되었다.
1973
[돌연 공군 입대와 첫 결혼]
피습 사건의 건강 회복 후 갑작스럽게 공군 방위병으로 입대하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입대 직전 배우 고은아의 사촌 동생인 이숙희와 결혼했다.
1975
1976
[여배우 김지미와의 세기의 결혼]
전역 후 당시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여배우 김지미와의 결혼을 발표하며 연예계와 사회 전반에 걸쳐 '세기의 결혼'으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같은 해 나훈아는 심수봉에게 본명(최홍기)으로 직접 쓴 자작곡 '여자이니까'를 주며 그녀의 가수 데뷔에 큰 힘을 실어주었다.
1981
[가요계의 성공적인 복귀]
'대동강 편지'를 발표하며 성공적으로 가요계에 복귀, MBC 10대 가수상을 수상하며 다시금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다.
1982
[김지미와의 이혼과 재혼]
가요계 복귀 후 김지미와의 관계가 소원해져 이혼했다.
이후 '울긴 왜 울어'를 히트시키며 인기를 이어갔고, 이듬해 가수 정수경과 결혼하며 1남 1녀를 두었다.
김지미와의 이혼 당시 '남자는 돈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여자는 돈 없으면 살 수 없을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기며 자신의 전 재산을 위자료로 넘겼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1984
1987
['땡벌'의 기적 같은 역주행]
자작곡 '땡벌'을 발표했으나 당시에는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2007년에 뒤늦게 범국민적인 사랑을 받으며 역주행 신화를 썼다.
2000년 강진이 리메이크했으나 즉각적인 인기는 없었다. 2006년 조인성이 영화 '비열한 거리'에서 부르고 이승기가 드라마 '소문난 칠공주'에서 부르며 화제가 되었고, 2007년 9월 21일 KBS '뮤직뱅크'에서 강진이 1위를 차지하며 '땡벌'은 발표 20년 만에 비로소 국민 애창곡이 되었다.
2006
[노래방 수록곡 최다 가수 등극]
노래반주기 업체 TJ미디어의 집계 결과, 153곡의 노래가 수록되어 국내 가수 중 가장 많은 곡이 노래방에 등록된 가수 1위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이는 그의 방대한 히트곡과 국민적 인기를 증명하는 사례이다.
2007
[돌연 잠정 은퇴 선언]
세종문화회관 콘서트가 갑작스럽게 취소된 이후 가요계에서 잠정 은퇴를 선언하며 팬들에게 큰 아쉬움을 남겼다.
2006년 순회 콘서트가 사실상 나훈아의 마지막 활동이 되었다.
2008
[스캔들 루머와 전설의 기자회견]
한 스포츠 기자의 블로그 글로 인해 젊은 여배우와의 스캔들 및 야쿠자 피습 루머에 휘말렸다.
나훈아는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제가 5분간 보여드리면 믿겠습니까?'라는 발언과 함께 바지를 벗으려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루머를 강력히 부인해 전국민적 화제를 모았다.
이 기자회견 이후 그는 다시 칩거에 들어갔고, 가수 복귀 시도마저 어려워지며 부부 관계가 악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2011
[세 번째 이혼 소송 시작]
아내 정수경이 나훈아를 상대로 이혼 및 재산분할 청구 소송을 제기하며 긴 법정 싸움이 시작되었다.
2013
[뇌경색 투병 루머 확산]
이데일리에서 나훈아가 경기도 성남의 요양병원에 머물며 뇌경색 증상을 보였으나 쾌유 중이라고 보도하며 투병 루머가 확산되었다.
이후 2020년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콘서트에서 나훈아 본인이 '제가 똑바로 걸어 다니는 게 미안해 죽겠다'며 직접 루머를 반박했다.
2016
[5년 만의 이혼 소송 최종 패소]
2011년부터 이어진 아내 정수경과의 이혼 소송에서 법원이 이혼 판결과 함께 12억 원을 위자료로 배상하라고 판결하며 5년여간의 법적 공방 끝에 최종 패소했다.
2013년 9월 대법원에서 기각된 바 있었으나, 결국 오랜 법적 다툼 끝에 세 번째 이혼이 성립되었다.
2017
[11년 만의 화려한 복귀]
2007년 잠정 은퇴 이후 11년 만에 '남자의 인생' 앨범을 발표하며 가요계에 전격 복귀했다.
그의 복귀는 많은 팬들의 환영을 받았다.
2020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열풍]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KBS에서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온택트 콘서트를 개최하며 전 국민적 관심과 찬사를 받았다.
이 공연은 그의 위상을 다시 한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 공연에서 선보인 '테스형!'은 파격적인 가사와 퍼포먼스로 큰 화제를 모으며 각종 패러디를 양산했다. 같은 해 제1회 트롯어워즈에서 트롯 100년 가왕상을 수상했다.
2024
[가요계 은퇴 선언]
50년이 넘는 활동을 마무리하며 '마지막 콘서트'를 끝으로 가요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한국 대중음악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채 팬들의 아쉬움 속에서 무대를 떠난다.
나훈아는 1968년 데뷔 이후 약 2500여 곡을 취입하고 200여 개의 앨범을 발표했으며, 약 1200여 곡 이상을 직접 작사, 작곡한 싱어송라이터로 '한국 가요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