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인 루니

축구 선수, 축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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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19- 03: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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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인 루니
축구 선수, 축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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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이자 현 감독. * 에버턴에서 데뷔 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역대 최다 득점자로 기록됨. * 프리미어리그 5회 챔피언스리그 1회 등 다수의 우승을 이끈 주역. *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도 핵심 공격수로 활약하며 최다 득점 기록 보유. * 은퇴 후 지도자로 변신하여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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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

[웨인 루니 탄생]

잉글랜드 리버풀 크록스테스에서 태어나 훗날 잉글랜드 축구의 전설이 될 재능을 품고 성장하기 시작했다.

본명은 웨인 마크 루니(Wayne Mark Rooney)이며, 리버풀 지역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릴 적부터 뛰어난 축구 실력으로 주목받았다.

1994

[에버턴 유스팀 합류]

9살의 어린 나이에 고향 클럽인 에버턴 FC 유스팀에 입단하며 축구 경력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재능으로 '원더보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에버턴 유스 시스템 내에서 큰 기대를 받았다. 리버풀 스쿨보이즈와 코플하우스 보이즈를 거쳐 에버턴에 최종 합류했다.

2002

[에버턴 1군 데뷔]

만 16세의 나이로 토트넘 홋스퍼와의 경기에서 에버턴 1군 무대에 데뷔하며 프로 선수로서 첫 발을 내디뎠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신체 능력과 축구 지능을 바탕으로 빠르게 1군 팀에 합류, 미래를 짊어질 재목으로 기대를 모았다.

[EPL 최연소 득점 기록]

아스날전에서 데이비드 시먼을 상대로 환상적인 데뷔골을 터뜨리며 아스날의 리그 29경기 무패 행진을 마감시켰고, 동시에 프리미어리그 최연소 득점 기록을 갈아치우며 전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이 골은 루니의 상징적인 골 중 하나로, 당시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팀이었던 아스날의 무패 행진을 끊은 역전골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가졌다. 혜성처럼 등장한 신예의 등장을 알리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2003

[잉글랜드 성인 대표팀 데뷔]

에버턴에서의 센세이셔널한 활약을 바탕으로 잉글랜드 성인 국가대표팀에 깜짝 발탁되어 오스트레일리아와의 A매치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데뷔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17세 160일로,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역대 최연소 선발 출전자 기록을 세웠다. 이는 그의 비범한 재능을 국가대표팀에서도 일찍이 인정한 결과였다.

[대표팀 첫 골 기록]

마케도니아와의 경기에서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의 첫 골을 기록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 골은 그를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역대 최연소 득점자로 만들었다.

데뷔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첫 골을 기록하며 국가대표팀에서도 자신의 득점력을 증명했다. 그의 나이 17세 317일로, 이 또한 잉글랜드 축구 역사에 남을 최연소 기록이었다.

2004

[UEFA 유로 2004 활약]

UEFA 유로 2004에 참가하여 조별리그 2경기에서 4골을 터뜨리는 센세이셔널한 활약을 펼쳤으나, 8강 포르투갈전에서 부상으로 이탈하며 아쉽게 대회를 마감했다.

이 대회에서 그는 자신의 이름을 유럽 전역에 각인시켰고, 특히 프랑스와의 첫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얻어내는 등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만약 부상이 아니었다면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었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맨유로 전격 이적]

에버턴에서 두 시즌을 보낸 후, 2700만 파운드(한화 약 450억 원)라는 거액의 이적료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합류하며 클럽 축구 경력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 이적은 당시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가장 비싼 10대 선수 이적 기록이었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루니에게 거는 기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맨유 데뷔전 해트트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데뷔전이었던 페네르바체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6-2 대승을 이끌었고,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 해트트릭은 챔피언스리그 데뷔전에서 달성한 것으로, 맨유 팬들에게 '웨인 루니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경기였다. 뤼트 판 니스텔로이와의 환상적인 호흡도 주목받았다.

2006

[칼링컵 우승 및 MVP]

칼링컵(현 풋볼 리그컵) 위건 애슬레틱과의 결승전에서 2골을 터뜨리며 팀의 4대0 대승과 우승을 이끌었고, 대회 최우수 선수(MVP)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루니의 활약에 힘입어 맨유는 칼링컵을 들어 올렸고, 이는 루니가 맨유에서 들어 올린 첫 번째 주요 우승 트로피가 되었다. 그의 공격적인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된 경기였다.

[맨유 올해의 선수상 수상]

2005-06 시즌의 뛰어난 활약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이 뽑은 '매트 버스비 경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며 팀의 핵심 선수로 인정받았다.

이 상은 맨유의 전설적인 감독 이름을 딴 상으로, 팬들의 직접 투표로 결정된다. 루니는 이 상을 받으며 맨유 팬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확인했다.

