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슈카시 페렌츠

축구 선수, 축구 감독,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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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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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헝가리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이자 감독. • 질주하는 소령이라는 별명을 가진 마법의 마자르 군단의 주장. • 레알 마드리드 황금기를 이끈 세계 최초의 국제적 축구 스타. • 유러피언컵 결승 최다 득점 FIFA 푸슈카시상 제정 등 수많은 기록과 유산을 남김. •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도 축구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세운 불멸의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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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

[푸슈카시 탄생]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세계적인 축구 스타의 탄생을 알리는 푸슈카시 페렌츠가 태어났습니다.

그의 본명은 푸르첼드 페렌츠였으나, 훗날 전설적인 축구 선수로 이름을 날리게 됩니다.

1943

[프로 경력 시작]

푸슈카시는 1943년, 훗날 부다페스트 혼베드 FC가 될 키슈페스트 AC에서 프로 축구 선수로서의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이는 그가 전설적인 커리어를 시작하는 중요한 시점이었습니다.

1945

[국가대표팀 데뷔]

1945년 8월, 푸슈카시는 오스트리아와의 경기에서 헝가리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이는 그가 '마법의 마자르 군단'의 핵심 선수로 성장할 서막이었습니다.

1949

[질주하는 소령 임관]

푸슈카시는 1949년부터 헝가리 육군에서 복무하며 소령 계급을 받았습니다.

그가 소속된 부다페스트 혼베드 FC가 국방부에 인수되면서 생긴 일로, 그는 '질주하는 소령'이라는 인상적인 별명을 얻게 됩니다.

1952

[올림픽 금메달 획득]

1952년 헬싱키 하계 올림픽에서 푸슈카시는 헝가리 대표팀의 일원으로 출전해 남자 축구 경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이는 '마법의 마자르 군단'의 강력함을 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성과였습니다.

1954

[월드컵 준우승]

1954년 스위스 FIFA 월드컵에서 푸슈카시는 헝가리의 준우승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조별 리그 서독전에서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팀은 결승에 올랐지만, 부상으로 인한 결장으로 아쉽게 우승을 놓치며 '매직 마자르'의 불패 신화가 막을 내렸습니다.

1956

[혁명과 축구 망명]

1956년 헝가리 혁명이 발발하자, 푸슈카시는 유러피언컵 출전을 위해 스페인으로 출국한 뒤 헝가리로 돌아가지 않고 망명을 택했습니다.

이로 인해 헝가리 정부의 압력을 받아 2년간 공식 경기 출장 정지라는 가혹한 처분을 받게 되었습니다.

1958

[레알 마드리드 입단]

2년간의 출장 정지 처분이 끝난 1958년, 푸슈카시는 스페인의 명문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했습니다.

그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등과 함께 레알 마드리드의 첫 번째 황금 시대를 열며 전 세계 축구 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1960

[유러피언컵 최다 골]

1960년, 푸슈카시는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무려 4골을 터뜨리는 경이로운 활약을 펼쳤습니다.

이는 현재까지도 유럽 클럽 대항전 결승전 개인 최다 득점 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그의 압도적인 득점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순간입니다.

1961

[스페인 대표팀 합류]

1961년, 푸슈카시는 스페인 국적을 취득한 후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로 국제 무대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는 그가 헝가리 대표팀에 이어 또 다른 국가의 유니폼을 입고 뛰게 된 이례적인 사건이었습니다.

1962

[스페인 월드컵 출전]

1962년 FIFA 월드컵에서 푸슈카시는 스페인 대표팀 소속으로 출전했습니다.

헝가리 대표팀으로 월드컵 준우승을 경험했던 그가 스페인 대표로 다시 한번 월드컵 무대를 밟은 것은 그의 독특한 커리어의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1966

[선수 생활 은퇴]

1966년, 39세의 나이로 푸슈카시는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헝가리 축구의 황금기를 이끌고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빛나는 업적을 남기며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채 정든 그라운드를 떠났습니다.

1971

[유러피언컵 결승 진출]

1971년, 지도자의 길을 걷던 푸슈카시는 그리스의 파나티나이코스 FC를 이끌고 유러피언컵 결승전에 진출시키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이는 그가 선수뿐만 아니라 감독으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가졌음을 증명하는 순간이었습니다.

1981

[고국 귀환과 시련]

1981년, 푸슈카시는 헝가리로 돌아왔지만, 군 복무 중 이탈한 군인 신분으로 간주되어 냉대받고 소시지 공장에서 일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결국 그는 다시 외국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1989

[고국 복권]

1989년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된 후, 푸슈카시는 마침내 헝가리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헝가리 정부는 그에게 사면 및 복권 조치를 내렸고, 이는 그가 오랫동안 고국에서 받던 오명을 벗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1993

[헝가리 감독직 수행]

사면 및 복권 조치 덕분에 푸슈카시는 1993년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그가 고국에서 마지막으로 감독 커리어를 불태우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알츠하이머병 투병]

1993년 감독직에서 은퇴한 푸슈카시는 이후 6년간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해 투병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전설적인 축구 영웅의 안타까운 말년이었습니다.

2002

[경기장 명칭 변경]

2002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위치한 넵슈터디온이 '푸슈카시 페렌츠 슈터디온'으로 이름이 변경되었습니다.

이는 헝가리가 낳은 불멸의 축구 영웅 푸슈카시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2003

[UEFA 주빌리 어워드]

2003년 11월, 헝가리 축구 협회로부터 푸슈카시는 'UEFA 주빌리 어워드'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이 상은 UEFA 창립 50주년을 기념하여 각국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에게 수여되는 영예로운 상입니다.

2006

[축구 전설의 별세]

2006년 11월 17일,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인 푸슈카시 페렌츠가 향년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사망 소식은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큰 슬픔을 안겼습니다.

2009

[FIFA 푸슈카시상 제정]

2009년, 국제 축구 연맹(FIFA)은 푸슈카시의 이름을 딴 'FIFA 푸슈카시상'을 세계최초로 신설했습니다.

이 상은 한 해 동안 가장 뛰어난 골을 기록한 선수에게 수여되며, 푸슈카시의 환상적인 득점력을 영원히 기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의 유산을 세계적으로 기리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2019

[푸슈카시 아레나 개장]

2019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푸슈카시의 이름을 딴 '푸슈카시 아레나'가 개장했습니다.

과거 푸슈카시 페렌츠 슈터디온이 있던 자리에 새로 건립된 이 경기장은 그의 위대한 유산을 계승하는 현대적 상징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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