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슨 5

음악 그룹, 팝 그룹, 보이 밴드,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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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15- 00:5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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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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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 5는 1964년 잭슨 형제들로 결성된 미국 인디애나주 출신의 전설적인 대중음악 그룹입니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어린 시절 활약으로도 유명하며 모타운 레코드에서 버블검 소울 스타일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후 더 잭슨스로 이름을 바꿔 활동하며 약 3천만 장의 앨범을 판매하는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기며 팝 음악 역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짧고 굵은 활동으로 전 세계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음악사에 길이 남을 명성을 쌓았습니다.

연관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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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

[마이클, 첫 대중 공연!]

5살 마이클 잭슨이 학교 축제에서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의 'Climb Ev'ry Mountain'을 부르며 첫 대중 무대에 섰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놀라운 재능으로 학부모들을 열광시켰고, 이 공연은 아버지 조셉이 아이들의 재능을 확신하고 그룹 활동에 박차를 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마이클은 이때를 '난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었어요. 기가 막힌 느낌이었죠.'라고 회상했습니다. 이후 조셉은 게리 시와 주변 도시의 온갖 콘테스트에 자녀들을 등록시키며 수많은 상을 휩쓸게 했습니다.

1964

[잭슨 5, 전설의 시작!]

인디애나주 게리 출신의 잭슨 형제들, 재키, 티토, 저메인, 말론, 그리고 팝의 황제가 될 어린 마이클 잭슨을 주축으로 '잭슨 5'가 공식적으로 결성되었습니다.

아버지 조지프 잭슨이 매니저를 맡아 이들의 놀라운 음악 여정을 시작하며 전설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당시 막내 마이클 잭슨은 5살이라는 어린 나이였음에도 이미 집안에서 가장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그룹의 핵심 싱어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매일 혹독한 훈련을 거치며 실력을 키웠습니다.

1965

[아폴로 극장 우승 & 첫 음반!]

'음악의 신전'이라 불리는 뉴욕 아폴로 시어터 콘테스트에 예선 없이 곧장 본선에 진출하는 유례없는 특혜를 받았습니다.

여기서 우승하며 공연비 600달러와 함께 그룹 최초의 음반 'Big Boy'를 녹음할 기회를 얻으며, 잭슨 파이브의 이름을 알리는 결정적인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이들은 인디애나 주와 미시간 주에서 워낙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기에 아폴로 극장에서 예선 없이 본선에 직행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첫 싱글 'Big Boy'는 지방 라디오 방송국에서 작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968

[모타운과 운명의 계약!]

아폴로 극장 무대에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선보인 잭슨 파이브.

모타운의 스타 바비 테일러의 추천으로 오디션을 보게 되었고, 황량한 건물과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도 마이클은 세 곡을 열창했습니다.

이틀 후, 이들은 유명 음반 회사 모타운과 역사적인 첫 계약에 서명하며 전성기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베리 고디는 그들을 친절하게 대해주지 않았고 마이클은 냉정한 시선을 받으며 'I Got The Feeling', 'Tobacoo Road', 'Who's Loving You' 세 곡을 불렀습니다. 계약 후 모타운 본거지인 캘리포니아로 옮겨 다이애나 로스의 집에서 지내며 혹독한 훈련과 준비 기간을 보냈습니다.

1969

[다이애나 로스의 파티 데뷔]

모타운의 상업적 전략으로 마이클의 나이를 8살로 낮춘 채, 다이애나 로스가 주최하는 상류층 파티에 잭슨 파이브가 깜짝 등장했습니다.

'Who's Loving You'와 'Zip-a-Dee-Doo-Dah'를 감칠맛 나게 부르는 마이클의 목소리에 참석한 기자들은 넋을 잃었고, 이 공연은 곧 대성공의 서막이 되었습니다.

고디는 아이들에게 '너희는 이제 히트 퍼레이드에서 상위권에 들어가게 될 싱글을 하나도, 둘도 아닌 세 곡을 연달아 내놓게 될 거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공연 직후 작곡가 다크 리처드가 잭슨 파이브를 위해 곡을 수정했고, 이는 곧 그들의 첫 히트곡 'I Want You Back'으로 이어집니다.

1972

[새 레이블, 새 이름 '더 잭슨스']

모타운과의 계약을 마치고 새로운 도약을 위해 에픽 레코드로 이적했습니다.

하지만 '잭슨 파이브'라는 이름의 소유권이 모타운에 있었기에, 그룹은 '더 잭슨스(The Jacksons)'로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며 큰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더 잭슨스는 1976년 에픽 레코드에서 첫 앨범 'The Jacksons'를 발표하며 성공적인 활동을 이어갔고, 이는 그룹의 독립적인 음악적 방향성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79

['Destiny' 월드투어 대성공]

전곡을 직접 작곡하며 예술적 성숙함을 보여준 앨범 'Destiny'의 선풍적인 성공에 힘입어 대규모 월드투어를 시작했습니다.

미국, 유럽, 남아프리카를 넘나들며 펼쳐진 투어는 대성공을 거두며 '더 잭슨스'의 위상을 전 세계에 공고히 했습니다.

이 투어를 통해 잭슨 형제들은 음악적 독립성과 프로듀싱 능력을 입증했습니다. 특히 마이클은 고음부를 처리할 때 형 말론과 짜고 부르는 등 재치 있는 무대 전략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1984

[논란의 '빅토리 투어' 시작]

'Thriller' 앨범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마이클 잭슨이 마지못해 참여하며 논란 속에 '빅토리 투어'가 시작됐습니다.

투어 제목, 고액 티켓값 등으로 가족 간 갈등이 심화되었고, 공연이 거듭될수록 형제들의 관계는 악화 일로를 걸었습니다.

조셉 잭슨이 투어를 발표했으나 마이클은 'Thriller' 성공 이후 누리는 자유를 만끽하고 싶어했습니다. 특히 '빅토리 투어'라는 제목이 그룹 활동의 마지막을 암시하지 않는다는 점과, 티켓값이 40달러가 넘는 고액이라는 점이 큰 논란이 되었습니다. 언론의 비난으로 결국 티켓값을 절반으로 낮췄습니다.

[마이클, 그룹 해체 선언]

'빅토리 투어' 마지막 날, 마이클 잭슨은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고 그룹의 해체를 선언하며 전격적인 솔로 활동에 매진할 것임을 밝혔습니다.

유럽 투어 연장 등 가족의 일방적인 결정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결과였으며, 이는 잭슨 파이브의 사실상 해체로 이어졌습니다.

공연 내내 형제들은 서로 다른 리무진을 타고 이동할 정도로 관계가 악화되었고, 아버지가 마이클의 의견도 묻지 않고 유럽 투어 연장을 계획한 사실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선언은 그룹의 주요 활동이 막을 내리는 상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2001

[2001년 잠시 재결합]

1989년 해체 이후, 잭슨 파이브는 2001년에 잠시 재결합하여 팬들에게 반가움을 선사했으나, 아쉽게도 얼마 못 가 다시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2012

[2012년 재활동 시작]

잠시 중단되었던 활동을 2012년부터 다시 시작하며, 잭슨 형제들은 현재까지도 음악 팬들에게 꾸준히 그들의 레거시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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