2008

[챔피언스리그 우승 주역]

첼시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출전하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통산 3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데 크게 공헌하며 유럽 정상에 올랐다.

이 시즌 루니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카를로스 테베스와 함께 'RO-NA-TE' 라인을 구축하며 압도적인 공격력을 선보였고, 결국 유럽 축구의 최고봉에 올랐다.

[클럽 월드컵 골든볼 수상]

FIFA 클럽 월드컵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넣어 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대회 최우수 선수에게 주어지는 '골든볼'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기량을 입증했다.

준결승 감바 오사카와의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자마자 2골을 터뜨리며 승리를 이끄는 등 대회 내내 맹활약했다. 이로써 루니는 클럽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2009

[클럽 통산 100골 달성]

맨체스터 시티전에서 에버턴 시절을 포함하여 자신의 클럽 통산 100번째 골을 터뜨리며 선수 경력의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

이 득점은 루니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꾸준히 득점력을 유지했는지 보여주는 지표였다. 앞으로 더 많은 골을 기록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2010

[PFA·FWA 올해의 선수상]

2009-10 시즌, 총 34골을 기록하며 PFA(선수협회) 올해의 선수상과 FWA(기자협회) 올해의 선수상을 모두 석권,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이 시즌 루니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카를로스 테베즈의 이적 후 팀 공격의 모든 부담을 홀로 짊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활약으로 최고의 개인상을 모두 차지했다.

[맨유와 장기 재계약]

재계약 과정에서의 마찰과 이적설이 있었으나, 결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5년 장기 재계약을 체결하며 팀에 잔류하기로 결정했다.

루니는 한때 이적을 선언하는 등 팀과 마찰을 겪었으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설득과 구단의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극적으로 잔류하게 되었다. 이는 팬들에게 큰 안도감을 주었다.

2011

[FIFPro 월드 XI 선정]

2010-11 시즌의 뛰어난 활약상을 인정받아 국제축구연맹(FIFA)과 국제축구선수협회(FIFPro)가 선정하는 '월드 베스트 일레븐' 공격수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이는 루니가 세계 최고의 선수들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음을 의미하며, 그의 꾸준함과 뛰어난 기량을 다시 한번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환상적인 바이시클 킥 골]

맨체스터 시티와의 더비 매치에서 히바우두를 연상시키는 환상적인 바이시클 킥 골을 성공시키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 골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20주년 최고의 골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이 골은 루니의 기술적 능력과 득점 감각을 상징하는 역대급 명장면으로, 잉글랜드 축구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아름다운 골이었다.

[맨유 역대 최다 리그 우승]

블랙번 로버스전에서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리그 최다 우승 기록(19회) 달성에 크게 기여했다.

이는 리버풀이 보유하고 있던 기록을 넘어선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루니의 활약으로 맨유는 프리미어리그의 새로운 역사를 썼으며, 잉글랜드 축구 최강팀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 루니는 이 우승의 핵심 멤버로서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2012

[커리어 첫 자책골 기록]

리그 8라운드 스토크 시티전에서 자신의 커리어 첫 자책골을 기록하며 불안한 출발을 했으나, 이후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자책골이라는 불운한 기록에도 불구하고, 루니는 곧바로 팀을 승리로 이끄는 맹활약을 펼치며 자신의 실력을 증명했다. 이는 그의 정신력과 리더십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EPL 최연소 150골 달성]

맨체스터 더비에서 두 골을 성공시키며 27세 46일 만에 리그 통산 150호골을 기록, 티에리 앙리가 가지고 있던 최연소 150호골 기록을 경신했다.

이 기록은 루니의 꾸준한 득점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였으며, 프리미어리그 역사에 이름을 새기는 또 하나의 업적이 되었다. 라이벌 매치에서 달성한 기록이라 더욱 의미가 깊다.

[유소년 축구 봉사 활동]

A매치 징계로 스위스 파이에른의 유소년 클럽을 찾아 기초 전술과 기술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며 축구 팬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징계 기간을 의미 있게 활용하며 축구 꿈나무들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했다. '아주 신선한 일이었다'고 소감을 전하며 재능 있는 선수들을 발견했다고 칭찬했다.

2013

[리그 9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

사우스햄튼과 풀럼과의 리그 경기에서 총 3골을 넣으며 9시즌 연속 프리미어리그 두 자릿수 득점이라는 꾸준한 기록을 이어갔다.

이는 루니가 얼마나 꾸준히 최정상급 기량을 유지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으로,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손꼽히는 득점원으로서의 면모를 재확인시켰다.

[맨유 통산 20번째 리그 우승]

아스톤 빌라전에서 판 페르시의 환상적인 골을 어시스트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프리미어리그 최초로 통산 20번째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는 데 기여했다.

