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우제비우
축구 선수, 스포츠인, 레전드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15:15
포르투갈 축구의 전설 에우제비우는 흑표범 흑진주라는 별명처럼 폭발적인 득점력과 화려한 플레이로 전 세계를 사로잡았습니다. 벤피카에서 팀의 황금기를 이끌며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포르투갈을 월드컵 3위와 함께 득점왕에 오르는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았죠. 축구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기억됩니다.
1942
[축구 전설의 탄생]
모잠비크 마푸투에서 포르투갈 축구의 전설, 에우제비우가 태어났습니다.
그의 등장은 세계 축구사에 한 획을 그을 위대한 여정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1960
[어린 나이 첫 우승]
15살의 어린 나이로 CD 막사케니에 입단한 에우제비우는 4시즌 동안 42경기 77골이라는 놀라운 득점력을 선보이며 팀의 1960 시즌 리그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그의 이름이 축구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순간입니다.
1961
[벤피카 이적, 새 시대]
포르투갈 프리메이라리가의 명문 SL 벤피카로 이적하며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할 준비를 했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흑표범'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전설적인 활약을 펼치게 됩니다.
[국대 데뷔골]
룩셈부르크와의 1962년 FIFA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에서 A매치 데뷔골을 기록했습니다.
비록 팀은 패했지만, 포르투갈의 새로운 희망이 탄생한 순간이었습니다.
1962
[유럽 정복 시작]
SL 벤피카 소속으로 UEFA 챔피언스리그(당시 유러피언컵)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에우제비우는 이 대회 우승으로 유럽 무대에서의 압도적인 존재감을 각인시켰고, 벤피카의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이후에도 3번의 준우승을 기록하며 유럽 최고 팀 중 하나로 군림했습니다.
1965
[최고 선수 등극]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에게 주어지는 FIFA 발롱도르를 수상하며, 명실상부한 세계 최정상급 선수로 인정받았습니다.
이는 그의 압도적인 기량을 증명하는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월드컵 본선 진출 견인]
튀르키예와의 1966년 FIFA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맹활약하며 포르투갈의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습니다.
그의 발끝에서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1966
[월드컵 득점왕 등극]
1966년 FIFA 월드컵에서 6경기 8골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으로 득점왕에 올랐습니다! 특히 북한과의 8강전에서는 혼자 4골을 몰아치는 '포트트릭'을 달성하며 포르투갈을 역대 최고 성적인 3위로 이끌었습니다.
세계를 놀라게 한 '흑표범'의 전설적인 활약이었습니다.
이 대회에서 그의 활약은 포르투갈 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으며, 그의 이름은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1968
[유럽 골든슈 수상]
유럽 리그 최다 득점자에게 주어지는 유러피언 골든슈를 수상했습니다.
이는 그가 유럽 무대에서 얼마나 압도적인 득점력을 가졌는지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1973
[두 번째 골든슈]
다시 한번 유러피언 골든슈를 수상하며,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그의 득점 감각과 기량을 입증했습니다.
두 차례 수상은 그의 꾸준함을 보여줍니다.
[국가대표 은퇴]
북아일랜드와의 경기에서 A매치 마지막 득점을 기록하며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반납했습니다.
총 64경기 41골이라는 기록을 남기며 포르투갈 축구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세웠습니다.
1976
[북미 리그 우승]
SL 벤피카에서의 전성기를 뒤로하고 북미 사커 리그(NASL)의 토론토 블리저드 소속으로 25경기 18골을 기록하며 팀의 리그 우승에 공헌했습니다.
여전히 그의 존재감은 빛났습니다.
1980
[현역 선수 은퇴]
23년간의 화려했던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했습니다.
프로 통산 577경기 582골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남기며 축구 역사에 영원히 기억될 '흑표범'의 시대가 막을 내렸습니다.
2014
[영원한 안식]
심장질환과 합병증으로 투병하던 중 향년 72세를 일기로 영면했습니다.
포르투갈 정부는 나흘간을 국가 애도의 날로 지정하며 전설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전 세계 축구계가 그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2015
[국가 팡테온 이장]
사망 후 루미아르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던 그의 유해가 포르투갈의 국립 기념물인 나시오나우 팡테온으로 이장되었습니다.
이는 국가적 영웅으로서 그의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