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베켄바워
축구인, 축구 감독, 축구 행정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14:56
‘축구 황제’로 불린 독일 축구의 전설 프란츠 베켄바워. 스위퍼 포지션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그는 선수와 감독으로서 모두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세계 최초의 인물입니다. 바이에른 뮌헨의 상징이자 현대 축구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위대한 축구인으로 기억됩니다.
1945
[뮌헨에서 태어나다]
전후 폐허가 된 독일 뮌헨에서 우체국 직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8살이 되던 해 'SC 뮌헨 06' 유소년 팀에서 축구를 시작하며 축구와의 인연을 맺었다.
1959
[바이에른 뮌헨 입단]
당시 뮌헨의 지역 라이벌 TSV 1860 뮌헨의 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FC 바이에른 뮌헨 유소년 팀에 입단하여 바이에른의 전설이 될 초석을 다졌다.
1964
[바이에른 뮌헨 데뷔]
FC 바이에른 뮌헨 1군에 정식 데뷔하여 슈투트가르트 키커스와의 경기에서 성공적인 첫 발을 내디뎠다.
이 시즌 후 팀은 분데스리가로 승격하며 강팀으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했다.
1966
[1966 월드컵 준우승]
잉글랜드 월드컵에 서독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팀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수비수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득점력을 선보이며 대회 득점 공동 3위에 오르는 맹활약을 펼쳤다.
DFB-포칼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스위스와의 첫 경기에서 2골을 기록하며 5:0 승리를 이끌었으며, 우루과이와의 8강전과 소련과의 4강전에서도 득점했다.
1967
[유럽대항전 첫 우승]
바이에른 뮌헨 소속으로 UEFA 컵 위너스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유럽 무대에서의 경쟁력을 입증했다.
또한 DFB-포칼에서 2년 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1969
[바이에른 분데스리가 우승]
바이에른 뮌헨의 주장 완장을 차고 팀의 첫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끌었다.
이 시기부터 현대 축구의 핵심 전술인 '리베로(스위퍼)' 포지션을 실험하며 혁신을 시작했다.
1970
[1970 월드컵 3위]
멕시코 월드컵에 서독 대표팀으로 출전, 8강 잉글랜드전에서 만회골을 넣어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4강 이탈리아전에서 쇄골 부상을 입고도 풀타임을 소화하며 팀의 3위를 차지했다.
이탈리아와의 4강전은 '세기의 명승부'로 기억되며, 부상 투혼에도 불구하고 3-4로 패배했다. 3-4위전에서는 우루과이를 꺾고 3위를 차지했다.
1972
[유로 우승 및 발롱도르]
서독 국가대표팀 주장으로 UEFA 유로 1972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뛰어난 활약으로 축구계 최고 권위의 상인 '발롱도르'를 수상하며 유럽 최고의 선수로 등극했다.
결승전에서 소련을 3-0으로 물리치고 우승했다.
1974
[월드컵 우승 (주장)]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서독 대표팀 주장으로서 네덜란드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월드컵과 유럽 선수권 대회를 연속으로 우승한 세계 최초의 팀의 주장이 되었다.
이 우승으로 브라질이 영구 소유하게 된 '쥘 리메 컵'을 대신하여 제작된 새로운 'FIFA 월드컵 트로피'를 세계 최초로 들어 올렸다.
1976
[유러피언컵 3연패 및 발롱도르]
바이에른 뮌헨 소속으로 유러피언컵 3연패를 달성하는 위업을 이끌었다.
이는 바이에른 뮌헨 역사상 최초의 기록이다.
이 해 두 번째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UEFA 유로 1976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1977
[뉴욕 코스모스 이적]
바이에른 뮌헨을 떠나 북미 축구 리그(NASL)의 뉴욕 코스모스와 계약했다.
그는 코스모스에서 4시즌 동안 활약하며 팀에 세 번의 리그 우승을 안겼다.
1980
1983
1984
[서독 감독 부임]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그의 지휘 아래 서독은 1986년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1990
[월드컵 우승 (감독)]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서독 대표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선수와 감독으로서 모두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세계 최초의 축구인이라는 전설적인 기록을 세웠다.
브라질의 마리우 자갈루, 프랑스의 디디에 데샹과 함께 이 위업을 달성한 단 3명의 축구인 중 한 명이다. 또한 팀의 주장과 감독을 맡아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첫 사람이기도 하다.
1993
[바이에른 뮌헨 감독]
FC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을 맡아 4년 만에 분데스리가 타이틀을 팀에 안겼다.
이후 1996년에는 감독 대행으로서 UEFA컵 우승을 이끌었다.
1994년 6월 30일까지 감독직을 수행했으며, 1996년 4월 29일부터 6월 30일까지 감독 대행을 맡아 UEFA컵 우승을 이뤄냈다.
1994
[바이에른 뮌헨 회장 취임]
FC 바이에른 뮌헨의 회장으로 취임하여 2009년까지 재임하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1998년부터 2010년까지 독일 축구 연맹 부회장도 역임했다.
2006
[2006 월드컵 유치 성공]
독일의 2006년 FIFA 월드컵 유치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대회 조직위원회의 회장을 맡아 성공적인 개최에 기여했다.
이후 대회 유치 과정에서의 돈세탁 및 횡령 혐의로 조사를 받았으나, 2020년 공소시효 만료로 '혐의없음'으로 종결되었다.
2015
[아들 슈테판 베켄바워 사망]
아들 슈테판 베켄바워가 뇌종양으로 46세의 나이에 사망하는 비극을 겪었다.
슈테판 또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축구 선수로 활동했다.
2016
2024
[축구 황제 사망]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7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사망 소식은 전 세계 축구계에 큰 애도와 추모 물결을 불러일으켰다.
유족들은 그의 사인이 자연사라고 발표했다.
[등번호 5번 영구 결번]
FC 바이에른 뮌헨은 그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며, 그가 선수 시절 사용했던 등번호 5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는 영예를 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