루니는 이 시즌 공격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했음에도 불구하고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팀의 역사적인 우승에 일조했다. 이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마지막 리그 우승이기도 했다.

[맨유 통산 200호골 달성]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바이엘 04 레버쿠젠과의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경기에서 멀티골을 기록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통산 200호골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이 기록은 그동안의 불화설을 일축하고 루니가 맨유의 진정한 레전드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팬들에게는 변치 않는 충성심을 보여준 계기가 되었다.

2014

[맨유와 역대급 재계약]

무리뉴의 첼시 이적설 등 불화설에 휘말렸으나, 결국 주급 5억 원에 4년 재계약에 합의하며 2019년 6월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잔류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EPL 최고 주급으로 알려진 이 재계약은 맨유가 루니를 팀의 핵심이자 미래로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보여주었다. 팬들은 그의 잔류에 환호했다.

[하프라인 환상골 작렬]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의 원정 경기에서 데이비드 베컴을 연상케 하는 하프라인에서의 환상적인 골을 기록하며 다시 한번 축구팬들을 놀라게 했다.

이 골은 루니의 넓은 시야와 정확한 슈팅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명장면으로 평가받으며, 그의 기술적 완성도를 다시 한번 입증했다. 이 경기에서 루니는 멀티골을 기록했다.

[맨유의 새로운 주장 선임]

2014-15 시즌을 앞두고 팀의 새로운 주장으로 선임되며 팀의 리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오랜 기간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해온 루니는 팀원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주장 완장을 차게 되었다. 이는 그의 리더십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이었다.

[EPL 득점 3위 등극]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의 홈 경기에서 골을 넣어 프리미어리그 통산 176골을 기록, 티에리 앙리를 제치고 역대 득점 단독 3위에 오르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는 앨런 시어러와 앤디 콜만이 루니보다 많은 득점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위대한 업적을 확인할 수 있다. 루니의 꾸준한 활약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2015

[EPL 11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

선덜랜드전에서 2골을 터뜨리며 프리미어리그 출범 후 최초로 11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했다.

이 기록은 루니가 지난 10년 넘게 프리미어리그에서 꾸준히 정상급 공격수로 활약해 왔음을 증명하는 지표이다. 그의 뛰어난 득점 감각과 자기 관리 능력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맨유 통산 득점 2위 등극]

CSKA 모스크바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결승골을 기록,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통산 237번째 득점으로 팀의 레전드 데니스 로와 동률을 이루며 역대 최다골 공동 2위에 올랐다.

보비 찰턴 경의 기록에 이어 팀 역대 2위 득점자로 이름을 올리며 맨유의 살아있는 전설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 이는 클럽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었다.

2016

[단일 클럽 EPL 최다 득점]

리버풀과의 원정 경기에서 결승골을 기록하며 한 팀에서 프리미어리그 176골이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이는 한 클럽 소속으로 EPL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 중 한 명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루니는 이 골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으로만 176골을 기록, 특정 팀에서 가장 많은 프리미어리그 득점을 기록한 선수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이는 그의 맨유에 대한 헌신을 보여준다.

[올드 트래퍼드 100호골]

본머스와의 리그 최종전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여 팀 승리를 이끌었으며, 특히 올드 트래퍼드에서 개인 통산 100호골을 달성하는 기록을 세웠다.

맨유의 홈 구장인 올드 트래퍼드에서 100골을 기록한 것은 그가 맨유 팬들에게 얼마나 많은 기쁨을 주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기록이다. 그의 이름을 홈 구장 역사에 새겼다.

[맨유 유럽 대항전 최다 득점]

페예노르트와의 유로파리그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유럽 대항전 통산 39골을 터뜨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럽 대항전 최다 득점자에 이름을 올렸다.

이는 뤼트 판 니스텔로이의 기록을 넘어선 것으로, 루니가 맨유의 유럽 대항전 역사에서도 가장 빛나는 선수임을 입증하는 기록이다. 그의 골은 팀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17

[맨유 역대 최다 득점 기록 경신]

스토크 시티와의 리그 원정 경기 후반 추가시간에 환상적인 프리킥 동점골을 기록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통산 250골을 달성, 보비 찰턴 경의 기록(249골)을 넘어 구단 역사상 최다 득점자가 되는 위대한 업적을 이뤄냈다.

이 골은 단순히 기록 경신을 넘어 팀의 무패 행진을 이어가는 중요한 골이었다. 무리뉴 감독은 루니를 '확실한 맨유의 전설'이라고 극찬하며 그의 업적에 경의를 표했다.

