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고 마라도나
축구 선수, 축구 감독, 스포츠인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2- 02:31:42
- 아르헨티나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이자 감독. - 펠레 메시와 함께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됨. - 1986년 FIFA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이끌며 신의 손과 5인 돌파 골 등 명장면을 남김. - SSC 나폴리의 황금기를 이끌며 클럽 역사상 첫 세리에 A 우승 등 다수의 트로피를 선사함. - 은퇴 후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했으며 약물 중독과 사생활 논란 등으로도 주목받음. - 2020년 11월 25일 심장마비로 사망.
1960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는 1960년 10월 30일에 부에노스아이레스주 라누스의 병원에서 가난한 가정 출신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남쪽 외각에 있는 판자촌 빌라 피오리토에서 자랐습니다.
1968
[유소년 팀 합류]
8살 때 동네 축구 클럽 경기 중 유소년 스카우트의 눈에 띄어 아르헨티노스 후니오르스의 유소년 팀 'Los Cebollitas'에 합류했습니다.
마라도나는 세 살 때 첫 축구공을 선물 받고 빠르게 축구에 빠져들었습니다. 8살 때 그가 살던 동네 축구 클럽 Estrella Roja에서 뛰던 중 유소년 스카우트에게 발탁되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아르헨티노스 후니오르스 유소년 팀인 'Los Cebollitas'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1976
[프로 데뷔]
생일 10일을 앞두고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소속으로 프로 데뷔전을 치렀으며,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역사상 최연소 선수가 되었습니다.
1976년 10월 20일, 마라도나는 생일을 10일 앞두고 CA 타예레스전에서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소속으로 프로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그는 등번호 16번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나섰으며,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역사상 최연소 선수가 되었습니다.
[프리메라 디비시온 첫 골]
16살이 된 지 2주 만에 마르델플라타 팀 산 로렌소전에서 프리메라 디비시온 첫 골을 기록했습니다.
마라도나는 프로 데뷔 후 16살이 된 지 2주 만인 1976년 11월 14일에 마르델플라타 팀 산 로렌소전에서 프리메라 디비시온 첫 골을 넣으며 자신의 득점력을 증명했습니다.
1977
마라도나는 1977년 2월 27일 헝가리와의 경기에서 16세의 어린 나이에 국제 경기에 데뷔하며 국가대표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1979
[FIFA U-20 월드컵 우승 및 골든볼 수상]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최우수 선수 상인 골든볼을 수상했습니다.
마라도나는 1979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대회 최우수 선수에게 주어지는 골든볼을 수상했습니다. 그는 FIFA U-20 월드컵과 FIFA 월드컵 두 대회 모두 최우수 선수 상을 받은 유일한 선수입니다.
국가대표 데뷔 2년 후인 1979년 6월 2일, 마라도나는 햄던 파크에서 스코틀랜드를 상대로 국제 경기 첫 골을 넣으며 팀이 3-1로 이기는데 공헌했습니다.
1981
마라도나와 보카 주니어스의 감독 실비오 마르솔리니 사이의 불신 관계 속에서도, 보카 주니어스는 라싱 클루브를 1점 차로 앞지르며 1981년 리그 타이틀을 확보하는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습니다. 이 우승은 마라도나가 아르헨티나 리그에서 얻은 유일한 타이틀이 되었습니다.
마라도나는 1976년부터 1981년까지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에서 5년간 활약하며 167경기에 출전하여 115골을 기록했습니다. 이후 1981년 2월 20일에 클럽 내 최고 임금을 제시한 리버 플레이트의 제안을 거절하고, 항상 뛰고 싶었던 보카 주니어스와 400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습니다.
마라도나는 보카 주니어스 이적 이틀 후인 1981년 2월 22일 CA 타예레스전에서 데뷔전을 치렀고, 이 경기에서 두 골을 넣으며 팀의 4-1 승리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수페르클라시코 데뷔골]
라 봄보네라 경기장에서 열린 리버 플레이트와의 수페르클라시코에서 드리블 골을 기록하며 팀의 3-1 승리에 기여했습니다.
