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림 압둘 자바

농구 선수, NBA 레전드, 스포츠인, 작가,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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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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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BA 역대 최고의 농구 선수 중 한 명. • 전설적인 스카이훅 슛의 창시자. • NBA 최다 MVP(6회) 및 챔피언십 6회 우승에 빛나는 살아있는 역사. • NBA 통산 득점 기록을 장기간 보유한 압도적인 득점왕. • 종교적 신념에 따라 개명하며 삶의 방향을 바꾼 인물. • 은퇴 후에도 사회에 긍정적 영향력을 미치는 문화 대사이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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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

[전설의 탄생]

뉴욕에서 페르디난드 루이스 앨신더 주니어라는 본명으로 태어난 그는 과보호적 모친과 엄한 부친 밑에서 자랐습니다.

할렘의 학교 시스템을 벗어나, 장신의 소년 앨신더는 또래들에게는 변덕스러워 보였을지 몰라도 농구 재능을 키우며 자신의 길을 개척하기 시작했습니다.

1967

[대학 농구 평정]

UCLA 입학 후, 존 우든 감독의 브루인스 팀을 이끌고 대학 농구 판도를 뒤흔들었습니다.

신입생 제한으로 첫 시즌은 쉬었지만, 이후 2차례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며 NCAA 최정상 선수로 등극했습니다.

특히 1967년부터 1969년까지 3년 연속 NCAA 챔피언십 우승과 토너먼트 최우수 선수(MOP)를 석권하며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1969

[NBA 드래프트 1위]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밀워키 벅스의 지명을 받으며 프로 무대에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당시 리그는 빌 러셀의 은퇴와 윌트 체임벌린의 노쇠화로 새로운 '거인'을 기다리고 있었고, 앨신더는 데뷔와 동시에 리그를 지배할 잠재력을 보였습니다.

1970

[NBA 신인왕]

데뷔 시즌부터 득점 2위(28.8점)와 리바운드 3위(14.5개)를 기록하며 리그에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벅스는 그의 합류로 지난 시즌 27승에서 56승으로 수직 상승하는 놀라운 변화를 보였고, 그는 압도적인 활약으로 'NBA 올해의 신인' 상을 수상했습니다.

1971

[벅스 왕조의 시작]

오프 시즌 동안 오스카 로버트슨이 합류하면서 벅스는 1970-1971 시즌 리그 최고인 66승을 기록했습니다.

앨신더는 첫 NBA MVP와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플레이오프에서 12승 1패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챔피언십을 우승하고 파이널 MVP까지 석권하며 자신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새로운 이름, 새로운 시작]

1971-1972 시즌이 시작되기 전, 로마 가톨릭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하며 '고귀하고 강력한 하인'이라는 뜻의 '카림 압둘 자바'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개명이 아닌 그의 정체성과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1972

[MVP 2연패]

이름을 바꾼 후에도 그의 기량은 변함없었습니다.

벅스와 함께 2년 연속 디비전 1위를 이끌며 득점 챔피언(34.8점)과 NBA MVP를 다시 한번 거머쥐었습니다.

그의 압도적인 기량은 리그 내 독보적인 존재임을 증명했습니다.

1974

[3번째 MVP]

리그 5년차에 3번째 MVP를 수상하며 꾸준한 최정상 기량을 선보였습니다.

득점, 리바운드, 블록슛, 필드골 성공률 등 4개 주요 부문에서 NBA 톱 5 안에 들며 전천후 활약을 펼쳤습니다.

벅스는 NBA 결승전에 돌아왔지만, 보스턴 셀틱스에게 아쉽게 패하며 챔피언십 획득에는 실패했습니다.

1975

[레이커스 이적]

밀워키 벅스에서의 큰 성공에도 불구하고, 압둘 자바는 자신의 종교적, 문화적 믿음을 나눌 사람들의 부족을 이유로 행복하지 않아 이적을 요청했습니다.

그는 뉴욕 닉스나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로의 이적을 원했고, 결국 레이커스로 트레이드되었습니다.

이는 또 다른 왕조의 서막이었습니다.

1976

[레이커스에서도 MVP]

레이커스 이적 후 첫 시즌부터 팀을 지난 시즌 30승에서 약 40승으로 끌어올리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의 공헌(27.7득점, 16.9리바운드)은 리그 7년 만에 자신의 4번째 NBA MVP 상을 그에게 안겨주었습니다.