[FWA 공로상 수상]

맨유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을 경신한 다음 날, 영국 축구기자협회(FWA)가 주최한 특별 행사에서 라이언 긱스, 데이비드 베컴 등에 이어 통산 다섯 번째로 공로상을 수상하며 잉글랜드 축구계에 끼친 영향을 인정받았다.

FWA 공로상은 잉글랜드 축구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에게 수여되는 상으로, 루니의 업적이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영예로운 수상이었다.

[도박 탕진 논란 발생]

2시간 만에 50만 파운드(약 7억 2000만원)를 탕진하는 도박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과거에도 도박으로 인한 금전적 손실이 있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사건은 루니의 사생활 문제로 대중의 이목을 끌었으며, 그의 이미지에 일부 타격을 입혔다. 그러나 이는 그의 축구 경력 자체에는 큰 영향을 미 주지 않았다.

[친정팀 에버턴 복귀]

13년간 몸담았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떠나 유스 시절부터 함께했던 친정팀 에버턴 FC로 2년 계약을 맺고 복귀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루니는 '에버턴은 항상 내 마음속에 있었다'며 복귀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고, 맨유가 주급 일부를 보조해주는 조건으로 이적이 성사되었다.

[EPL 200골 대기록 달성]

맨체스터 시티와의 리그 경기에서 득점을 기록하며 프리미어리그 통산 200골을 달성, 앨런 시어러에 이어 두 번째로 이 위업을 이룬 선수가 되었다.

이 기록은 루니가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공격수 중 한 명임을 다시 한번 증명하는 동시에, 라이벌 팀을 상대로 달성했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

2018

[MLS D.C. 유나이티드 이적]

잉글랜드 무대를 떠나 미국 메이저 리그 사커(MLS)의 D.C.

유나이티드와 3년 반 계약을 맺으며 선수 경력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는 D.C. 유나이티드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팀의 부활을 이끌며 '루니 효과'를 증명했다. 그의 합류로 MLS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잉글랜드 대표팀 은퇴]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하며 오랜 기간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펼쳤던 화려한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120경기 출전, 53골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남기며 보비 찰턴 경의 기록을 넘어섰던 팀의 역대 최다 득점자이다. 최다 필드 플레이어 출전 기록도 가지고 있다.

2019

[더비 카운티 플레잉 코치]

D.C.

유나이티드와의 계약 기간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2020년 1월부터 시작되는 잉글랜드 챔피언십의 더비 카운티와 플레잉 코치 계약을 맺으며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할 준비를 했다.

선수 생활과 지도자 생활을 병행하며 점진적으로 감독의 역할을 수행할 계획을 세웠다. 이는 은퇴 후의 삶에 대한 그의 신중한 접근 방식을 보여주었다.

2020

[아들 카이 맨유와 계약]

아들 카이 루니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스팀과 계약하며 붉은 악마의 2세 선수가 되는 기쁨을 누렸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올드 트래퍼드에 입성하게 된 것이다.

카이 루니의 맨유 계약은 팬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었으며, 루니 가문의 축구 혈통이 이어지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여겨졌다.

[더비 카운티 감독 대행]

필립 코퀴 감독의 계약 해지 이후, 잉글랜드 챔피언십 소속 더비 카운티의 공동 감독 대행으로 임명되며 본격적으로 팀을 지휘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 시점부터 플레잉 코치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팀 운영의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팀을 이끌며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시험받기 시작했다.

2021

[더비 카운티 정식 감독 부임]

공동 감독 대행으로서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후, 잉글랜드 챔피언십 소속의 더비 카운티 FC의 정식 감독으로 승격하며 지도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선수 은퇴와 동시에 정식 감독으로 부임하며, 현역 시절의 경험과 리더십을 바탕으로 팀을 이끌게 되었다. 이는 그의 지도자 커리어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2022

[커리어 공로상 수상]

두바이에서 열린 글로브사커 어워드에서 커리어 공로상을 수상하며 오랜 선수 및 지도자 생활의 업적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이 상은 루니의 끊임없는 노력과 축구계에 끼친 막대한 영향을 기리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의 축구 인생을 되돌아보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D.C. 유나이티드 감독 부임]

선수 시절 활약했던 미국 메이저 리그 사커(MLS)의 D.C.

유나이티드로 돌아와 감독으로 정식 취임하며 지도자 경력을 이어갔다.

다시 미국 무대로 돌아와 감독으로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팬들은 그의 복귀에 환영하며 팀의 재건을 기대했다.

2024

[플리머스 아가일 감독 부임]

잉글랜드 EFL 챔피언십 소속의 플리머스 아가일 FC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새로운 팀에서 지도자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D.C. 유나이티드 감독직을 마무리하고 다시 잉글랜드 무대로 돌아와 감독으로서 새로운 팀을 맡게 되었다. 그의 지도력이 플리머스 아가일을 어디까지 이끌지 기대를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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