1981년 4월 10일, 마라도나는 라 봄보네라 경기장에서 열린 리버 플레이트와의 첫 수페르클라시코에 출전했습니다. 그는 알베르토 타란티니와 피욜을 드리블로 제치고 골을 넣으며 보카 주니어스가 리버 플레이트를 3-1로 제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982
[1982년 FIFA 월드컵 첫 출전]
첫 FIFA 월드컵에 출전했으나 브라질전 퇴장과 팀의 2라운드 탈락이라는 아쉬운 결과를 맞았습니다.
월드컵에 첫 발을 내디딘 마라도나가 속한 당시의 아르헨티나는 세계 최강팀으로 평가받았습니다. 하지만 포클랜드 전쟁으로 인한 사기 저하와 마라도나의 브라질전 퇴장 등 악재가 겹치며, 지난 대회 우승팀임에도 불구하고 2라운드 탈락이라는 쓰디쓴 결과물을 맞아야 했습니다.
1982년 FIFA 월드컵이 끝난 6월, 마라도나는 당시 최대 이적료인 500만 파운드(760만 달러)에 스페인의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1983
[바르셀로나 우승컵 획득]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 감독의 지휘 아래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코파 델 레이와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에서 우승했습니다.
1983년,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 감독의 지휘하에 바르셀로나와 마라도나는 레알 마드리드를 꺾고 코파 델 레이(스페인의 자국 컵 대회)를 차지했으며, 아틀레틱 빌바오를 이기고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를 차지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 팬들의 기립박수]
레알 마드리드 원정전에서 득점 후 상대 팀 팬들에게서 박수갈채를 받은 첫 바르셀로나 선수가 되었습니다.
1983년 6월 26일, 바르셀로나는 전세계에서 가장 격렬한 축구 클럽 간의 경기 중 하나인 ‘엘 클라시코’ 마드리드 원정전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승리를 거뒀습니다. 이 경기에서 마라도나는 득점을 했고, 최대의 라이벌인 레알 마드리드 팬들에게서 박수갈채를 받은 첫 바르셀로나 선수가 되었습니다.
1984
FC 바르셀로나에서 퇴출당한 마라도나는 SSC 나폴리로 이적했습니다. 마라도나가 이적하기 직전까지 나폴리는 단 한 차례의 리그 우승도 차지하지 못한 약체였지만, 이 이적은 마라도나의 클럽팀 경력에서 위대한 황금기를 누리기 시작한 시발점이자 동시에 나폴리 역사상 최대의 사건이 되었습니다.
1986
[1986년 FIFA 월드컵 우승 및 MVP]
FIFA 월드컵 8강 잉글랜드전에서 '신의 손'과 수비수 6명을 제치는 '50미터 드리블 골'을 기록하며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이끌고 MVP를 수상했습니다.
마라도나는 1982년 월드컵 당시의 부진을 씻고 1986년 FIFA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의 2번째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특히 8강 잉글랜드전에서 '신의 손' 논란의 골과 함께 잉글랜드 수비수 6명과 골키퍼까지 제치고 득점한 경이로운 '50미터 드리블 골'을 기록했습니다. 이 대회에서 MVP를 차지하며 자신의 눈부신 활약을 인정받았습니다.
1987
[나폴리 첫 리그 우승]
나폴리 클럽 역사상 최초의 세리에 A 리그 우승을 거머쥐며 나폴리에서도 '신'으로 등극했습니다.
1987년 5월 10일, 마라도나의 맹활약으로 SSC 나폴리는 마침내 클럽 역사상 최초의 리그 우승을 거머쥐게 되었습니다. 이는 마라도나가 아르헨티나뿐 아니라 나폴리에서도 '신'으로 등극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9
나폴리와 계약을 연장한 마라도나는 1989년 팀을 UEFA컵 정상으로 인도하며 나폴리 역사상 첫 국제 대회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1990
마라도나는 UEFA컵 우승 이듬해인 1990년 유럽 챔피언 AC 밀란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다시 한 번 세리에 A 리그에서 정상에 등극했습니다. 당시 이탈리아 세리에 A가 수많은 슈퍼스타들이 운집한 최고의 리그였음을 고려하면 마라도나가 나폴리에서 이룬 활약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지난 대회 우승국의 자격으로 출전한 아르헨티나는 조별리그에서 카메룬에 패하는 등 고전했으나, 마라도나의 활약으로 16강에서 브라질, 8강에서 유고슬라비아, 준결승에서 개최국 이탈리아를 꺾고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결승전에서는 다시 서독과 겨루게 되었지만 2명이 퇴장당하고 페널티골을 허용하여 준우승에 그쳤습니다.