레이커스에서의 첫 시즌부터 리그 최강자임을 입증했습니다.

1977

[빌 러셀과 동률]

제리 웨스트가 레이커스의 총감독으로 부임한 후, 팀은 리그 최고인 53승을 기록하며 1위로 도약했습니다.

압둘 자바는 26.2득점, 13.3리바운드 등을 기록하며 8년 만에 5번째로 MVP에 임명되어 셀틱스의 전설 빌 러셀의 기록과 동률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컨퍼런스 결승에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 패했습니다.

1979

[매직 존슨 합류]

유타 재즈로부터 얻은 드래프트 픽으로 미시간 주립 대학교의 6피트 9인치 가드 매직 존슨을 선발하며 레이커스의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매직의 도착은 압둘 자바에게 5개 더의 챔피언십 링을 가져온 '쇼 타임' 시대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1980

[6번째 MVP & 챔프]

매직 존슨의 첫 시즌, 레이커스는 60승을 기록했고, 1980년 NBA 챔피언십으로 향하는 플레이오프에서 단 4경기만을 패했습니다.

압둘 자바는 시즌 평균 24.8득점, 10.8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역대 최다인 6번째 MVP 상을 수상하며 더욱 자신의 역사적 위치를 굳건히 했습니다.

레이커스는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를 꺾고 우승했습니다.

1982

[또 한 번의 우승]

매직 존슨과 압둘 자바를 중심으로 한 레이커스는 1982년 NBA 챔피언십에서 다시 한번 우승을 차지하며 '쇼 타임' 시대를 확고히 했습니다.

1984

[역대 득점 1위 등극]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유타 재즈와의 경기에서 매직 존슨으로부터 패스를 받아 트레이드마크인 '스카이훅' 슛을 성공시켰습니다.

이 득점은 그의 경력 31,429번째 포인트로, 윌트 체임벌린을 넘어 NBA 사상 최고 득점자에 등극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1985

[보스턴전 파이널 MVP]

38세의 나이로 많은 이들이 전성기가 지났다고 예상했지만, 보스턴 셀틱스와의 NBA 결승전에서 압도적인 활약을 펼쳤습니다.

특히 '기념일의 대학살'이라 불린 첫 경기 패배 후 맹활약하며 레이커스를 6경기 만에 우승으로 이끌고 파이널 MVP를 수상했습니다.

이는 셀틱스에 대한 오랜 패배의 설움을 씻어낸, 그에게 가장 달콤한 우승이었습니다.

1987

[챔피언십 2연패]

1986-1987 시즌에 레이커스는 다시 NBA 챔피언십을 위해 셀틱스를 꺾었습니다.

다음 해 디트로이트 피스턴스를 상대로 승리하며, 1968-69년 셀틱스 이후 첫 NBA 챔피언 2연패를 달성한 팀이 되는 역사적인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의 나이 40세에도 여전히 팀의 핵심이었습니다.

1989

[20년 농구 인생 마감]

1988-1989 시즌을 끝으로 20년간의 화려한 NBA 경력을 마감하고 은퇴했습니다.

그는 1,560경기에 출전하여 통산 38,387득점, 17,440리바운드, 3,189블록슛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남겼으며, 은퇴 당시 NBA 역대 통산 득점 1위였습니다.

그는 787경기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1995

[명예의 전당 헌액]

NBA에서 이룬 수많은 업적과 농구 역사에 끼친 지대한 영향을 인정받아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며 전설적인 선수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했습니다.

1996

[NBA 위대한 50인]

NBA 창립 50주년을 기념하여 '미 프로농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5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이는 농구 역사상 그의 위상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영광이었습니다.

2008

[혈액암 투병 시작]

2009년 11월 12일 언론에 공개된 바에 따르면, 2008년 12월 혈액암의 일종인 만성 골수성 백혈병에 걸려 현재까지 투병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다양한 사회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필라델피아 염색체 양성 만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진단받았습니다.

2012

[문화 대사 임명]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에 의해 미국 지구촌 문화 대사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농구 홍보 대사로서 코치, 방송인 활동뿐만 아니라 기아와 문맹 퇴치 등 인도주의적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2016

[대통령 자유 훈장]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영예인 '대통령 자유 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이는 그의 선수로서의 업적뿐만 아니라 은퇴 후 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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