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킴 올라주원
농구 선수, 스포츠인, NBA 스타, 센터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15:37
나이지리아 출신 미국 농구 선수.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센터 중 한 명. 휴스턴 로키츠에서 두 차례 NBA 우승(1994 1995) 및 파이널 MVP 수상. 1994년 NBA 정규시즌 MVP 올해의 수비수 동시 수상. NBA 통산 블록슛 1위 기록 보유자.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농구 금메달 획득. 휴스턴 로키츠 영구 결번(34번).
1981
[대학 농구 스타]
나이지리아 출신 하킴 올라주원은 1981년부터 1984년까지 휴스턴 대학교 농구팀에서 활약하며 스타 선수로 명성을 쌓았다.
그는 대학에서 3시즌 동안 팀을 '파이널 포'에 진출시켰으며, 1983-84 시즌에는 득점, 리바운드, 블록슛, 필드골 성공률에서 NCAA 전체 1위를 기록하는 등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다.
어린 시절 축구 골키퍼 경험이 농구 풋워크와 민첩성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다. 15세에 농구를 시작했으며, 미국으로 건너와 휴스턴 대학교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에는 팀 동료 클라이드 드렉슬러와 함께 '파이널 포'에 여러 번 진출했으나, 아쉽게 우승은 차지하지 못했다. 특히 1983-84 시즌에는 NCAA 전체 리바운드(13.5), 블록슛(5.6), 필드골 성공률(0.675)에서 1위를 기록하며 퍼스트 팀 올아메리카에 선정되었다.
1984
[NBA 1순위 지명]
1984년 NBA 신인 드래프트에서 휴스턴 로키츠가 전체 1순위로 하킴 올라주원을 지명했다.
이는 당시 랄프 샘슨과 함께 '트윈 타워'를 형성하며 로키츠의 새로운 시대를 예고했다.
당시 드래프트에는 마이클 조던과 같은 재능 있는 선수도 있었지만, 농구계는 올라주원의 1순위 지명이 정확한 선택이었다고 평가했다. 랠프 샘슨과 함께 '트윈 타워스'라 불리며 1970년 윌트 체임벌린과 엘진 베일러 이래 처음으로 두 선수가 20득점과 10리바운드 이상을 평균하는 기록을 세웠다.
1985
[NBA 올루키 팀]
하킴 올라주원은 NBA 루키 시즌 동안 평균 20.6점, 11.9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올해의 신인 선수' 투표에서 마이클 조던에 이어 2위를 차지했고, NBA 올루키 팀 및 올디펜시브 세컨드 팀에 선정되었다.
1986
[첫 NBA 파이널 진출]
하킴 올라주원과 랠프 샘슨의 '트윈 타워'는 휴스턴 로키츠를 1986년 NBA 파이널로 이끌었다.
서부 컨퍼런스 결승에서 강력한 LA 레이커스를 꺾었으나, 래리 버드, 케빈 맥헤일이 이끄는 보스턴 셀틱스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1991
[이름 공식화]
하킴 올라주원은 1991년 3월 9일, 자신의 본명인 '하킴 압둘 올라주원'에서 중간 이름 '압둘'을 삭제하고 '하킴 올라주원'으로 이름을 공식화했다.
1993
[올해의 수비수 수상]
1992-93 시즌, 하킴 올라주원은 평균 26.1득점, 13.0리바운드, 4.17블록을 기록하며 리그 블록슛 1위를 차지했고, 생애 처음으로 '올해의 NBA 방어적 선수(올해의 수비수)'에 선정되었다.
[미국 시민권 취득]
나이지리아 출신 하킴 올라주원은 1993년 4월 2일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며 이중국적자가 되었다.
1994
[NBA 우승 및 트리플 크라운]
하킴 올라주원은 1993-94 시즌 휴스턴 로키츠를 창단 첫 NBA 우승으로 이끌며 리그 MVP와 NBA 파이널 MVP를 동시에 수상했다.
또한 2년 연속 '올해의 NBA 수비수'까지 석권하며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뉴욕 닉스와의 NBA 파이널 6차전에서 존 스탁스의 동점 3점슛을 블록하며 팀의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시즌 파이널에서 그는 경기당 29.1점, 9.1리바운드, 3.86블록을 기록했다. 이는 그의 경력에서 가장 화려한 성취로 기록되었다.
1995
[2년 연속 NBA 우승]
하킴 올라주원은 1994-95 시즌에도 휴스턴 로키츠를 이끌고 2년 연속 NBA 우승을 차지했으며, 다시 한번 파이널 MVP를 수상했다.
올랜도 매직과의 파이널에서 샤킬 오닐을 압도하며 팀을 NBA 역사상 5번째 연속 우승 팀으로 만들었다.
샌안토니오 스퍼스와의 서부 컨퍼런스 결승에서 데이비드 로빈슨을 상대로 경기당 35.3점을 평균하는 압도적인 활약을 펼쳤다. 파이널에서는 샤킬 오닐에 맞서 경기당 32.8득점, 11.5리바운드, 5.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을 스윕으로 이끌었다.
[드렉슬러와 재회]
1994-95 시즌 중인 2월, 하킴 올라주원은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서 대학 동료였던 클라이드 드렉슬러와 휴스턴 로키츠에서 다시 합류했다.
1996
[올림픽 금메달 획득]
1996년 애틀랜타 하계 올림픽에서 하킴 올라주원은 미국 농구 '드림 팀'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금메달을 획득했다.
2001
[토론토 랩터스 이적]
하킴 올라주원은 2001-02 시즌을 앞두고 휴스턴 로키츠에서 토론토 랩터스로 이적했다.
그는 랩터스에서 한 시즌을 보낸 후 은퇴를 선언했다.
2002
[휴스턴 로키츠 영구 결번]
휴스턴 로키츠는 2002년 11월 9일, 팀의 레전드인 하킴 올라주원의 등번호 34번을 영구 결번했다.
이는 그의 팀 내 영향력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당시 로키츠는 포인트, 리바운드, 스틸, 블록슛 등 여러 부문에서 올라주원이 팀의 역대 선두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새로운 홈 경기장에 그의 실물 크기 동상을 건립할 계획도 발표되었다.
2008
[명예의 전당 헌액]
하킴 올라주원은 2008년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며 그의 위대한 농구 경력이 영원히 기억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