1992
1992년 코카인을 사용한 사실이 확인되어 마라도나는 구단으로부터 15개월 동안 자격 정지 처분을 받으며 선수 생활에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1993
마라도나는 이혼 과정 중에 디에고 시나그라라는 아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1993년에 이탈리아 법원은 마라도나가 친자 여부를 확인하는 DNA 검사를 거부한 후에, 그가 시나그라의 친부라는 것을 이미 인정한 바 있었습니다.
1994
[1994년 FIFA 월드컵 퇴출]
FIFA 월드컵 본선 중 도핑 테스트 결과 에페드린 양성 반응에 걸려 퇴출당하며 선수로서 마지막 월드컵을 마쳤습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본선에서 마라도나는 조별 예선 리그 2번째 경기가 종료된 시점에서 도핑 테스트 결과 에페드린 양성 반응에 걸려 리그 도중에 아르헨티나로 귀국했습니다. 마라도나를 잃은 아르헨티나는 세 번째 경기에서 불가리아에 패배하며 16강에 간신히 진출했으나 루마니아에 패해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이 월드컵이 마라도나의 현역 시절 마지막 월드컵 대회가 되었습니다.
1994년, 마라도나는 만디유 데 코리엔테스의 감독으로 활동하며 새로운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1995
1995년, 마라도나는 라싱 클루브의 감독직을 맡아 팀을 이끌었습니다.
1995년, 마라도나는 친정팀 보카 주니어스로 선수 복귀하여 1997년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2003
디에고 시나그라는 2003년 5월에 마라도나가 참가 중이던 이탈리아의 골프 대회에 몰래 찾아가, 마라도나를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2005
[위 절제 수술 및 체중 감량]
코카인 중독으로 인한 건강 문제로 위 절제 수술을 받고 1년 만에 50kg을 감량했습니다.
코카인 중독으로 사경을 헤매고 몸무게가 121kg까지 나갔던 마라도나는 2005년 3월 5일 콜롬비아 카르타헤나의 메디헬프 병원에서 위 절제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후 1년 만에 50kg을 감량하며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브라질 공항 난동]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갈레앙 국제공항에서 난동을 피우다 경찰에 연행되어 5시간 동안 구류되었습니다.
지쿠의 초청으로 자선 경기에 참가했던 마라도나는 2005년 12월 22일 공항 터미널을 착각하여 탑승구에 늦게 도착했습니다. 비행기에 탈 수 없다는 직원의 말에 격렬히 항의하며 탑승구 문을 강제로 열려다 유리창을 깨뜨리는 등 난동을 일으켜 경찰에 연행, 5시간 구류되었습니다.
2007
[토크쇼 진행자 데뷔]
아르헨티나 국영방송 채널 13번에서 '10번의 밤'이라는 토크쇼의 진행자가 되었으며, 첫 게스트로 펠레가 출연하여 화제를 모았습니다.
2007년,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 국영방송 채널 13번에서 '10번의 밤'이라는 토크쇼의 진행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첫 게스트로는 숙명의 라이벌인 펠레가 출연하여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2008
2008년 10월 28일, 디에고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어 큰 기대를 모았습니다.
2009
마라도나의 둘째 딸 지아니나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 축구 선수 세르히오 아궤로와 결혼하여 2009년 2월 19일 아들 벤자민을 낳았습니다. 벤자민은 세르히오 아궤로의 아들이자 마라도나의 외손자입니다.
[세금 탈세로 귀걸이 몰수]
이탈리아에서 현역 선수 시절 3000만 유로 상당의 세금을 탈세한 혐의로 이탈리아 방문 시 귀걸이를 몰수당했습니다.
