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로빈슨
농구 선수, NBA 선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명예의 전당 헌액자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15:38
NBA 역사상 유일무이한 해군사관학교 출신 제독 별명을 가진 농구 스타.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첫 두 차례 NBA 챔피언십을 이끈 트윈 타워의 한 축. 1995년 NBA MVP 1992년 올해의 수비수 수상 등 화려한 개인 기록. 드림팀 일원으로 올림픽 금메달 2개 NBA 50인에 선정된 살아있는 전설.
1965
[농구 전설의 탄생]
플로리다주 키웨스트에서 앰브로스와 프레다 로빈슨 부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잦은 이사 속에서도 학업에 뛰어났지만, 처음에는 농구와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다.
1983
[수학 영재, 해군사관학교로]
대학 진학 적성 시험에서 1320점이라는 우수한 성적을 기록하며 미국 해군사관학교에 수학 전공으로 입학했다.
고등학교 시절 농구 감독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이력이 흥미를 더한다.
1987
[NBA 전체 1순위 지명, '제독' 탄생 예고]
해군사관학교 졸업 후 해군 사관으로 복무하던 로빈슨은 NBA 드래프트에서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의해 전체 1순위로 지명되는 파격적인 이변을 만들었다.
이는 NBA 역사상 매우 드문 일로, 그의 특별한 커리어를 예고하는 순간이었다.
[팬아메리칸 게임 은메달]
1987년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 팬아메리칸 게임에 미국 농구 대표팀으로 출전하여 은메달을 획득했다.
1988
[서울 올림픽 동메달 획득]
1988년 서울 하계 올림픽에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으로 참가하여 동메달을 획득하며 국제 무대에서의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1989
[해군 복무 마치고 NBA 데뷔]
해군 복무를 마친 후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입단하며 기다리던 NBA 경력을 시작했다.
그의 합류로 스퍼스는 전 시즌 21승 61패에서 56승 26패로,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단일 시즌 승률 향상을 기록하며 단숨에 플레이오프 강팀으로 변모했다.
1990
[NBA '올해의 루키' 선정]
NBA 데뷔 시즌부터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며 '올해의 루키 상'을 수상했고, 생애 첫 NBA 올스타에 선정되며 리그 최고의 센터 중 한 명으로 단숨에 급부상했다.
1992
['드림팀' 일원, 올림픽 금메달]
NBA 올해의 디펜시브 플레이어 상을 수상하며 공격뿐만 아니라 리그 최고 수비수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같은 해, 농구 역사를 바꾼 '드림팀'의 일원으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하여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94
[71득점 대기록, NBA 득점왕 등극]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와의 경기에서 무려 71득점을 폭발시키는 대기록을 세우며, 샤킬 오닐과 함께 NBA 득점 타이틀을 공동으로 거머쥐었다.
이는 그의 폭발적인 득점력을 보여준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1995
[커리어 정점, NBA MVP 선정]
1995년 NBA 정규시즌 최우수 선수(MVP)에 선정되며 개인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이는 그가 리그 최고의 선수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순간이었다.
1996
[올림픽 2연속 금, NBA 50인 선정]
1996년 애틀랜타 하계 올림픽에서 미국 농구 대표팀의 일원으로 두 번째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같은 해,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5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며 살아있는 전설로 인정받았다.
1997
[부상 속, 팀 덩컨 합류]
프리시즌 등 부상과 발목 부상으로 인해 대부분의 정규 시즌 경기를 결장하는 시련을 겪었다.
하지만 이 해, 미래의 파트너이자 전설이 될 팀 덩컨이 스퍼스에 입단하며 새로운 왕조의 서막이 열렸다.
1999
[스퍼스 첫 NBA 챔피언 등극]
로빈슨과 팀 덩컨의 환상적인 '트윈 타워' 콤비 플레이를 앞세워 플레이오프에서 미네소타, 레이커스, 포틀랜드를 연파하고 파이널에서 뉴욕 닉스를 꺾고 샌안토니오 스퍼스 역사상 첫 NBA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했다.
[NBA 락아웃 종료, 단축 시즌 개막]
선수들과 구단 간의 단체 교섭 협상 폐쇄로 202일간 이어진 NBA 락아웃이 종료되고 늦게 시즌이 시작됐다.
50경기 단축 시즌이었으나 스퍼스는 37승 13패로 리그 최고 승률을 기록했다.
2002
[다가오는 '제독'의 은퇴 선언]
2002-03 시즌을 끝으로 농구 코트를 떠날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그의 마지막 시즌이 될 여정에 많은 팬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2003
[스퍼스 50번 영구결번]
샌안토니오 스퍼스는 그의 위대한 공헌을 기리며 등번호 50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이는 스퍼스 역사상 영원히 기억될 그의 상징적인 업적을 의미한다.
[두 번째 우승과 화려한 은퇴]
뉴저지 네츠를 파이널에서 꺾고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두 번째 NBA 챔피언십 우승을 이끌며 선수 생활을 화려하게 마무리했다.
마지막 경기에서 13득점, 17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고, 팀 덩컨과 함께 그 해의 선수상을 공동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