마라도나는 이탈리아에서 현역 선수 시절에 3000만 유로에 해당되는 세금을 탈세했기 때문에 그가 이탈리아를 방문할 때마다 귀걸이, 손목시계, 목걸이 등 예물을 몰수당했습니다. 2009년 9월에 방문 중 몰수당한 귀걸이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언론 비속어 파문]
2010 FIFA 월드컵 남미 지역 예선을 간신히 통과한 후, 기자회견장에서 자신을 비판한 언론에 대해 비속어를 사용하여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이 간신히 2010 FIFA 월드컵 남미 지역 예선을 통과한 후, 기자회견장에서 마라도나는 자신을 비판한 언론에 대해서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것들을 제외한 모든 분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라고 발언한 데 이어 "나와 대표팀을 믿지 못하는 기자와 언론 사람들은 엿이나 먹어라!"라는 욕설을 하였습니다.
[FIFA 2개월 자격 정지]
FIFA로부터 기자회견 중 욕설로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해 2개월 자격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습니다.
2009년 11월 16일, FIFA는 욕설로 물의를 일으킨 마라도나에 대해 자격 정지 2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내렸습니다.
2010
[몰수 귀걸이 경매 판매]
이탈리아 세금 탈세로 몰수당했던 귀걸이가 경매에 나와 한 여성에게 25,000유로에 판매되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세금 문제로 2009년 9월에 몰수당한 마라도나의 귀걸이는 2010년 1월 14일 경매에 나왔고, 이를 한 여성이 25,000유로에 구매해 갔습니다.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감독 사퇴]
2010 FIFA 월드컵 8강 탈락 후, 아르헨티나 축구협회가 코칭 스태프들을 경질하려 하자, 이에 반발하여 국가대표팀 감독직에서 사퇴했습니다.
2010 FIFA 월드컵에서 독일에게 0-4로 대패하여 준결승 진출에 실패하자, 아르헨티나 축구협회는 마라도나를 유임하는 대신 그의 밑에서 일하고 있던 코칭 스태프들을 경질하려 했습니다. 이에 마라도나는 자신이 이끄는 코칭 스태프들을 배신할 수 없다며 2010년 7월 27일에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에서 사퇴했습니다.
[문어 파울 죽음에 악담]
2010 FIFA 월드컵 독일전 패배를 예언했던 독일의 점쟁이 문어 파울이 죽었다는 소식에 "잘 죽었다"고 악담을 퍼부었습니다.
2010년 10월 27일, 그 전날 독일의 점쟁이 문어 파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자 마라도나는 "잘 죽었다"며 악담을 퍼부었습니다. 당시 파울이 독일을 승자로 지목했고, 지목한 대로 아르헨티나가 독일에 4:0으로 대패했기 때문입니다.
2011
2011년, 마라도나는 알와슬 FC의 감독이 되어 새로운 감독 경력을 이어갔습니다.
2012
[딸의 이혼 및 전 사위 비난]
딸 지아니나와 세르히오 아궤로가 이혼했으며, 이후 마라도나는 아궤로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난했습니다.
마라도나의 둘째 딸인 지아니나 마라도나와 세르히오 아궤로 부부는 2012년에 이혼했으며 벤자민은 어머니와 함께 살기로 결정되었습니다. 한편, 마라도나는 이혼을 한 세르히오 아궤로에 대해 계속 저주를 퍼부었으며, 특히 일반인들이 모여있던 길거리에서 아궤로를 비난하는 욕설을 내뱉고 빈 병을 던지는 등의 행패로 물의를 빚기도 했습니다.
알와슬 FC의 감독이 되었으나, 2012년 7월 11일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경질되었습니다.
2013
2013년 2월 13일, 마라도나는 다섯 번째 아들을 얻었습니다.
2014
[취재 기자 폭행]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공연 관람 후 귀가 중 자신을 과잉 취재하는 기자에게 뺨을 때려 논란이 되었습니다.
2014년 8월 9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국립 극장에서 공연 관람을 마치고 귀가하던 도중에 자신이 탄 차를 가로막고 질문하는 취재 기자에 대해 뺨을 때렸습니다. 취재 기자가 마라도나의 연인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며 집요하게 질문을 한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2016
[교황 주최 경기 중 베론과 충돌]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최한 평화 기원 경기에서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과 몸싸움을 벌인 후 말다툼을 하여 안전 요원에게 제지당했습니다.
2016년 10월 12일, 마라도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최하고 이탈리아 로마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열린 평화 기원 경기에 참가했습니다. 전반전에서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과 몸싸움을 벌였고, 하프타임 때 베론에게 말다툼을 벌이다 안전 요원에게 제지당했습니다. 이는 마라도나가 아르헨티나 감독 재임 당시 베론을 중용하지 않아 발생한 과거의 갈등 때문으로 보입니다.
2017
2017년, 마라도나는 UAE 2부리그 팀 알 푸자이라 감독직에 취임하여 다시 감독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18
2018년부터 2019년까지 마라도나는 도라도의 감독직을 맡아 활동했습니다.
[인종 차별 행동 논란]
2018 FIFA 월드컵 아이슬란드전 후 몇몇 대한민국 축구 팬들을 향해 눈을 찢는 인종 차별적인 행동으로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2018년 6월 16일, 2018 FIFA 월드컵 아이슬란드와의 1차전이 있던 날, 마라도나는 몇몇 대한민국 축구 팬들을 향해 눈을 찢는 인종 차별적인 행동을 하여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월드컵 경기 중 부적절한 행동]
2018 FIFA 월드컵 나이지리아전에서 아르헨티나가 승리하자 기쁨에 겨워 관중석 아래를 향해 양손으로 부적절한 손가락 욕설을 하였고, 이는 전 세계에 생중계되어 큰 논란이 되었습니다.
2018년 6월 26일, 2018 FIFA 월드컵 조별리그 D조 3차전 아르헨티나와 나이지리아의 경기가 있던 날,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가 나이지리아를 2-1로 이겨 16강에 오르자 기뻐한 나머지 관중석 아래쪽을 향해 양손으로 꼴뚜기질(부적절한 손가락 욕설)을 하였는데, 이 장면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어 큰 논란이 일었습니다.
2019
2019년부터 2020년까지 마라도나는 힘나시아 라플라타의 감독직을 맡았습니다.
2020
2020년 11월 2일, 전해진 바에 의하면 심리적 사유로 마라도나가 라플라타의 병원에 입원했다고 합니다. 그의 대변인은 그의 상태가 심각하지 않다고 전했습니다.
병원 입원 다음 날인 2020년 11월 3일, 마라도나는 경막하혈종을 치료하기 위해 긴급 뇌수술을 받았습니다.
마라도나는 성공적으로 뇌수술을 마치고 2020년 11월 12일에 퇴원하였으며 외래환자로서 의사들의 관리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2020년 11월 25일, 61세의 나이에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주 티그레에 있는 자택에서 심근 경색(심장 마비)으로 사망했습니다.
[나폴리 홈 구장명 변경]
그의 부고 소식이 전해지자 SSC 나폴리는 그를 기리기 위해 홈 구장명을 '스타디오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로 변경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020년 11월 25일 그의 부고 소식이 전해지자 SSC 나폴리는 그를 기리기 위해 홈 구장명을 '스타디오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로 바꾸기로 결정했으며, 명칭 변경이 의결되었습니다.
2022
[2주기 추모 친선전 개최]
2주기를 기리기 위해 이탈리아 로마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추모 친선전이 개최되었습니다.
2022년 FIFA 월드컵을 앞둔 2022년 11월 14일, 로마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그의 2주기를 기리기 위해 추모 친선전이 개최되었습니다.
[아르헨티나 월드컵 우승 및 메시의 세리머니 재현]
그가 별세한 지 2년 후에 아르헨티나가 FIFA 월드컵에서 우승했고, 주장 리오넬 메시가 그의 세리머니를 재현했습니다.
마라도나가 별세한 지 2년 후에 열린 2022년 FIFA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이 36년 만에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선수들은 2년 전에 별세한 그의 영전에 우승컵을 바쳤고, 주장 리오넬 메시는 1986년 FIFA 월드컵 우승 당시 마라도나의 세리머니를 재현해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